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 결국 보러 온 래서 판다 관 앞-
하임은 되도록 가까이 휠체어를 붙여 주고선 옆에서 스케치를 시작했다.
이 귀여운 동물들은 마침 , 한창 놀이 시간인지 자기들 끼리 장난을 치고 옆의 아이는 옆에서 바나나같은 과일을 먹고있다.
지혁은 선글라스 너머에서 눈을 빛내며 속으로 생각한다.
아.. 귀엽긴 진짜 귀엽네....
옆 친구 꼬리를 잡고는 데굴데굴 거리는 뽕질뽕질한 털뭉치들이라니...
가족 중에도 동물을 좋아하는건 자신 뿐이었다. 혼자 살면서는 키울수도 있었겠지만-..
자신이 또 다른 생명을 간수하기엔 자신이 너무 없었다. 혼자를 지탱할 힘도 없었기에
그저 자신이 보고 즐겁기 위해 키우는건 지혁이 생각하기엔 이기심이었다.
생명도 같이 행복할 자격이 있는데 말이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게 정답일것이다.
옆에 서있던 꼬마들이 귀여워 하며 꺅꺅 거린다.
하임은 서서 노트를 잡은채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있다. 집중한 듯 이쪽을 쳐다 보지도 않는다.
저 여자의 집중하는 모습은 생각외로- 꽤 멋있다.
오늘 종일 자신이 가져온 스케치북의 반을 넘게- 그림으로만 꽉 채웠다.
그녀의 손목엔 흑연이 묻어 까맣다. 여전히 모르는 것 같지만..
지혁은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본다- 꽤나 일찍 출발했는데 이젠 벌써 12시가 가까워져 있다.
한낮의 태양은 하임의 이마께에 있는 잔 머리칼을 살짝 적신다.
자신과 한 없이 동 떨어져 있다 생각했던 이런 유원지에 와 있으니
지혁은 왠지 현실감이 없달까- 뿌연 안개가 낀 마냥 어색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이렇게 부드럽게 흐르는 오후를 만난게-... 얼마만이던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때에 하임은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더 볼꺼에요? 멍하니 한참을 보네-"
지혁이 낮은 소리로 퉁명스레 대답했다.
"당신이 스케치를 오래 한 거거든?"
"아.. 그랬나요? 귀여우니까 아무래도 좀 흥이 나네요- 그리는 것도 즐겁고- 지루했으면 미안해요-
것보다 벌써 열두시네요- 어디 앉아서 점심이라도 좀 먹죠?"
".... 정말 먹는걸 즐기는군"
하임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한다
"당신이 먹는걸 유난히 안 즐기기도 하거든요? 잔말 말고!! 갔다가 아직 가야 할 때가 많아요-"
"아직도?..."
지혁의 목소리는 오묘하다. 싫은것 같기도- 아닌거 같기도 하다.
"그러게요- 손을 아무리 빨리 놀려도 이렇게 시간이 모자랄줄은 몰랐는데- ... 힘들어요?"
지혁은 대답이 없다.
"힘드냐구요?"
"아니.... 뭐 나야 앉아 있었던게 다인데 뭐가-"
"....."
하임은 그 뒤론 말 없이 탁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의자를 치운뒤 지혁이 앉을수 있도록 밀어 준다.
그러곤 사 온 샌드위치를 꺼내고 근처에서 파는 음료를 뽑아온다. 밴딩머신에서 음료수가 떨어지는 소리가
자못 청량하게 들린다.
"당신은 다른 음료 싫어할거 같아서- 물 뽑아 왔어요-"
"....."
내가 그만큼이나 까탈스럽게 굴었던가? 사실 물 아니면 좀 싫을것 같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파악을 당하는데
좀처럼 익숙하질 않다.
이여자가 눈치가 빠른건지 아니면 내가 그정도로 까탈스럽게 굴어 알아서 행동하게 한 건지..
