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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히어로 테일즈
작가 : 두번째준돌
작품등록일 : 2018.11.1

마법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헤쳐 나가며 성장하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 (누구나 부담없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장대한 시리즈물로 기획된 '히어로 테일즈'는 마법세계, 특히 블루마법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현실감 있게 담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영웅(Hero)이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무적의 존재도 완전무결한 신도 아닌 그들은, 그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일뿐입니다.

 
2 - 2화. 양호실
작성일 : 18-11-08 00:58     조회 : 24     추천 : 0     분량 : 8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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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양호실

 

 

 

 다음날인 17일 목요일 아침.

 

 흑여우 사건을 해결한 춘회파 소년들이 메이드가 운전하는 검정 리무진을 타고 폼나게 등교한다.

 연예인 군단을 뺨치는 그들의 일상 복귀 때문에 학교 후문은 한동안 백화점 할인행사를 방불케 하는 일대 혼란을 겪는다.

 

 한편 모델 삘 나는 소년들의 등 뒤로 평범한 외모의 남학생과 자그마하고 예쁜 검은 생머리 여학생이 손을 꼭 붙잡은 채 따라오고 있다.

 

 둘은 주변 학생들의 열광스런 반응과 자신들을 향한 의구심 가득한 시선들

 ("저 비루해 보이는 남학생은 누구지?", "어떻게 저런 녀석이 춘회파와 함께 리무진을 타고 온 거야?" "우와, 여자애 귀엽다.", "우리학교 학생 중에 저런 여학생이 있었던가?" 등등)

 따윈 무시한 채, 행복한 얼굴로 학교 안의 서늘한 가을공기를 함께 즐긴다.

 

 잠시 후 학교 건물이 3군데로 나뉘는 커다란 느티나무 밑 휴게소 앞에 도착한 춘회파 일당들은 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각자 수업을 들으러 자기네 반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붉은머리의 리더인 춘회와 착한 힐러 케이타, 흑여우의 공주인 아라와 충직한 용사 촉호 이 넷은 같은 장소로 향한다.

 그들은 본관 1구역 1층에 있는 양호실 앞에서 멈춰선다.

 케이타가 적십자 문양이 그려진 낡은 미닫이식 나무문을 옆으로 밀어 연다.

 

 <드르르륵>

 

 양호실 안으로 발을 내딛자 낡은 출입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얗고 깨끗한 공간이 펼쳐진다.

 

 본관 1구역 1층을 거의 3분의 2 정도나 차지하는 거대한 블루 마법고의 양호실은, '양호실'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침대 두, 세 개가 겨우 들어선 작고 아담한 이미지와는 달리 흡사 종합병원을 연상시키는 장비와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그들이 양호실에 전부 들어오자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카운터에서 친절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본다.

 

 카운터에는 키가 흑여우 소녀만 한 웬 귀여운 여자애 하나가 순정만화 여주인공을 연상시키는 큼직한 눈망울을 크게 뜨고 방금 들어온 일행들을 향해 미소 짓고 있다.

 살짝 구불거리는 분홍빛이 감도는 탐스러운 금발 때문에 그녀의 외모는 더욱 더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어, 케이타씨였네요?"

 

 여자애가 일행 가운데 녹색머리 청년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아는 체한다.

 케이타도 반갑게 손을 흔들며 대꾸한다.

 

 "안녕 규리. 내 친구들이 여기 볼 일이 있어서 같이 데리고 왔어."

 

 "친구분들이셨군요. 안녕하세요! 전 케이타씨와 함께 힐러 수업을 들었던 '규리 발렌타인'이라고 해요."

 

 규리란 이름의 여자애가 토실토실한 볼에 보조개가 파이도록 방긋 웃으며 케이타를 따라 들어온 일행들에게 인사한다.

 천사 같은 순백의 미소를 접한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헤벌쭉' 웃으며 규리에게 고개를 숙여 답인사한다.

