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낫질 않지.”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사체에 성수를 뿌리는 셀레나 사제의 팔목에는 가시나무 같은 돌기가 돋아 있었다.
‘잠깐만. 저건 크리처 증상 아니야?’
가시나무 모양의 돌기. 그건 바로 크리처가 되어 가는 증상 중의 하나였다.
「크리처. 블러드 필드 속에 등장하는 괴생명체. 공포 게임, <사일런트 힐>의 삼각두 캐릭터나 미드, <기묘한 이야기>의 데모고르곤 같은 괴생명체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들과 다른 점은 크리처는 좀비처럼 전염을 시킨다는 것이다.」
‘잠깐만. 원작에서 셀레나는 나름 비중있는 캐릭터야. 중반부까지는 꼭 살아남아서 폭탄 하나 크게 터트리는 역할이라고. 벌써부터 크리처에 전염되었을 리 없어.’
혼란스러웠다. 무언가 원작과 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일단은 도망가야만 했다. 그녀는 셀레나 사제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살금살금,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크리처가 된 자들은 대부분의 지능을 잃는 대신 감각 기관의 능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누구.지.”
“!!”
피투성이가 된 성수병을 든 셀레나 사제가 엉거주춤 물러선 나를 바라보았다.
‘윽.’
그녀의 얼굴은 끔찍하게 함몰 되어 있었다. 두 눈이 자유로 귀신처럼 뻥 뚫려 있었고 온몸에는 불에 탄 듯한 흔적이 선명했다.
“냄새. 맡아 본 적. 있다.”
감각 기관의 능력이 상승해서인지 냄새만으로도 나를 기억하는 듯 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숨을 멈춘 채로 움직였다. 다행히 눈이 없어서인지 내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직 블러드 필드가 활성화 된 걸 알려주는 메신저는 나타나지 않았어. 이러면 안 되지! 원래 설정들하고 다르잖아!!’
셀레나 사제도 메신저도, 무언가 이상했다. 무언가가 원작에서 몇 걸음씩 빗나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조용했던 마을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산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미 몇몇은 크리처가 되었을 것이다.
‘젠장.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크리처가 되어 가는 셀레나 사제가 이동하면서 유일한 출입구가 막혀버렸다. 어떻게 도망가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던 그때.
파아아앗!
커다란 굉음이 광장 쪽에서 들려왔다.
“?!”
셀레나는 몸을 기괴하게 비틀며 소리가 나는 광장으로 쫓아갔고, 그 틈에 뒷골목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제일 중요한 자수정 반지도 주머니에 챙겼다.
‘아직은 별 가치가 없는 비싸기만 한 반지에 불과하지만, 중간 상인을 만났을 때는 이것만큼 중요한 게 없어. 만약 블러드 필드에 남게 된다면 이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야.’
이윽고 바깥으로 나가보니 소리가 난 곳에서는 커다란 불꽃이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었다. 셀레나는 불꽃의 주위를 돌고 있었고, 그 불꽃을 피어올린 건…
‘반스타인?!’
반스타인이 반대쪽에서 그녀를 향해 고갯짓했다. 그 방향은 쌍둥이들이 머무르는 헤르미안의 저택을 향하고 있었다. 그가 입모양으로 말했다.
「먼저 가라.」
「너는?!」
「곧 따라간다.」
그는 남주인공 같은 말만 남기고는 반대편으로 불꽃을 던져 셀레나 사제를 유인했다. 그 뒷모습이 너무 걱정되긴 했지만 그는 일단 비중이 큰 메인 남주였다. 더구나 보이는 것과는 달리 엄청나게 강한 녀석이기도 했고.
‘……그래, 반스타인은 어떻게든 혼자 살아남을 거야, 일단은 쌍둥이들이 위험해.’
서둘러 저택을 향해 뛰어갔다. 혹시나 그곳에 크리처들이 침입하기라도 한다면, 인사불성 상태인 쌍둥이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게임 오버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자수정. 보석.”
꺼림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아차할 순간도 없이 둔탁한 주먹이 날라들었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그 주먹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자수정. 보석.”
