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기울기 시작한 저울은 다시 평행선을 만들 수 없었다. 기운 쪽으로 넘어가든지 다시 돌아오려 했다가는 반대쪽으로 넘어가든지, 어차피 둘 중의 하나였다. 평행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를 어쩌면 긴 시간만이 깨닫게 해 준다. 사실은 노력이 소용 없다라기 보다는 노력이 되지 않는다. 이미 힘을 잃은 그 의지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퇴화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이끄는 의지는 강했지만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지기 때문에 마치 없어져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은 일종의 실체 없는 잔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미 종료된 상황을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 변화된 온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완충작용이랄까.
난 시간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래도 충격은 느껴졌다.
“나, 이사해.”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점점 늦어졌던 그의 퇴근시간, 잦아졌던 그의 야근, 뜸해졌던 그의 전화와 웃는 얼굴이, 그리고 우리의 대화가 그 시간을 따라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난 그의 말을 듣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어디로....... 가기로 한 거야?”
난 담담히 물었다.
“우선 회사 기숙사로 들어가.”
담담히 그는 답했다. 그리고 말했다.
“........... 너도......... 편할 대로 해........ 엄마한테 가는 건 어때? 여기 계속 살 거면........ 보증금은 그대로 둘게.”
그의 말에 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심호흡을 하고 난 말했다.
“나도 알아봐야지. 회사에서 가까운 데로. 구해지는 대로 연락할게. 여긴, 같이 정리하자.”
“.......... 그래. 그렇게 해.”
그가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며칠 후, 퇴근하고 집에 오니 커다란 캐리어 두 개에 짐을 모두 싸 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 오늘 마지막인데.........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까 하고.........”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저녁은 무슨.......... 그래. 그러든지.”
난 사실 그의 행동과 말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 채 답하고 행동해왔다. 생각할 시간이 부족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적어도 무조건 피하진 말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린 한 때 단골이었던 동네 해장국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식당도 음식도 그대로였지만 맛은 예전 같지 못했다. 우린 말없이 식사를 마쳤고 그는 끝내 내게 한 마디를 건넸다.
“다음에 또 밥 먹자.”
난 그냥 웃었다.
“들어가. 추운데........”
그가 말했다. 난 그의 커다란 짐을 쳐다보았다. 그는 내 시선을 따라가며 말했다.
“택시 불렀어. 걱정 말고 들어가. 감기 걸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집으로 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어두운 방에 불을 켜니, 그대로인 것들과 달라진 부분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난 말끔히 정리되어 있는 침대 위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텅 빈 방의 고요함이 날 참을 수 없게 했다. 난 목 놓아 울었다. 몸에 열이 느껴졌고 내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그렇게 난 혼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