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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신스틸러
작가 : 감귤
작품등록일 : 2020.9.23

과거 연습생, 현직 매니저, 조만간 백수 예정.
나 은서리, 연예기획사의 대표가 되어보겠습니다!

 
버려짐
작성일 : 20-09-27 05:39     조회 : 374     추천 : 0     분량 : 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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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잘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하여 반추하는 것이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내 인생을 반추하는 일은 대체로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었다. 예를 들어 후회나 누구에게도 돌릴 수 없는 원망과 같은 감정 말이다. 그 원망의 대상은 때로 나 자신이 되어 상처를 후벼 파곤 했으므로 과거를 생각하는 자학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서리 씨 마음은 알겠는데 민준이 의견이 너무 강해서 지금은 말조차 꺼내기가 어려워. 서리 씨도 걔 고집 알잖아.”

 “…….”

 “그러게 걔 성격 알면서 왜 연락도 없이 펑크를 내. 내가 웬만하면 서리 씨 감싸주겠는데 이번 건은 나도 편 못 들어주겠다.”

 

 아팠어요, 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대신 “그러게 말이에요”하고 웃어넘겼다.

 

 “후우… 일단은 쉬면서 기다리고 있어. 응? 민준이 속 좀 풀어지면 내가 다시 연락할게.”

 “...네. 감사합니다.”

 

 ‘쉬면서 기다려’라는 말속에 내포된 의미를 알고 있었다. 저건 사실상 날 자른 거다. 물론 완전히 자른 건 아니다. 몇 날 며칠이고 종일 사람을 대기조로 세워두고선 일손이 아쉬울 때만 불러낼지도 모르지.

 그때부터였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는 생각에 빠져든 것은. 아니, 어디서부터 잘못한 걸까. 잘잘못을 따져 올라가자면 결국 이 길에 발을 들인 나 자신이 잘못이다. 시간과 젊음을 바쳐 열정을 불살랐지만 그래봤자 매니저. 그러나 이젠 매니저로라도 발붙일 곳이 없어졌다. 그러니까 이제, 연예계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이다.

 그래. 지금까지 잘못 꿰어버린 단추는 돌이킬 수 없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제부터 무엇을 할지는 내가 정할 수 있지. 당장 그 예로,

 

 “…….”

 

 나는 내 옆에서 물끄러미 날 보고 있는 녀석을 마주 보았다. 놈은 질리지도 않는지 진득하게 날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엔 무슨 용건이라도 있나 싶었지만, 곧 날 보는 것이 녀석의 용건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내 시선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까만 눈망울을 마주 보자니 마음 한편이 쓰렸다.

 

 “한소을”

 “응?”

 “너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싶은 거란 게 뭐지?”

 “이루고 싶은 꿈같은 거 말이야. 아니면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거나. 그 장승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몸이 되면 이건 진짜 하고 싶다 하는 게 있었을 거 아냐.”

 “글쎄”

 

 녀석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갤 저었다. 그러고는 어깰 으쓱했다.

 

 “없어”

 “없다고? 왜?”

 “이미 이뤘다.”

 “그, 그래? 뭘 이뤘는데?”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는 것”

 

 만나야 할 사람이라……. 그가 만난 사람이라고는 나와 홍수연밖에 없었다. 나는 한소을을 우연히 만났지만, 홍수연은 가던 길을 돌아오기까지 하여 그를 만났다. 마치 그 자리에 오면 서로 만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문득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이 생각났다. 그렇구나. 한소을이 만나려 했던 사람은 홍수연이었구나. 그건 정말 과거에 어떤 사연이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눈빛이었으니까. 이런 현실 세계에서도 공주와 왕자의 동화 같은 조우는 존재하나 보다. 그리고 나는 공주와 왕자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연 같은 존재겠지.

 

 “보내줄까?”

 “뭐?”

 “홍수연한테 말이야. 여기 있는 것보다 그쪽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어?”

 “...날 버리는 건가?”

 “버리다니 무슨 소리야! 난 오히려 너한테 좋은 제안을 하는 거야.”

 “그리 좋은 제안 같지 않은데.”

 “솔직히 말해줄까? 나는 이제 직장도 잘리고 앞으로 뭐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고. 널 거둬 먹여 살릴 능력이 안 된단 말이야. 알아듣겠어? 근데 왜 여기서 버티고 앉아있는 건데?”

 

 왜 싫으면서 억지로 여기 있느냔 말이야.

 말을 입안에 삼키고는 침울하게 바닥만 보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또다시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그렇게 나만 하염없이 쳐다보지 말란 말이야. 괜히 오해하게 되잖아.

 

 “날 먹여 살릴 수 없어서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건가?”

 “그래.”

 “…….”

 “홍수연한테 가. 그쪽에 연락은 남겨놓을게.”

 “그게 네가 원하는 건가?”

 “...그래. 적어도 나보다는 잘해줄 테니까.”

 

 왜 이렇게 속이 쓰린지 모르겠다. 마치 멋도 모르는 어린애를 내다 버리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래야만 했다. 당장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상황에 녀석을 책임지겠노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가방을 뒤적이며 홍수연이 주었던 명함을 찾고 있는데, 녀석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내가 연락하지.”

