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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악동 카쟝: 세상을 바꾸는 도둑들
작가 : 꾸마네
작품등록일 : 2022.2.18

부유 도시 '마루'와 빈곤 도시 '달구'.
고위인사들의 욕망과 탐욕으로 빈부격차는 점차 심해지고, 달구 시민들의 불만도 최고조에 이른다.
도둑계의 악동 '카쟝'과 그의 동료 '리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부(富)의 재분배'다.
세계 최고 회사 '명장제약회사'의 사장 '백민관'. 그는 언제나 '젊음'을 갈구한다.
도적단 중 가장 악랄한 '흑사단'과 그들의 수장 '흑사'. 그의 목적은 언제나 '돈'.
진짜 도둑은 누구인가? 도둑을 뛰어넘는 도둑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ii858@naver.com

 
백민관과 비서
작성일 : 22-02-18 22:32     조회 : 68     추천 : 0     분량 : 8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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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예 한 푼도 안 남긴 거야?”

 “응, 물론이죠. 어차피 우린 신문사에서 주는 고료로 먹고 살 수 있잖습니까.”

 “하아... 그건 그렇지... 알았어.”

 “그나저나, 오늘은 범행 스케줄 없지요?”

 

 리브는 스케줄 확인을 위해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노트북을 꺼냈다.

 

 “응. 오늘은 일 없고, 내일 한 건 있네.”

 

 카쟝은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오늘은 할 일 없는 거죠?"

 "뭐야 뜬금없이, 불안하게...."

 "다른 건 아니고, 하나만 조사해줬으면 해서요."

 

 리브의 불안감이 실체화되었다. 동시에 리브의 미간 주름도 선명해졌다.

 

 "무슨 조사가 필요한데?"

 "혹시 백민관 사장에 대해서 조사 좀 해줄 수 있습니까?”

 "백민관? 그 명장제약회사 사장?"

 "응. 그 사람 맞아요."

 "어려울 건 없지. 인터넷만 들어가도 정보가 차고 넘치는 사람인데. 아무튼 그 사람은 왜?”

 “깜빡하고 있었는데, 어제 내가 계획에 없던 물건을 하나 건졌습니다. 그 사장한테서 얻은 서류가방이거든요? 분명히 시장으로 변장한 나한테 와서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서류가방은 열어봤고?"

 "그게, 서류가방에 비밀번호가 걸려있는데, 비밀번호가 4자리더라고요."

 

 리브는 코웃음쳤다.

 

 "뭐야. 가방 정도면 그냥 부수지 그랬어?"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요. 일단은 뭔지 몰라서 숨겨 놓기만 했습니다. 근데 혹시,"

 "혹시?"

 "'학목 바이러스' 치료제가 들어있으면 어떡하지요? 그게 아니더라도 인류에 도움이 될 만한 신약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 사람, 명장제약 사장이잖습니까."

 

 그럴 확률은 거의 없었지만, 또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단 말이지? 음,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고 말했다고?"

 "그것도 아주 비밀스럽게. 그때의 몸짓과 말투로만 봤을 때는 치료제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아요. 그 사람, 뭔가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리브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스케줄로 인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선 호기심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알았어. 한 번 찾아볼게."

 

 

 ***

 

 

 똑. 똑. 똑.

 

 "사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사장실 안에선 평소보다 낮게 깔리는 음성이 들렸다. 장 비서는 조심스레 손잡이를 당겼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의 손엔 서너 장의 종이가 들려있었다. 비서는 서둘러 사장에게 다가갔다.

 

 “사장님, 여기, 말씀하신 동물실험 허가증입니다.”

 

 비서는 손에 든 문서를 사장에게 내밀었다. 사장은 독수리가 물고기 잡듯 잽싸게 문서를 낚아챘다. 급한 움직임 탓에 장 비서의 손이 베일 뻔했지만 장 비서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장은 허가증을 받자마자 눈만 이리저리 굴려 허가사항을 훑어보았다.

 

 "흐음...."

 

 펄럭. 펄럭.

 

 1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그의 손은 몇 장의 종이를 넘겼다.

