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의 말과는 달리 의자에 앉은 예쁜 얼굴의
....... 남자 신데렐라는 씨근거린다.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신데렐라는 무슨... 이따위 신발 신은 신데렐라 봤어?"
형광신발이 발에서 화려하게 눈을 찌른다..
웃음이 나긴난다.
"진짜- 말 예쁘게 하네요- 기껏 챙겨왔더니.. "
하임은 뒤로 가서 휠체어를 밀기 시작한다. 어라..... 왜 이렇게 가벼워 - 이 남자 대체 .. 몇 킬로야
에라이..
키도 큰게 얼마나 뭘 안먹고 살았으면........
"..... 진짜 가볍네요-"
"왜 , 그럼 안돼?"
틱틱댄다.
어거... 내가 더 무거운거 아냐?
키는 내가 한-참 작은데....
"그건 아닌데.. 전동 있길래 5000? 인가 내면 될거 같기에 그걸로 할까 하다가.. 괜한 걱정이었네요-"
"... 됐어- 혼자도 제법 움직여-"
휠체어.. 초반 수술 끝나고 재활전엔- 그리고 수술 중간 중간에.. 다른 무슨 방법이 있었겠는가 ,
휠체어 타고 살았다.
그러니 능숙하게 움직인다. 사실 안 밀어줘도 움직일 만큼
물론 이 의자에 앉혔고 이따위 신발을 신겼으니 고생하란 맘으로 내가 움직일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하임이 얘길 꺼냈을때 가슴 한켠이 쿵 내려 앉는거 같은 기분은 거기서 나온것이었다.
당시엔 맹목적으로 걷고자 했기에 휠체어에 익숙해 질 새도 없었지만
손으로도 충분히 오갈수 있었다.
...........
그래도 그렇지 그토록 싫었던 이 의자에 다시 오르다니...
지혁은 지금 자신이 어디까지 갈지... 어디로 가는지 답이 없다.
이 여자가 날 어디까지 데려갈지도..... 답을 아직도 내리지 못했다.
하임은 무슨 이야길 하는지 대충은 눈치 채지만 안 들은채 한다.
"일단 동물원 위주로 돌까요?"
"그래야지- 뭐 별수 있어?"
툴툴... 완전 투덜이 스머프 수준이라니까-
투덜이 스머프와 백설 공주에 나오는 일곱난쟁이 중 심술이를 섞어놓은 성격
근데 얼굴은 백설공주니 뭐....
왠지 결말은 잔혹동화일것 같다.. 고 생각하며 하임의 씩 웃는다.
근처를 지나는 롤러 코스터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린다- 꺄아아아아 하는 소리들
빛이 오늘처럼 청명한데다 주말이다 보니 가족 단위의 손님도 많다.
작약 뒤에서 휠체어를 밀면서 지나가는데- 젋은 여자들의 시선이 작약으로 향해 있음은 굳이 그쪽을 보지 않고도
알수 있었다.
왜 아니겠어-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엔 크고 , 날카로운 인상으로 보이는 선글라스가 끼워져 있다. 뒤에 있으니 목이 보이는데
목조차도 하얗다. 광합성을 오래 안해서 빛보면 죽는거 아닌가 몰라..
하임은 탈까봐 걱정이 되서 묻는다.
"선크림은 발랐어요?"
지혁은 그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원래 잘 안타- 타는 체질 아냐"
거참 행운이네- 하임은 자신은 지금은 하얀 편이지만- 평소에 타는걸 싫어해서 피한 탓이기도 하다.
"아- 저기 물범 있네요!! 저기부터 가요!!"
하임은 신난듯 웃으며 물범이 있는 곳으로 신나서 지혁을 밀고 간다- 이 여자는 동물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지혁은 축사에서 나는 물 냄새가 평소라면 찝찝했을 텐데- 가까이 밀고 가는데도 나쁘지 않다.
"저것봐요- 와 - 진짜 귀엽지 않아요?"
물범들이 슉슉 물을 가른다- 물속에 있는데도 무지 크다.
물속에 있어서 커 보이는 건가?
"하프 물범도 아니고-... 저렇게 큰데???"
지혁의 눈에 물범은 작은 고래만 해 보인다. 게다가 소리를 내는데.. 소리도 무섭고 축사 안에 있는 바위를 차지하겠다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다.
"왜요- 귀여운데?"
하임의 말에 지혁이 중얼거린다.
"쟤들 야생에 있으면 펭귄도 먹는 애들이야..."
엥? 펭귄?
하임이 실실 웃는다..
".. 관심 없는 척 하더니- 동물 꽤나 좋아하나 보네요?"
지혁은 더듬거리며 부인한다.
"... 그.. 그..게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거야!"
"예 뭐 어련하시겠어요- "
하임은 씩 웃으며 사진을 찍고는 여러 군데서 다른 각도로 간단히 스케치를 한다.
지혁이 보기엔 뭐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꽤나 진지한 표정이다. 스케치 만으로도 손에 익어- 어떻게 그릴지
훨씬 쉬워진단걸 이해하기엔 지혁은 그림은 못 그린다. 엄청.
