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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경쟁을 통해 올라온 음식들. 좋은 음식이라고 판정받아도 손님들이 찾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없애는 이곳은 디저트 뷔페, 로제와인.

 
19 무심하면서도 따뜻한
작성일 : 16-10-23 06:59     조회 : 155     추천 : 5     분량 : 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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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대현은 규동이 간 후에 생각에 잠겼다. 이틀 전에 꾼 꿈의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와 마카롱. 남자 아이는 분명 자기 자신이 맞았다. 자신이 어릴 적에 여자 아이를 좋아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자 아이가 정확히 누군지 몰랐다. 대신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과 코와 입, 그리고 이마선과 턱선, 천천히 생각해 내다가 갑작스레 윤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여자 아이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

 

 

  노크를 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윤아는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돌렸다. 대현은 등을 돌린 채로 누워있었다. 윤아는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고 대현에게 다가섰다. 용기 내어 대현을 불렀지만 대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현아 자?”

 

 

  윤아는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땀 한 줄기가 대현의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대현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너 몸이 왜 이렇게 뜨거워? 약은 먹었어?”

  “나 좀 내버려 둬,”

 

 

  대현이 몸을 돌려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었다.

 

 

  “네 상태가 이런데 어떻게 내버려 둬! 기다려봐.”

 

 

  윤아는 급히 근처 약국에 다녀왔다. 다시 대현의 방에 들어가니 대현은 갓 만들어진 죽을 먹고 있었다. 규동이 아픈 대현을 생각해서 좀 전에 만든 것을 데운 것이었다. 윤아는 대현의 침대 옆 바닥에 앉아 다 먹기를 기다렸다. 자신의 먹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빤히 바라보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한 숟가락을 들다 말고 말했다.

 

 

  “알아서 약 먹을 테니까 네 방이나 가.”

  “싫어. 지켜볼래.”

  “네가 계속 보니 먹다 체할 것 같아.”

  “정말? 그 정도야?”

 

 

  윤아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현이 자리를 피하려는 윤아에게 놀라 황급히 윤아의 손을 잡았다.

 

 

  “야, 농담이야. 농담. 진담으로 받아들이지 마.”

 

 

  윤아가 상처 받았다는 표정으로 대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대현은 눈을 여기저기 굴리다 윤아의 손을 밑으로 끌어당겼다.

 

 

  “옆에 있어. 옆에 있어줘.”

 

 

  윤아가 가만히 앉아 대현을 쳐다보고 있을 때, 대현은 그릇을 비웠다. 윤아가 준비해온 미지근한 물과 약을 받았다. 묵묵히 윤아가 하라는 대로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윤아는 해열팩을 대현의 이마에 붙였다. 대현의 이마에 냉기가 스며들었다.

 

 

  “이건 뭐야?”

  “열 내리는 팩이래. 신기해서 샀어.”

  “나 이제 잘 거야.”

  “응. 잘 자.”

 

 

  윤아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대현을 지켜보다가 뒤돌아서 문을 열었다. 대현은 벌써 잠이 들었는지 얕은 숨을 쉬다가 기침을 했다. 윤아는 문고리를 잡고 고민하다가 문을 닫았다. 대현의 옆으로 가, 바닥에 앉았다. 상반신을 꼿꼿하게 세워 침대에 기댄 뒤, 양 팔로 팔베개를 만들어 거기에 얼굴을 갖다 댔다. 대현은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후로 몇 시간이 지날 동안 윤아는 대현의 안색이 좋아질 때까지 대야에 물을 기르고 수건을 차갑게 만들어 대현의 땀을 닦아주었다.

 

  대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자기 전까지만 해도 느꼈던 한기가 사라지고, 막혔던 코가 뚫려 숨 쉬기가 한 결 편해졌다.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이불이 묵직했다. 윤아가 어느새 골아 떨어져 있었다. 대현은 윤아의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갔다. 윤아의 눈이 번쩍 떠졌다. 대현은 놀라서 몸을 뒤로 뺐다.

 

 

  “어!”

  “뭐, 뭐야.”