 

 규리가 일행을 한 명 한 명 훑어보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친구분들은 무슨 일로... 아, 두 분은 다치셨군요!"

 

 그녀가 각각 왼팔과 오른팔에 두껍게 붕대를 두른 춘회와 촉호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뜬다.

 규리는 카운터에서 얼른 달려 나와 두 사람 앞에 선 다음, 호들갑스럽게 군다.

 

 "어딜 어떻게 다치신 거예요? 지금 많이 아픈가요? 어머 어떡해...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하려나?"

 

 "걱정 마 규리. 기본적인 치료는 이미 내가 다 했어. 좀 더 완벽하게 회복시키려고 온 것뿐이야."

 

 케이타가 목욕타월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규리를 진정시킨다.

 그리고는 촉호의 옆에서 못마땅한 얼굴로 서 있는 완전인화 상태의 흑여우, 아라를 가리키며 덧붙인다.

 

 "그리고 이 아이가 양호실에서 배우고 일할 수 있도록 양호선생님께 부탁드리러 왔지."

 

 "아, 그렇군요. 그럼 이 분도 힐러 지망생이신 거네요."

 

 규리가 흑여우 소녀를 향해 미소 짓는다.

 그러나 아라는 방금 전 규리가 자신의 용사인 촉호에게 치근덕거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뚱한 얼굴로 눈싸움을 할 뿐이다.

 

 "이, 이분은 왠지 기분이 안 좋으신가 봐요...

 아무튼 문숙희 선생님 모시고 올 테니까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약품창고에 계시려나..."

 

 규리가 부산스레 혼잣말을 하며 양호실 안쪽 어딘가로 종종거리며 걸어가 버린다.

 

 카운터 앞에 남겨진 그들은 규리가 양호선생님을 데려오길 기다리며 잡담을 나눈다.

 

 "케이타 선배, 방금 전 여자앤 누구에요?"

 

 "왜 춘회? 관심 있니?"

 

 "아뇨 그냥. 좀 귀엽게 생겨서요. 선배야말로 같이 수업도 들었다면서... 혹시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녜요? 아까 보니까 되게 친하던데."

 

 "그런 거 아냐. 같은 학년 친구일 뿐인 걸."

 

 케이타가 손사래를 치며 춘회의 추궁을 부정한다.

 

 춘회와 아라, 그리고 촉호는 방금 전 규리라는 여자애가 케이타와 같은 3학년이란 사실에 경악한다.

 

 "에엥? 1학년 아니었어요? 그 키에? 그 얼굴로?"

 

 "뭐야. 나랑 비슷한 또래인 줄 알았는데..."

 

 춘회와 아라가 작고 앙증맞은 규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한다.

 하지만 촉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하긴 그 바스트와 볼륨감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지..."

 

 그는 잠깐 자기 옆의 흑여우 소녀를 훑어본다.

 레이더같이 날카롭게 뜬 그의 두 눈이 소녀의 빈약한 가슴께에 머문다.

 다음 순간 촉호의 입에서 한숨 비슷한 것이 흘러나온다.

 격분하는 흑여우 소녀.

 

 "너 정말!"

 

 <꽈앙>

 

 소녀가 성난 흑염소처럼 달려들어 촉호의 명치를 쪼그만한 머리로 들이받아 버린다.

 

 "케핵!"

 

 "여자들 가슴이나 빤히 들여다보는 저질, 변태!"

 

 숨이 막혀 바닥을 뒹구는 촉호를 향해 흑여우 소녀가 비난의 말을 마구 쏟아붓는다.

 춘회와 케이타는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킬킬거리고 웃는다.

 

 "아놔 촉호 킥킥. 근데 케이타 선배, 아라가 학기 중 양호실에서 지낼 수 있도록 문숙희 선생님이 허락해 주실까요?"

 

 "내가 잘 말씀드릴게. 그리고 나중에 교장실에서 정식으로 아라의 편입절차를 밟을 테니까 괜찮아."

