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가 제 몸의 몇배는 될것 같은 짐을 들고 웃으며 지혁의 집에서 내려가는 모습을 둘은 조금은 말 없이 지켜보았다.
하임이 낮은 헛기침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지혁이 하임을 잡았다.
"차 한잔 하고 가-"
차.. 차라고- 방금 전 까지 우린 목구멍 끝까지 음식을 먹다가 왔다. 물론 그는 아니지만- 뭔가 할 얘기가 있단 말로 들렸다.
"뭐... 그럴까요-"
집은 휑했다. 다시금- 원래 든 자린 몰라도 난 자린 보이는 법이라더니 정말 그랬다.
그는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아마도 사려깊게 안 쓰는 척을 하는것이겠지-
그는 그가 의도하는 만큼의 냉혈한은 되지 못한다. 언제나 그런걸 목표로 하고 있는것 같지만-
그러기엔 아직 피가 너무 뜨겁다.
"커피로 해?"
"... 아뇨 배도 부르고-"
지혁이 씨니컬하게 웃었다.
"그렇겠지."
그는 맑은 물 한잔을 하임앞에 내려놓고 그의 몫으론 짙다못해 검은 커피를 내려놓고 앉았다.
"뭐 할말 있어요?"
".... 그래-"
그는 또 망설이고 있었다. 하임은 낮게 그를 채근한다
"그냥 말해요- 하루가 길었잖아요-"
".... 뭐랄까 말하기 창피하군- 멍청한 일 처럼 들릴것 같거든-"
그는 새삼스럽게 쑥쓰러워했다.
"뭔데요?"
"그... 드레스 같은거 있나?"
하임은 그 말에 그를 빤히 바라보면서 웃었다.
".... 그런게 있는 사람이 이상한거 아니에요-"
그 말을 듣곤 당연하다는 듯이 중얼댄다.
"그래 그렇지 그런게 있을리 없지-"
지혁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을 이었다. "올 드레스 업 파티니까- 말하자면..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말하는건 아니야"
"그러면요-"
지혁은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불쾌해 하는 듯한 눈빛으로
"거기 있는 사람들은 옷만 봐도 대충 서로를 파악하지- 돈을 얼마나 들였나가 바로 보이는 자리야- 보통은 디자이너의
제품이 아닌- 작품을 입고 나타나는 자리지- "
하임은 약간 스스로가 멍청해 지는걸 느끼면서 되물었다.
"작품? 제품? 무슨 차이에요-"
지혁이 씨니컬하게 또 웃었다.
"기성복과 맞춤복의 차이라고 할수 있지-.. 당신이 거길 나가게 되면 이런 모습으론 안될거야-"
하임의 귀엔 그 말은 별로 칭찬으로 듣기지 않았다, 물론 깔끔하게는 갈 생각이었긴 했다. 대책을 세운것도 아니었고... 그러나 평소의 모습이 형편없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왜요?"
지혁은 하임이 다소 불쾌해 한다는 걸 눈치채고 덧붙였다.
"오해 마, 난 그런거 싫어하니까- 전장에 나가려면 적어도 무기는 들고 가야되지 않겠어?"
"무기요?"
"말하자면 그런거지, 그래야 당신 옷을 알아보고 거기에 달려있을 가상의 가격표까지 알아본 나머지 인물들이 다가오지 않을 테니까-
뭐 전투복이든.. 총이든.... 당신 편할대로 생각해도 좋아-"
지혁은 말을 그까지 마치고 중얼거렸다.
"이래서 창피해- 이래서 당신을 끌어 들이고 싶지 않았어-"
"괜찮아요 창피해 할것 , 없어요 괜찮아요-"
하임은 살짝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그 웃음을 놓치자 않은 그가 못되게 쏘아붙였다.
"우스운 일이 아니란 말야- 거기 사람들이 얼마나 밉게 구는지 알기나 해? 심술과 중상모략의 극치야-
떠나온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하임은 웃음을 멈추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한다. 탁자위에 있는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살짝 포개면서
당장에 손을 뺄줄 알았는데- 그는 동요하지만 손은 빼지 않았다.
