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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별이 지다
작가 : 올서리
작품등록일 : 2021.12.13

언제부턴가 세상에 닥친 기후의 변화, 환경파괴, 그리고 인간성의 상실 등의 현상이 우리와 가까운 어느 별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연호는 그 별의 흔적을 쫓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다. 초신성과 고래, 오로라, 그리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

 
#3. 속삭임 (3)
작성일 : 21-12-17 19:11     조회 : 501     추천 : 3     분량 : 6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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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이번 일요일만큼은 꼭 쉬려고 했지만, 신입생들의 보충수업이 잡혀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말 한마디 하기가 힘들 정도로 목이 아팠고, 다리는 퉁퉁 부어 서있기가 힘들었다. 겨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연호는 될 수 있으면 부모님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곧장 올라가려고 했다. 조심스럽게 거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려던 순간, 주방 쪽에서 갑자기 나타난 동생 때문에 연호는 너무 놀라 자빠질 뻔했지만, 안 그런 척하면서 말했다.

 

  “뭐야? 넌 왜 이 시간에 주방에서 나오냐?”

 

  “오빠, 왔어? 일요일인데 쉬지도 못하고, 많이 힘들었지? 지금 11시가 넘었는데...”

 

 연민은 말끝을 흐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고, 연호도 괜히 안방 쪽을 쳐다보면서 속삭였다.

 

  “괜찮아. 근데, 두 분 다 주무시냐?”

 

 연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현이 헛기침을 하며 거실로 나왔다.

 

  “이제 왔냐? 피곤할 텐데 어서 올라가서 쉬어라. 원, 거기는 일요일도 없냐? 쯧쯧...”

 

  “네, 아버지...”

 

 곤란해 하는 오빠를 2층으로 떠밀며 연민이 말했다.

 

  “오빠. 얼른 옷 갈아입고 주방으로 내려와 봐. 나랑 엄마랑 맛있는 것 해놨어.”

 

 연호는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다.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는지, 연민은 또 왜 저러고 있는지.

  연호는 옷을 다 갈아입고도 괜히 방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끌었다. 발걸음도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와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옷 갈아입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그런 게 있어. 아버지는 들어가셨지?”

 

  “응.”

 

 연호는 식탁위에 놓여있는 음식을 보자 시장기를 느꼈다. 수업 중간에 대충 간식으로 때워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늦은 시간에 먹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들 했지만, 알면서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야. 근데 왜 먹으면서도 피곤이 몰려오냐?”

 

  “오빠.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잠자리에 너무 많이 먹지 마.”

 

  “먹으랄 땐 언제고? 그러니까 밤에 이런 거 만들어 놓지 마. 있으면 자꾸 먹게 된단 말이야.”

 

  “뭐래. 언젠 또 맛있는 거 해달라며!”

 

 두 사람은 주방에서 12시가 넘도록 투닥거리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잠에서 깬 숙희가 물을 마시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왔다.

 

  “이제 들어왔니?”

 

  “아니, 왜 깨셨어? 우리 목소리가 너무 컸나?”

 

  “응. 오빠 목소리가 너무 커.”

 

  “뭐래는 거야.”

 

 연호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너스레를 떨었다.

 

  “어휴, 피곤해서 어째? 요즘 우리 아들 얼굴이 말이 아니네. 전에는 안 그러더니 너도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좀 달라 보인다. 제발 건강 챙기면서 다녀.”

 

  “엄마는 무슨 나이 얘기를 갑자기 하고 그래. 알았으니까, 여기는 연민이랑 내가 다 치우고 잘게. 걱정 마시고 얼른 들어가서 주무셔.”

 

  “그래. 둘 다 너무 늦게 자지 말고.”

 

 돌아서는 숙희에게 연민이 물었다.

 

  “엄마. 근데 내일 병원 가는 거 잊지 않았지?”

 

  “그럼.”

 

 연호는 주방을 나선 숙희가 방에 다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왜? 엄마, 어디 또 아프셔? 병원에 갈 정도로?”

 

  “아니, 엄마가 아니고, 아빠.”

 

  “뭐? 아버지가?”