 

 "흐음. 교장 아저씨야 워낙 우리랑 친하고 말도 잘 통하는 사람이라 괜찮지만, 문숙희 쌤은 좀... 깐깐하게 굴지 않을까요?"

 

 춘회가 팔짱을 낀 채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케이타가 웃으면서 대답하려는 순간, 그들의 뒤에서 누군가가 먼저 딱딱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누가 깐깐하게 군다는 거지?"

 

 "헉! 문숙희 쌤?!"

 

 춘회가 당황해하며 목소리의 주인공 쪽을 돌아본다.

 타이트하게 줄인 흰색 간호사 복장을 한 검은색 단발머리 여성이 규리와 함께 걸어오고 있다.

 

 한쪽 팔에 환자차트를 낀 이 독수리 같은 눈매의 여성은 블루 마법고의 양호교사인 문숙희라고 한다.

 안내 데스크 근처 벽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수많은 상장들과 선반 위의 트로피들은 이 30살 전후의 젊은 양호교사가 동부 종합의료센터 출신의 수석 힐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화난 것처럼 인상만 쓰지 않으면 꽤나 예쁜 얼굴일 것 같은 그녀가 평소보다 더 화가 난 듯한 얼굴로 일행에게 말한다.

 

 "다친 놈 둘부터 치료하자. 이쪽 침대에 앉아봐."

 

 문숙희가 카운터 옆에 있는 초진환자용 임시침대를 가리키며, 팔에 붕대를 감은 두 소년에게 지시한다.

 

 춘회는 약간 멋쩍은 표정으로 침대 귀퉁이에 걸터앉고, 흑여우 소녀에게 얻어맞느라 바닥에 엎어져 있던 촉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침대 위에 탈진한 듯 털썩 주저앉는다.

 

 양호교사는 카운터에 차트를 던져둔 뒤, 귀찮은 듯 머리를 뒤로 쓸어 젖히며 환자들에게 걸어간다.

 

 "우선 너부터 좀 보자, 팔 이리 내."

 

 양호교사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붉은머리 미소년을 향해 지시한다.

 춘회가 다친 팔을 내밀자 그녀는 석고상 같은 얼굴을 한 채로 팔을 받아 든다.

 능숙한 솜씨로 두루마리처럼 둘둘 감긴 붕대를 풀어내며 그녀가 춘회의 얼굴을 슬쩍 훔쳐본다.

 

 "꽤나 오랜만에 왔네. 교내랭킹 1위의 춘회 씨."

 

 마지막 호칭을 비꼬듯이 강한 어조로 발음하는 양호교사. 그녀의 머릿속에 지난해 거의 매일같이 양호실을 들락거리던 겁 없는 붉은머리 1학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허구한 날 싸우다가 다친 상처를 이끌고 와, 양호실 비품을 있는 대로 거덜 내는 주제에 소독약이 따갑다며 징징대던 어린애...

 그랬던 녀석이 어느 순간 블루마법고 최강의 학생이 되어 버렸으니 정말 웃기는 노릇이다.

 

 "2학년 되고부터는 통 안 오더니, 근데 대체 누구랑 싸웠길래 이렇게 다친 거야? 네놈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 정도면 보통 실력이 아닐 텐데..."

 

 붕대를 다 풀어낸 양호교사는 춘회의 환부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부러진 뼈는 잘 맞춰져 있었지만 타격 당한 부위에 손바닥만 한 피멍이 마치 매직으로 칠한 것처럼 시커멓게 들어있다.

 

 "그냥 좀 넘어졌어요."

 

 "개소리."

 

 "우아악!"

 

 다쳤을 때 학생들이 쓰는 전형적인 거짓말을 들은 양호교사가 춘회의 팔에 물컹한 흰색 로션같은 걸 듬뿍 발라 문지른다. 화풀이를 하는 듯한 문숙희의 거친 손길에 춘회의 고통스런 비명이 이어진다.

