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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채널 스트림(Ch. Stream)
작가 : 김트리
작품등록일 : 2020.9.14

"아이돌을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야! 아이돌이 되는 거라고!"

"그럼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좋아해주는 노래와 춤을 하는 뉴튜버 아이돌이 아닌 거야?"

인기 스트리머(유튜버)가 되고 싶은 시골 소녀 하나 (주인공)가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인기 아이돌로 성장해가는 성장기.

 
11.
작성일 : 20-09-14 02:13     조회 : 326     추천 : 0     분량 : 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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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후우~”

 샤워를 마치고 나온 시원이 우유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정말 오랜만에 땀을 비 오듯이 흘린 것 같았다.

 “결국 오늘도 말려들었네. 작사를 떠맡은 것도 모자라, 춤까지 추고.”

 하나의 연락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 되리란 건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주말에.

 그것도 사방이 뻥 뚫린 풀밭 한복판에서 원피스를 입고 춤판을 벌이는 날이 올 줄이야.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가다 봤으면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둘 다 아주 막무가내라니까. 사람 말 중간에 가로채기나 하고 말이야.”

 원샷을 때린 물 잔을 바로 설거지 해 선반에 올려놓은 시원이 혼자 투덜거렸다.

 자기는 어디까지나 한 발 뒤에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역할.

 자신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래서야 자기도 완전 맴버 포함이지 않은가.

 ‘하나,둘,셋,넷, 하나,둘 셋,넷,’

 설거지를 마치고 뒤를 돌아선 시원은 마음속에 떠오른 숫자들에 흠칫 놀라며 멈춰 섰다.

 방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움직인 것 같았다.

 몇 시간 동안.

 못해도 몇 십번은 더 추었을 그 스텝과 그 움직임대로 말이다.

 ‘아아! 내가 미쳤지!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혹여나 누군가 보진 않았을까.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로 좌우를 빠르게 두리번거린 시원이 자신의 두 뺨을 찰싹 때렸다.

 아무리 구분 동작으로 딱딱 나눴던 동작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떠올라도 그렇지.

 왜 머리의 허락도 안받고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느냔 말이다.

 

 ‘둘 다 열심히였지. 옆에 있던 나까지 자극받을 정도로.’

 초록 들판을 무대삼고, 태양을 조명 삼았던 시간을 떠올린 시원은 자기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대자로 뻗었다.

 하나와 송이.

 두 사람 다 입고 있던 옷에 소금이 생길 정도로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송이는 몰라도, 하나는 이미 오래 전에 체력을 다 소진했을텐데...

 하나가 힘들다고 표현했던 건 처음에 그 한 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하나의 모습을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덕분에 오늘 하루 완전 쫑이네. 예습도 복습도 하나도 못했고, 모의고사도 못 풀어봤잖아.’

 원래 계획대로 였다면, 오늘은 작년 이맘 때 쯤의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풀어볼 생각이었었다.

 공부도, 숙제도, 모의고사도.

 전혀 생각하지 못할 갑작스런 일들의 연속에 다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할까? 타이머 놓고 하면, 한 과목 정도는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침대에 눕혔던 상체를 일으킨 시원은 자신의 책상을 3초간 바라보았다.

 책상 위엔 모의고사 기출 문제집이 떡 하니 올라와 있었다.

 “아~ 몰라. 피곤해. 발바닥이랑 종아리도 아릿아릿하고. 허리도 좀 삐걱 거리는 것 같고.”

 다시금 대자로 누워버린 시원이 침대 위에서 물장구를 쳤다.

 움직이지 않고 놔두면 근육이 뭉쳐서 다음날 엄청 고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물론 평소에 그렇게 운동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이건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뭔가 평소엔 사용하지 않는 근육들을 사용한 느낌이랄까?

 

 “띠리링~♪ 띠리리링~♪”

 

 “응?”

 풀벌레들의 잔잔한 노랫소리를 깨는 전자음에 몸을 일으킨 시원은 충전기에 꼽아 두었던 핸드폰을 들고 다시 침대로 다이빙했다.

 여고생이라면 어플로라도 벨소리를 바꿔놨을 법 하건만,

 시원이의 핸드폰에서 울리는 벨소리는 기본 중에도 기본 벨소리였다.

 “여보세요?”

 ‘송이’의 이름을 확인한 시원이 통화버튼을 밀었다.

 이 시간에 갑자기 웬 전화?

 혹시 이 달밤에 또 모이잔 소리 하는 건 아니겠지?

 “아!아! 여기는 화산송이. 여기는 화산송이! 시원대장님 무사하십니까~?”

 “무슨 첫인사가 그래? 어디 등반 왔어?”

 “오오~ 상태를 보아하니 시원시원은 멀쩡한가보네. 나는 지금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다구. 꼭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이 되어버린 것 같아.”

 “...”

 축축 늘어지는 송이의 목소리에 시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누가 들으면 오해할만한 소리를 어쩜 저렇게 태연하게...

 그렇다고 그걸 지적하면 지기만 또 음란마귀가 될 거 아닌가.

 “그래서?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음~ 글쎄... 아마 시원시원 목소리 듣고 싶어서가 아닐까~?”

 “끊는다.”

 “오오~ 잠깐! 잠깐 기다려주시오! 시원공! 그건 제 진심이 아니었다오!”

 단호한 시원의 목소리에 버선발로 뛰어나온 송이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큰절을 올렸다.

 아마 몇 초만 늦었어도 정말로 끊겼을 것이다.

 “아직 노란톡 안 읽었길래 확인차 전화해봤지. 내 마음을 어서 빨리 확인해 달라구~”

 “노란톡?”

