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옥성여제와 몽의 만남
황욱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바보? 바보라니?”
보옥이 황욱에게 말했다.
“아니 글쎄, 공가(空家)에 어떤 소년이 와있는데요, 뭔가 열심히 읽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뭘 그렇게 열심히 읽나 싶어서 살짝 엿봤는데, 참나 어이가 없어서...”
“뭣 때문에 그러느냐?”
“아니. 그게. 아무것도 안 적힌 책을 읽고 있더라니까요! 어쩌면 바보가 아니라 미친놈일지도 몰라요!”
황욱은 보옥이 소년이라는 말을 하자 십 수 년 전 방사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얼른 공가를 향해 가봤다. 거기엔 정말 한 소년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소년은 밖에서 인기척이 나자 밖으로 나왔다. 황욱이 소년을 보니 얼굴빛이 맑고, 눈이 초롱초롱한데다가 피부 또한 고와서 후줄근한 옷과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아니라면 꼭 높은 귀족 집안의 자제처럼 보일 것만 같았다.
황욱이 소년을 향해 물었다.
“여긴 어떻게 오게 되었으며, 너는 도대체 누구이냐?”
소년은 황욱의 고운 비단 옷차림을 보자 높은 신분의 사람인 것으로 알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천몽이라 하옵니다.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소년은 바로 오천년 된 이무기 광아의 여의주를 삼킨 몽이었다. 몽은 태라천선과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이곳에 와 있었던 것이다. 몽은 눈을 떠 주위를 살펴보고는 낯선 모습에 놀랐지만 태라천선이 산속의 작은 집에서 천서를 보며 오행과 음양의 이치를 익히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이곳이 자신이 머물 곳이라고 짐작했었다.
“것봐요! 미친 게 확실하다니까!”
황욱의 옆에서 보옥이 말했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모른다?”
“네. 그냥...”
몽은 차마 신선의 세계와 이무기에 대해서 말을 할 수가 없어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이곳에 와 있었습니다.”
“완전 바보 아니야?!”
옆에서 보옥은 정말 황당하다는 듯이 몽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노려보며 말했다. 보옥이 계속 몽을 향해 미쳤다, 바보다 하고 말하자 몽은 기분이 나빴지만 억눌러 참았다. 어쨌든 자신은 천민이었고, 상대는 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황욱은 방사가 했던 말도 있고 해서 더 이상 보채지는 않았다.
“그래.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느냐?”
“네.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몽의 말에 황욱이 물었다.
“어떤 책을 말이냐?”
몽은 천서(天書)를 읽고 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뭐라고 말하지? 그냥 책을 읽고 있었다고 말하지 말걸.’
몽은 괜히 책을 읽고 있었다고 말한 것을 후회하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데 갑자기 보옥이 몽의 옆으로 비켜서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뭘 그리 머뭇거려?”
보옥이 들어가서 책을 집어 들어서 나왔다. 보옥이 책을 집어 들자 몽이 놀라서 보옥으로부터 책을 뺐으려고 달려들었다.
“안 돼요!”
하지만 보옥은 아주 가뿐하게 몽을 피해서 밖으로 나왔다. 보옥은 다시 한 번 책을 살펴봤다. 책은 아까 자신이 살펴본 그대로였다. 거기엔 어떤 글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보옥은 그 책을 황욱에게 넘기며 말했다.
“책 좋아하네! 네 눈엔 이게 책으로 보이니? 그래 여기에 도대체 뭐가 써져 있는데?”
보옥의 말에 몽은 혹시나 하고 짐작했던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몽이 조금 전 선계(仙界)에서 이곳 작은 집으로 와서 천서를 펼쳤을 때 천서에 적힌 글자들은 단순히 종이위에 써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 움직이듯 글자들이 꿈틀거리며 휘리릭 솟아올랐다.
