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 지명, 인명은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
11화. 힘 조절
박진우는 메시지 보낸 사람의 이름을 확인 했다.
한연희
가슴 깊은 곳에서 약간의 불안감이 올라왔다. 등 뒤와 머리털 사이 땀구멍에서 식은 땀이 생겼다.
‘얘가 갑자기 무슨 일이야, 돈 때문인가?’
“정혁아 나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다.”
“알았어 형, 환자들 때문에 바쁘지? 나는 진철이 형 옆에 좀 더 있다가 알아서 갈게.”
“응 정혁아 진철이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잘 확인하고 있을게”
박진우는 유진철의 병실에서 나와 자신의 진료실로 왔다.
관자놀이가 지끈해졌다. 의자를 젖히고 누우며 눈을 감았다.
‘몇 년 전에 법적 판결로 모든 것이 정리 되었을 텐데... 꼼꼼하게 처리 한 탓에 빈틈은 없어.... 문제 될 것은 없다..’
박진우는 다시 가슴을 쓸어내리며 손가락을 들어 확인 창을 눌렀다.
왠지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무거웠다.
***
박진우는 한연희가 알려준 호텔에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 자신의 차를 댔다.
그때 휴대폰으로 알람이 올렸다.
- 한연희 :오빠 언제와? 나 오빠 보고 싶어서 미치겠어..
- 박진우 : 조금만 기다려. 나 지금 주차장이야 씻고 기다리고 있어.
- 한연희 : 기다리기 어려워서 그랬지.. 알겠어 (이모티콘)
한연희의 연락에 박진우의 아랫도리가 뻐근해져 왔다.
‘하여튼...흐흐..’
박진우는 그녀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했다.
2년 전 한연희와 박진우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만났다.
박진우는 청순한 한연희의 외모에 이끌렸고 그는 지속적인 구애를 했다.
금전적인 선물과 진심이 섞인 말과 행동에 한연희는 차츰 박진우에게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한연희는 박진우가 만나는 수많은 여자들 중 한명에 지나지 않았다.
박진우는 의사의 지위, 돈을 이용해 여자를 만나는 것을 하나의 취미로 생각했다.
그리 썩 나쁜 외모는 아니었기에 조금만 신경을 쓰면 여자들이 넘어왔다.
그렇게 잠자리를 몇 번 같이하고 질린다 싶으면 여자들을 갈아 치웠다.
박진우는 여기서 더 나아가 변태적인 취미가 있었다.
자기와 잠자리를 했던 모든 여성과의 관계를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때로는 친구들과 이 영상을 돌려 보기도 했고, 인터넷 상에서 유포하며 자기의 변태적인 욕망을 태웠다.
이 문제로 꽤나 골치 아픈 문제들도 더러 있었다.
동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살을 한 여성들도 몇 명 있었다.
하지만 박진우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 일들은 그에게 작은 취미였을 뿐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수면제 약물들을 활용했다. 술을 먹을 때 여성들의 잔에 타거나, 잠이 들었을 때 강제로 주사를 투여했다.
혹은 기운 돋는 주사 한 대 놔준다고 말하면 모두 속아 넘어 갔다.
그 뒤로 그는 동영상을 촬영한 뒤 여성들을 협박 하는데 활용했고,
시간 나는 대로 여성들을 돌려가면서 마음대로 주물렀다.
한연희 또한 그 희생양 중 한 명 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한연희는 혼전 순결이었지.. 흐흐 거봐 내가 새로운 세상에 눈 뜨게 해준 거라니까?
박진우는 한연희를 만나면서 혼전순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늘 했던 방식 대로 약물을 몰래 먹였다.
이후 기절한 한연희를 자기 마음대로 한 뒤 동영상에 담았다.
더 나아가.. 역시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으로 한연희를 괴롭혔다. 그 삶을 견디다 못해 한연희는 박진우를 고소한 것 이었다.
하지만 박진우는 대부분의 혐의에서 집행 유예 판결을 받았다.
요지는 연인사의 관계에서 ‘합의’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박진우의 전관예우를 받은 값 비싼 변호사단, 김정혁의 아버지 김동철 지검장이 힘을 써준 것이 컸다.
