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기장은 순간 정적으로 휩싸였다. 다들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윽고 관중석 곳곳에서 감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경기내내 주성훈을 응원하던 관중들도 인정하게 된것이다. 서동건이 주성훈을 K.O시켰다는 것을.
"오오오! 뭐야!"
"서동건이 이겼어!"
"와 미쳤다!"
"오오오!"
경기내내 주성훈을 응원하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었는데, 서동건의 카운터 펀치에 놀란듯 보였다.
중계진도 마찬가지 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서동건 선수가 주성훈 선수를 카운터 펀치로 잡아내네요! 」
김현무 캐스터가 흥분한듯 상체를 반쯤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아......그렇습니다. 」
반면 서동건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평가하던 박대환 해설위원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 경기장에 설치되어 있던 중계전광판에서 주성훈이 K.O당하는 장면이 느린 화면으로 다시 재생되었다. 다시 보아도 완벽한 카운터 펀치였다. 주성훈의 라이트훅을 가볍게 헤드 무브먼트로 회피한 뒤, 서동건의 묵직한 라이트 스트레이트 펀치.
「아, 아주 정확하게 들어갔네요......」
박대환도 서동건의 실력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서동건 선수 단 한번의 펀치로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중계진이 감탄의 멘트를 쏟아내고 있는 순간, 케이지에 누워있던 주성훈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어째서 케이지 바닥에 누워있는지, 의료진이 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주성훈은 곧 자신이 패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편에 있는 서동건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서동건의 얼굴에는 승자의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레프리가 두 선수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주성훈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서동건은 아주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케이지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통해 목소리를 전했다.
"1라운드 2분 10초, 카운터 펀치로 의한 서동건의 K.O승!"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레프리가 서동건의 팔을 천장을 향해 높게 들었다. 공식적으로 서동건의 승리를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관중석에서 부터 들려왔다.
"와!"
"서동건 다시봤다!"
"똥건아 잘했다!"
서동건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박수소리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사실 경기를 이긴다고 해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박수를 쳐줄까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던 그였다. 경기를 할 때도 자신의 이름을 외치던 팬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2
"서동건!"
"서동건!"
"서동건!"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눈물이 날 것 같다. 남들은 잘 몰랐겠지만, 마음고생을 꽤나했었다. 익명의 다수에게 악플을 받는 다는것은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트래쉬 토킹과 도발을 하면서 포인트를 얻는다고 한들, 팬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격투기 선수로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한 두번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기회에 깨달았다. 멋진경기만 팬들에게 보여준다면, 팬들은 격투기 선수를 인정해 준다는 것을.
레프리가 나의 손목을 들어 승리를 선언 하고 난 뒤, 고개를 돌려 주성훈을 보았다. 주성훈의 표정은 많이 무거워 보였다. 하지만 그도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고맙고 미안했다. 나는 주성훈에게 다가갔다.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그래요. 많이 배웠어요."
"경기 전에 했던 행동들은 죄송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이해합니다. 종종 같이 운동해요."
우리는 서로를 가볍게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케이지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들고 나를 향해 걸어왔다.
"축하드립니다. 서동건 선수 아주 멋진 경기였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표정이 엄청 밝으신데요? 기분 많이 좋으신가 봐요. 입이 찢어 지실것 같은데요?"
"하하, 그런가요? 솔직히 정말 좋습니다."
물론이다. 안 좋을 수가 없다. 전광판에 보이는 내 얼굴을 보니 좀 과하게 웃고 있는 것 같긴 했다. 그런데 어쩌겠나, 이것이 승자의 특권인 것을. 오늘은 마음껏 기뻐하려고 한다.
"그러면 경기내용에 대해서 말씀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네."
"1라운드 초반에는 방어만 계속 하셨는데 그 이유가 있으셨나요?"
"우선 주성훈 선수의 펀치력이 세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최대한 조심해야 했기 때문에, 가드를 바짝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가드를 내리신 것은 어떤 생각으로 하신건가요?"
"우선 경기를 보러오신 관중 분들께 재밌는 경기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런 의도셨다면, 아주 정확하게 들어맞은 것 같습니다. 하하. 혹시 주성훈 선수께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할말이 많았다. 우선 정말 진심의 사과를 하고 싶었다. 싸가지 없게 행동했던 것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 우선 우리 주성훈 선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과의 말을 계속 전하려고 하던 순간, 나는 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상태창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퀘스트 발생]
퀘스트 내용: 1000명 이상의 사람에게 악플을 받아라.