 길게 늘어지는 송이의 목소리에 스피커폰 버튼을 누른 시원은 스마트폰 화면을 아래로 길게 끌어내렸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가리키고 있는 숫자는 약 50.

 아래층을 비워둔 메시지는 스카이라운지의 3개의 층을 점령하고 있었다.

 가장 아래층의 주인은 하나.

 둘째 층의 주인은 송이.

 가장 꼭대기층은 두 사람이 함께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아래층을 차지한 하나가 보낸 메시지가 기록하고 있는 시간은...

 자신들이 한창 원두막에 있었던 그 시간이었다.

 “너희 설마 벌써 보낸 거야? 이렇게 빨리?”

 실시간으로 메시지가 덧씌워진 가장 위 단톡방을 뺀 나머지 두 개의 메시지의 첫 문장을 눈으로 훑은 시원이 놀란 눈동자를 깜빡였다.

 두 사람과 헤어진 지 아직 1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벌써?

 다른 사람도 아닌 ‘그’ 두 사람이?

 “헤헤~ 몸을 움직이면서 다른 한쪽 머리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고. 오늘은 나를 하이브리드 브레인이라고 불러줘~”

 “그거... 집중 안하고 있었단 소리로 해석해도 되지?”

 “오... 그건 상당히 억울한 해석이라고. 시원시원. 나 적어도 수업시간보단 3배 이상 집중하고 있었다고 확신할 수 있어.”

 “음... 그래?”

 농담으로 던진 물음에 돌아온 송이의 재빠른 가드에 시원이 옅은 웃음을 삼켰다.

 송이가 평소보다 훨씬 열정적이었단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나도 오늘은 좀 놀랐었다굿~”

 잠깐의 정적이 흐르던 핸드폰 너머에서 송이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응? 뭐가?”

 “시원시원 공부할 때만큼 열심히 였잖아.

  자기 파트뿐만 아니라 우리 파트까지 구분동작으로 전부 같이 해주고.

  그거, 우리 파트까지 다 보고 있었다는 소리잖아.”

 “그... 그랬던가?”

 “그랬었다구~ 선생님한테 배우는 줄 알았다니까~

  덕분에 뭔가 엄청 그럴듯하게 출 수 있게 됐단 말이야. 어~ 한 두 마디 정도는.”

 “그래? 그랬다면 다행이네.”

 진짜라서 더 웃픈 송이의 마지막 한 마디에 속으로 웃음을 삼킨 시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보면, 반나절만에 모든 것을 마스터한다는 것은 당연히 무리였다.

 하지만 내심 그런 욕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었으니까.

 

 “있잖아. 시원시원.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은 대화의 마침표를 확인한 송이가 핸드폰 너머에서 물었다.

 창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바라보던 시원은 스피커폰 버튼을 끄고 다시 핸드폰을 귓가로 가져왔다.

 “그래. 아직 노란톡에 왜 1이 안 지워졌냔 이야기만 아니면 물어봐도 돼.”

 “에에~ 그건 안 되는 거였어?”

 “그래. 안 돼. 저건 아무도 말 안 걸 때 조용히 볼거니까.”

 “오오~”

 “그럼 볼 일 끝난 거지?”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마음에 평온해지는 송이의 ASMR을 듣고 있던 시원이 물었다.

 화상통화도 아니건만,

 고개를 끄덕이는 송이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아아~ 바쁜가 보네. 역시 데이트?”

 “그...그런 거 아니거든! 사람 좀 그만 놀려!”

 또 이상한 곳을, 이상한 타이밍이 치고 들어오는 송이의 목소리에 시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말이지.

 조금 달라 보이는가 싶더니만, 바로 제자리였다.

 

 “시원시원, 이제 안 나올 거지?”

 “...응?”

 갑작스럽게 묻는 송이의 물음에 시원의 눈썹이 들썩였다.

 송이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송이의 목소리 뒤에 감추어진 무언가나 시원의 귓가를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시원시원, 하기 싫었던 거 다 알아.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구~”

 “...”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잡아당겨보고 싶었어.

  나는 하나를 쫓아가 줄 순 있지만, 잡아당겨 줄 수는 없으니까.

  나는... 강이나 바다 같은 목적지를 두고 흘러가 본 적이 없으니까.”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송이의 이야기에 시원의 눈동자가 잔잔하게 흔들렸다.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얬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어떤 시험을 봐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럼 끊을게. 하나한테는 내가 적당히 말해 둘 테니 걱정 하지마. 고생했어~”

 손이라도 흔들어 줄 것 같은 송이의 인사 뒤로 “띠리딩”하는 통화 종료음이 따라왔다.

 “...”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의 대화방들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고 있던 시원은 두 손으로 꼭 감싸 안았던 핸드폰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조금 전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송이의 목소리가 왠지 씁쓸하게 느껴졌던 건 과연 기분탓일까?

 

 “하아~”

 침대를 박차고 일어난 시원은 안과 밖을 나누고 있는 방충망을 밀어재꼈다.

 답답했다.

 정답이 없다는 게.

 자기 마음을 자신도 모르겠다는 게 너무나 답답했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조용히 눈을 감은 시원은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능선을 넘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봤을 때.

 송이의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뭔지도 모르고 불려나간 그 자리에서 원하지도 않은 결과와 마주쳤었으니까.

 하기 싫다고,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치만, 지금은 어떨까?

 지금도 과연 오늘 하루가 재미없었다고, 싫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 걸까?

 잠시지만 두 사람과 나란히 섰던 그 때의 생각과 감정.

 한 걸음 뒤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려던 자신에겐 어쩌면 과분했을지도 모르는 그 자리가 싫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구름을 보며 시간을 보냈던 그 때와 지금이 똑같다고 말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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