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비서는 기대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기대서서
내가 아끼는 내 비싼, 자동차에 기대서서.........
"똑바로 서서- 기다리지? 왜 너도 다리에 문제있냐?"
강비서가 민망한듯 웃으며 말을 받는다.
"참- 작가님도 그런 농담을..-"
"이거나 받아줘-"
종이 봉투 안에 약이 가득하다. 뭔 약을 이렇게 많이... 밥 대신 진짜 약 먹을 요량이야 뭐야..
얘가 이러니 아프고 이러니 깡마르지... 더 어떻게 약을 먹어
쟤는 죽으면 썩지도 않을꺼야.. 약을 하도 많이 먹어서....
속으로 마지못해 궁시렁 거리면서....
강비서는 운전 하고 가면서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어차피 해야 할 이야기.. 하긴 해야하니까..
"저.. 이제 오늘이 마지막인건 아시죠? "
지혁은 한껏 인상을 찡그리며 약통 겉면에 쓰여진 복용법을 읽고있다.
"왜 , 너 죽어?"
한껏 관심도 없단 듯한 투다.
"그런말이 아닌거 아시잖아요- 저 내일은 출국해야 해요-.. 오늘 하루 시간도 겨우겨우 낸거라-"
"그래서 내가 어제 친히 가서 문제 해결했잖아-"
"해결 하신거.. 확실하세요?"
지혁은 한숨을 내쉬며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짙고 탐스런 속눈썹을 내리깐채- 말을 잇는다.
쟤는 뭔 말만하면 눈을 내리깔아대... 저게 멋있는걸 아는거지.. 그치..
강비서는 속으로만 씨근댄다.
"니가 하란얘기 얼추 다했어 그 여자도 그걸로 넘어 가겠노라고 했고.. 물론 부가 조건 하나가 달라붙었지만....."
강비서는 뒷 말까진 다 못듣고 하란 얘기를 얼추 다 했다는 그 말에 기절 초풍하게 놀란다....
"..다... 다요?"
얘 요즘 뭐야.. 접신했나? 다른 자아가 형성되고 만 거야? 그런거야? 지 입으로 장하민양 얘기를 ...
털었다고? 맙소사...
강비서의 다이나믹한 안색 변화에 지혁은 눈치 챈듯 한마디 한다
" 하민이 얘긴 안했어- 그러니까 뭔 일인지 그렇게 머리 안 굴려도 돼......"
"쩝.. 진짜요? 하임씨가 납득하시던가요? 그 여자분이 아주 완강..."
"완강하지- 완고하고 빡빡하고- 근데 의외로 헛점 많은 여자야- 의외로.."
강비서가 왠지 재밌어하는 투로 말을 붙여 잇는다
"어떤 허점이요? 어떤???"
지혁은 그제야 고갤 들어 , 냉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 너 운전하고 있으면 도로에 눈 있어야 되는거 아니야?"
"후후 어쨌든.. - 장하임씨도 대단하네요- 어떻게 작가님 같은 분을 이정도까지 잠금 해제 하셨데요?
그 비법을 저도 좀 진작에.. 알았다면 저도 좀 수월했을텐데.."
"너를 차 밖으로 밀어서 잠.금.해.제. 하기 전에... 운전이나 해라. 제대로-"
"네..."
소심하게 입을 오므리고 강제로 눈을 도로에 붙인다. 어쩔수 없이,
"그럼 그 동안 밥은 안 거르실꺼죠?, 저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요-"
"보모냐-? 알아서 한다고 "
"알아서 하셔서 한밤에 응급실 가셨나요"
"운전이나 하라고 했다."
지혁은 혼자 하임을 떠올린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몰라도
충분히 까칠한 모래에 아름답게 쓸린 흔적이 있는 것 같은 여자다
그 여자가 아름답다는 게 아니라... 쓸린 흔적이 아름답다고-
....
자기 생각에도 변명하는 멍청한 버릇은 없었는데 이 여자를 만나고 나선 내 대답에 늘 내가
변명을 한다. 못난 놈 처럼-
하긴 원래도 예쁜놈은 아니었잖아. 내가.
차는 집에 다다르고- 강비서는 슬쩍 묻는다..
"제가 지금 급하게 회사에 가볼 일이 있는데- 미팅은 두분만 하셔도 되죠? 저녁때에 다시 올게요-"
의외로 지혁은 순순히 수긍한다.
"그래 무슨 말 인지 알았어- 니 차로 갈꺼지?"
"그럼요 그럴려고 여기 세워 뒀죠"
"그래 그럼 -"
"..저.. 사모님한테 전화는 드리셨어요?"
....
"니가 어제 문자한 시간을 생각해 봐 , 어제 나 12시 다 되서 이야기 끝났어"
지혁이 조용히 답하고 , 진환이 다시 말을 한다.
"사모님... 손도 다치셨데요- 연락 하셔야 되지 않을까요?"
지혁이 깜짝 놀라고 큰 소리로 되 묻는다
"뭐?? 손은 왜?"
.....
"접시 치우다가 그러셨다던데... 이번엔 좀 심각하셨나 봐요.. 사모님은 늘 작가님 뿐이시잖아요..
아시는 만큼.... 배려해주셔야 할 분은 ... 작가님이세요.. 이건 저 살자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작가님을 위한 부탁이에요"
"...."
지혁은 대답이 없다. 눈 밑에 그나마 좀 돌았던 생기도 다시 휑하니 사라지고 없다.
그러곤 말도 대답도 없이 그냥 집으로 들어가버린다. 아오 저 성미.....
중간에 끼여서 힘든건 난데 ..... 하기사 , 좋은 소식은 아니니까..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나 오지.. 난 까치보다 못한 소식통이라니까.. 그 사실이 뭐 나인들 반갑겠는가..