 

 마침내 불도저 같은 양호교사의 마사지가 멈추자 춘회가 눈물을 글썽이며 불평을 한다.

 

 "아, 진짜 아프네. 살살해 주면 어디가 덧나요?"

 

 "시끄러, 팔이나 한번 움직여 봐."

 

 "어? 하나도 안 아프네, 헐... 진짜 신기해."

 

 춘회가 왼팔을 빙글빙글 돌려도 보고, 아령들 듯 폈다 당겼다 해봤는데도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자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신기한 솜씨를 가진 양호교사는 침대 밑 서랍에서 작은 알약 몇 개를 꺼내 춘회에게 건네준다.

 

 "이건 심혈관 약이야. 맥박도 좀 지쳐있는 상태야. 약 먹고 저쪽 침대방 가서 누워있어. 너는 워낙 회복력이 좋아서 한숨 푹 자면 나아질 거다."

 

 "히히, 고마워요 숙희 쌤~"

 

 장난꾸러기 같은 윙크를 날린 뒤 주욱 이어진 침대방들 중 하나로 들어가는 춘회.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규리가 밝은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한다.

 

 "이야, 정말 잘생겼어요 춘회씨는. 게다가 우리학교에서 제일로 강하다죠?"

 

 "흥. 강하기는... 맨날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는 꼬마 놈일 뿐이지..."

 

 양호 선생이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무뚝뚝한 목소리였지만 춘회가 잘생겼다는 말은 굳이 부정하진 않는다.

 

 그녀는 곧이어 다음 환자인 촉호를 향해 몸을 돌린다.

 

 "자, 다음은 네 차례다."

 

 "네."

 

 "근데 넌 못 보던 얼굴인데 누구지?"

 

 문숙희가 촉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그리고는 오른팔에 감긴 붕대를 역시 빠른 속도로 푼다.

 

 그녀의 질문엔 케이타가 대신 대답한다.

 

 "새로 들어온 춘회파 멤버인 히로 촉호에요. 1학년이죠."

 

 "흐음. 그렇구나. 근데 얘는 전투원이 아닌가 보네, 체력도 마나량도 너희들 보다... 아니, 보통 애들보다 적어 보이니까 말야."

 

 "후훗. 그렇게 보여도 심지가 굳은 녀석이에요. 앞으로 훨씬 강해질 거랍니다."

 

 촉호는 케이타가 자신을 인정해주는 말을 하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다음 순간 붕대를 벗겨낸 자신의 맨 팔을 마주하고는 머리털이 쭈뼛 서버린다.

 

 "꺄악!"

 

 규리가 촉호의 팔을 가리키며 비명을 지른다. 그녀의 큼지막한 눈동자가 마치 징그러운 곤충이라도 목격한 양 충격으로 흔들린다.

 

 "흐음... 엄청난 상처인걸. 아니, 지금은 나았으니까 흉터라고 해야 되나?"

 

 문숙희가 촉호의 오른팔을 천천히 살펴보며 중얼거린다.

 

 촉호의 팔은 빨간색 거미줄 같은 자잘한 실금들로 가득했다.

 누군가 그의 팔을 수백, 수천 조각 짜리 퍼즐로 만든 다음 천천히 끼워 맞춰놓은 듯한 모양새로, 상처가 붙은 자리의 붉은 선만 제외하면 온전한 팔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붕대를 푼 모습을 본 건 촉호도 처음이었다.

 

 '내가 이런 상처를 입고 살아났단 말인가?'

 

 말없이 생각에 빠지는 촉호.

 그런데 어이없게도 부숴져서 없어져 버린 줄만 알았던 그의 갈색 '벌트로드의 건틀릿'이 그의 오른손에 멀쩡하게 끼워져 있다.

 

 "엥? 왜 이게 여깄는 거지?"