한연희는 그 뒤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전 갑자기 연락이 왔다.
진심으로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고.
몇 년 동안 시간이 흐른 뒤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 봤지만, 박진우 만큼 잘 해준 사람이 없더라는 것이었다.
잠자리 측면에서 나쁜 일이 있었긴 했지만, 그때의 자신은 너무 어렸고 미성숙 했다고 말했다.
지금 그 계기를 통해 오히려 자유로워졌고 그렇게 해준 박진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박진우는 맨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의심스러운 마음이 떠올랐다. 다시 이 일을 이용해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릴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하지만 메시지를 통해서 연락이 오는 그녀의 구애 수준은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 자기가 이미 호텔을 잡아 놨다. XX힐그랜튼 호텔로 와라.
- 오빠랑 다시 잘 해보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
법정에 갔을 때 이 정도의 문자 메시지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무죄를 받을 것임이 확실했다.
그는 다시 약물과 카메라를 가방에 챙겼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하룻밤 만에 날리기는 아쉽지..’
이모저모를 생각해 보아도 박진우는 거리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띵!
짧은 회상을 하는 동안 그의 엘리베이터는 고층에 도착했다.
그는 들뜬 가슴과 뻐근해진 아랫도리를 생각하며 호텔의 방안의 벨을 눌렀다.
막 씻은 듯한 한연희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의 젖은 머릿결 사이로 샴푸향이 은은하게 울려 퍼져 왔다.
박진우는 호텔 가운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살색 피부에 눈을 흘겼다.
“오랜만이야... 이렇게 갑자기... ”
“쉿... 일단 말하지 말고 씻고 와 그리고 나서 이야기 하자.”
한연희는 검지를 들어 박진우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눈을 흘기면서 몸을 배배 꼬았다.
박진우는 그 모습에 홀렸다.
“알았어, 흐흐.”
들고 온 가방을 내려놓고 서둘러서 화장실로 향했다.
‘이거 뭐야? 생각 보다 너무 적극적인데?’
박진우는 온몸을 구석구석을 씻었다.
뭔가 자기가 애쓰지 않아도 여자가 적극적으로 달려와 주는 일이 처음 이었다.
일이 쉽게 풀리는 느낌이 들자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 졌다.
몸을 깨끗하게 씻은 뒤 수건으로 닦고 욕실을 나왔다.
욕실을 나와 침대를 바라보았다.
침대에는 가운을 걸치고 있는 한연희가 있.....
긴 했는데... 남자 한 명과 같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그 남자는 어린이들이 쓸법한 우스꽝스러운 호랑이 가면을 쓰고 있었다.
호랑이 가면을 쓴 그 사내는 팔짱을 끼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팔짱 낀 사이로 핏줄과 근육들이 솟아 나와 있었다.
“뭐....뭐야?.... 넌 뭐야? 이게 뭐야? 한연희 너 나 속인거냐? 이....썅년이!”
자기가 예상 했던 결과와 많이 다르게 되면 인간은 당황 한다.
원래대로라면 뜨거운 밤을 계획 했던 예상이 너무 크게 빗나가자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박진우는 입을 벌리며 당황해서 뒷걸음질 쳤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그는 빨리 머리를 굴렸다.
우락부락한 것으로 보아 한연희가 고용한 조폭일 법했다.
일단 이 호텔방을 벗어나야 했다.
‘이 방안만 나가면 된다! 방 안만 나가면 어디든 전화해서 112에 신고 할 수 있어!’
박진우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호랑이 가면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두 눈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눈동자에는 분노가 서려있었고, 이 방에 계속 있다간 자신의 몸이 온전하지 않을 것 이라는 것은 확실 했다.
한연희는 유리창 옆에 마련된 작은 테이블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 문을 열어주면서 호의적이고, 뇌쇄적이었던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어 자신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짜증이 솟구쳤지만 지금은 이 방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떠올랐다. 박진우는 심장이 쿵쾅대고 온몸이 떨렸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이 시발 년이 나를 속여?”