 

 “예전엔 허가 자체가 필요 없었는데, 상당히 귀찮아졌단 말이지.”

 “이것도 다 10년 전 그 사건 때문에 그런 거라,”

 

 비서의 입은 중간에 멈췄다. 아차 싶은 것이었다. 사장의 시선은 차가운 고드름이 되어 그의 눈을 찔렀다. 비서는 곧장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죄송합니다.”

 

 사장은 거친 콧바람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비서의 반대편이었다. 그 곳엔 비서보다 먼저 와있던 주치의가 꼿꼿히 서있었다.

 

 "크흠."

 

 주치의를 보자마자 사장의 표정은 순식간에 풀렸다. 그는 손을 까딱거려 주치의를 오도록 지시했다. 주치의가 다가오자 백 사장은 손을 뻗어 허가증을 건넸다.

 

 "실험 준비는 다 해놨지?"

 "네, 어제부로 모든 실험 준비를 마쳤습니다."

 

 주치의는 아기 다루듯 소중히 허가증을 들었다.

 

 "좋아."

 

 백 사장은 만족에 찬 미소를 지었다. 입술 사이로 황금으로 된 치아가 드러났다.

 

 “그래. 아무튼 그거 허가 받으려고 이래저래 지출이 많이 나갔으니까 실수하지 말고 확실하게 성공시켜. 성공만 시키면 자네도 떼돈 버는 거고 나도 꿈을 이루는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은테 안경의 주치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런데 말이지,"

 

 사장은 다시 고개를 돌려 비서 쪽을 바라보았다. 사장과 눈이 마주친 비서는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비서와 마주보는 사장의 이마엔 어느새 골짜기가 생겨있었다.

 

 "우 박사는 다음 주에 출소라고 했나?"

 

 우 박사는 10년 전까지 백 사장의 밑에서 일하던 연구원이었다. 현재는 국립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네, 결국 10년 전부 채우고 나오신답니다."

 "이제야 10년이라니......."

 

 사장의 눈은 조용히 감겼고, 그의 검지는 책상을 툭, 툭, 툭 두들겼다. 이내 생각을 마친 백 사장은 비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래, 우 박사 나오면 곧장 내 앞으로 데려와. 그 사람 심기 건드리지 말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사람이야."

 "네. 알겠습니다."

 

 대화가 진행되던 와중에, 사장은 뭔가 떠오른 듯 비서를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그나저나 찾아오라는 건 어떻게 됐나?”

 

 살짝 던진 그의 한마디에, 비서의 낯빛은 흙빛으로 변했다.

 

 “아... 찾아오라고 하신 게... 둘 중에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가방.”

 “그, 카쟝 녀석이 훔쳐간 가방은 아직...... 찾고 있는 중입니다.”

 

 비서의 다크서클이 진해져감에 따라 사장의 얼굴도 조금씩 달아올랐다. 백민관은 이를 꽉 다문 채 대화를 이었다.

 

 “그건 그 녀석 손에 있으면 안 돼. 만에 하나 그 자식이 가방 속에 있는 걸 확인하면 쓸데없는 일을 벌일 게 뻔해.”

 

 사장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우려가 흠뻑 묻어나왔다. 현재 비서에게는 사장을 진정시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네. 수색 인력을 2배로 늘리겠습니다.”

 “그래, 사설 수색대를 풀어서라도 달구시 구석구석 잘 찾아봐. 그 녀석도 결국엔 그 쪽 시민이니까, 거기서 벗어나진 않았을 거란 말이지.”

 

 사장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면 그 녀석이 갈만한 곳을 계산해서 덮치든가."

 "갈만한 곳이라는 건 정확히 어디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눈치 따위는 아예 내팽겨 친 비서였다. 다행히 사장은 그 질문에 화내지 않았다.

 

 "그 녀석의 범행 현장."

 "카쟝을 현행범으로 잡을 방법이 있는 건가요?"

 "일단은 그렇지. 그거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지시해주겠네."

 

 사장은 대화를 일단락 짓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그래, 그래서 가방 말고 '다른 하나'는 구해왔나?”