"자 요기는 다 됬고- 뭐 보고 싶은거 있어요?"
"없어 그런거-"
"에이, 동물 좋아하는거 다 티났어요 어디부터 갈까요-? 여기선 호랑이랑- 곰- 그리고 아! 여기 레서판다도 있네요?"
"레서판다?"
지혁은 자신도 모르게 앳띈 목소리로 반문하고 만다
"......아- 레서판다 좋아하는구나? 귀여운거 좋아해요?"
하임은 빙글빙글 웃으며 지혁을 놀린다.
"그..그게 뭐? "
오늘의 지혁은 유난히 틱틱대지만
그래도 좀 귀엽긴 하다-
언발란스한 남자-
평소에도 그렇게 안 보였는데- 자신이 스케치 하는 내내 우리 쪽에 바싹 붙여놓자- 엄청 열심히 보고 있는걸 알수 있었다.
눈이 반짝반짝- 평소엔 그 아무것도 없는듯 암흑이던 눈 너머의 뭔가가 반짝이는것 같았다.
하임은 호랑이 우리부터 간다. 호랑이들은 더운 날씨에 지친듯 누워서 다들 자고 있다-
"아침 나절이라지만 너무 꿀잠 취하고 있네요- 일어나 있어야 그림 도움이 될텐데-
"그래, 내가 뭐랬어? 사진으로도 충분한데.. 이건 실력부족이야-"
툴툴대긴- 자기도 동물원 와서 좋으면서
"음.. 사파리 투어를 할까요 그럼? 휠체어 타고 이용할수 있나 알아봐야겠는데요?"
"사파리????"
지혁은 완전 싫다는듯 반문한다. 눈을 크게 뜨면서-
"네- 그 차타고 안에 동물들 있고-... 아 여긴 동물을 방사해서 수륙 양용되는 차로 이용할수도 있네요-"
하임은 지혁의 반문엔 신경도 안쓰고서 열심히 안내 책자를 들여다 본다- 그 와중에도 지혁은
그늘에 데려다 두고 말이다. 강비서가 대체 뭐라고 했길래 ... 이 여자가 날 다루는게 아주 돌 지난 애
다루듯이다. 강비서 이자식 돌아 오기만 해봐라-.... 적당히 해야 될꺼 아냐? 슬쩍 짜증이 난다. 앉아 있으니 다리야 한결 편한건 사실인데....
안걸으니 솔직히 좀 답답하기도 하고-
동물원에도- 놀이 공원에도 참 오랜만이다. 중학생 때 이후로 여긴 온적 없으니까-
가족들의 손을 잡은 꼬마들- 사랑에 빠져 손 잡고 걷는 연인들-
다들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내가 정체되어 있는동안.. 내가 멈춰서 있는 동안- 내가 지독한 슬픔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이토록 청명하게... 이렇게 유지 되고 있었겠구나....
그래 나도 어렸을땐 그저 해맑았다. 물론 부모님은 이런데 데려 와 주신적- 한번도 없었다.
두분 다 바쁘시기도 했고- 어머니는 이런 곳 보단 조용한곳을 좋아하시는 분이니.. 그럴 일이 없었다.
하임이 책자를 살피다가 물어보고 오겠다며- 안내 데스크 쪽으로 향하고
나무 아래에서 앉아 있던 지혁은 자신의 머리를 살짝 스치며 지나간 풍선이 나무에 걸림을 알아챈다.
파란 돌고래모양 풍선
"으아아앙.... 내 풍선인데........ "
아주 어린, 작은 꼬마애가 울면서 나무쪽으로 달려온다 아무래도 놓친 모양이다-
폴짝 폴짝 뛰지만 꼬마의 키로는 어림도 없다.
지혁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건다
"꼬마야- 니 풍선이야?"
꼬마는 울다말고 지혁을 쳐다본다-
"네.. 제거에요-... 엄마가 , 사줄테니까... 잃어버리지 말라고 했는데-"
뚝뚝 흘러 내리는 눈물이 안쓰럽다. 지혁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준다.
꼬마는 훌쩍훌쩍 받아 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다.
"울지마- 부모님은 어디 계셔?"
"저쪽에서 곰 보고 계세요- 전 풍선이 날아가서-"
훌쩍훌쩍 대는 꼬마의 얼굴이 귀엽다. 울고 있는데 귀엽다 그러면 실례려나-
지혁은 선글라스를 벗고 꼬마애의 얼굴은 본다-
꼬마는 울다가 지혁의 얼굴을 보고 더 놀란거 같다.
창백한 얼굴의 지혁이 낮설만도 하지만 말이다.
"형아가 꺼내 줄게-"
꼬마의 얼굴이 반신 반의 하는 표정이다- 휠체어를 빤히 바라보면서-
"그치만- ... 형은 다리가 아프잖아요-"
지혁은 픽 웃으며 말한다.
"잠깐은 괜찮아- 대신 풍선 구해주면 이젠 잃어버리면 안돼?"
"네!!"