 

 

  윤아는 괜히 민망해져서 낭창하게 웃어 넘겼다. 대현은 어느새 안색이 돌아오면서 식은땀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윤아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침대 위에 올라간 뒤 대현에게 바짝 다가갔다. 대현은 양 손으로 침대를 짚고 몸을 최대한 뒤로 뺐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윤아는 손을 뻗어 대현의 이마에 짚고 열을 쟀다. 더 이상 열이 나지 않았다. 얼굴이 점차 밝아지더니 대현을 꽉 안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다행이다……. 다행이야.’

 

 

  대현은 윤아를 뿌리치지 않고 얼떨결에 안았다.

 

 

  ‘이젠 다치지 마! 걱정 했잖아.’

 

  “이젠 아프지 마! 걱정 했잖아.”

 

 

  윤아는 대현을 안다말고 대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번엔 미안했어. 네가 효린이를 생각해주고 한 말이었는데 난 그것도 몰라주고 서운하게 만드는 말을 뱉었어.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

  “나도 미안. 조만간 김효린과 진지하게 얘기 나눠볼게.”

 

 

  대현이 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데려와야지.”

  “앗, 그러면 나도…….”

 

 

  규동이 문을 벌컥 열며 말했다.

 

 

  “대현아 우리 동창 모임 취소 안 됐어!”

 

 

  윤아와 대현은 규동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라 급히 떨어졌다. 규동은 그들이 한 침대 위에 있다는 것에 입을 꾹 닫고 있다가 시선을 회피했다. 괜히 규동의 얼굴이 붉어졌다. 침착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미, 미안. 방해해서.”

 

 

  대현은 우왕좌왕 하며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규동은 벌써 나가고 없었다. 대현은 규동이 나갔던 문을 쳐다보았다.

 

 

  ‘윤아한테 고백을 할까 해.’

 

 

  분명 규동이 대현에게 했던 말은 단순한 상담에서 그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윤아가 옛 기억 속에 있는 대현만 바라보는 모습을 예상하고 있는 말이었고,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일종의 무게가 있는 알림이었다. 윤아는 갑자기 기분이 다운된 대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대현은 주먹에 힘을 주었다. 대현은 규동과 윤아 사이에 오도카니 선 기분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제 그만 나가.”

  “응? 아, 맞다. 아프니까 푹 자야지. 잘 자 대현아.”

 

 

  윤아가 나간 뒤, 대현은 꿈속에서 여자아이가 했던 말을 되새겨 보며 눈을 감았다.

 

 

 -

 

 

  사건이 터진 후 세 시간이 지난 시각이었다. 효린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온 몸을 떨었다. 상황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저 혼자 살겠다고 발뺌한 리하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로제와인에 어떻게 출근해야 할 지 까마득했다. 무엇보다 효린이 제일 불안한 것은 윤아와 명수였다. 무슨 낯짝으로 봐야할 지 걱정이었다. 효린은 이불을 더욱 끌어 덮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 이럴 땐 일찍 자는 거야. 아무 일도 없어. 아무 일도…….”

 

 

  효린은 말을 하다말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 잠을 청해보았지만 결국 밤을 새고 말았다. 부스스하게 일어난 효린은 거울을 통해 얼굴의 상태를 살폈다. 코와 입술이 두툼해졌고 눈은 부어서 두꺼운 살점이 잡혔다. 효린은 자리에 주저앉아 화장대에 머리를 박았다. 도저히 이 상황으로 출근을 하기는 무리였다. 멍하게 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이 흐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런치 타임에서 쉬는 시간, 그리고 디너 타임이 될 때까지 효린은 한숨만 쉬었다.

 

 

  “변명을 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할까…….”

 

 

