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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별이 지다
작가 : 올서리
작품등록일 : 2021.12.13

언제부턴가 세상에 닥친 기후의 변화, 환경파괴, 그리고 인간성의 상실 등의 현상이 우리와 가까운 어느 별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연호는 그 별의 흔적을 쫓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다. 초신성과 고래, 오로라, 그리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

 
#8. 실종 (1)
작성일 : 22-01-02 02:14     조회 : 433     추천 : 3     분량 : 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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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에서 깼지만 눈이 떠지질 않았다. 피곤이 풀리지 않은 듯 여전히 몸은 무거웠다. 연민은 눈을 감은 채 뒤척였다. 이제껏 살면서 요즘처럼 치열하게 살았던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언제까지 가족들에게 걱정만을 끼치며 살 수는 없었다. 뭐 하나 제대로 내세울 것 없이 무의미한 삶을 살아온 것을 후회하며 징징대는 것도 싫었다. 그날 이후의 삶은 그녀에게 있어서 덤이나 마찬가지였다. 덤으로 보상받은 삶을 이렇게 허비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맘처럼 되지는 않았다. 늘 무언가가 그녀를 짓누르며 발목을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것이라는 위로의 말로는 더 이상 합리화 시킬 수가 없었다. 가족들을 봐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차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진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 허상이기를 바라는 그날의 기억. 어렸을 적 겪었던 그때의 일들이 머릿속에 맴돌면서 다시금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최근 들어 그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이 문득문득 되살아났고,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그날의 편린들이 잠재의식 너머에서 현실로 건너오기 위해 꿈틀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밤새 쫓기며 시달리다가도 막상 잠에서 깨어나면 가슴만 두근거릴 뿐, 잘 기억나지 않는 꿈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더 치열하게 현실과 부딪쳐 어떻게든 그 기억들을 밀어내려고 노력했다. 그 어느때보다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만의 성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그들을 힘들게 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 이상은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그 일이 일어난 지 10년이 넘은 지금, 가족들은 당시의 일들에 대해 그 어떤 경우에도 말을 아꼈고, 절대 밖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것은 집안의 금기였다. 연민은 그런 가족들의 노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잠자고 있던 기억들이 이제 와서 자꾸만 떠오르는 거지? 마음 먹고 제대로 한 번 살아보려고 하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녀는 하필이면 이럴 때, 오래 전의 일로 흔들리는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정작 생각나는 것은 거의 없었고, 기억의 조각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퍼즐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던 3일 때문에 이렇게 불안하고 힘들었던 적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스스로 철저히 부정하면서 닫아버린 마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히려 그날에 대한 기억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것처럼 여기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다시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면서도 답답했다.

  그날에 대한 연민의 기억은 무엇 하나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추상과 상징으로 온통 투영되어 있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당시의 상황은 연민보다 오히려 연호가 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도,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들도, 그 어느 누구도 명확히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그 사건은, 세월이 지나 모두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갔지만, 비록 잔상일지라도 오직 연호만이 그녀의 기억을 있는 힘껏 붙잡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3년 정도 지난 어느 날 새벽, 아직 잠에서 덜 깬 연민은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횡설수설 혼잣말을 했다. 마침 잠을 자고 있지 않던 연호는 뒤숭숭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어 방안을 서성였다. 숨을 쉴 때마다 마음 속 깊은 곳의 또 다른 자아와 본능의 목소리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얼른 연민이에게로 가봐, 얼른!’

 

 연민의 방에서는 어렴풋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선 연호는 잠이 깨지 않은 채 움찔거리며 뒤척이는 동생의 모습을 보았고,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누구에게라도 알리려는 듯, 어떻게든 말하려고 애쓰는 연민이. 연호는 어쩔 줄을 몰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떡하지. 깨워야 하나?’

