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안과 론은 한 달 동안 계속 되는 허탕을 치며, 마지막 거점의 작은 도시인 로도스에 도착했다.
어두운 색의 짙은 밤색 로브를 몸에 둘러 여행객 행세를 하며 시끌벅적한 도시 여기저기를 찬찬히 둘러봤다.
“휘유~ 작은 곳 치고 상당히 활발하네.”
휘파람을 불며 시끌벅적한 도시의 분위기를 순수하게 감탄을 해가면서 즐기고 있는 론과는 다르게 바이안은 별 감흥이 없이 무덤덤하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이번에 만나야 할 사람은 굳이 사람들에게 물어 보지 않고, 헤매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는 이였기에 금방 그 근처로 도착했다.
도시에서도 한 눈에 띄는 가장 큰 저택의 주인인 케리프라는 인물이었다.
도시를 슬쩍 둘러본 결과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사람들 간의 분위기도 밝고 좋았으며, 풍요로웠기에 지금까지 만나본 이들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저택과 살짝 떨어진 곳에서 2층의 어느 한 곳을 응시하던 둘은 서로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게 조심히 움직여 저택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2층의 집무실에서 케리프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들고 창밖에 비치는 활기찬 사람들을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기운의 근원지를 찾았고, 집무실의 어두운 공간에 두 개의 그림자와 눈이 맞았다.
손님이라면 분명 고용인들이나 집사가 먼저 문 밖에서 알려 주었을 테지만, 고용인들의 말소리도 없었으며, 누군가가 들어왔었을 때 들렸을 문이 열리는 소리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 무척 놀라며 몸이 잔잔히 떨리기 시작했다.
“누...누구십니까?”
“현자 케리프가 그대인가?”
묵직하며 딱딱한 말투가 자신을 찌르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간신히 정신력으로 버텨냈다.
책상위에 조심히 찻잔을 내려놓은 케리프는 패닉이 올 뻔한, 마음을 추스르며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존귀하신 분들을 뵙습니다. 소인 케리프라 합니다.”
“오~ 이녀석 봐라?”
그림자의 주인 중 한명인 론이 슬쩍 앞으로 나오며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매우 흥미롭게 케리프를 내려다 봤다.
“괜히 현자가 아닌가봐~ 우리를 본 녀석들은 대부분 놀라서 말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떨기밖에 못했는데, 태연한 것 봐라. 게다가 우리가 누구라고 말 하지도 않았는데 정체를 바로 알아챈다.”
히죽거리면서 옆에 있는 바이안을 바라보며 케리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둘의 태연한 모습과는 상반되게 정작 케리프 본인은 등 뒤에 식은땀을 흘리며 머릿속으로 상황파악을 위해 바쁘게 굴려댔다.
“다른 놈들보다 네가 제일 낫다.”
그를 칭찬하며 론은 근처의 소파에 편하게 앉았고, 바이안 역시 옆에 앉아 날카롭게 케리프를 관찰했다.
“혹여,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소인을 찾으시는 이유를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론의 말속에서 단서를 잡아 빠르게 추측을 하여 그들의 목적이 자신임을 직감한 케리프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고 둘과 시선을 맞췄다.
“야. 마지막에 정답이 걸린 것 같은데?”
“섣부른 판단은 금지다.”
바이안의 지적에 론은 그걸 누가 모른데? 라며 무뚝뚝한 자신의 친구 대신 케리프의 질문에 대답했다.
“우리가 네놈을 찾아 온 것은 맞아. 하지만, 이유까지는 말해줄 의무는 없지.”
론은 한쪽 다리를 꼬며 발목을 까딱거렸다.
“몇 가지만 확인을 마치면 돌아갈 것이다.”
론의 대답에 바이안은 부가 설명을 넣어주었고, 그 후에 정적이 찾아왔다.
분명 자신을 찾아 왔다고 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자 다시금 두려움이 엄습했다.
천공의 땅에 사는 귀족들은 애초에 여신의 사랑을 받는 일족으로 여겨지며 여신의 힘을 조금씩 나누어 받아 마력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관리한다는 존재들이다.
대륙에 살고 있는 자신들과는 하늘과 땅차이의 존재였으며, 한평생을 살아도 그들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이 귀족들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이 아닌가 싶어도, 자신 같은 지상인들이 애초에 귀족이란 이들을 만날 일도 없으니, 그렇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를 것도 없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작은 도시의 영주일 뿐이지, 저들에게는 보잘 것 없는 지상인 그 뿐 일 것인데, 도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확인 한다는 것인가?
그때, 침묵을 깨며 무뚝뚝한 목소리가 다시 그런 케리프에게 찔러 들어왔다.
“다시 한 번 그대에게 묻지. 이 곳에서 현자라고 불리는 이가 그대가 맞는가?”
바이안의 질문 속에 강조가 되어있는 단어인 현자에 순간적으로 케리프의 머리에서 세이나가 스쳐지나갔다.
저들은 자신을 찾아 온 것이 아니라 현자라는 이를 찾아 온 것임이 틀림이 없었고, 그 목적을 알 수 없기에 두려움은 그 후에 바로 좋지 못한 상황까지 생각이 미쳐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세이나 대신에 자신이 자처해서 대리자가 되어서 그녀의 자유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게 힘이 되어 주며 그녀를 소중히 지켜왔다.
좋지 못한 목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케리프는 각오를 다지며 입을 떼었다.
“부족하나마 이 곳 사람들은 소인을 그리 부르고 있습니다.”
귀족에게 거짓을 고하여 들키면 바로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지만, 자신의 죽음 보다는 세이나가 그에겐 더 중요했다.