강비서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차로 올라탄다.
-
지혁은 옷을 갈아입으며 말없이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상할 정도로 늘 자신을 예뻐한 어머니.. 하민이를 잃었을때 자신보다 더 많이 우신 어머니
재활 할때마다 지켜보시며 눈이 부어 터지도록 우신 어머니....
방에 붙어있는.. 어제 나의 이성을 찾도록 혁혁한 공을 세운 큰 거울을 바라본다.
김박사는 내가 어머니를 빼 닮았다고 말했다. 글쎄, 나이가 들었다해도
어머니는 나 보다도 훨씬 더- 훨씬 더 많이
고우신 분이다.
그래 안다 내가 고생 안 시켜드렸음 더 그러실텐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언제나 처참하다. 마른건 둘째치고- 하민이가 늘 좋아했던
매끈한 쇄골은 사고때 왼쪽이 박살났다. 그래서 큼지막한 흉터가 남았다. 철심을 박아야 해서 그랬다지만
은빛 지네가 붙은듯 큼지막 하게 흉터가 남았다.
그래도 쇄골은 아프지 않다.
바보같이도 첨 수술 끝나고 쇄골 보고는 , 아.. 하민이가 싫어하겠다.. 그랬다. 유치하게도
수술은 하나만 한게 아니었지만.. 옷 갈아입을 때 마다
온 몸에 있는 수술 흔적들은 날 늘 회한에 차게한다.
후회 미련 그리고 자기증오
내 흉터위로 얇은 니트를 덮어 가린 뒤 전화기를 들어 망설인다. 어머니 번호를 누르자
어머니는 전화를 꺼 두셨다. 낭랑한 목소리의 전화가 꺼져있다는 안내 음성에
별장으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청평입니다-"
"네 .. 어머니 계세요?"
한참만에야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아주 놀란듯이 되 묻는다.
"...... 작은 도련님이세요?"
"네"
도련님이라.. 오랫만에 듣는 내 오랜 이름이네
"지혁이니?"
바로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신다.
"전화 꺼 두셨던데요"
"... 그래 그랬어 미안하다. 니 전화 올 꺼라고.. 생각 못했구나 "
"어머니가 왜 미안하세요- 손 다치셨다면서요. "
지혁의 어머니는 얕은 한숨을 쉬며 그 소식에 맘을 다쳤을 아들을 더 걱정한다.
"살짝... 베인거야 아무렇지도 않아- 들었을줄은 몰랐구나.. 미안해.."
"..... 저 때문인거 알지만. 아버진 어머니 많이 사랑하시는거..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오직 어머니 뿐 이신거"
어머니가 또 눈물 어린 목소리로 대답하실꺼라 예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완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런데 미안하게도 나는 네 아버지보다도 내 아들이 더 귀한, 나쁜 여자라서- 그 마음 헤아리기엔 안되겠구나
난 내 손 다친거 보다 니가 이렇게 전화한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싶은데? 너랑 이렇게라도 대화한게...
대체 얼마만이니."
그렇다. 난 어머니를 생각보다 많이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한번 맘을 정하신 일에는 번복이 없으시다
꾸준히 완고하시다. 이번엔 아버지가, 아무래도 용서받긴 그르신거같다. 아무래도...
그보다 더 슬픈건 나와 대화하는게.. 다친거 보다 더 중하시다는 이제 애처로운 지경에 처한
나의 어머니다.
마음께가 아릿하게 , 내가 그저 아프게만 하는 나의 어머니
"... 이런 대화는 , 어머니도 나도- ......."
나의 한숨에 어머니가 먼저 대답하신다.
"... 유익한 대화는 아니란 말이구나? .. 알아 - 아는데.... 그래도 좋구나, 니 목소리-"
........
"다음엔 꼭 밥 , 먹고 나올게요- ... 어머니가 먼저- 져 주세요. 어머니
아버지에겐- 어머니가....... 전부시니까요- 제가 아니라요. "
아들의 간절한- 그러면서도 또 생채기 난 목소리에.. 지혁의 어머니는 어쩔수 없었음에도
더는 참을수 없었음에도...
또 목이 꽉 , 막힌듯 슬픔이 엄습한다. 그렇게.. 또 미안해진다. 그렇게.
아들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눈에 드는 풍경은 아름다운데도-
... 여전히 해결 된것 하나 없이- 그렇게 ...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
지혁은 전화를 끊고 말없이 커피를 내렸다. 아침 나절에 커피를 미처 마시지 못했단 생각이 들어-
커피를 내려 방에 있는 창가에 닿자- .. 하임이 보인다.
쾌활하게 달리고 있다. 생각보다- 제대로 옷을 갖추고.... 체력, 걱정한 거보다 좋은것 같다. 깡도 제법 있는거 같고-
피식 웃고만다. 어쩔수 없이- 그냥 쾌활한 여자로군
어제 그런 일 당했으면, 오늘 아침은 운동 안하겠다고 강짜 부릴만도 한데..
핸드폰을 들어- 머리를 말리고 오라고- 괜한 노파심에 문자를 한다.
왜 이렇게 신경을 쓰는건지.. 그 여자가 감기 걸리면.....
그러면......
책이 늦어지니까.... 그래서야... 그래서..
문자로 - 언제 만날지를 보내자 마자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린다. 자신도 모르게
아까의 통화로 고인 맘속의 핏물이... 사라지는 것 처럼- 따뜻하다.
그게 손에 들린 커피때문인지... 하임때문인지....
지혁은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그렇게 따뜻해졌다. 맘속 서리낀- 그 한 구석이
서서히 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