큰 목소리로 소리를 치며, 자기가 들고 있던 수건을 호랑이 가면 사내에게 뿌렸다.
물기에 젖은 흰타올이 이범의 얼굴을 가렸다.
박진우는 빨리 문 쪽으로 몸을 던졌다.
‘그래, 멍청한 니깟년이 누굴 고용한다고 해도 일이 그따위지.. 훗..’
딱!
이범은 손가락을 튕겼다.
퍽!
“아아아아아악! 뭐야 이게?”
박진우는 무언가에 부딪힌 듯 얼굴을 세게 부딪히고 현관문 앞에 나뒹굴었다.
현관문이 불과 몇 십 센치미터 앞에 있었는데, 박진우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하늘빛의 투명한 쉴드가 자신의 앞을 가로 막았다.
“안돼!”
온 몸을 던져 그 보호막을 깨려고 했다.
쿵! 쿵! 쿵!
하지만 보호막은 요지부동이었다. 강한 방탄유리를 때리는 듯 했고 점점 그의 어깨만 아파 왔다.
“으아아악 시발 이게 뭐야 도대체!!!!!”
그는 손톱으로 허공을 긁었다. 투명한 쉴드와 손톱이 긁혀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호랑이 가면을 쓴 사내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박진우는 전략을 바꾼 듯 했다.
두 주먹을 들고 싸워보려는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때 주변에 구두 주걱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구두 주걱을 마치 칼 인 듯 휘둘렀다.
“와봐! 시발놈아! 이리 와 봐! 개새끼야 이걸로 눈깔 찔러 버린다!”
마치 개가 겁나고 두려울 때 더 크게 짖는 것처럼 박진우는 악에 받힌 듯 소리를 질렀다.
이범은 천천히 다가갔다.
휙! 휙! 가냘픈 구두주걱 소리가 들렸다. 이범은 손쉽게 그 공격을 피했다.
박진우는 이내 구두 주걱을 버리고 이범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주먹을 손쉽게 피한 이범은 박진우의 오른쪽 손목을 잡아챘다.
오른쪽 손목을 쓸 수 없게 된 박진우는 왼쪽 손으로 이범의 얼굴, 팔, 복부를 쳤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마치 돌덩이를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때리는 박진우의 주먹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넌..너는 뭐야 시발? 나한테 왜 이래?”
이범은 잡고 있던 오른 팔에 힘을 주었다. 잠깐 그의 이두박근의 혈관이 도드라졌다.
우지끈!
“끄으으아아아아아아아악!”
이범은 박진우의 손목을 친구 유진철 처럼 꺾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손목을 놓았다. 손목이 기괴하게 안쪽으로 꺾여 있었다.
박진우는 소리를 지르며 끝까지 반항 했다.
“으이 개새끼야!!”
오른쪽 손을 쓸 수 없으니 발을 들어 이범을 찼다.
하지만 발을 차면서도 타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마치 좀 전에 보이지 않는 방탄유리에 몸을 던졌던 것처럼 이 사내를 아무리 세게 발로 차고 때려도 아무런 효과가 없는 듯 했다.
되려 한 동안 발로 차던 자신의 체력이 더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박진우는 몇 번 차다가 이내 주저앉았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손목을 젓가락 부러뜨리듯이 할 수 있는 사람.
자기가 아무리 공격해도 타격이 먹히지 않는 사람.
호랑이 가면을 쓴 채 분노에 찬 눈으로 보고 있는 사내.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그가 할 수 있는 것 은 없었다.
“왜...왜 나를 더 때리지 않는...거야...”
두려움과 공포에 섞인 작은 신음과 섞여 나온 말이었다.
호랑이 가면을 쓴 이범은 천천히 입을 뗐다.
“한 대 맞고 죽으면 안 되잖아... 지금 널 보니 내 마음에 분노가 가득 차서 마음을 식힌 다음에 때려야 하거든...”
“뭐?...”
“지금 정도면 괜찮을 거 같아.”
말을 마친 이범은 오른 팔을 들어 박진우의 뺨을 한 대 휘갈겼다.
짝!
흙더미가 무너지는 것처럼 박진우는 차가운 현관문 바닥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