 

 숙희는 타고난 체질이 약해 평소에도 병원을 자주 다녔다. 그런 그녀가 아프다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크게 놀랄 일이 아니었지만, 상현은 그렇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네 뒷산의 약수터를 다녔고, 주말이면 등산을 즐겼다. 오히려 젊은 연호보다 더 힘이 넘쳤다. 그는 움직이는 걸 싫어하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연호는 그 흔한 감기 한 번 잘 걸리지 않는 아버지가 병원을 간다는 말에 조금은 놀라는 눈치였다.

 

  “아니, 그렇게 건강한 분이 도대체 어디가 아프신 거야? 요즘 좋아 보이시던데?”

 

 근심 가득한 얼굴로 연민이가 말했다.

 

  “그게..., 언젠가부터 입안에 허물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왜 우리도 피곤하면 그렇잖아?”

 

  “그렇지. 나도 자주 그러는데.”

 

  “근데, 지금까지 내색을 안 하고 있다가, 암튼 아빠가 원래 그렇잖아! 그냥 좀 지나면 낫겠지 하면서 약만 바르고, 참으면서 넘겼는데, 아무리 뭘 해도 낫지 않으니까 이제야 엄마한테 얘기를 했나봐. 하여간 아빠는 그런 게 맘에 안 들어.”

 

  “그거 엄청 신경 쓰이고 아픈데..., 그래도 좀 쉬면서 며칠 지나면 낫는 거 아냐?”

 

  “그런데 그렇지 않으니까 문제지. 어쨌든 내일 병원에 가서 상담도 하고 검사도 좀 해 보려고.”

 

  “그러는 게 좋겠다. 근데 너도 가?”

 

  “응. 오지 말라고 하는데, 왠지 아빠가 아프다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해서 같이 가려고. 집에서 놀고 있는데 뭐.”

 

 연호는 고개를 흔들며 확신하듯 말했다.

 

  “별일 없을 거야!”

 

  “그럼.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참! 언니도 내일 병원에 올 거야. 어쨌든 다 같이 진료 끝나고 점심 먹기로 했으니까, 오빠도 피곤하겠지만 웬만하면 좀 일찍 일어나서 나와. 다 같이 점심 먹고 학원에 가.”

 

  “아니, 내일 대전에서 여기를 온단 말이야? 그리고 왜 갑자기 모여서 식사를 해?”

 

 얼굴을 찡그린 연민이 오빠의 팔을 때리며 말했다.

 

  “으이그, 오빠 네가 그렇지 뭐! 3일 후에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거든? 그것도 41주년이나 되는. 근데 그날은 다들 시간이 맞지 않아서 내일 모이기로 한 거야.”

 

  “엥? 진짜? 근데 왜 나한테는 말을 안 해주냐?”

 

  “지난번에 언니가 올라왔을 때, 형부랑 다 같이 얘기했는데 오빠가 까먹은 거지!”

 

 연호는 놀라면서 달력을 보았다.

 

  “아, 그래 맞다, 맞아! 그런데 어떡하지? 난 준비한 게 하나도 없는데. 넌 뭐라도 준비했냐?”

 

  “그냥, 용돈 정도? 엄마가 요란한 거 싫다고 해서, 그냥 다 같이 모여서 조촐하게 식사나 하제.”

 

  “그래, 이제 와서 뭘 준비하긴 그렇고, 용돈이나 챙겨드리는 게 제일 낫겠지?”

 

  “그래.”

 

  “근데 네가 돈이 어딨어? 너 혹시 나한테 뺏어가지고 엄마 드리려는 건 아니지?”

 

  “뭐래. 나도 돈 모아둔 거 있거든? 암튼 오빠도 시간 맞춰서 병원으로 나오기나 해.”

 

 자신을 노려보는 연민의 시선을 피하면서 연호가 말했다.

 

  “아버지가 나까지 병원에 오는 거,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원래 아버지가 의사들 싫어하잖아. 다 같이 몰려가면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싫어하시지 않을까? 나는 그냥 병원에서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약속 장소로 바로 갈게. 그게 좋을 것 같아. 근데 매형하고 윤지도 오냐?”

 

  “당연히 형부랑 윤지도 오지.”

 

 조카인 윤지라는 이름만 들어도 연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근데 누나는 시간이 되나?”