“아... 기대했는데, 꽝이네.”
로브 안에서 무언가를 확인하던 론은 매우 아까워하면서 케리프와 품속을 번갈아 가며 몇 번 확인을 하다가 다시 표정을 풀었다.
“뭐, 한두 번으로 확인이 바로 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여기까지 오다가 들었는데 여기서 축제인가 뭔가 한다며? 그것도 겸사겸사 보고 싶으니까, 몇 일, 이 곳에서 신세를 지고 싶은데.”
“..부족하나마, 숙식에 불편함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빠르게 대답을 마치며 서둘러 집사를 불러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의 손님을 보고 놀라는 집사를 달래며 자신의 저택에서 제일 큰 방으로 안내를 해 주었다.
방으로 안내를 받고 둘만 남겨지자 바이안은 론을 흘겨봤다.
“한두 번?”
“우하하 넘어가 넘어가.”
태연자약한 론에게 일침을 놓지만 정작 론은 천하태평이다.
“확인은 한번이면 되는 것을 잘 알지 않나?”
하지만 론은 자연스럽게 그의 째림을 흘려보냈다.
“뭐 어때?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잖아. 찾으면 알아서 보고하면 되고, 저쪽이 찾든 못 찾든 귀환 명령이 내려오겠지, 게다가 여기가 마지막이겠다, 덤으로 축제까지. 조금 즐기고 가도 안 늦어.”
“......”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바이안에게 딱히 바라지도 않았다며 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이번에 네 소원도 풀었고, 마음 정리하기엔 축제가 딱 이잖아. 우리들은 틀과 규칙에 강하게 묶여 있는 기사니까, 이때 아니면 언제 편하게 즐기냐? 이 정도는 괜찮아.”
그가 자신을 배려하려 하는 의도를 알자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고 작게 한 숨을 내쉬며 그 이상 론의 말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둘이 여독을 풀고 있을 때에 케리프는 소파에 힘없이 앉아 아직도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세이나님.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제 선택이 혹여 당신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두렵습니다. 너무나 무섭습니다. 당신에게 이 곳으로 찾아오지 말라 알리고 싶지만 만일 알리러 움직였다가 들킬까봐 그것도 하지 못하는 접니다. 제발.. 그들이 돌아갈 때까지만 이라도 오지 말아 주세요.”
그는 늘 자신을 만나러 놀러오는 세이나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왔지만, 이번만은 반대로 오지 말아 달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도시 한 켠에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시끌벅적 했다.
그 중심에 승리자의 표정을 한 세이나와 절망하고 있는 청년이 떠들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좀 봐주라니까.”
“안 돼. 내기는 자고로 냉정한 법!”
절대로 봐주지 않는 세이나에게 떫은 표정으로 고기 덩이를 넘겨주자 세이나는 냉큼 받아냈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는 이들 중 한명이 크게 웃었다.
“우하하 세이나에게 내기로 이기는 놈은 한명도 없다고 내가 그리 말했지 않나?”
“쯔쯔~ 그러게 그리 말렸건만..”
다 자업자득이라며 청년에게 뭐라 하면서 주변인들은 은근히 세이나를 추켜 세워줬다.
“내가...어떻게 잡은 고긴데... 힘들게 손질까지..크흑~~”
자신에게 고기 덩이를 뺏겨 음울해진 청년의 어깨를 토닥이며 매우 안쓰러워하는 척 하면서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그를 더욱 음울하게 만들었다.
“흐흐~ 인생 차암~ 쉽지 않지? 자고로 인생은 쓰디쓴 법이야.”
세이나의 말에 주변에 있던 모두는 크게 웃어댔다.
“크큭 아무리 그래도 17살 밖에 안 된 아가씨한테 저 소리를 들었으니, 너 이제 인생 그만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크흑~~”
청년의 등을 팡팡치며 말을 하는 중년인의 말에 당사자인 청년은 끝내 고개를 떨궜다.
다들 그렇게 청년을 골리며 즐거워하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노인이 다가왔다.
“아! 할아범~”
세이나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발견하자마자 반갑게 고기를 든 손으로 흔들어보였다.
“이늠아. 거기서 뭐혀~”
“할아범. 이것 봐. 오늘 저녁은 고기야.”
당당하게 자랑하는 세이나의 모습과 주변을 빠르게 확인하며 상황파악이 되자마자 할아범은 빠른 걸음으로 세이나에게 다가갔다.
한 건 해서 뿌듯해 하는 자신의 손녀딸의 뒤통수에 선물로 꿀밤을 선사해주며 빠악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아이고 이늠아. 네늠은 언제 철이 들 거냐? 응? 또 사람들 등쳐먹고 있냐?”
뒤통수를 감싸 안으며 세이나는 바락바락 대들었다.
“아 머리는 왜 때려? 내가 멍청해지면 책임 질거야? 앙? 머리는 때리지 말랬잖아.”
그러자 할아범은 다시 빠악하며 그녀의 뒤통수를 한 번 더 갈겨줬다.
한 동안 둘이 꽥꽥 거리며 투닥 거리는 모습을 모두는 흐뭇하게 바라봤다.
언제 보아도 사이가 좋은 둘의 모습은 둘을 아는 도시 사람들에게 하나의 낙이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며 할아범은 그대로 세이나의 귀를 잡아당겨 그 자리를 벗어났다.
“으닷~ 아파 아프앗!”
“제대로 일을 찾아서 할 것이지. 넌 어떻게 된 애가, 허구헌날 이모냥이냐”
할아범에게 끌려가면서도 고기를 품에 꼬옥 안고 사라지는 모습에 모두는 동시에 박장대소를 끊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