"우습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진지해요- 당신 말이라면 그렇게 하죠- 그것이 무엇이든-"
지혁은 한참만에 손을 살짝 뺴어내고 눈을 내려깔곤 대답했다.
"내일 , 시간 비워-... 갔다가 어디 좀 또 갈 거야-"
"........."
"운전은 당신이 해- 내가 하고 싶지만 , 아직 좀 불안해서-"
"어디 가는데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말 할듯 말듯 거실을 서성였다. 그러곤 대답했다 아주 낮게-
"하민이 한테 갈꺼야-"
하임은 놀랐고- 말을 멈추었고- 그는 하임의 눈을 피했다. 그것이 죄책감인지- 누구에 대한 죄책감인지는 알수 없었다.
그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럼, 내일 전화할게-"
방문이 닫기고 하임은 자리에 앉아서 그저 물컵에 눈을 두고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가까워진 거리감이 다시 멀어진 것처럼 답답했다.
"정말 변하질 않네- 계속 제자리야-"
그녀는 약간 화가난채 자리를 떠났다.
문이 닫기는 소리를 문 너머로 , 문에 기대어 선 지혁은 들으며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이제야 멈춰 선 것 처럼-
자신이 사냥꾼을 사랑하게 된 멍청한 사슴이라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어서
숨을 죽였다. 좀더 낮게- 좀더 조용히-
칠흑같은 밤이 내려앉은 방에서 불도 켜지 않은채로-
-
하임은 아침 일찍 전활 한 작약 덕에 깨어있었다. 전화에서 하임은 어색하게 물었다.
"뭐... 입을까요-"
지혁은 단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옷 갈아입어 봐야 하니까- 편한 옷-"
"편한 옷이요?"
"갈아입기 편한 옷-"
그렇게 전화가 끊기고 , 옷장을 뒤적였지만 ,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고풍스러운 옷은 작약이 선물한게 다였다.
나머지는 너무 짧거나 , 밝거나, 가벼웠다. 그 옷에 얽힌 기억을 되짚어 보니 이 옷을 또 입는건 멍청한 일일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 입는데로.. 결국엔 셔츠와 바지였다. 언제나처럼-
지혁은 밑에 내려가 있었다. 열쇠를 들고 , 자신의 차에 기대 서서-
"운전- 할거지?"
그는 열쇠를 살짝 흔들며 물었다-
"그러죠 뭐-"
지혁은 평소완 다른 옷차림이었다. 살벌하게 칼 주름이 다려져 있는 바지와 티끌하나 없는 차이나 칼라의 셔츠
그리고 짙은 선글라스-
"왜 그렇게 보지?"
한동안 안 들었던 이야기였다. 또 내 눈이 먼저 그를 쫓았다. 그걸 들켰고-
하임은 눈을 내리깔며 다른 소리로 대답을했다. "출발할게요- 어디로 갈까요-"
지혁은 몸을 뻗어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었다. "여기로 , 강비서가 알려줬어-"
가까이 다가온 그의 숨에 취해- 그의 말을 귀여겨 듣고 있지 않았던 하임이 되 물었다 "누구요?"
"강비서가- 당신이 갈줄 예상했던거 같더군-"
강비서님..... 눈치가 빠른건 알았지만... 괜히 뺴는 척 한다고 생각했겠군 결국 이렇게 할 거면서....
하임은 좀 겸연쩍었다. 말 없이 주소대로 이동한다-
강남의 안쪽- 자신은 갈일 없을거라 생각했던 곳이었다.
내리기 전 작약은 한마디를 당부했다.
다소 딱딱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묻는 말에 일일이 대답 해 주지 마- 콧대 높은 척 해, 안 그럼 너를 금방 파악할 테니까- 그냥 말의 반은 듣고 흘려-"
"왜요?"
"예행 연습인 셈 쳐- 내가 말은 할 테니까-"
여기서 어디서나 나오는 패션쇼를 감상하는건가- 드라마에서 나오듯- 여자가 옷을 갈아 입고-..... 남자는 앉아서
맞다 싶을때까지 여자를 돌려 보내는? 하임은 자신의 협소한 상상력에 조금 우스웠다.