  어떤 방법으로 말해서든 말을 꺼낸다는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일을 관둘 수밖에 없는 건가.’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효린의 나이 스물넷. 다른 또래들은 아직 대학을 다니거나, 개중에서도 친구와 어울리지 못한 채 ‘아싸’로 헤매거나,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에 목매이든가,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한 상태로 알바를 한다든가, 놀기에 바쁘거나, 설계하지 않은 미래를 직시하거나, 재수나 공무원 시험 준비로 미래를 투자하거나, 몇몇 남자들은 여러 가지의 이유로 군대를 가기도 했다. 이미 취직에 성공했다 해도 되게 소수의 사람이었고, 적성이나 흥미에 맞지 않아 바로 사직을 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그 중에 있어서 효린은 성공한 사람에 속했다. 자신의 흥미에 알맞게 최고급 호텔에 취직하게 되었으니, 또래의 부러움을 한 번에 받는 건 당연했다. 자신만만했다. 자신이 특별하다 생각했다. 로제와인의 파티쉐로 근무하면서 자신의 인생은 보장되었다 생각했는데, 관둘 것을 염두에 두니 자신도 결국 다른 사람과 별 다른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천천히 일어나 모자를 뒤집어쓰고 무턱대고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의 불은 아직까지 켜져 있었다. 어쩌면 지금 시간엔 명수가 학원에서 연습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효린은 학원 앞을 맴돌다가 뒷걸음질을 했다. 로제와인은 물론 학원에 발을 디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했을 때, 누군가와 부딪혔다. 효린이 죄송하다고 몸을 숙여 사과했다.

 

 

  “효린아.”

 

 

  무서워서 피하고 싶은 목소리, 그렇지만 듣고 싶었던 그리운 목소리였다.

 

 

  “네가 여기에 왜 있어?”

 

 

  효린은 명수가 자신의 손을 잡기도 전에 바로 옆 골목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효린이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명수가 효린의 뒤를 쫒아왔다. 명수는 가쁜 숨을 이으며 말했다.

 

 

  “효린아, 나랑 잠시 얘기 좀 해.”

 

 

  효린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명수가 효린에게 다가서자, 효린은 뒷걸음질을 쳤다.

 

 

  “제발 부탁이야. 10분, 아니 5분이라도 좋아.”

  “난 할 얘기 같은 거 없어…….”

  “제발 돌아와 줘.”

  “미안. 미안해…….”

 

 

  명수가 조심스레 한 발자국씩 다가오자, 효린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숨이 벅차도, 명수가 더 이상 쫒아오지 않아도,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효린은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효린은 그제야 멈추고 발신자가 누군지 확인했다. 명수였다. 효린은 침을 삼키며 거부 버튼을 눌렀다. 벨소리가 그치고, 한순간에 적막해졌다. 효린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효린이 출근하지 않은지 2일 째. 효린은 로제와인 앞에서 맴돌다가 끝내 들어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3일 째, 효린이 용기 내어 윤아에게 문자를 보내려다 실패했다. 출근 시간에 맞춰 로제와인 호텔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4일 째. 명수가 효린의 아파트 입구에 서서 한참 동안 효린을 기다렸다. 종종 효린네 층을 위로 올려다보곤 했다. 효린은 그런 명수를 베란다에서 몰래 내려다보았다. 효린에게 연락 온 사람은 윤아와 명수였는데, 대다수가 명수의 문자와 전화였다.

 

 

  -난 네가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릴 거야.

 

 

  효린은 계속해서 같은 맥락의 문자가 오자 하릴 없이 답장을 보냈다.

 

 

  -제발 난 할 얘기 없으니까 그만 집으로 가.

 

 

  그런 후에 명수를 지켜보았다. 명수가 추위에 떨다 말고 문자를 확인하더니, 못 본 척이라도 하듯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효린은 잔뜩 웅크리고 앉아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소매를 걷은 효린의 손목이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찬바람 때문에 소름 돋았다. 틈새바람이 이리도 시린데 밖은 오죽할까, 라는 생각을 하자니 명수에게 한없이 죄스러웠다. 명수가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고 나오라고 할 때마다 할 말이 없다며 모른 척 했지만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명수가 난처하게 된 자신을 어떻게든 도우려 한다는 걸.

 

 

  ‘나는 매번 너한테 도움을 받았는데, 너를 위해 준 건 없는데.’

 

 

  어느덧 시계바늘은 자정을 넘어서 새벽을 가리켰다.

 

 

  ‘이번마저도 날 도와주는 이유가 뭐야.’

 

 

  효린은 명수가 재채기 하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두터운 담요와 핫팩,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 밖으로 나갔다. 코끝이 아리도록 시린 것을 뒤로한 채 7층에서부터 1층을 향해 뛰었다

 

 .

  ‘네가 그렇게 노력해주면 나를 향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괜찮아질까? 윤아가 나를 용서해줄까? 권리하도 죄책감을 느낄까?’

 

 

  효린이 계단을 뛰어 내려갈 때마다 복도에 설치되었던 센서 등이 빠르게 켜졌다.

