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배가 마지막 배 아닙니까? 저는 괜찮으니 제 아이만이라도 데려가 주십시오! 제발!”
경인실국을 하루 앞으로 둔 어두운 밤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찍이 배를 구해 부산을 탈출하여 대마도로 도망친 이는 꽤 많았으나, 대한민국 국민 모두 탈출하기에는 배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시영 부통령은 대한민국의 패망이 앞으로 다가오자 저 멀리 망명정부를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을 서사모아로 이주하는 ‘뉴 코리아 플랜’개시에 서명했다. 그렇게 UN의 지휘 아래 당시 살아남은 각 분야의 전문가와 지식인, 서사모아에 가서 정착 생활을 할 수 있을 각종 기술자를 모아 10만 명을 차출하여 그들만이 서사모아로 가는 망명선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배들이 한반도를 탈출하는 마지막 배임을 알게 된 많은 군중이 부산항 앞바다에 몰려와 부디 살려 달라고 소리치고 왜 우린 구해주지 않는 거냐며 항의했다. 하지만 그들을 막아선 이는 다름 아닌 이시영 부통령과 나와 같은 대한민국 정부 관계자들이었다.
참고로 나는 정무비서관으로 서사모아로 갈 수 있었으나, 정무비서관임에도 불구하고 나라꼴을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은 분명히 지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여기 남아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내가 빠진 자리에는 나 대신 젊은 대변인이 갔다. 거기 가서 우리 10만 동포를 대변하여 서사모아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힘쓰겠지.
“부통령님! 제발 제 아이만이라도 도망치게 해 주십시오!”
뉴 코리아 플랜의 개시로 이제 막 부산을 떠나는 배들을 뒤로 한 채, 앞쪽은 달려오는 인민군의 포격 소리와 군중의 항의가 섞여 정신없는 그때 부통령은 군중을 막아서며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여든이 넘은 노년의 부통령이 힘겹게 입을 열자 성난 벌떼같던 군중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무리 부통령이라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서거한 지금은 대통령이나 마찬가지인 국가원수이므로 그의 무게감 있는 말에 군중은 집중했다.
“저는 대한제국 시절 관료로 시작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쳐 을유년 광복을 맞이했고, 무자년에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영광을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경인년 지금, 대한민국의 패망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절망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관중들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지금 떠나고 있는 저 배는... 대한민국을 기억할 마지막 장입니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위해 마지막까지 힘써주고 있는 지금... 저 마지막 장은 지켜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부통령님! 그럼 이대로 우린 죽으라고요?!”
한 사내가 끼어들어 외쳤다. 그러자 다시 군중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시영 부통령을 향해 소리쳤다. 함께 있던 군인들과 대한민국 정부 관계자들이 그들을 진정시켰다.
“저와 대한민국 관료들이 나라의 녹을 먹고도 지켜내지 못한 죄송한 마음입니다...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드리며... 저희는 이곳을 떠나지 않고... 여러분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협상으로서 스스로 포로가 될 생각입니다.”
부통령의 말에 다시금 군중은 항의를 멈추고 고개를 떨구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위해 본인들은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켜주겠다는데 더 이상 뭐라 욕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단, 다대포에... 포로 송환 겸 일본으로 철수하기 위해 준비했던 배들이 있습니다. 어차피 포로들은 내일 풀려날 것이며 철수할 이들은 우리니... 탈 사람은 없습니다... 떠나시길 원하신다면 그 배들을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부디 자유로운 대한민국의 마지막 질서를 지켜 분노를 거두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말을 끝으로 이시영 부통령은 자리에 앉았다. 나를 포함해 주변에 멍한 눈으로 땅을 쳐다보는 대한민국 정부 요인들도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군중은 멍하니 서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천성산 뒤에서 인민군의 포격음이 울려 퍼지자 군중은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에잇 모르겠다! 나는 부통령님과 마지막을 하겠어!”
어떤 청년이 들고 있던 짐을 던지고 이시영 부통령의 뒤로 가 앉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무식한 빨갱이놈들이 부통령님을 몰라볼 수도 있잖아? 우리가 모셔야지.”
이에 가세하는 청년이 늘어났다. 그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앉은 이시영 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 관계자들의 뒤로 가 비장한 얼굴로 앉았다.
“아야, 넌 어머니랑 같이 대포항으로 가라.”
처음에 자기 아이만을 살려달라던 사내가 담담한 말투로 자신의 아이에게 말했다.
“안돼요, 여보! 갈 거면 당신도 가야 해요.”
사내의 아내로 보이는 여인이 뜯어말렸다.
“아냐. 난 여기 있어야 해. 우리가 있어야 당신들이 무사히 도망치지. 어서 애 데리고 다대포로 가. 내일 아침에 바로 따라갈게. 약속할게.”
사내가 여인의 손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보는 아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주변 군중도 의견이 엇갈려 다 같이 대한민국의 최후를 지키자, 빨리 다대포로 가자, 다대포까진 머니 주변 어선이라도 타고 도망치자 하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논의할 시간은 없었다. 군중은 각자가 마음먹은 대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꼭, 일본으로 와야 해요.”
여인은 눈물 가득한 얼굴로 사내의 손을 부여잡았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은 아이의 손을 꽉 잡고 빠른 걸음으로 다대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주변 군중도 몇몇은 서둘러 다대포로, 몇몇은 겸연쩍게 웃으며 이시영 부통령의 뒤로, 몇몇은 해운대와 광안리에 남은 목선이나 어선은 없는지 찾으러 흩어졌다. 부산항 앞의 성난 군중은 금세 사라졌다.
사내는 사라져가는 여인과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눈물 고인 눈을 닦고는 이시영 부통령의 뒤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앉아 있었다.
“당신 늦었어. 뒤로 가쇼.”
중간 즈음에 앉은 한 중년 남성이 사내를 향해 말했다. 사내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저만치 맨 뒤로 가 앉았다.
“우리 다 함께 애국가나 부릅시다. 어차피 이제 못 부를 노래 아니요?”
예의 중년 남성이 주변 청년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처음엔 눈치만 보다가 중년 남성이 먼저 애국가를 시작하자 곧이어 따라불렀다.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시영 부통령은 갑자기 들려오는 애국가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얼굴의 수많은 청년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음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모습에 그만 풋 하고 미소를 짓고 말았다.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앞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이시영 부통령의 입에서도 어느새 애국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를 따라 나도 애국가를 따라 불렀다.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1950년 7월 15일, 대한민국은 최후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