천서의 여러 장 중 한곳을 펼치면 그곳에 있는 글자들이 끝없이 올라왔고, 몽이 궁금해 하는 것이 있으면 순식간에 그것과 관련된 글들이 몽의 눈앞에 펼쳐졌다.
예를 들어 오행(五行)의 기운 중 화(火)의 장을 펴면 화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끝없이 펼쳐지며 올라오는 그런 식이었다. 몽은 그것이 너무나 신기해 한참을 천서를 펴보고 접고 하다가 어쩌면 이것이 오천년 된 이무기의 여의주를 삼킨 자신만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궁금했는데, 보옥의 행동이 몽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몽은 혹시나 누군가 하늘에서 내려준 천서를 함부로 보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이제 그럴 걱정은 사라졌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보옥은 몽이 자신이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씨익 웃자 몽을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이 상황에 웃냐? 지금? 정말 실성을 한 모양이구나! 미친놈.”
보옥의 거친 말이 아까부터 계속 거슬렸던 몽은 보옥이 또 미친놈이라고 하자 고개를 돌려 보옥을 노려보았다. 몽이 자신을 노려보자 보옥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어쭈? 너 지금 감히 날 노려보는 거니?”
황욱이 그런 보옥을 말렸다.
“그만! 이제 그만 하거라!”
황욱이 보옥으로부터 건네받은 책에는 정말 아무것도 적혀있지가 않았다. 하지만 황욱은 잡귀를 잡던 방사의 모습을 떠올리며 필시 이 아이도 보통의 아이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흐음....”
방사는 잠시 몽과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책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책을 다시 몽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받거라.”
몽이 얼른 천서를 건네받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황욱이 몽을 향해서 말했다.
“이곳에서는 네가 머물 만큼 머물러도 좋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느냐?”
몽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없습니다.”
“이제 막 왔으니 아직은 그렇겠지만, 혹시라도 필요한 것이 생각나면 말하거라. 내가 있는 곳은 저기 아래에 있으니 언제든 와도 좋다.”
“감사합니다.”
황욱은 몽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는 집으로 돌아와 하인을 시켜 먹을 음식을 보내주었다. 보옥도 황욱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지만 머릿속에는 온톤 몽에 대한 궁금증뿐이었다.
‘아버지는 왜 그 이상한 녀석을 계속 거기에 머무르게 놔두는 거지? 확 그냥 쫓아내 버려야 했는데.’
보옥은 혼자 들러서 차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던 안락했던 공간을 이상한 소년에게 빼앗긴 기분이 들어 무척 속이 상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왜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책을 다시 돌려준 거지? 분명히 미친놈인데?’
보옥은 밤늦도록 몽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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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라천선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던 몽은 잠시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자 전혀 낯선 어느 집속에 자신이 누워있다는 것을 알고선 허둥지둥 일어나 집 주위를 살펴보았다. 집은 누군가 사용을 하고 있는 듯 잘 정돈이 되어있었고, 깨끗했다.
‘여긴 어디지? 누가 살고 있는 집 같은데. 산속에서 혼자 지낼 거라더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혹시 태라천선님이 나에게도 장난을 치시는 건가?’
몽은 집밖으로 나가봤다. 그곳에는 울창한 숲이 있었다.
“숲속에 있는 집이 맞기는 하네...”
몽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주위를 잠시 살펴보았다. 멧돼지나 사슴이 가끔 멀리서 부스럭 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난 이제 이곳에서 지내야 하는 건가... 부모님은.... 잘 지내시겠지?’
몽은 갑자기 떠나오게 되어 부모님이 무척 그리웠지만, 지금은 찾아갈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그럼 이제 이곳에서 나는 뭘 하지.....아! 맞다. 천서!’
몽은 허겁지겁 공가 안으로 들어가 책을 찾았다. 천서는 공가의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몽은 천서를 천천히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한쪽에 있는 탁자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몽이 책 첫 장을 펼치자 글자들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책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몽은 깜짝 놀라서 숙였던 몸을 뒤로 쑥 뺐다.