"손 안닦나?"
하임은 찌푸리며 물티슈를 건넨다
"그 이야기 할 참이었어요- 진짜 2분을 못 기다리네요-"
지혁은 말 없이 그것을 받아 손을 닦는다. 손등위의 상처는 피해서
하임은 샌드위치를 밀어 내민다.
"먹어요- 1인당 3조각은 먹어야 되니까 못 먹겠단 소리 하지 말고요-"
이 여자는 아까부터 자꾸 나를 애 다루듯이 한다.
지혁은 말 없이 샌드위치를 들고 오물거린다.
"맛- 어때요? 잘 나가는거 달라 그랬는데-"
지혁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면서 그는 최대한 입을 오무리고 묻는다.
"버서드렀어?"
"네?"
지혁이 입에 우물거리며 물어서 못알아 듣겠다. 하임이 어리둥절 해 하자 지혁은 께름칙한 표정으로 꿀꺽 삼킨뒤 다시 묻는다.
"버섯 들었냐고-"
하임은 자기 몫의 샌드위치를 살짝 뒤집어 본다- 볶은 버섯이 들어가 있다.
"아- 그렇네요- 있네요-"
지혁은 인상을 찡그린다.
"버섯 안 먹는데......."
지혁이 또 투덜댄다. 아무거나 상관 없대놓고-
"버섯을 왜 안먹어요? 맛있고 -.... 향기도 좋은데?"
그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가죽제품 냄새 안나? 벨트냄새 같은거 나.. 향이 싫어-"
"진짜 까다로운 남자네-"
하임의 새치름한 표정에 지혁은 어쩔수 없이 샌드위치를 씹는다.
"나오기 싫었지만- 나오니 날씨 좋고- 좋지 않아요?"
"......"
그는 대답하지 않지만 얼굴께에 닿는 바람을 내심 즐기고 있는거 같다.
"그러게 당신을 좀 더 이렇게 알았더라면-... 이해하기 쉬웠을꺼 같아요-"
"무슨 말이지?"
하임은 말하기 어렵다. 뭐라고 이야기 해야
이 복잡한 감정을 한마디로 설명할수 있을까..
"당신이 어떤일이 있었는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당연히 잘 모르지만-.. 당신이 안으로 이렇게 파고드는 사이에
당신을 이렇게- 좀 더 끄집어 내서 딱 봤었다면은.... 그렇게 싫진 않았을꺼 같아요-"
지혁은 피식하고 웃는다.
"그림 특화된 사람인건 알겠지만 말 한번 조리없이 하는군- 대충 무슨 뜻인진 알겠지만 말야-"
"..... 그러게요 내가 말하면서도 이게 무슨 소린지... 그렇네요-"
산들바람이 불어 하임의 머리를 넘겨준다. 지혁은 그 모습에 기억의 파편이 부서지는거 같은 느낌이다.
이 여자와는 다르면서도 닮았다.
닮으면서도 달랐다. 그랬다.
"당신은 내가 왜 그리도 궁금하지?"
지혁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나른한듯한 목소리-
그런데 질문은 의외였다. 이야기를 피하는건 늘 지혁이었지
이야기의 말문을 여는건 그가 할만한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글쎄요-.. 당신과 엮이면 엮일수록 당신은 궁금한 점만 늘어나는 사람이었는걸요- 언제나요-"
하임은 조심스레 속 마음을 드러낸다. 자기가 알고 싶어 할때마다 지혁이 드러내는 이상한 분노를
걱정하면서..
"그럼 당신은 여전히 내게 궁금한것이 많겠군-.."
"그렇죠- ....... 제가 원래도 궁금한걸 못참아서.."
하임의 민망해 하는 표정에 지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그럼 잠깐 시간줄게 - 물어봐-"
....
"정말이요?"
"그래."
지혁의 눈동자는 이미 눈 앞의 자신이 아니라 너머의 그 어떤것을 보고있는것만 같다.