그 앞에는 검은 안경을 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피떡이 된 크리처가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 목걸이는 신관의 목걸이?!’
“자수정. 보석.”
자수정 반지는 분명히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다. 아무리 감각 기관 능력이 상승한다 한들 투시 능력까지는 설정해둔 적 없다. 그런데 왜 자꾸 자수정, 보석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건가 싶었던 중, 안경 너머의 시선이 문득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자수정. 보석.”
녀석의 시선은 내 눈동자를 향한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헤르미안 캐릭터의 눈동자는 보라색이었다. 이 눈이 어둠 속에 있으니 자수정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 멍청한 신관 녀석이?!’
눈을 감아보았다.
“어디. 갔지.”
역시나 녀석은 멍청하게도 다른 곳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마 인간이었을 때도 안경은 장식이었겠지.
‘녀석은 다행히 느리고 멍청하다. 그럼 눈을 감은 채로 여길 빠져 나가자.’
그러나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꽤나 센 페널티였다. 일단 안 보이는 건 둘째 치고 언제 어디서 다른 무언가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으니까.
‘어차피 여길 피한다고 해도 가는 길에 더 위험한 크리처를 마주칠 수도 있는데… 그냥 메신저가 나타날 때까지 적당한 곳에 숨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흐어어어엉. 헤르미안. 헤르미안….」
「그만해라. 헤르미안은 피곤하다. 이런 상황에서 네 이름 따위.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나를 처음 봤던 당시의 쌍둥이들이 떠올랐다.
‘야. 한낱 사사로운 감정 따위에 흔들리지 마. 녀석들은 블러드 필드에서 누구보다도 잘 적응하는 애들이야. 어쩌면 기획자였던 나보다도 더.’
그렇지만 자꾸만 마음에 남는 양심의 가책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헤르미안의 자택은 어떻게 가는 거였지?’
여기까지 왔을 때의 경로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직진으로 가다가 나무 하나를 끼고 오른쪽으로만 돌면 보석 크리처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제발 걸리지 말자.’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몸은 바닥에 바짝 낮추었고 천천히 기어가기 시작했다.
“자수정. 보석….”
다행히도 녀석은 아직까지 루비를 찾아다니고 있었기에 그 소리를 들으며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
순간 그 소리가 뚝 끊겼다.
‘뭐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곧바론 눈을 뜰 수는 없었다.
‘살금살금. 분명히 이제 곧 나무 가까이까지 도착했을 거야.’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에 딱딱한 나무껍질이 닿았다. 재빨리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제 열 걸음 정도만 더 가면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그때부터는 시야가 확보 되니 저택까지 도달할 확률이 좀 더 높아진다!
‘한 걸음, 두 걸음… 좋아, 벌써 다섯 걸음이나 왔…,’
휘잉. 그 순간 이질적인 바람이 머리카락 한 뼘 앞에서 불었다.
“허억.”
묵직한 무언가가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그 바람에 나도 모르게 번쩍 눈을 뜨고 말았다. 아차 싶던 순간, 시야에 사람 몸집만한 커다란 검이 휘잉, 스쳐 지나갔다.
“악마를. 죽여라.”
크리처였다.
거대한 장검을 휘두르는 녀석의 머리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듀라한을 연상케 하는 그는 성기사단 갑옷을 입고 있었다.
‘뭔데?! 셀레나 사제에 보석 괴물, 거기다 머리 없는 괴물까지? 크리처한테 성전 다 전염 됐냐?!’
머리없는 자식의 공격을 피해 몸을 움직일 때였다.
“찾았다!”
자수정 반지를 그렇게나 부르짖던 보석 크리처가 헤르미안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미친, 언제 왔어?!”
녀석을 떨어트리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 순간 거대한 대검이 휘잉, 다시 한 번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꺄아아악!”
이건 진짜 반칙이잖아, 반칙!
