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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묘지기 아가씨 달리아
작가 : WATERS
작품등록일 : 2020.9.26

#능력녀 #감동물 #묘지기 #악령퇴치 #악마퇴치 #헌신남 #다정남


죽음의 신은 외눈을 잃었고, 왕국은 삼백 년 전부터 망자들이 저승에 들어가지 못해 기어다니는 황야가 되어버렸다. 머스그레이브 일가의 묘지기인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인간을 배신하고 악령의 편에 붙은 자신의 아버지를 처단하러 황야를 건너 왕도로 향한다.

표지 일러스트 : Waifu Labs
추신 : 좌하단의 붉은 로고는 Waifu Labs의 로고입니다. 인공지능 기반의 캐릭터 포트레이트 작성 사이트로, 출판사가 아닙니다...

 
서약 (10)
작성일 : 20-09-27 19:48     조회 : 290     추천 : 0     분량 : 5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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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달리아는 브리택을 데리고 제 침실로 돌아갔다. 사실 그녀는 지금 너무 힘겨웠고, 어딘가에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저택 안에는 그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십의 귀족이 이 안에 있다. 그리고 아버지인 아브라함 머스그레이브와 오라비인 에드워드 머스그레이브가 없다면 이 저택의 주인은 자신이었다. 저택의 주인이자 묘지기의 책무를 짊어진 자신이 모두의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달리아….”

 

 브리택은 비틀거리는 그녀를 계속 부축했고, 힘겹게 방문을 주둥이로 밀어선 그녀를 들여보냈다. 그녀는 지팡이와 칼만을 겨우 끌러 벽에 기대어 놓곤, 침대에 기댄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괜찮아?”

 

 달리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괜찮지 않은 모습이었다. 브리택은 괜히 제 꼬리로 그녀의 무릎을 포근하게 덮어주곤, 그녀의 곁에 배를 깔고 누웠다.

 

 “고마워요, 브리택….”

 

 달리아의 여린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울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녀의 투명한 눈물이 턱 끝에 고여 떨어졌다.

 

 “…너도 무섭구나.”

 

 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밖이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아니, 그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아버지와 딱 한 번 머스그레이브 영지의 밖을 본 적이 있었다. 묘지기라면 모름지기 앎을 넘어 보아둬야 한다는 아버지의 신조 때문이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황무지였다. 신체 일부가 끊어진 시체들이 이리저리 기어다니는 땅이었다.

 

 “…브리택.”

 “…또 미안하다고 하려고?”

 

 그는 조용히 일어나선 창문의 커튼을 물어 당겨 닫았다. 문도 꼬리로 밀어 닫았다. 방 안은 완전한 암흑으로 뒤덮였다.

 

 브리택이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선 그녀의 화장대 앞 거울에 있는 양초 몇 개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미안해할 거 없다니까.”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이런 것까지는 알지도 못하고 나와 서약한 거잖아요….”

 

 브리택은 아직 불이 붙어있는 성냥을 흔들어 끄며 말했다.

 

 “아니, 알았어도 너와 함께했을거야.”

 “왜, 왜요? 어째서 저 두렵고 끔찍한 곳으로 가야만 하는 저를….”

 

 그는 가만히 달리아의 옆에 앉아선, 그녀를 당겨 제 어깨에 기대게끔 해주었다. 달리아는 괜히 그의 팔을 끌어안았다. 브리택은 그녀를 옆으로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말했잖아. 너를…사랑한다고.”

 “당신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나를…아직도….”

 

 가만히 그녀의 머리를 다른 손으로 쓰다듬어주었다. 그녀는 지친게 분명했다.

 

 “조금…잘래?”

 “…네.”

 

 브리택은 그녀를 안아들어선 침대에 눕혀주었다. 흙 묻은 구두와 양말을 벗겨주곤, 그녀의 옆에 모로 누워선 자신을 바라보는 달리아의 머리를 손으로 빗어주었다.

 

 “나…조금만 더 안아줄래요?”

 “기꺼이.”

 

 달리아는 그가 내민 팔을 베곤 그의 품 안에 안겨들어갔다. 브리택은 달리아의 조그마한 등을 꼭 끌어안았고, 달리아는 마치 웅크린 아기처럼 그의 품에 안겨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좀 자둬.”

 “그럴…거에요….”

 

 이내 그녀의 청회색 눈동자가 완전히 감겼다. 새근거리는 낮은 숨소리만이 아련하게 남았다. 엷은 숨결에 그녀의 조그마한 어깨가 가늘게 오르내렸다. 브리택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달리아….’

 

 언젠가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가 다칠 것이 분명했다. 아브라함 머스그레이브를 먼저 만나야 하는 것은 달리아뿐만이 아니었다.