리처드 기어라고 하기엔 그는 너무 살벌한데-
들어서자 생각한것과는 굉장히 달랐다. 여자들은 다 같은 펜슬 스커트에 머리를 쫙 당겨 묶은 포니테일이었다.
지혁을 아는건지- 아니면 그렇게 보지 말라고 당부를 받은건지 그들의 눈은 아무것도 비추고 있는것 같지도 않았다.
차림이 조금 다른 사람이 지혁에게 말을 걸어왔을 뿐이다-
"준비 해 드릴까요-?"
"그래요- 피팅은 너무 불편하지 않게 해 줘요- 다 준비 되어 있나요?"
"물론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안쪽의 방으로 사라지고- 그녀는 펜슬 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에게 둘러 쌓여서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여자들은 쓸데없는 숨소리 조차 내지 않았다. 탈의실 커튼을 치자 마자 하임에게 달려들어 옷을 벗겼다.
몹시 사무적으로- 하임은 "어.... 잠시만요-" 따위의 소리를 중얼거렸지만 여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짙게 붙는 윗 가슴선과 팔이 촘촘한 레이스로 된 차이나 카라의 원피스로 하임을 우겨넣었다.-
"좀 당기시나요?"
한참만에 나오는 말이었다
"네-... 팔 부분이 그리고 비치는 데요- 그리고-.."
하임의 키에는 좀 많이 길었다. 드레스 자락이 끌렸다.
" 붙는 거니까- 구두 신으시면-.. 약간만 줄일게요-"
다른 한 여자가 숙여 시침핀을 꽃았다. 기모노 입은 여자처럼 종종걸음을 해야 할 정도로
치마쪽은 타이트했다. 옷은 짙은 피콕 블루 색깔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이지만 입을 생각은 못한 색
청록색에 가까웠다.
"이거 신어보세요-"
공단으로 된 같은 블루 계통의 신발을 내민다. 발만 내밀라는 뜻이었던 듯 그녀들은 말없이 그녀의 발에 구두를 신긴다-
극도로 사무적이다- 매일같이 이런일을 해서일까- 사람이 4명인데 단 한명도 내 눈을 보지 않았다. 그 사이에...
발 사이즈는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구두는 중간에 박힌 보석때문에 눈이 시릴 정도다-
그녀들은 말 없이 그녀의 뒤부터 앞까지 체크하더니 - 잠시만 기다리란 말을 하고선 그녀를 탈의실에서 내보낸다-
하임만 남은 적막한 방- 방안의 구조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말도 안되는 앤티크 가구가 가득한- 조금은 이상한 방
지금이 르네상스 시대도 아니건만, 괜히 시비를 걸어본다.. 치마가 폭이 좁아- 하임은 앉을수 조차 없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건조한 노크소리의 주인은 작약이었다. 그는 아까의 옷은 온데간데 없고 몸에 처음부터 붙어 자라난 듯한-
그대로 자기 자신인듯한 티끌하나 없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패션에 문외한인 하임의 눈에도 보였다.
그 수트가 완벽하게 그에게 스며든다는 사실이 말이다- 커프스 링에, 보우타이까지- 보우타이를 했는데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있던가... 정장은 그 답게 칠흑같이 검었다. 속의 셔츠를 제외하고-
자신을 보고 작약은 특별히 감동한것 같지도 , 놀란것 같지도 않았다.
"잘 어울리는군- "
".... 안 놀라네요?"
불쑥 튀어나온 진심- 작약은 슬쩍 , 아주 살짝 웃는다.
"내가 골라놓은 옷이니까- 놀랄 것 없지- "
하임은 탁 맥이 풀려 되 묻는다....
"이렇게 미치도록 붙고 위에는 다 레이스인데요?"
작약은 대수롭잖다는 듯이 대꾸한다-
"팔이 길잖아- 목에도 딱 붙고- 아무런 노출도 아니야- 가보면 알게 될거야-"
하임이 그 말에 소극적으로 중얼댄다.