‘뭐야? 글이 움직여?’
몽의 눈앞에 글자들이 솟아올랐고, 몽은 그것들을 읽었다. 아니, 굳이 읽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숙지가 되었다. 천서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첫째, 살생이나 모든 것의 생명을 다치게 하지 말 것.
둘째, 하늘의 가르침을 타인에게 누설하지 말 것.
셋째, 궁핍한 사람을 속이거나 타인의 재산을 탐내지 말 것.
넷째, 남을 험담하거나 한입으로 두말하지 말 것.
다섯째, 약자 또는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 것.
여섯째, 거만하게 굴거나 악한 행동을 하지 말 것.
일곱째, 술에 취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 것.
여덟째, 자랑하지 말고 항상 겸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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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서를 보고 익히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글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나와 있었다.
- 천서를 읽고 있다는 것은 그대가 하늘의 선택은 받은 자라는 뜻. 선택을 받은 자는 하늘의 가르침을 익힐 권리가 있지만 또 반드시 해야만 할 의무도 있다. 그것은 원시천존께서 인도하는 길로 만물이 바르게 흘러가도록 돕는 의무로써, 해야 할 일은 그때그때 스스로 깨닫고 알게 될 것이다.
몽은 신기해하며 계속해서 다음 장들도 읽어 나갔다.
뒷장부터는 오행, 천문, 지리, 역법, 음양의 조화 등 천지만물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들이 수두룩했고, 신기하게도 그 많은 글들이 책에 다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몽이 원하면 언제든 궁금한 부분이 눈앞에 병풍이 펼쳐지듯 글들이 펼쳐졌다.
몽이 신기해하며 읽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인기척이 났고, 황욱과 황보옥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곧 돌아갔다.
‘근처에 산다고? 저 사람들은 지체 높은 사람들 같은데 왜 성안에 살지 않고 이런 산에서 살고 있는 거지?’
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황욱과 황보옥에 대해서 궁금해 하다가 어쨌든 자신이 그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천서를 계속 읽었다.
그런데 몽이 아무리 빠르게 숙지를 한다고 해도 글이 책 속에서 마치 분수처럼 쉼 없이 올라왔기에 그것들을 다 익히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휴우. 좀 쉬엄쉬엄 하면서 천천히 익히자.’
몽은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다가 너무나 방대한 글들에 머리가 어지러워 그냥 이리저리 천서를 흔들어가며 대충 훑어보았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는 다른 장들과 다르게 글이 올라오지 않고 어떤 지도가 몽의 눈앞에 펼쳐졌다.
‘어? 이건 뭐지?’
지도 위에 글자가 둥둥 떠 있었다.
신물지도(神物地圖)
그리고 거기에 설명이 적혀있었다.
- 신물(神物)은 하늘에서 필요에 의해 인간들이 사는 지상에 내린 신령스러운 물건이다. 어떤 신물은 적절한 곳에 존재하고 있지만 어떤 신물은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인간세계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 있기도 하고, 인간세계에 존재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인 것도 있고, 이제 인간세계에서 그 역할을 다 했거나 반드시 사라져야만 하는 신물들도 있다. 이것은 그런 신물들이 어디에 있는지 나타내는 지도이다. 인간세계에서 사라져야 할 신물이 나타나게 되면 반드시 찾아서 궁극(窮極)의 무(無)의 장으로 집어넣어야만 한다.
‘궁극의 무?’
몽은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책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마지막 장 신물지도의 뒷면에 까만 종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 궁극(窮極)의 무(無)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설명이 되어 있었다.
- 궁극(窮極)의 무(無)에는 잡귀, 망령, 신물 등 인간세계의 기운이 아닌 모든 것들을 집어넣을 수 있다. 만일 인간세계의 기운이 아닌 존재가 궁극(窮極)의 무(無)에 들어가지 않으려 기운을 펼치면 궁극(窮極)의 무(無)에서 하늘의 신장(神將)을 불러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