 

 촉호가 반대쪽 손으로 장갑을 잡아 당겨본다. 그러나 장갑은 꿰매 놓기라도 한 듯 딱 달라붙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안 빠지잖아? 왜 이래 이거?!"

 

 "손 좀 이리 줘 봐."

 

 장갑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촉호의 오른손을 양호교사 문숙희가 잽싸게 낚아챈다. 진맥하듯 촉호의 장갑 위를 꼼꼼히 짚어본 다음 그녀가 입을 뗀다.

 

 "장갑이 손에 붙었어."

 

 "빨리 빼주세요!"

 

 "안돼. 장갑이 네 몸의 일부가 되었어. 벌써 장갑에도 기와 마나가 통하고 있어.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이걸 빼는 건 피부를 벗겨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뭐, 뭐라구요?!"

 

 설명을 들은 촉호가 절규하듯 소리친다.

 

 이런 거무죽죽한 갈색가죽 장갑을 낀 채로 평생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잘못해서 힘을 너무 주면 자기 목숨이 날아가 버리는 그런 시한폭탄급 장갑을 말이다.

 게다가 혹시 영화관 같은 데서 흑여우 소녀랑 손을 잡을 때, 소녀가 거친 촉감이 싫다며 뿌리쳐 버리기라도 한다면?

 

 촉호가 목놓아 외친다.

 

 "그런 건 싫어어~!"

 

 "진정해 촉호."

 

 케이타가 다가와서 촉호의 어깨를 토닥여 준다.

 

 "아마도 망령과 했던 계약의 힘 때문에 장갑이 손에 붙은 것 같아. 그러니까 저주를 풀면 네 오른손도 다시 평소처럼 돌아올 거야."

 

 "하지만 이 장갑의 힘은 무지 위험하다구요!"

 

 "그치만 동시에 무척 유용한 무기가 될 수도 있지. 네 상처가 나으면 우리들은 널 훈련시켜 줄 거야. 훈련받은 뒤에는 장갑의 반동 때문에 신체가 날아가 버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게다가 넌 아라의 용사가 되었으니 힘이 필요하잖아. 안 그래?"

 

 케이타가 턱짓으로 흑여우 소녀를 슬쩍 가리키며 묻는다.

 

 그의 말이 맞았다. 촉호는 흑여우 소녀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다짐했었다. 소녀의 얼굴이 그 다짐을 다시 떠오르게 해준다.

 

 그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대답한다.

 

 "맞아요 케이타 선배. 전 아라의 용사에요. 이깟 갈색손 따위 아무것도 아녜요."

 

 한결 담담해진 촉호의 모습에 모두가 안심하며 미소 짓는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망령? 저주? 용사? 니들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니?"

 

 양호교사 문숙희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촉호와 케이타를 번갈아 쏘아본다. 날카로운 눈빛은 양호실 선생님이라기보단 30년 차 베테랑 학생주임에 가깝다.

 

 그녀가 이번에는 흑여우 소녀를 가리키며 촉호를 추궁한다.

 

 "게다가 설마 이 아이랑 용사의 계약을 맺은 거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미성년자들끼리 뭐 하는 짓이야?"

 

 "으으... 그, 그게..."

 

 문숙희의 몰아붙이는 기세에 눌려 대답도 잘 못 하는 촉호. 그런 촉호를 대신해서 후리후리한 케이타가 잽싸게 끼어들어 대답한다.

 

 "하하. 그건 제가 이따가 한꺼번에 설명해 드릴게요. 일단은 촉호의 상처부터 치료하죠 쌤."

 

 케이타가 바실리스크(눈을 마주치면 죽거나 마비되는 거대 뱀)도 울고 갈 치명적인 눈웃음을 덧붙인다. 그러자 석고상같던 문숙희의 마음도 살짝은 흔들린다.

 

 "조, 좋아. 그치만 이따 확실하게 설명해야 될 거야!"

 

 "물론이죠."

