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의 다이어트 돌입이 어느새 3주가 다 되어 가고 있다. 이번엔 단단히 벼르고 시작한 게 진짜인 듯, 윤지는 제법 오래 새벽 운동을 하고 있다. 무수히 시작하고, 무수히 그만두었던 다른 때와 대조하면, 뭔가 다르긴 달랐다. 늘 일주일도 못하고 그만두기 십상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오늘 이 상을 새빛이와 아리와, 그리고 엄마~, 이모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다들 눈치만 보는, 수학시간. 어디선가 알 수 없는 멘트가 들린다. 그렇지 않아도 고요한 수학시간, 누군가 눈이라도 마주칠까 전전긍긍 하는 그 시간에 들리는 생뚱맞은 멘트. 모든 시선이 멘트 쪽으로 쏠린다. 자는 애 옆에 또 자는 애, 그 옆에 꾸벅꾸벅 조는 애.
“야야~~ 쟈들~ 깨워라~!”
주변에 앉은 아이들이 새빛이 패거리를 흔들어 깨운다. 새빛이와 아리는 깜짝 놀라며 자세를 가다듬는데, 윤지만 아직 잠이 덜 깬 듯 비몽사몽.
“하이고~ 저 자슥, 아직도 잠에서 못 깨네~”
먼저 정신을 차린 새빛이 윤지를 한 번 더 흔들어 깨운다.
“야, 야~ 이윤지~ 정신 차려~.”
“네~! 이윤지 입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윤지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못 살아~”
꾸벅거리며 졸다 정신 차린 아리가 고개를 절레 절레 젓는다. 새빛이는 자기가 그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푹 숙인다. 윤지의 돌발 행동에 온 교실 안이 한꺼번에 빵 터진다. 수학 샘은 어이가 없어서 잠시 멍하고 바라보다, 푹~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저 자슥~ 지금 머라 카노?”
온 교실이 난리가 난다. 책상을 두드리는 아이부터, 남학생들은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눈만 마주쳐도 재미있는 때이고, 순간은 빨리 끝나길 바라는 수학 시간인데, 윤지의 행동은, 여러가지를 반 아이들에게 충족시켜주는 사건 아닌 사건이 되어준다. 온 교실이 풍선처럼 부푼 감정이 되었을 때 쯤, 그제야 윤지가 잠에서 완전히 빠져나온다. 눈만 굴린 상태로 주위를 바라보고, 뭔가 크게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한다. 옆에 앉은 새빛이에게 눈짓을 보낸다.
- 뭔 일이야?
입 모양만으로 새빛이에게 질문하면,
- 니가 벌떡 일어섰어~!
새빛이가 입 모양만으로 대답을 한다.
- 무슨 소리야?
다시 입 모양만으로 묻고,
- 니가 알지 내가 알아?!
새빛이가 입 모양으로 대답.
“야야~ 니 뭐가 그리 감사하노?”
윤지가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이니, 그제야 수학 샘이 묻는다. 일순 반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멈추고 윤지의 대답에 주목한다. 윤지가 쩔쩔매며 새빛이와 아리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내지만, 새빛이도 아리도 먼산만 쳐다볼 뿐 특별한 방법은 없다.
“어디 보자~ 새빛이, 새빛이가 누고?”
수학 샘이 출석부를 주욱 헤아리며 새빛이를 찾는다. 새빛이 책상에 코를 박는다.
“인나 봐라, 새빛이~”
쭈뼛 쭈볏 새빛이 일어선다. 다음 이름이 불릴 것을 예상한 아리가 천장을 쳐다보며 한숨을 쉰다.
“아리, 맞제? 아리? 아까 조조 자슥이 불렀던 이름이~?”
반 아이들이 동시에 ‘네!!!!!’라고 아주 크게 대답해 준다. 입술을 꽉 깨물며 아리가 일어선다. 여기저기서 킥킥 소리가 나온다.
“어쭈? 조 자슥은~”
전교 1등의 정아리를 모르는 선생님은 없었다. 게다가 아리는 독보적으로 수학을 잘해서, 교외 수학 경시대회에서 입상도 척척해 오는 일명 ‘수학 천재’였다. 더군다나, 현재 시 교육청 ‘수학 영재반’도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꽤 유명하다. 실상 새빛이 패거리를 모르는 선생님들도 없었지만. 아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럴 땐, 선생님들이 한 번에 알아보는 게 오히려 짜증난다.
“요요~~ 패거리~~~”
수학 샘이, 윤지, 새빛, 아리를 순서대로 한 번씩 쳐다본다. ‘패거리’라고는 하지만, 특별히 불량스러운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좀 귀엽기까지 하다. 좀 극성스럽고, 좀 엉뚱하고, 지나치게 발랄쾌활하고, 쪼끔 하지 말라는 짓들을 하기는 하지만, 그 때 아니면, 언제 해보나 싶은, 그런 패거리 녀석들임을 수학 샘이 모를 리 없다.