 

  “내일, 마침 언니가 서울 올라올 일도 있고 해서 월차를 냈대. 잘됐지 뭐. 형부는 강의가 없는 날이고.”

 

 연호는 이제껏 한 번도 아버지가 아프다는 상상을 해 본적이 없었다. 먼 훗날, 원래 몸이 약한 어머니가 당연히 먼저 돌아가시고 혼자된 아버지가 당신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견딜 것인지, 그런 엉뚱한 생각을 언뜻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아버지의 건강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연호는 더 이상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숨을 크게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들어가. 여긴 내가 정리할게.”

 

  “뭘. 같이해”

 

 동생과 함께 주방을 정리하다가 주방 입구에 놓여있는 화분이 연호의 눈에 들어왔다. 히아신스 꽃이 심어진 화분이었다.

 

  “아, 맞다!”

 

 이렇게 막 떠올랐을 때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그나저나 내 방이랑 2층에 있는 화분들 좀 치우면 안 되겠냐?”

 

 연민은 주변을 정리하다말고 연호를 휙 돌아보면서 쌀쌀맞게 말했다.

 

  “오빠!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그게 그렇게 거슬려?”

 

  “아니, 그게 아니고...”

 

 연민의 표정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괜한 얘기를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재미없게 사는 녀석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심통을 부리다니.

 

  “아, 알았어. 그게 아니고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냐면, 요즘 들어 다른 냄새랑 섞여서 너무 별로였어. 꽃 자체는 너무 예쁘고 좋지. 암튼 미안해.”

 

 연민은 아직 마음을 돌릴 생각이 없었다.

 

  “오빠도 꽃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하늘의 별만큼이나 좋아한다며? 여행이나 어디 다닐 때마다 그렇게 꽃들을 찍어서 내게 사진집까지 만들어 줬으면서, 그게 다 형식적.....”

 

  “뭘 그렇게 확대하고 그래? 근데 내가 꽃을 별만큼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고? 그건 기억에 없는데.....”

 

  “흥! 이거 봐, 이거. 딱 걸렸잖아.”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연호는 동생을 달래기 위해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화는 벌써 다 되어버렸고, 이제는 연민이가 마음을 돌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연민아, 오빠가 지금 너무 피곤하다.”

 

  “으이그. 수 쓰기는. 알았어. 얼른 올라가서 쉬어.”

 

  “그래, 그래. 우리 다음 주에 꽃들 보러 식물원에 가자.”

 

  “됐어. 오빠는 주말에 쉬어야지, 가긴 어딜 가.”

 

  “그럼 그때 가서 상태 보고 결정하자고. 암튼 풀린 거다!”

 

 연호는 잽싸게 2층으로 올라갔다. 연민도 웃으면서 주방을 나와 방으로 돌아갔다. 2층의 시계는 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1층의 불도 모두 꺼져 컴컴했다. 연호는 올라가자마자 샤워를 했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 몇 안 되는 방법 중에 하나였지만. 오늘은 샤워를 해도 풀리지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무거운 생각들이 너테처럼 쌓이기만 했다. 오늘도 역시 편히 못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워낙 건강하시니까 별 일 없겠지, 뭐. 에라, 모르겠다. 잠도 안 오는데 음악 들으면서 그림이나 그릴까? 아! 연민이한테 꽃을 그려주면 좀 풀리려나.....’

 

 

  연호는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곳에서 살아왔다. 동네의 대부분 지역이 개발되고 정비되어 옛 모습을 잃어갔지만, 연호가 사는 이곳은 아직 예전의 정감이 남아있는 오래된 곳이었다. 단독주택들이 즐비했던 곳에 자리한 2층 집은 연호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에서 제법 큰집이었는데, 이제는 수많은 신축 아파트와 새로 들어선 다세대주택들 사이에 가려져 작고 오래되어 보였다. 하지만 몇 번 이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현은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연호는 이사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강력하게 반대하곤 했다. 아파트 같은 곳에서는 천체를 관측할만한 공간을 만들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신에 때마다 외부를 수리하고 인테리어도 몇 번 고쳐서 그런지 누구든 한 번 찾아오면 다시 오고 싶어 하는 그런 곳이기도 했다. 게다가 집착에 가까운 연민의 꽃 사랑 덕에 집안은 언제나 울긋불긋 화사했고, 향기가 가득했다.