 “뭐? 너 연락처 알아?”

 

 내 물음에 한소을이 바지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종이 하나를 꺼냈다. 홍수연의 명함이었다. 비서실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심지어 개인 연락처도 수기로 적혀 있는.

 

 “영입 제안을 받은 건 너뿐만이 아니다.”

 

 ...그랬구나. 이쯤 되면 두 사람의 애틋한 관계 속에 지금껏 내가 눈치 없이 끼어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한소을은 자연스레 내 핸드폰을 제 물건인 양 가지고 갔다. 잠시간 기계와 눈싸움을 하듯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다시 내게 돌려준다.

 

 “전화 걸어줘”

 

 핸드폰을 쓸 줄 몰라...?

 놀라서 벙찐 내게 녀석은 핸드폰을 다시금 내밀었다. 얼결에 받아들어 번호를 찍고 있자니 내 손과 액정을 빤히 들여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허 참나, 핸드폰을 쓸 줄 모르다니. 속으로 혀를 차며 번호를 찍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거기까진 순조로웠으나 막상 통화음이 들리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통화음이 두 번을 막 지났을까?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음이 반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소라엔터테인먼트 비서실입니다.”

 

 친절하지만 사무적인 멘트가 들려왔다. 나는 한소을 앞에서 당당하게 번호를 찍었던 것과는 달리 긴장으로 말을 버벅댔다.

 

 “아, 저, 그게… 지난번에 홍수연 씨 댁에 방문했던 사람인데요.”

 “방문하셨다고요? 이사님 자택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네. 어제 갔었고요”

 “방문자 명단에 없습니다만……. 혹시 예약은 잡고 방문하셨나요?”

 “그건 아닌데요… 아, 그러니까 저는-”

 “누구시죠?”

 

 한결 딱딱해진 목소리. 추궁하듯 묻는 말에 막 대답하려던 입이 움츠러들었다. 꽉 목이 잠겨 대답하지 못하는 날 보고 있던 한소을이 손을 내밀었다. 그대로 내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을 쑥 뽑아내 귀에 댄 녀석이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일 정도로 무례했다.

 

 “한소을이다. 홍수연 불러.”

 “...한소을 님 본인 맞으신가요?”

 “그래.”

 

 순간 수화기 너머가 놀라울 정도로 조용해졌다. 타닥거리며 재빠르게 타자치는 소리만 이어졌다. 그렇게 영겁과 같은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겨우 평정을 되찾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바로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이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바로 이사님 직통번호로 연결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짧은 신호 대기음으로 넘어갔다. 곧 얼마 안 있어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우릴 반겼다.

 

 “네, 홍수연입니다.”

 “어제 받았던 제의에 응하겠다.”

 

 자기소개도 없이 대뜸 용건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한소을이었다. 이렇듯 불도저 같이 밀고 들어오는 녀석의 태도에도 홍수연은 별반 놀란 기색 없이 담담하게 답했다.

 

 “그러세요, 그럼.”

 “내가 말한 조건을 잊지 않았겠지.”

 “물론이죠. 언제 오실 건가요?”

 “지금”

 “바로 차를 보내드리지요. 미리 짐을 정리해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다시 돌아가긴 힘들 테니까요.”

 “…….”

 “그럼 이따 뵙죠”

 

 전화가 끊겼다. 무언가 대단히 많은 뜻이 함축된 대화가 순식간에 오간 것 같은데. 뭐, 어쨌든 한소을은 홍수연이 보낸 차를 타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아마도 소라엔터테인먼트의 관리를 받으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되겠지. 외모는 출중하다 못해 특출한 녀석이니 데뷔해서 인기를 얻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한소을은 사람의 이목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마치 홍수연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핸드폰 하나 잘 다루지 못하는 데다 말주변 역시 뻣뻣하기 그지없는 나무토막 같은 녀석이지만, 얼마 안 가 언변도 행실도 능수능란해질 테지. 톱스타가 될 자질이 분명히 보였다. 내가 가지지 못한 반짝임이었기에 더욱 눈에 잘 보였다.

 

 “떠날 준비를 해야겠군.”

 

 무심한 말과 함께 한소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어디 처박아뒀는지 모를 커다란 가방을 잘도 찾아내 오더니, 옷가지를 차곡차곡 담아냈다. 물론 그것은 내 옷이었다.

 

 “너 뭐해?”

 “시간이 없으니 너도 어서 서두르도록 해.”

 “내가 왜?”

 

 내 물음에 녀석의 행동이 딱 멈춰 섰다. 가방 안에 부지런히 옷을 넣던 손을 멈추고는 돌아보는 눈에 도리어 의아함이 서렸다.

 

 “너도 같이 가야 하니까”

 “나도 같이 간다고? 아니, 아니야. 나는 같이 안 가고 너만 보내는 거야.”

 “날 보내려는 건 돈이 없어서라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그러니까-”

 “돈을 벌게 해 준다면?”

 “뭐?”

 “돈이 생기면 함께할 수 있는 건가?”

 

 한소을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녀석의 느닷없는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그때,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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