"걸을수나 있으면 말이죠-"
"맞게 수선할테니까 걸을수 있어 걱정 하지마-"
지혁은 하얗게 드러난 하임의 등을 쳐다본다- 살짝 파인 디테일의 뒷테를 보곤 뭔가 말을 덧붙이려다 그만 둔다
괜한 소린 하지 말자, 어차피 가서는 겉옷을 입고 있을수는 없을테니까-
아까 지혁과 대화를 나눈 이가 문을 두드린다-
"다 잘 맞으십니까-?"
"불편한데 있는 곳 물어보고 수선 해 주세요- 당일에 난 괜찮지만 저 여자분은 와서 메이크업과 헤어는 받을 겁니다-"
낮은 지혁의 말에 하임이 돌아본다-
"당신이 할수 있지 않잖아- " 낮게 언질을 준다. 화장 안한게 좋다 그런게 누구였더라-
스스로 생각해도 화장은 하면 할수록 떡화장이 될테니.. 그래 이왕 하려면 그게 낫겠지-
낮게 "뭐..." 하고 수긍하자 그는 대화한 사람의 손에 뭔가 쥐여주고는 혼자 나가버린다-
여자는 돌아 보라며 중간 중간을 체크하고는 탈의실에 다시 데리고 들어가 원래의 옷을 돌려준다-
혼자선 입기도- 벗지도 못하는 옷을 입고 전장으로 가야 한다니.. 이제야 좀 긴장이 되는 기분이었다.
미치도록 높은 신발도 그렇고- 하임은 한숨을 쉬며 거의 신발에서 내려왔다-
여자는 낮게 덧 붙였다.
"발 볼이 좁으시네요 조금 덧 데어 놓을게요 그럼 걷기 편하실 거에요-"
그 말에 감사합니다가 나오다가- 그냥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의 언질이 떠올라서였다.
나오자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은 그가 다시 차에 기대 서 있었다. 직원들은 하임이 나갈때에
일렬로 서서 부담스런 인사를 건냈다. 하임은 쭈볏거리며 인사를 하고 그 가게를 나섰다.
"충분한가?"
낮은 질문
"뭐가요?"
"옷 말야, 맘에 드냐고-"
하임은 시무룩하게 덧붙였다.
"내 맘에 들어서 뭐해요- 그냥 잘 어울리면 그만이지-"
지혁은 그 말에 잠시 망설이다 말을 잇는다.
"맞아, 현명하네-... 당신 취향 몰라서 그냥 내 취향대로 골랐어-"
"....."
"저번에 보니까 파란 색이 잘 받길래-"
변명처럼 들리는 낮은 말을 뒤로 하고 그는 다시금 주소를 찍었다.
이게 하민씨가 있는 곳일까? 내 낯빛이 어두워 진걸 읽었는지 그는 침착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선 살게 있어서- 들렀다 갈 거야-"
".....네"
그녀는 아직도 그의 사랑이고, 여자친구임에는 분명한데도 하임은 마치 부모님이라도 뵈러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와 그는 지금 어디쯤일까- 어제의 상실감 처럼 다시 원위치일까?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그를 좋아해도 되냐는, 허락을 받으러 가는 것 같은 기분- 한편으론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렇게 아픈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도-
또... 그녀의 눈부심에 기가 죽을까봐 두렵기도 했다. 작약의 의중을 알수가 없었다. 나를 대체 왜 하민씨에게 보여주려고 하는걸까-
그저 날 밀어내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그의 생각은 조금 달라보였다. 그녀는 그의 치부중에서도 가장 아킬레스건이었다.
근데도 굳이 그녀를 그는 보여주려고 하고 있었다. 몹시 긴장한 듯 보였다. 입매가 딱딱히 굳어 있었다.
선글라스 안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보였다면 눈도 와락와락 흔들리고 있을것 같았다.
나는 답답했다.
그는 처음 목적지에서 내려서 ,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엄청나게 큰 작약 꽃다발을 들고 돌아왔다.
꽃집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그걸 뒷자석에 내려놓고는 다시 주소를 찍었다.
주소는 경기도였다.
"........"