  연정이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연호의 방과 연민의 방이 2층에 있었고, 연정의 방은 부모님의 방과 함께 1층에 있었다. 나중에 연정이 결혼한 이후로는 연민이 언니가 쓰던 1층으로 내려갔고, 2층은 연호가 독차지하게 되었다. 동생이 쓰던 방을 자신의 작업실로 꾸며놓았고, 그곳에서 틈틈이 취미 수준은 조금 넘는 그림을 그렸다. 또한 별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장비나 사진에 관련된 장비들을 보관해두었다. 사진은 어떤 특별한 소재나 주제만을 찍지는 않았지만, 그림은 오직 별과 하늘이 있는 풍경, 그리고 꽃들만 그렸다. 연민 때문에 그리기 시작한 꽃그림은 세상 어디에 내놔도 작품으로 인정받을 정도의 경지에 올라있었다. 별, 사진, 그림. 그것들은 연호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삶의 큰 위안거리였다.

  전쟁 때 부모를 잃고 어릴 적부터 터울이 있는 형제들의 돌봄으로 자란 상현은 성인이 되면서 영화나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접하기가 쉽지 않았던 카메라나 사진 현상과 같은 기술들을 열심히 배웠다. 그러다가 한국영화의 황금기라고 불리던 1960년대, 영화계에 발을 디뎌 밑바닥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마침내 뭐든 열심히 하는 상현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그때부터 스틸사진을 담당하며 꽤 오랫동안 그 분야에서 일을 해왔다. 영화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그쪽에서 다져진 인맥을 통해 문화예술 분야의 사진이나 화보를 주로 다루는 출판업을 시작했으며, 몇 번의 굴곡을 거치면서 사업을 계속 확장해 왔고,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사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사진이나 그림을 접할 수 있었던 연호는 천문가 다음으로 꿈이 사진작가였을 정도로 사진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림에도 남다른 소질을 발휘했다. 그는 무엇이든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고, 한 번 보면 그 이미지를 스캔하듯 기억하는 재주가 있었다.

  수국, 초롱꽃과의 꽃들. 지금까지 수백 번도 더 그렸을 그 꽃의 그림들. 연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두 종류의 꽃들 중에서 오늘은 금강초롱을 선택하여 그렸다. 밤을 지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던 연호는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 순간 의자에 기대어 눈을 붙였지만,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방으로 건너가 잠을 자려고 했지만 그것마저 귀찮을 만큼 꼼짝도 하기 싫었다. 오늘처럼 이른 시간에 약속이라도 잡혀있는 날엔 행여 제시간에 깨지 못할까봐 신경이 쓰여서 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작업실 구석에는 연민이 방을 옮기기 전까지 쓰던 침대가 놓여있었다. 이곳에서 작업을 할 때면 연호는 종종 그 침대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오늘도 피곤한 몸을 눕혀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했지만, 시간만 하염없이 흐를 뿐이었다. 잠을 잔건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옅은 잠에 뒤척이다 시계를 보면 6시 30분, 조금 있다가 다시 보면 7시20분, 다시 9시. 다시 10시. 그저 환장할 노릇이었다.

 

  ‘와, 돌아버리겠다! 더 누워있어 봤자, 성질만 더러워지겠어.’

 

 연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주변을 정리하고 서둘러 출근준비를 마친 후, 1층으로 내려갔다. 아무도 없었다.

 

  “진료예약시간이 10시라고 했나?”

 

 연호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대충 진료를 마칠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향했다. 머리가 몹시 아팠고 마음이 복잡했다.

 

  ‘아버지야 뭐, 괜찮겠지. 근데 왜 이렇게 축 처지지?’

 

 이런 날, 부모님의 결혼을 기념하는 이런 의미 있는 날에 여자 친구라도 함께 참석해 자리를 빛냈으면 무척이나 좋아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버스나 전철을 타고 올 걸 그랬나?”

 

 월요일이라 그런지 길이 좀 막혔고, 병원 주변에 차량도 많아지면서 시간은 점점 더 지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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