아이는 냉큼 대답한다 , 눈물이 아직 얼굴에 묻어 있지만 방긋 웃는다-
지혁은 그냥 신발을 신은채로 일어난다. 원체 아래쪽에 걸리기도 했지만 지혁은 키가 큰 편이니
살짝 팔을 뻗자 곧 풍선을 잡아낸다.
"자 여기 있어-"
꼬마는 비로소 해맑게 웃는다- 그러곤 지혁에게 소곤거린다-
"형은 왜 일어날수 있는데- 휠체어를 타고 있어요?"
지혁은 피식 웃는다.
"쉿- 그건 비밀이야- 형이 풍선 구해줄려고 마법을 썼거든- 자 여기 "
귀에다 대곤 자신이 생각해도 유치한 말을 속닥거린다-
그러곤 풍선의 끈을 아이의 손에 리본으로 묶어준다-
"이렇게 하면 안 날아갈꺼야- 자 어서 부모님한테 가야지? 잃어버릴라-"
꼬마는 활짝 웃으며 꾸벅 인사를 한뒤 손수건을 돌려준다. 그리곤 예쁜 목소리로 지혁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비밀 꼭 지킬게요- 고맙습니다 예쁜형아-"
그러더니 도도도 뛰어서 부모님 곁으로 돌아간다..
부모님은 아이가 없어져서 찾았던듯 따뜻하게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는 뒤를 돌아보며
지혁에게 손을 흔든다-
지혁도 손을 흔들어 준다.
"생각보다 따뜻하네요- "
뒤에서 하임의 목소리가 느닷없이 들려온다.
지혁은 놀라서 심장이 툭 내려 앉을뻔 했다.
"뭐야? 언제부터 있었어??"
"당신한테 저 꼬마가 예쁜 형아라고 할때 부터요?"
사실 그 전부터 멀리서 보고 있었지만- 오랫만에 방어 태세를 내리고 맑게 웃는 얼굴을 봤으니..
하임은 지혁 맘 편하라고 거짓말을 한다.
괜히 알은체 하면 또 딱딱해진 얼굴로 방어태세로 돌아서겠지
그건 더 싫었다.
물론 멀리서 일어날땐 좀 놀랐다. 진짜 깁스도 아니고- 멀쩡하니
당연히 그럴수 있는건데 말이다. 제 손으로 붕대를 감아주고도.....
그러다 갑자기 지혁이 뜬금 없는 질문을 한다.
"예전에도 이런데는 풍선이 있었던가?"
...
저렇게 어릴때- 부모님과 이런 곳에 와 본적이 있었다면 ...
지혁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부유함과 상관없이 별게 없단 생각에 조금은 씁쓸해진다-
"예전에도 있었죠- 놀이공원엔 진짜 안 왔었나 보네요-"
"마지막은.. 중학생때였던거 같아- 올 이유가 없었지. 다른 재밌는게 많았으니까."
하임은 웃으며 대답한다.
"어쩐지 어떤것들인지 알것 같지만 묻진 않을게요- 아- 그 ***사파리 투어 차에는 휠체어를 탄채 탈수 있데요-
그게 훨씬 재밌는 프로그램이 많더라구요- 뒷쪽에 전용 좌석이 있어서 일어날 필요도 없데요-"
"그거 물어보고 왔어?"
"그럼 뭐 하러 간줄 알았어요?"
"쳇"
"좋으면서 뭘 그래요- 그럼 이쪽으로 갈까요?"
하임은 맹수 사육사 쪽에서 스케치를 한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 지혁이 지루해 할줄 알았는데 혼자 멍하니
잘 보고 나름대로는 즐기고 있는거 같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데도 시선이 확 쏠린다.
하얗고 -
물론 해사한 인상이긴 한데- 늘 긴장하고 보던 얼굴이라 미쳐 못 느꼈던 건가?
같이 나오니 절로 시선이 쏠린다.
옆의 젋은 여자들이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혼자 왔나? 다리 깁스했나봐-"
"그건 모르겠고... 진짜 잘생겼다... 얼굴 하얀거 봐- 예쁘게 생겼어 완전 눈호강이다... "
여자들이 즐거운듯 소곤댄다.
하임은 속으로 피식 웃는다. 예쁘기만 하겠어?
성격도 장---난 아니란다.
"자 가죠-"
여자들은 자신들 옆에 서 있던 여자가 그 남자의 휠체어를 밀며 가자 화들짝 놀랜다.
둘이 지나가고 나서 여자들은 투덜댄다.
"뭐.. 좀 곱상한 정도지 뭐 평범하네-!"
"...뭐 돈이 많은가 보지 여자가-"
여자들의 중얼거림이 살짝 들리지만- 하임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럴줄 예상했다-
이 남자가 가진게 나보다 훨씬 많네요-... 물론 당신들이 생각하는 거 같은 사이는 평생 될수 없을것 같지만-
그럴꺼야... 될수 없을거야.
"그럼 이제 래서 판다를 보러 갈까요.?"
하임이 씩 웃는다.
"... 뭐 그러던가-"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네요-"
"빨리 가기나 해-"
지혁의 채근에 하임은 즐겁게 휠체어를 밀며 래서 판다 쪽으로 다가간다-
오늘, 그래도 나오길 정말 잘한거 같다..... 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