그는 낮은 소리로 덧 붙인다.
"그래도 다 대답 해 줄순 없을것 같아- 나의 명예만이 상관있는건 아니니까.
나야 당장의 일 따윈- 어찌되도 상관없어- 어찌해도 달라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도 하지,
그래도 지난 4년간, 아니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처럼 대화를 많이 하게 한 사람은 .... 당신뿐이군-"
그는 피식하고 웃는다. 언젠가 본 웃음처럼 방어를 다 내린 웃음은 아니다
하지만 전 보다는 조금은 솔직하고 조금은 원래 모습 다울것 같다.
".... 그랬나요? 당신을 보면 알겠네요- 사람이 절로 꼬이는 타입이니.. 당신이 밀어내기엔 한계가 있을테고..
그럼 당신이 도망갔다는 이야기겠네요..."
하임의 투명한 눈빛에 지혁은 이젠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한다.
"뭐, 피한거일수도 도망일수도... 좋을데로 생각해. 둘다 별반 다르진 않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이야길 할 맘이 났어요?"
하임의 질문에 지혁은 맘 먹은 대로 대답한다.
"당신과 일을 잘 끝내려면 결국 입 다물고 계속 가는건 안 될것 같더라고- ....
좋게말해 조금 친한 직장동료인셈 치지."
친한 직장 동료라.... 하임은 그 냉정하게 긋는 미묘한 선에 조금은 서운한 감정이 일지만 그냥 넘기기로 맘을 먹는다.
이 사람과 나와의 간격은... 굳이 이 사람이 지키질 않아도 나도 지켜야만 하는 선이었다.
선 위가 아니라 선 아래로 내려 서면... 더는 흔들려 휘청이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우리 둘은 선 위에서 쓸데없는 싸움을 생각보다 길게도 이어왔으니까..
" 그렇게 씩이나 신분 상승을 시켜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하임은 슬쩍 비꼬면서 이야기한다. 지혁은 비꼬는 걸 가장 나쁜 유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 그럼 질문은 적당히 하도록 해-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 우선- 왜 작가 생활을 해요? 굳이 돈 안벌어도 먹고 살것 같던데."
지혁은 생각보다 어이없는 질문이다.. 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시시한 질문이군...
"그 돈 받으면 해야 되는 일이 많으니까- 그리고 내가 벌 능력이 없는것도 아니고...
글쓰는걸 워낙에... 좋아하니까- 그걸로 돈도 벌고-..."
거짓말이 미묘하게 섞인 대답이기도 하다. 글은 하민이때문에 더 독한 맘 먹고 쓰기 시작한 거니까.
누워있는 하민이와 남은 처절한 나.
그 사이를 지탱할 힘을 준건- 시간도 공간도, 고통도 잊을수 있게 한 가장 큰 힘은
글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럼.... 지금은 자력으로 먹고 살아요?"
호구조사 수준이군..
지혁은 이런 제안을 한걸 슬슬 후회하게 된다.
"거의?.... 강비서 돈은 다른데서 나오지만."
"....... 다친건 사고 때문이에요? 싹 다?"
지혁이 이 대목에서 발끈할거라 생각했는데 지혁은 조금은 방어를 내려 놓은듯 보인다.
그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할 뿐이다.
"사고 때문도 있었고- 수술 자국도 있고."
"......? 수술이요?"
"... 다리가 박살 났었어- 안 들었나? 쇄골 뼈도 부서졌었고- 여러군대 고장이 나서- 살려면 수술을 해야 했지.
그러니 다리에 난 흉터도 있고- 고치느라 열었던 흉터도 있어-... 너무 많은 흉터들이 있어서 뭘 묻는건지 모르겠군.
다리는 내 뼈보다, 인공적인 구조물이 더 많이 들어있지. "
.............
"그럼 ... 여자친구랑은 어떻게 됐어요-?"