“느그들 밤에 뭐하고 수업 시간에 자노~! 그것도 수학 시간에~!”
윤지의 다이어트 운동 때문이라고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셋 다 대답 없이 고개만 숙인다.
“이윤지~! 달게 잤노? 무신 꿈을 꿨는데, 조조~ 니 절친들 이름을 주욱~~ 불러대며 고맙다고 했노?”
“사, 상을, 받, 아, 서······.”
윤지가 실토한다.
- 하지마, 하지마.
아리가 윤지를 쳐다보며 입 모양으로 소리 친다. 고개까지 세게 흔든다. 새빛이도 윤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든다. 그러나 한 번 입이 열린 윤지를 막을 수는 없다.
“상? 무신 상을 받았는데?”
“여우, 주연상~”
윤지 얼굴을 새빨개지고, 순간 온 교실이 다시 한 번 왁자지껄, 빵 터지는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새빛이와 아리는 숨고 싶다. 진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절감한다.
“여우주연상? 니 배우됐나?”
윤지 얼굴이 더 빨개진다. 그 때, 누군가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윤지 요즘 새벽에 운동해요~”
“새벽에 운동을? 와?”
“다이어트 해서 오디션 보러 간다고요.”
“오디션?”
교실 안이 용광로처럼 뜨거워진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그라니까, 혼자 운동할 리는 없는 기고~ 요 패거리 세 놈이 새벽에 운동을 하고~, 수업 시간에 졸고 있다~~ 이기네~?”
책상까지 두들리고 발도 구르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학 시간이 완전 초토화 된다. 그 때, 익숙한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 흐른다. 끝났다. 이 수업 시간. 교재를 챙기며 수학 샘이 새빛이 패거리에게 말한다.
“느그 셋은, 다른 게 아니라 뭔가 하고자 하는 기가 있어서 잠을 줄여서 노력했다고 생각해서, 이번엔 넘어가는 기다~, 하~~안 번만 더 수업 시간에 졸면, 블랙 라벨 문제로 빽빽이 시킬거니, 정신 똑디 차리고~!”
“네~~~”
윤지, 새빛, 아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수학 샘이 교실에서 나가고 온 교실이 시장바닥처럼 변한다. 새빛이와 아리가 자리에 앉으면서 윤지를 째려 본다. 해맑은 윤지~
“너 바보야~?!”
아리가 한마디 쏜다.
“바보 맞는 것 같아~”
새빛이 맞장구까지 친다.
“왜애~”
여전히 해맑은 윤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아휴~ 말을 말자~! 말을 말아~!”
아리가 그대로 엎드려 눈을 감는다. 새빛이도 같이 엎드리며 윤지에게 말한다.
“남은 쉬는 시간이라도 자자~ 너도 자~~ 수업 시간에 또 이상한 꿈이나 꾸지 말고~”
윤지도 다시 엎드려 잔다.
수학 시간에 일어났던 작은 소동은 언제 그랬냐는 듯, 셋은 또 깔깔거리며 신발을 갈아 신고 교문으로 향한다. 교문까지 걷는 길은, 매화 나무와 벚나무가 빼곡히 서 있다. 중학교와 같은 교문을 쓰는 이 학교를 벌써 4년 째 다니고 있는 셋이다. 봄에 벚꽃이 꽃눈으로 날리고 나면, 새파란 입들이 꽉 채우다 겨울을 맞이하면, 매화꽃이 눈 속에서 피어난다. 이 길은 언제 걸어도 좋다, 라고 새빛이는 생각한다. 윤지랑 아리랑 함께라서 더 좋은 것 같다, 라고도 생각한다. 아리도, 엉뚱한 윤지가 가끔 황당하기는 하지만, 새빛이와 윤지가 있어서 좋다, 라고 생각하고, 윤지는, 그냥 새빛이와 아리가 좋다. 그렇게 주욱 함께 컸다. 셋이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마냥 이렇게 함께 지내면, 쫌 창피한 일도, 쪼꼼 힘든 일도, 다 괜찮을 것 같다.
“아~ 맞다! 새빛이 너, 성공했어?”
갑자기 생각난 듯, 윤지가 묻는다.
“뭐?”
아리가 되묻자, 윤지가 대답한다.
“그거, 새빛이 숙원 사업~”
“숙원 사업? 아~”
새빛이의 숙원 사업. 엄마와 찜질방 가기.
“성공은 무슨~!”
“이번에도 실패야?”