 

 양호교사의 치료는 순식간에 끝난다.

 그녀는 희뿌연 쌀뜨물 색깔이 나는 차가운 연고를 촉호의 오른팔에 얇게 펴 바른 다음, 춘회가 누워있는 침대방으로 그의 등을 떠밀어 넣는다.

 

 "오늘 하루는 여기서 있어라. 1시간에 한 번씩 약을 바르러 올 테니까 꼼짝 말고 누워있어. 알겠지?"

 

 그녀는 말을 끝내자마자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쾅' 닫아 버린다. 그리고는 방에 춘회와 촉호만을 남겨놓은 채 왔던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버린다.

 아마도 케이타와 아라한테 아까 전의 수상한 대화에 관해 물어보려는 것 같다.

 

 촉호가 문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뒤에서 리더가 부른다.

 

 "거기 있지 말고 아무 침대에나 와서 누워."

 

 "하지만..."

 

 "아, 괜찮으니까 그냥 쉬기나 해. 케이타 선배가 잘 말씀드릴 거야. 글구 양호선생님은 깐깐하고 무섭긴 해도 학생들 사정을 잘 봐주는 편이니까.

 하암~ 졸려... 아마 한숨 자고 일어나면 잘 해결돼 있을 거야."

 

 춘회가 창가 쪽 침대에 길게 누워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촉호는 마지못해 리더의 권유대로 옆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는 여전히 맘을 졸인 채 '참으로 태평한 사람도 다 있구나.' 라고 생각한다.

 

 문밖에서 여러 사람의 말소리가 아련히 새어 들어온다. 어느새 그의 옆에서 붉은머리의 태평천하 미소년이 코를 골기 시작한다. 촉호는 눈살을 찌푸린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병실 문이 활짝 열리면서 초록머리 청년과 흑여우 소녀가 밝은 표정으로 걸어 들어온다.

 

 과연 춘회의 말대로 일이 잘 해결되었다. 그들은 흑여우 소녀가 오늘부터 양호실에서 일을 도우면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모든 얘기를 들은 양호 선생님이 아라를 받아 주셨단다. 축하해 두 사람! 이제 학교에서도 맘 졸이며 숨어 지낼 필요 없게 됐어."

 

 케이타가 바람에 살랑이는 잎사귀처럼 웃으면서 말을 끝마친다.

 촉호와 아라는 기뻐하며 서로 얼싸안는다.

 

 "잘됐다 아라야! 여기서 치료마법이랑 인간 세상에 대해 배울 수 있겠구나!"

 

 "응. 촉호! 이게 다 너희들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두 사람은 침대 위에서 폴짝거리며 기쁨을 나눈다.

 

 한편 그들의 옆 침대에 누워있는 춘회는 이런 즐거운 소란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 햇살을 얼굴에 걸친 채 그저 꿈속을 여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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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 - 11화. 하수처리장의 괴물 2018 / 11 / 12 19 0 8872   
33 2 - 10화. 솔로들의 구세주 2018 / 11 / 11 20 0 5841   
32 2 - 9화. 런치 타임 2018 / 11 / 10 20 0 6266   
31 2 - 8화. 괴물이 출몰한 집 2018 / 11 / 9 21 0 6877   
30 2 - 7화. 달달한 데이트, 그리고 방해꾼들 2018 / 11 / 9 25 0 7401   
29 2 - 6화. 첫 사랑의 기억 2018 / 11 / 8 30 0 6019   
28 2 - 5화. 데이트 전야 2018 / 11 / 8 25 0 6392   
27 2 - 4화. 뒷마당에서 훈련을 2018 / 11 / 8 18 0 6590   
26 2 - 3화. 데이트 신청 2018 / 11 / 8 23 0 6709   
25 2 - 2화. 양호실 2018 / 11 / 8 25 0 8203   
24 2장. '윌리엄 진과 주황머리 소녀' - 1… 2018 / 11 / 8 28 0 5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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