 

 브리택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아브라함 머스그레이브에게 용건이 있었다.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

 

 

 달리아는 네 시간 정도를 푹 잔 후에야 겨우 일어났다. 제 앞에의 브리택은 여전히 눈을 뜨고 있었다. 왠지 눈이 조금 아릿한게, 자면서도 펑펑 울어제낀 모양이었다. 눈이 부었을 것이 분명했다.

 

 “…나 많이 울었어요?”

 “예뻐.”

 

 우문현답이었다. 달리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피식 웃어버렸다. 그가 제 퉁퉁 부은 눈가에 입술을 맞추었다.

 

 “나…얼마나 잤어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서너시간 정도?”

 

 그럼 아직도 점심이 조금 넘은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저택에서의 첫 끼니를 대접하는데 자신이 나타나지 않았던 건 조금 실례되는 행동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달리아는 그런 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마음은 먹은거야?”

 “…수도로 가봐야겠어요. 역시.”

 

 달리아의 목소리는 거칠게 말라 있었지만, 그 알맹이는 단단하게 뭉쳐져 있었다. 브리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묘지는?”

 “정말 실례이겠지만…선왕께 부탁해놓으면 괜찮을거에요. 그분은 충분히 강력한 영혼이시니까요.”

 

 물론 그가 세심하게 모든 영혼들을 달래줄 수는 없겠지만, 강력한 통솔력을 발휘할 것은 분명했다. 기약도 없는 세월동안 그렇게 해달라고 한다면 불가능하겠지만, 몇 달 정도는 가능했다.

 

 “좋아. 마지막으로 너는?”

 “나…요?”

 “그래. 너. 네 걱정은?”

 

 달리아가 가만히 그를 올려다보다, 다시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그 품에 제 코를 이리저리 비볐다.

 

 “난…내 걱정은…몰라요. 그건 브리택이 해 줘요….”

 

 브리택은 말문이 막혔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달리아를 안아줄 수 있었다.

 

 “…그래.”

 “…좋아요.”

 

 달리아는 그제서야 일어나 앉았다. 이렇게 울먹이고 있어봐야 아무것도 되는 건 없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일단…다시 검은 왕좌터요.”

 

 브리택은 먼저 침대를 빠져나왔고, 그녀에게 양털 망토를 입혀주었다. 벽에 기대어 놓은 선조의 장검과 은촛대지팡이도 가져다주곤, 창문을 가린 두꺼운 커튼을 열었다.

 

 그가 다시 반짝이는 새카만 털의 늑대개로 변했다. 그녀의 다리를 그 긴 주둥이로 툭툭 밀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이 많겠네. 오코넬 집사에게도 말해둬야 하고, 선왕께도 말씀드려놔야지.”

 “…그렇죠.”

 

 달리아는 검을 등에 메고, 지팡이를 들었다. 장롱 위에서 커다란 가죽 가방 두어 개를 꺼냈다. 안장의 옆에 매다는 짐가방이었다.

 

 “저택의 가죽장이에게 안장을 만들어달라고도 해야겠어요.”

 “나에게 짐을 실어놓으려면 확실히…필요하겠지.”

 “…조금 무거울거에요. 내 무게도 있고….”

 

 그가 배를 깔고 누워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럼…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브리택의 새파란 눈이 반짝였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누군가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가씨? 계십니까?”

 

 오코넬 집사였다.

 

 “집사님? 들어오셔도 괜찮아요.”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와 브리택의 눈이 마주치자, 브리택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앉으세요.”

 

 달리아는 침대에 걸터앉으면서 그에게도 화장대 앞의 조그마한 의자에 앉길 권했다. 오코넬 로빈슨은 조심스럽게 브리택을 넘어가선 화장대 의자에 앉았다.

 

 “말씀드릴 게 있어서…왔습니다.”

 “저에게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브리택이 의아한 눈빛으로 오코넬 집사를 올려다보았다.

 

 “아가씨에게는…분명히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있으실 겁니다.”

 “…집사님?”

 

 브리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달리아의 발 밑에 웅크려선 그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진정하게, 브리택 군. 아가씨에게 고통을 줄 만한 것들은 피해서 이야기할거야.”

 

 하지만 브리택은 진정하지 않았고, 으르렁거리는 낮은 소리를 뱉어냈다. 달리아가 그의 머리에 손을 얹을 때까지.

 

 “일단…들어보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잊어버린 기억은 이제 아가씨께서 길을 떠나시려는 만큼 언젠가 자연스럽게 되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브라함 머스그레이브 주인님을 만난다면요.”