하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자신도 이것이 뭔지 몰랐으니까-
지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불편한가?"
하임은 낮게 숨을 내쉬고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가 말을 했다.
"편하진 않죠-"
"......."
그는 생각하는것 처럼 잠시 망설였다.
"..... 이게 순서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슨 순서요?"
하임이 약간은 퉁명스럽게 되 물었다.
"............ 그냥, 그랬어- 당신에게 부러 상처를 주려고 하는건 아니야-.. 그저....."
그는 말을 멈추었다. 고통스럽다는 듯이
"그냥 내 처지가 그렇다고- 만사를 제치고 당신이 내미는 손을 , 그래 여지껏 먼저 손 내밀거나 꽉 잡지 못한 이유가
내게 분명히 있었음을... 당신하게 알려주고 싶어서야-"
그는 말 끝에 잠시 쉬었다. 그러곤 또 말을 이었다.
"멍청하지- 난 지금 둘다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걸지도 모르지- 어떤 이유든 당신에겐 공평하지 않지-
알고 있어-... 그런데도 당신이라면..."
"....."
"감당 해 줄것 같아서-... 당신이랑 서 있고 싶은데- 그녀도 당신을 보면... 납득할 것 같아서-...."
하임은 그의 이어지는 , 그 한테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변명에 조금 설레기도 화나기도, 멍청한 기분에 젖기도 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변명을 할만한 타입이 아니었다. 안되면 그걸 잃고 마는 , 그냥 잃고 버려버리는 사람인데-
자신을 그 만큼 탐내고 있다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설랬고- 그런 일에도 핑계가 필요한 그에게 조금 화가났고-
그런 일을 설레어 하는 자신이 멍청했다. 뒷자석의 거대한 꽃이 보였다. 그 꽃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었다.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
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 길 말고- 우리의 사이는-
철저하게 이용당해 주기로 했으면서 성질 피우는 자신을 이해할수 없었다. 그토록 다짐을 했는데-....
이런것도 이용이라면- 그의 맘이 그래서 눈곱만큼이라도 편해 진다면야-
한참을 둘은 말 없이 달렸다.
네비게이션의 딱딱한 "목적지에 도착 했습니다" 목소리에 다다른 곳은 산들이 가득한 곳에- 외딴 섬처럼 뚝 떨어져 있는 요양원이었다.
시설이 현대적인데 주변 풍경은 전혀 그렇지가 않아서 어색했다. 지혁은 말 없이 내렸다. 꽃을 들고서-
그리곤 다가와서 하임의 문을 열어주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천천히 올라간 그 곳에서 맨 끝에 있는 독실- 창이 열려있는지 바람이 스쳐 지나왔다.
그는 그리운 눈빛이기도- 슬픈 눈빛이기도 했다. 하임까지 속상해질만한 눈빛이었다.
그에게서 본 적 없는 눈이었다. 그는 막 울음을 터트릴것 같기도- 금방이라도 화를 미친듯 내던 그때처럼 변할것 같기도 했다.
그의 그런 표정은 끝 방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나오자- 그 답지 않게 정말 상냥하게 변했다.
마치 뒤집은 것 처럼- 그 답지 않게 살가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인상 좋은 중년의 아주머니는 살짝 웃으며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곤 의아한 표정으로 작약에게 되 묻는다-
"친구에요.... 보고 싶어 해서요-잠시만 자리 비켜 주실래요-"
이 아주머니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임에 분명했다. 작약의 그 부실한 설명에도 전혀 의아해 하는 티를 안내고
물러선다-
"그럼요- 저는 어디 좀 다녀 올게요-"
그러곤 잰 걸음으로 사라진다-... 작약은 천천히 걸어가 그 방문을 열고는- 잠시 멈춰있다-
마치 누군가를 처음 만나기라도 한 것 처럼- 견딜수 없어하는 표정으로-
그러곤 낮게 하임에게 말했다.
"들어 와-"
빛이 창에서 들어와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은
하임은 숨을 참듯- 물 속에 잠수하는 심정으로
그 방의 문턱을 넘었다.
숨막히는 감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