아직 메신저도 안 등장했다. 메신저가 있어야 생존에 필요한 기술이든 아이템이든 거래를 할 수 있는데, 지금은 맞설 방법이 전혀 없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주머니에 꼭꼭 넣어둔 자수정 반지가 어른거렸다. 이것만큼은 일주일 뒤에 죽을 운명이라는 말을 점쟁이에게 들은 사람의 생명보험만큼이나 귀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은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방법만큼은 다분히 물질 만능적인 나에게 있어서는 택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보석 괴물과 머리 없는 괴물이 동시에 나에게 달려드는 순간,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야!!! 이거나 먹어라!!”
머리 없는 괴물의 대검을 향해 자수정 보석을 겨냥한 뒤, 쐈다!
“자수정!! 내 보석!!!”
보석 괴물이 대검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윽고 거대한 충돌이 일어났다. 그 사이 난장판을 뚫고 저택을 향해 냅다 달렸다.
‘제발, 제발, 제발 무사해야 하는데!’
크리처를 둘이나 마주치느라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소모했다.
헐레벌떡 뛰어가 다행이도 저택에 도착했다.
쌍둥이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탁자가 있는 다이닝룸에 들어섰다. 그러나 분명히 쌍둥이들이 술에 떡이 됐던 그 자리에는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젠장. 분명히 술에 취했을 텐데, 어딜 간 거야?’
쌍둥이가 앉아있던 자리를 살펴 보았다. 음식물과 술병이 난장판이 되어 있는 걸 보니 무언가 소동이 벌어진 것 같았다.
‘설마 크리처가 나타난 건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내가 술만 안 먹였어도 녀석들이 위험해질 일은 없었을 텐데.’
가슴 한 구석에서 솟아오르는 죄책감을 애써 다잡으며, 저택 안을 샅샅이 살피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직은 몰라. 아직은.’
이 저택 어딘가에 있을 확률도 꽤 컸다. 그러나 함정이 하나 있었다.
‘여기 왜 이렇게 넓냐?!’
예상보다 헤르미안의 저택은, 마치 아파트 한 채 마냥 넓고도 넓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가까운 곳 먼저 찾자.’
다이닝룸과 제일 가깝게 연결 된 커다란 방의 문을 열었다.
철컥.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철컥, 철컥, 철컥.
아무리 문손잡이를 당겨 봐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지? 문이 잠겨있다고?’
아까는 곧바로 다이닝룸에 가느라 알지 못했다. 바로 옆문 뿐만이 아니었다. 저택의 대부분의 문이 잠겨있었다. 혹시나 싶어 들어왔던 저택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철컥, 철컥.
‘뭐, 뭐야?’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문이 갑자기 열리질 않았다. 저택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 더 문손잡이를 돌려보다가 이내 문 열기를 체념했다.
‘이젠 도망조차 제대로 못 간다고?’
순간 여기에 오기 전, 동기에게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
「게임에서라도 현실을 알려줘야지. 여러분-」
“……헌신하면 헌신짝 되고 열심히 한 놈들은 과로사로 뒤져요.”
나는 그 말을 내뱉으며 바닥에 축 늘어졌다.
‘그래. 원작에서조차 달라지는데 뭐하러 열심히 해. 열심히 해봤자 과로사로 뒤질 뿐이지.’
이대로 굶어 아사하는 엔딩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그건 배드엔딩으로 안 만들어 놨는데, 하나 만들어 둘 것을 그랬다. 꿈도 희망도 없어진 괴물천지 세상에서, 한 명쯤은 괴물하고 싸우기가 두려워 아사를 택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두 눈을 감은 그 순간이었다.
「근데 네가 그랬잖아. 어떤 풀은 사람을 살리는 풀이 되기도 한다고. 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존재가 될 거라고.」
「어릴 적부터 암살 교육만을 배웠었지. 사람을 죽이는 것만 배웠지 살리는 것에 대해 배운 적은 없다. 헌데 네 덕분에 다른 방향을 선택할 수 있었다. 고맙다.」
쌍둥이들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천장을 바라보았다.
“…….”
탁자를 바라보았다.
“…….”
어디선가 묘한 바람이 부는 듯 했다.
“하아…….”
몸을 일으켰다.
“그래, 할 일은 하고 가야 황천길도 덜 사납지.”
나는 아사 엔딩을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