제한기간: 30분
보상: 5000포인트
페널티: 평생 발기부전
아 씨......미친......왜 하필 지금...... 영자새끼 진짜 너무하네. 수습할 기회도 안주는 놈이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어쨌든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고개를 숙이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나운서는 여전히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아나운서는 나의 대답을 재촉하며 또 한번 질문을 했다.
"계속 말씀해 주시죠."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3
서동건은 아나운서가 잡고 있던 마이크를 향해 입을 가까이 붙였다.
"경기하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그러니까 이제......이제 집에서 애나 키우세요. 케이지 쪽에는 얼씬도 하지 마시고."
모두의 예상을 깨는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당연히 사과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관중들은 몹시 당황한 듯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우- 하는 야유소리가 관중석에서 부터 울려퍼졌다.
"아 저거 또 저러네."
"경기 끝났는데도 매너없게 뭐하는 짓이냐!."
"쟤 소시오패스라니까!"
중계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또다시 도발을 하는 서동건 선수입니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서동건 선수는 선을 넘는 경향이 있다구요.」
서동건도 미칠 노릇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30분내에 또 악플을 받으려면 지금 이 기회 밖에는 없었으니까.
승리소감 인터뷰를 진행하던 아나운서도 당황한듯 한 머쓱한 웃음을 보였다.
"하하...그렇군요. 혹시 더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정무홍 대표님 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네 그러면 한번 해주시죠."
그렇게 말은 했지만 아나운서의 얼굴에는 불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서동건이 이번에는 또 어떤 말을 할지 조마조마 했기 때문이다.
"오늘 경기 보셨으면 알겠지만, 좀 강한사람 좀 붙여줘요. 주성훈 같은 퇴물 말고 좀 센놈들."
"혹시 싸우고 싶은 선수가 있으신가요?"
아나운서가 서동건에게 물었다.
서동건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뭐 저기 앉아 있는 쟤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서동건이 손가락으로 VIP관중석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LEAD FC 페더급 챔피언인 이정형이 앉아 있었다.
서동건의 발언에 중계카메라 역시 이정형을 비췄다. 전광판에 이정형이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오자 팬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정형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정형은 말끔한 회색 정장을 입고있었다.
"하하, 서동건 선수 지금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건가요?"
"누가 챔피언인데요? 벨트를 들고 있다고 해서 다 챔피언은 아니에요. 야 이정형 올라와 지금이라도 붙어."
서동건은 케이지 밖으로 뛰쳐 나갈 듯한 기세로 말했다 하지만 이정형은 그런 동건의 발언과 행동이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4
[축하합니다]
[퀘스트를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당연히 퀘스트는 성공했다.이제 욕먹는 법은 완벽하게 터득한것 같다. 이번에도 나를 향한 많은 악플들이 올라와 있었다.
-격투기 시청 짬밥 10년만에 경기 끝나고도 도발하는 선수는 서동건이 처음임
-쟤는 진짜 또라이다.
-서동건 럭키펀치로 이겨놓고는 월드클라스인척 하는 거 보고 토쏠려 죽는줄 알았다.
-이정형한테 싸우자고 하는 거보고 얼탱이가 없더라.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댓글창이 분위기가 조금 좀 달라졌다는 것이다. 나를 욕하는 악플로만 도배되있던 예전과는 달리 간간히 선플도 보였다.
-그래도 잘한건 인정하자.
-입이 더럽긴 한데, 솔직히 오늘 경기는 잘했다.
-2222 카운터 펀치 타이밍 완전 지렸지.
-내가 봤을 때 이정형이랑 싸워도 해볼만 할것 같은데, 물론 오늘 처럼만 하면
-오늘 재밌었다. 내가 알던 똥싸던 똥건이 아니었음.
-주성훈이 퇴물인지, 서동건이 거물인지 조금 헷갈리던 경기였다.
예상하지 못한 선플에 의아했긴 했지만. 역시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좋은일이다.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격투기 선수는 경기내용으로 평가 받는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