이게 지뢰였나 보다. 궁금해서 질문했는데. 지혁의 눈빛이 살기를 띈다.
".... 그건 대답 안 할래, 나보단 그 친구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해야 하니까. "
지혁은 대답하지 않겠단 의사를 분명히 드러낸다. 키 포인트 질문은 절대 대답하지 않는군...
"............. 그..그렇다면야.."
"........ "
"그럼- 부모님은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때 반대 안 하셨어요?"
반대 ? 왜 안했겠는가.
차마 할수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넘어가야 했을 뿐이지.
"....... 난 둘째거든. 어차피 일 할 사람도 있고- ... 세습이라니 좀 웃기지만 말야- .. 그래도 그럴만한 능력 있는 사람이야 형은."
"왜죠? 그냥.. 형이라서.. 아니에요?"
"요즘 세상은 능력에 따른 사회잖아- 어쨌든 그냥 물려주면 누가 납득하겠어-... 그러니 독하게 공부하고 - 독하게 .."
밀어내지.. 란 말을 이으려다 지혁은 말을 삼킨다.
"어쨌든 열심히 하니까. 나까진 필요 없지."
하임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음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럼 다리는 늘 불편해요?"
지혁은 낮은 한숨과 함께- 그동안 그토록 자신을 괴롭게 했던 치부를
그냥 되도록이면 덤덤하게.. 설명한다.
".... PTSD는 주로 감정적인 불편함에서 동반되- 나의 경우가 특별한거지. 환영 환청- 그런게 아니라 오히려 다리에
그게 나타나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 검사해도 다 아물었다는 이야기만 하지 다른 증상이 있는게 아니니까..
PTSD 판단을 받은거지.. 몇시간을 걷는다거나.. 뛴다거나... 그럼 좀 불편할수는 있지 완전하진 않으니까..
그래도 뭐 어느정도는 괜찮아. "
하임은 이야기를 듣더니 갑자기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 그럼 이제 쓸데없는 질문 하나 할게요- 혹시 성형수술도 받았어요?"
그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또 피식하고 웃는다.
"아니. 이건 다 내 얼굴. 다리랑 몇가지 뼈는 온전히 이제 내것일순 없지만 얼굴은 내꺼야- 원래 내 얼굴."
"그래요?"
이러면 안되지만 살짝이라도- 성형 수술이기를 바랬다. 좀 억울하기도 하니까- 남자가 여자보다 이쁜 얼굴을 타고나다니...
그는 오만한 얼굴로 하임의 표정을 간파한다.
그러곤 오만하게 미소짓는다.
"어머니 닮아서, 그래"
"어머니가 미인이신가 보네요-"
어머니란 단어에 다시 무거운 기억이 몰려오지만
지혁은 티 안나게 그저 넘긴다.
"칭찬으로 듣지."
그는 다시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았다. 아직도 샌드위치는 두개나 남았건만. 식사는 이미 끝낸 듯 했다.
"다 먹은 거에요?"
그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응"
"배... 안 고파요? 겨우 하나 먹어놓곤?"
"천천히 먹어- 내가 원래 많이 먹질 않아서-..."
그를 앞에 두고 그토록 원하던 질문을 하고 있는데도, 질문은 촛점을 자꾸 빗나가서 영 답답하다.
사실은 장하민- 이라는 그 여자가 궁금하다. 어떤 여자인지 어떤 사이인지...
왜 그토록 그 여자를 숨기는지
이런걸 궁금해 하면 이 남자의 지금의 약간 호의적인 태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것이다.
하임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지혁이 자신을 부르고 있는것을 깨달았다.
지혁은 하임을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당신도 그럼 묻는말에 대답 좀 해 줄건가? "
".... 뭘요?"
"........ 이 일을 하겠다고 수락한, 결정적인 이유가 뭐지?"
그의 까만 눈에 빛이 반사되어 일렁였다.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또 무심코 설레임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