실망 잔뜩 품은 새빛이의 말에 아리가 되묻는다. 새빛이 대답하지 않는 걸 보니, 이번에도 실패인 모양.
사실 새빛이에게는 소원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가장 첫번째 소원이 바로 엄마와 찜질방에 가는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엄마는 찜질방에 절대로 가지 않는다. 아니, 찜질방만이 아니라, 새빛이와 함께 목욕을 해 본 적도 없다. 늘 새빛이를 먼저 씻겨주고, 옷을 다 입혀주고, 머리까지 말려준 다음에 엄마는 혼자 들어가서 씻었다. 어렸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조금 커서는, 친구들이 엄마랑 또는 식구들과 찜질방에 가서 밤샘을 하고 왔다는 이야기들을 할 때마다, 저도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대략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생긴 소원이었던 것 같다. 윤지도 아리도, 늘 식구들과 다같이, 또는 엄마랑 단둘이 찜질방을 다녀왔다고 했다. 남들 다~ 해본 것을 자신만 못해 본 것 같아서 영 그렇다.
“이번엔 이유가 뭐였어?”
아리가 다시 묻는다.
“몰라~”
“그래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뭐, 언제는 이유가 없었나?”
윤지가 거든다. 윤지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새빛이 엄마가 찜질방에 가지 않는 이유는, 늘 있었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이유는 늘 있었다. 새빛이는 태어나 처음 가 본 목욕탕도, 윤지, 아리와 함께였고, 찜질방도 윤지, 아리와 함께였다. 심지어, 이모들은 다~ 가는데, 새빛이 엄마만 안 갔던 날도 있었다. 물론, 늘 반박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재판의 증인이 갑자기 증언을 안 한다고 하기도 하고, 연락도 안 되던 증인이 마음을 바꿔서 증언 할 테니 바로 만나자고 하기도 하고, 의뢰인이 사라지기도 하고, 심지어 사무장 아저씨가 사무실 컴퓨터가 먹통이라고 전화를 하기도 한다. 당최, 새빛이가 엄마랑 찜질방만 가려고 하면, 증인들이 자꾸 일을 만들어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이유는 뭐였는데?”
아리가 다시 묻는다. 한숨을 푹 쉬며 새빛이 대답한다.
“손가락을 찾았대.”
“컥~ 손가락?”
윤지가 기침까지 콜록콜록거리며 되묻는다. 아리가 이마에 주름이 콱 잡힐 정도로 인상을 쓴다.
“그래, 손가락~”
“손가락 읽어버린 사람이 찾아달라고 했대?”
아리가 너무 어이없다는 듯이 묻는다.
“변호사법이 어떻다나, 자세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없다고~ 또 둘러대는데, 때리는 남편이 너무 미워서 아줌마가 남편 잘 때, 손가락을 잘라 버렸대.”
“헉~”
윤지와 아리가 동시에 숨이 막히는 탄식을 내뱉는다.
“근데, 여태 못 찾았던, 잘린 손가락을 찾았대.”
“이모 의뢰인은 남편이야 아줌마야?”
아리가 묻는다.
“당연히 아줌마지~ 때리던 남편이 너무 미워서 했으니, 이건 죄가 아니다~ 머, 그런 거겠지? 이제 말 안 해줘도 그냥 다~ 알 것 같애.”
새빛이 터벅터벅 퉁퉁거리며 걷는다. 아리와 윤지도 옆에서 발걸음을 맞춘다. 이번엔, 꼭 엄마랑 찜질방에 갈 거라고 단단히 별렸던 새빛이 마음을 잘 알기에,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도~! 너무 이상하지 않아?!”
갑자기 새빛이 뒤를 돌아 윤지와 아리를 쳐다보며 꽥 소리를 지른다. 예상보다 소리가 컸는지, 새빛이가 급히 입을 다문다. 윤지와 아리도 주위를 한 번 살핀다. 다행히, 관심을 갇는 사람은 없었다.
“세상에, 이젠 하다하다 잘린 손가락을 찾았으니 가야한대. 말이 된다고 생각해?”
새빛이, 그 순간이 다시 떠오른듯 씩씩거린다.
“말이 좀~ 심하게 안 되긴 하는 것 같다~”
아리가 거든다.
“차라리, 그냥 가기 싫으냐고 물어봐, 그리고 가기 싫은 이유가 뭐냐고도 물어보고~”
윤지의 말에 아리가 툭 친다.
“안 해 봤겠냐?”
“하긴~ 그리고, 새빛이 이모가 말을 또 엄청 잘하잖아.”
“괜히 변호사냐~”
아리와 윤지가 말을 주고 받는 사이 새빛이 저만치 앞서 걷는다.
“같이 가~”
윤지와 아리가 새빛이 쪽으로 뛰어간다.
새빛이 패거리를 멀리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