 

 달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브리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른 이도 아닌 오코넬 로빈슨 집사가 먼저 이 말을 꺼낼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너무 지나치게 떠올리려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왼쪽 눈의 격통은…아가씨께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게 막는 주문입니다. 그 고통을 무시하시면 더 큰 위험에 빠지실 수 있습니다.”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오코넬 로빈슨은 달리아에게서 시선을 내려 브리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브리택 군.”

 “용건이 뭐지?”

 

 늙은 집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곤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아가씨를 잘 부탁하네.”

 

 브리택은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녀와 자신의 비극을 초래했지만, 그런 그의 행동마저도 달리아를 위한 마음의 발로였다. ‘그 날’의 사건이 벌어지고 말아 결과는 끔찍해져버렸지만, 브리택은 차마 집사가 달리아를 아끼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당연한 소리를.”

 

 둘 사이의 싸늘한 기류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떠나시려면 안장이 필요하시겠군요. 가죽장이 베르토에게는 제가 전해놓겠습니다. 아마도… 일주일 안으로 떠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집사의 눈시울이 괜시리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부디 건강하셔야 합니다.”

 “…집사님, 저 지금 떠나는 거 아니에요.”

 “…저도 압니다, 아가씨.”

 

 오코넬 로빈슨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선 그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방에서 나갔다. 문이 천천히 닫혔다.

 

 “달리아.”

 “…왜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에 앉은 달리아의 무릎에 제 턱을 올려놓았다. 달리아는 그런 그의 긴 콧잔등을 살살 긁어주었다.

 

 “아무 걱정 안해도 돼.”

 “갑자기요?”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절대, 그 누구도, 너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할 거야.”

 

 달리아는 무언가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을 앞으로 숙여선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믿을게요.”

 “…그래.”

 

 달리아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럼 이 저택에서 보내는 일상은 딱 일주일 남았네요.”

 “그게 그렇게 되네.”

 

 브리택이 가만히 대답했다. 달리아가 가만히 그의 턱을 간질이며 입을 열었다.

 

 “아침과 저녁, 밤에는 순찰을 돌아야 하니까…우리가 그나마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는 건 점심뿐일거에요.”

 

 브리택은 그녀에게 뭐라고 답해주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오늘 점심도 센드릭 언덕으로 놀러가요. 내일도, 모레도. 떠나는 날 전까지.”

 

 그의 머리를 껴안은 달리아의 팔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그래.”

 “그리고 오늘 밤도, 내일 밤도, 모레 밤도…그리고 떠나는 날 밤도 날 안아줘요. 그래줄 수 있죠…?”

 “얼마든지. 아니, 떠나고 나서도.”

 

 달리아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이렇게 보채고 매달리지 않아도 그가 해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입을 열어 말하고, 대답을 듣는 것은 더 따스하고 평온한 안정감을 주기 마련이었다.

 

 “고마워요, 브리택.”

 “…고마울 거 없다니까.”

 

 브리택이 툴툴거렸다. 그는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이 제법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너를 사랑하니까, 당연히 그 정도는….”

 “으.”

 

 파르르 떠는 달리아의 반응에 브리택의 눈이 가늘어졌다.

 

 “또 반응이 영 그렇다?”

 “그치만, 그, 그 말은 되게 듣기가 낯부끄럽다고요….”

 “그래서, 싫어?’

 

 달리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브리택이 다시 빙긋이 웃었다.

 

 “사랑해.”

 “으아악….”

 

 그 반응마저도 귀여웠다. 달리아는 결국 브리택을 껴안고 있는 것을 포기하곤,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 그만 말해요! 그만!”

 “…알았어.”

 

 브리택은 뚱하니 표정을 굳히곤 창가 구석으로 가서 풀썩 배를 깔고 누웠다. 그 눈빛이 제법 서글퍼보였다.

 

 “…브리택?”

 “뭐.”

 “지금 삐진거에요?”

 

 달리아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브리택은 대답 대신 고개만 내저었다. 하지만 그 파아란 눈동자는 여전히 짜게 식어있었다.

 

 “…삐진 거 같은데요.”

 “아닌데.”

 “거짓말하지 말고요.”

 

 달리아는 침대에서 폴짝 일어나선, 천천히 브리택의 곁에 다가갔다. 그는 또 그녀를 피하지는 않았다. 달리아가 옆에 앉아선 그에게 기대곤, 다시 그 목을 끌어안자. 브리택이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내가…그렇게 좋아요?”

 “아니.”

 

 달리아가 눈을 깜박였다. 갑자기 이제 와서 뭐란 말인가.

 

 “사랑해.”

 “으악.”

 

 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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