 

 구해왔다면 비서의 얼굴은 햇살처럼 환해졌겠지만, 실상은 물기 가득한 먹구름이었다. 얼굴 전면에 '낭패'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쓰여있었다.

 

 “저... 그게....”

 

 머뭇거림은 대답 아닌 대답이 되어 사장의 화통을 건드렸다.

 

 “20대 혈액을 구해오는 게 그렇게 어렵나?”

 

 백 사장은 참아왔던 분노를 모아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쾅!

 

 비서는 자기가 주먹에 맞은 양 식은땀을 흘렸다.

 

 “저, 저도 달구시에서 20대 사람들을 구해오려고 했습니다. 근데 그 쪽 20대 사람들은 절반 이상이 도적단에 가입되어 있더라고요. 괜히 건드렸다가 현장에서 큰 소동이 벌어질까봐 함부로 잡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외의 청년들을 잡아오자니,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하자가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비서의 짠물 섞인 하소연에도, 사장은 일말의 기다림이 없었다.

 

 “그 이하.”

 “네?”

 

 비서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하지만 그의 되물음은 사장의 짜증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그 이하에 있는 애들!”

 “그 말씀은.......”

 

 비서는 눈이 동그래졌다. 이해를 못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들은 내용이 믿기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의 시야에 들어온 장면은 부들거리는 사장의 주먹이었다. 사장의 눈동자는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20살보다 어린 애들이라도 잡아오라고!”

 

 사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비서를 노려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비서가 한두 마디만 더 끌면 사장의 말보다 주먹을 먼저 맞이해야 했다. 비서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백 사장과 눈을 마주쳤다.

 

 "알겠습니다."

 

 사장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장 비서는 이번 만큼음 백 사장의 기대에 부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

 

 '여기가 어디지?'

 

 온몸이 따스한 액체로 덮여있었다. 아니, 몸 전체가 온수에 담겨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물 속에 온몸이 붕 떠있는데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구름처럼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욕조 안인가?'

 

 눈을 뜨려했지만 눈꺼풀은 자물쇠로 채운 것처럼 단단히 잠겨 있었다. 모든 신경은 귀로 쏠렸다.

 

 딸깍.

 

 어디선가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 하지만 고막까지 가득한 액체 탓에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잘 안 들려. 뭐라고 웅얼거리는 거야?'

 

 청각에 집중을 더했다. 여성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조금씩 선명해졌다.

 

 "좋네. 이번엔 정상 수치야."

 

 '누구지? 당신 누구야? 누구 목소리지?'

 

 말을 걸고 싶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때 다른 목소리가 반대편에서 들려왔다. 걸걸한 목소리. 이번엔 남성이었다.

 

 "아직 좋아하긴 일러."

 

 '나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구나.'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려야 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데도 도무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그 느그읐느으?(거기 누구없어요?)"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볼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그의 정신은 다시금 흐려졌다.

 

 잠시 후, 장소는 다른 곳으로 바뀌어있었다. 카쟝은 눈을 뜬 게 아닌데도 자신의 위치가 변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온몸을 감쌌던 따스한 액체들이 사라지고, 스산한 냉기가 피부를 스쳐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전과 다르게 눈꺼풀이 가벼웠다.

 

 카쟝은 천천히 눈꺼풀을 뗐다.

 

 '여기가 어디지?'

 

 카쟝의 눈동자가 세상을 향했다. 하지만 카쟝을 맞이하는 것은 그를 바라보는 눈부신 조명들이었다. 카쟝은 얼굴을 향한 백열 탓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겨우 실눈을 뜬 카쟝은 천천히 고개를 좌측으로 돌렸다.

 

 삡... 삡... 삡... 삡...

 

 미세한 신호음을 내는 기계들과 은백색의 실험기구들. 카쟝은 그 중앙에 있었다.

 

 '실험대?'

 

 그제야 카쟝은 자신이 실험대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아까 자신의 고막을 흔들었던 여자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렸다.

 

 "실험체가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어."

 

 이제 귀도 열려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목소리도 또렷하게 들렸다.

 

 "어쩔 수 없지. 진정제를 다시 투여해."