 

 연민은 점점 더 흐느끼며 애타게 호소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들렸다. 연호는 차마 그녀를 깨울 수가 없었다. 그는 주변에 있는 종이와 펜을 들어 동생이 하는 말을 서둘러 받아 적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마치 호수 같아. 근데 끝이 보이지 않아. 너무 추워. 견딜 수가 없이 추워.

 뼛속까지 다 얼어버릴 것만 같아.

 어딘지 알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그렇다고 밤은 아닌 것 같은데.....

 이곳은 하늘이 없나봐. 그렇다고 밤도 아니야. 별도 달도 전혀 떠있질 않아.

 온통 차가운 물과 바위, 뭔지 모르지만 미끄럽고 끈적거리는 것들만이 느껴질 뿐이야.

 물은 흐르지도, 일렁이지도 않아. 살아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숨을 쉬는 것은 오직 나 하나뿐.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오빠, 오빠!

 어서 날 여기서 빼내 줘. 너무 춥고 무서워. 제발, 오빠!

 .....

 그나마 내 눈이 이 어둠에 적응한 것 같아.

 아주 조금, 아주 조금씩 주변이 보이기 시작해.

 .....

 아무래도 여긴 지상이 아닌 것 같아.

 동굴인가? 땅속에 있는 호수인가?

 그렇다면 어딘가 나가는 곳이 있을 텐데.

 하지만 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어. 온몸이 얼어붙은 것 같아.

 오빠, 오빠!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어서 날 구하러 와줘.

 못 버티겠어. 살려줘, 오빠. 가라앉을 것만 같아.』

 

 연호는 펜을 던지고 연민의 손을 꼭 잡았다.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 그래. 오빠 여기 있어. 널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야. 꼭 구해 줄게.”

 연민은 웅얼거림을 멈췄고, 두 눈을 감은 채 연호처럼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이 흐느끼는 소리와 대기의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연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전히 연호의 손을 놓지 않은 채였다.

 

 『아니, 아니야, 오지 마! 오빠도 위험해질 거야. 나는 틀렸어.

 그래, 오지 않는 것이 좋겠어.

 혹시 내가 죽어 쓰러져있다면, 불쌍한 우리 오빠, 너무 슬프겠다!

 절대 오지 말고 거기, 그곳에 가만히.....』

 

 그녀의 목소리는 여기까지였다. 연호는 눈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

  당시 연민의 갑작스런 실종은 온 가족의 삶을 마비시켜 버렸다. 누구도 그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이제는 다 덮고 잊은 줄 알았던 연민은 여전히 그 기억 속에서 외롭게 죽어가고 있었다. 연호는 동생의 죽음을 기록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연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흐느끼고 있었다. 동생 하나 지키지 못하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이 무엇보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연민이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떴다. 무의식과 의식을 오가는 찰나 오빠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은 그녀는 살짝 정신이 들었고, 자신이 무엇을 보았고 중얼거렸는지 어렴풋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옆에는 오빠가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면서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연민은 아무 말 없이 오빠를 안아주었다. 연호는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연민은 오빠를 더 꽉 끌어안았다. 틀림없이 우는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그녀는 오빠를 위해서라도 더 놓아줄 수가 없었다. 연호도 더 이상 몸을 빼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동생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지만, 지금은 어떻게 수습을 할 수가 없었다. 남매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창가로 스며드는 아침의 태양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날 아침은 세 사람 모두가 유독 늦잠을 잤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등교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연정은 당시 미국으로 유학을 가 있었고, 상현은 출판사 일 때문에 지방으로 출장을 가 있었다.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던 연호는 수험생의 속박에서 벗어나 평소에 하지 못한 일들을 원 없이 하고 다닐 때였다. 고등학생인 연민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장 먼저 집을 나서야 했고 연호도 일찍 수업이 있었지만, 그날따라 밤새 뒤숭숭한 꿈에 시달린 숙희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모두들 허둥대며 집을 나서야만 했다.