 

 천장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이가 지긋할 법한 중년의 목소리. 특이한 점은, 음성에 쇳소리가 과도할 정도로 섞여있었다. 목구멍을 수세미로 비빈듯한 거친 목소리였다. 그 음성과 함께 카쟝의 왼편으로 문소리가 들렸다.

 

 끼익-

 

 누군가 그의 왼편으로 걸어왔다.

 

 또각또각.

 

 선명한 구두소리.

 

 "진정제 바로 투여할게."

 

 살짝 떠진 카쟝의 눈으로 날카로운 주사바늘이 보였다.

 

 '!'

 

 그때였다.

 

 쿠궁쿠궁

 

 카쟝을 발작이라도 난 것처럼 몸을 사방으로 흔들어댔다.

 

 "어! 움직이면 안 돼."

 

 당황한 여성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카쟝은 몸을 더욱 거칠게 흔들었다.

 

 덜컹덜컹

 

 남자의 목소리도 동요하고 있었다.

 

 "보호대가 풀리겠어! 빨리 진정제 놔!"

 "기다려 봐. 누군 뭐 놓기 싫은 줄 알아?"

 

 주사기는 카쟝의 팔뚝을 향해 바늘을 돌렸고, 그것을 알아차린 카쟝의 몸부림도 극도로 난폭해졌다. 그의 팔뚝에 힘줄이 도드라지게 올라왔다.

 

 '여기서 벗어나야해.'

 

 아무 이유도 없었다. 본능이었다. 그 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험신호가 온 신경을 자극했다.

 

 그 순간.

 

 툭.

 

 카쟝의 왼쪽 손목을 고정하던 벨트가 풀렸다. 왼팔이 자유로워진 카쟝은 재빨리 오른손에도 힘을 주었다.

 

 "어...어? 움직이면 안 되는데?"

 

 카쟝의 팔목을 향하던 주사바늘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다.

 

 "빨리 저 녀석 진정 안 시켜? 빨리 찌르라고!"

 

 남자의 언성은 점점 높아졌지만, 카쟝의 난동을 막기에 여성 혼자는 무리였다. 몸이 자유로워지자 카쟝의 흥분은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우리에서 벗어난 고릴라처럼 실험대를 흔들어댔다.

 

 쿵! 쿵! 쿵!

 

 투둑. 투둑.

 

 오른팔, 뒤이어 양발을 고정하던 벨트들이 차례로 풀렸고, 카쟝은 실험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스피커에선 남성의 다급함이 흘러나왔다.

 

 "지금 내려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저 녀석 못 도망치게 만들어."

 

 '여기서 벗어나야 해!'

 

 온몸의 신경이 도망치라고 소리 질렀다. 카쟝은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끄응...."

 

 털썩.

 

 카쟝은 마음만 급했지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는 갓 태어난 송아지마냥 힘없이 넘어졌다.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어서 밖으로 나가야 해. 여기 있으면 안 돼.'

 

 카쟝은 없는 힘을 끌어 모아 이리저리 휘청거린 끝에 벽을 짚고 일어났다.

 

 '아까 여자가 들어왔던 문은 저쪽이다.'

 

 실험대를 중간에 둔 채 카쟝과 여자는 대치하고 있었다. 여자는 주사기를 손에 쥐고 카쟝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카쟝의 눈동자에 다시 한 번 주사기가 맺혔다.

 

 '저 여자를 지나서 문으로 나간다.'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타다닥.

 

 카쟝은 뜀박질을 시작했다. 서너 발짝 디디고 쓰러지길 반복했지만, 점점 가속이 붙었다. 그 앞을 지키고 있던 여자는 어찌할 줄 모른 채 그저 양팔을 벌려 카쟝을 막았다.

 

 "이런! 오지마앗!"

 

 타닷. 타닷.

 

 카쟝은 그녀의 부탁을 가뿐히 무시했다. 그는 몸을 낮춰 그녀의 저지를 뚫었고, 그렇게 그녀의 마지막 저지선은 수포로 돌아갔다. 여자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반면에 포위에서 간단히 빠져나온 카쟝의 눈앞엔 출입구가 놓여있었다.

 

 '이제 저 밖으로만 나가면 돼.'

 

 끼익-.

 

 문 밖으로 밝은 빛이 보였다. 그가 탈출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어서... 나가자!'

 

 

 

 쿵!

 

 "아야...!"

 

 밝은 빛과 함께 카쟝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 뭐야?"

 

 그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익은 침대, 친숙한 벽지 그리고 익숙한 창문. 다름 아닌, 5년째 그가 살고 있던 골드 맨숀 202호 작은 방이었다.

 

 “또 악몽이야?”

 

 카쟝이 침대에서 떨어지는 충격을 감지한 리브의 목소리였다.

 

 '또 그 꿈이야.'

 

 1년에 적어도 10번은 꿨으니, 지금까지 100번은 넘게 꾼 꿈이었다.

 

 ‘요즘 들어 더 자주 나오네.’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그 꿈의 내용은 카쟝의 첫 기억, 즉, 그가 가지고 있는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이었다. 그 전의 기억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허억... 허억...."

 

 카쟝의 입에서 거친 숨이 휘몰아쳤다.

 

 '정말이지, 몇 번을 꿔도 익숙해지지를 않네.'

 

 잠에서 깬 카쟝이 방바닥에서 숨을 돌리는 동안, 리브는 거실에서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거실로 와서 빵 먹어."

 "오늘도 옆집 할머니가 사준 겁니까?"

 "강씨 할머니는 3주는 더 있어야 만날 수 있을걸? 오늘은 내가 친히 밖까지 나가서 사온 거야."

 

 바이러스에 안 걸리겠다고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꽁꽁 싸매고 나갔을 리브를 떠올리니 '빵이 어지간히 먹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 할머니는 벌써 가셨구나. 인사도 못 드렸네.”

 "뭘 그렇게 아련해 하냐. 또 만날 사람인데."

 "그건 그렇죠."

 

 카쟝은 식은땀으로 젖은 이불을 정리했다. 이불을 개면서 아까의 꿈이 다시금 되감기 되었다.

 

 '그 전의 기억은 하나도 없으면서 대체 왜 그것만 자꾸 꿈으로 나타나는 거지? '

 

 첫 기억이 꿈으로 계속 나타나는 현상이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정신과 치료도 받아봤지만, 의사는 "환자분이 가진 첫 기억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계속 자극을 주는 것일 겁니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참으로 영화 같은 증상이었다. 그 후에 덧붙이길, "그때의 충격 때문에 그 전에 있었던 기억도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큽니다."라며 기억상실증이라는 병명을 댔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 카쟝에게 일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걱정되는 부분은, 요즘 들어 그 악몽의 빈도수가 높아졌다는 점이었다.

 

 '수맥이 흐르나?'

 ‘침대 위치가 안 좋은 건가?’

 '베개를 너무 높은 걸 쓰나?'

 

 카쟝이 거실로 나가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그의 머리를 헤집었다.

 

 "그나저나 잠 한 번 요란하게 자더만."

 

 리브는 거실 소파에 반쯤 누운 채 도넛을 입에 넣고 있었다. 그의 입가 주위로는 달달한 가루들이 듬뿍 묻어있었다.

 

 “무슨 땀을 그렇게 흘려?”

 “또 꿨어요.”

 “아, 그 실험실 꿈?”

 “응.”

 

 리브도 카쟝에게 익히 들었던 내용이었기에 이젠 그리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땀 흘리는 카쟝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빵을 집어들었다.

 

 “도넛 좀 먹어.”

 

 카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부엌으로 향했다. 거실로 돌아온 그의 손엔 포크가 들려있다.

 

 "오늘 점심은 도넛으로 때워야겠어요."

 

 부엌에서 포크와 우유 한 컵을 들고 거실로 돌아오는 사이, 잠에 취해있던 정신도 서서히 돌아왔다. 그러자 카쟝은 리브에게 건넸던 부탁이 문득 떠올랐다.

 

 “근데, 백민관에 대해선 좀 알아봤습니까?”

 “응. 좀 알아보긴 했지.”

 

 카쟝은 리브의 옆에 앉음과 동시에 포크로 도넛을 찍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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