  남매는 씻는 것도 대충, 밥도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그나마 숙희가 초인적인 힘으로 서두른 덕에 시간에 맞춰 나갈 수 있었다. 연민이 먼저 집을 나섰고, 연호가 뒤이어 나갔다. 연호는 동생이 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버스를 타야 했다.

 

  ‘이 녀석은 잘 가고 있나?’

 

 연민은 행여 늦을세라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연민이 학교에서 과제물 발표를 하는 날이었다. 연호는 동생의 부탁으로 늦게까지 그녀를 도와주었고, 그것 때문에 더 늦잠을 잤다.

 

  ‘떨지 말고 잘해야 할 텐데.....’

 

 연호는 동생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시간이 궁금했다.

 

  ‘으. 이러다가 나도 늦겠다!’

 

 연호는 얼른 돌아서 정류장을 향해 뛰었다. 그 순간이 바로 가족들의 인생에서 사라져버린 3일의 시작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남매를 모두 학교에 보낸 숙희는 간밤의 기분 나빴던 꿈을 잊으려는 듯,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밀린 빨래를 돌리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점심때쯤 일을 마치고 식탁에 앉아 쉬고 있을 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연민의 담임선생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오늘 연민이가 결석을 했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나 해서요?”

 

  “아니요, 아침에 학교로 갔는데요.”

 

 그때부터 집안은 발칵 뒤집어졌다. 연호는 연락을 받자마자 수업 도중에 뛰쳐나왔고, 출장 중이던 상현도 급히 귀가를 서둘렀다. 상현은 유학중이던 연정에게는 알리지 말자고 했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서는 절차를 따지며 시간을 지체했고,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가출일 가능성이 크니 좀 더 기다려보자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당신들 자식이 이런 일을 당해도 그럴 수 있겠냐며 아무리 소리치고 따져 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들을 믿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가족들은 직접 나서서 연민의 주변 친구들과 연락을 취했고, 등교할 때 지나가는 거리, 시장 안의 길 등 동네 곳곳을 뒤지고 다녔지만,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다. 그때처럼 시간이 아까운 적도 없었다. 너무나도 귀중한 일분일초가 속절없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가족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진 숙희와 이를 악물고 버티는 상현과 연호. 집안은 거의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경찰에서는 하루가 지나서야 실종으로 가닥을 잡고 뒤늦게 수사를 시작했지만, 그 어떤 단서나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경찰들이었지만, 그래도 가족들은 마지막까지 그들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에게 3일은 3년과도 같았다. 아무런 소식도 없이 허망하게 3일이 지났을 무렵, 한밤중에 상현의 집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 숙희는 정신을 잃은 채 방에 쓰러져 있었고, 상현과 연호는 망연자실하여 거실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벨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마음이었다.

 

  ‘제발, 제발 살아만 있어라.’

 

  “아버지. 얼른 받아보세요!”

 

 상현은 눈을 질끈 감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이후로 가족들은 늦은 밤에 전화가 울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연호는 자기 전엔 무조건 휴대폰을 껐고, 밤이 아니더라도 모르는 전화가 오면 거의 받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피해의식이었다.

 

  “여기 경찰섭니다! 연민 양, 아버님 되시나요?”

 

  “네, 네. 그렇습니다만.....”

 

 상현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찾았습니다. 따님을 찾았습니다!”

 

  “.....”

 

 속으로는 살아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상현의 입은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제발, 제발.....’

 

  “따님은 무사하구요, 지금 병원으로 이송중입니다. 얼른 그쪽으로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호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의 목소리만으로도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았다. 만감이 교차하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상현도 마찬가지였다. 연호는 살면서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목격했다. 연호도 울컥했지만, 왠지 참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두 눈 부릅뜨고 눈물을 삼켰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며 숙희를 깨웠고, 그 사실을 알렸다. 끝없이 무너져 내리던 숙희의 심신은 각성제를 맞기라도 한 듯 갑자기 되살아났고, 세 사람 모두 앞뒤 잴 겨를도 없이 집을 나서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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