 

 

  ‘무엇보다 내가 그들과 맞서야 하는데, 나도 노력 하고픈데. 로제와인에 애착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관두긴 힘들 것 같은데. 윤아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아파트에서 완전히 나왔을 땐 아무도 없었다. 몇 시간 동안 기다려주던 명수가 결국엔 가버렸다. 효린의 등을 비추던 센서 등이 꺼졌다. 이제 효린의 주위는 완벽하게 캄캄했다.

 

 

  ‘정말 그러고 싶은데…….’

 

 

  효린은 컴컴한 복도 제자리에 주저앉아 담요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얼마 동안 그랬을까. 누군가 효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효린은 손길과 동시에 냉기에 놀라 고개를 들어올렸다. 명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지그시 효린을 향해 웃어보였다. 효린이 울상을 짓자 명수가 효린을 감싸 안았다. 효린이 진정할 때까지 명수는 말이 없었다.

 

  한 시간 뒤, 효린은 꽤나 진정된 상태였다. 효린이 코를 훌쩍이자, 명수는 담요로 효린을 감싸고 보온병에 담긴 물을 건넸다. 효린은 그것을 잠시 지켜보다 명수에게 먼저 마시라고 권유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먼저 입을 열었다.

 

 

  “나 되게 한심하지?”

 

 

  명수는 물을 마시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니.”

  “나한테 실망 많이 했잖아.”

  “아니야.”

  “미안해. 자꾸 .못난 모습만 보여줘서. 분명 나한테 정 떨…….”

 

 

  명수가 효린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니라니까. 왜 자꾸 그런 말 해, 효린아.”

 

 

  효린이 놀란 듯 명수를 보다가 고갤 숙였다. 도저히 명수를 볼 자신이 없었다.

 

 

  “내가 윤아의 노트를 훔쳤잖아. 걔의 중요한 아이디어를 내가 훔쳐서 시험에 써버렸어. 그것도 두 번씩이나.”

  “왜……, 그랬는지 효린이의 솔직한 생각 들어도 될까?”

 

  “너 내가 로제와인에 처음 들어왔을 때 기억 나? 기억나겠지. 내가 입사했을 당시 엄청 시끄러웠으니까. 내가 할 줄 아는 게 제대로 없어서 많이 헤맸을 시점에 네가 날 엄청 이끌어줘서 조금씩 로제와인에 적응이 되었잖아. 친구들도 생기고. 그래서 어느 정도 내 자리가 생겼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딱 그 시기에 윤아가 입사했어. 엄청 헤매고 있기에 내가 저 상황을 경험했으니까 윤아에게 애착이가서 도왔어. 생각보다 윤아가 빠르게 적응해가면서 실력도 대단한 걸 보니까 엄청 불안하기 시작한 거야. 마냥 나와 비슷할 줄만 알았던 애가 천재 같이 척척 해내니 어쩌면 내가 힘겹게 차지한 자리를 빼앗아 갈 것 같아서.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것 같아서 무서웠어.”

 

 

  명수는 앞을 보며 얘길 듣다가 무섭다는 단어에 흠칫하며 효린을 보았다. 효린의 작은 어깨가 들썩였다. 토닥여주며 선뜻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건네야할지 모를뿐더러 오히려 묵묵히 들어주는 게 최고의 위로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명수는 효린의 어깨로 향했던 손을 거두고, 효린을 잡은 자신의 손 위에 나란히 그 손을 겹쳤다.

 

 

  “그러다 한 날 윤아 노트 사라졌다고 난리였었잖아. 그 사건이 터지고 우리 점심시간 때 직원 화장실에 갔는데 권리하가 윤아 노트를 가지고 있었어. 무슨 상황인지 물어보려고 걔 얼굴을 봤는데 웃고 있더라.”

  “웃고 있었다고?”

 

 

  ‘권리하, 네가 윤아 노트 찾은 거야?’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안 돌려주고 뭐해?’

  ‘내가 왜 돌려줘야 해?’

  ‘뭐?’

 

  ‘노트 관리를 소홀히 한 주인이 잘못 아닌가? 노트 봤는데 생각 외로 잘 되어 있어서 내가 가질까 한데. 이 아이디어 하나 내 노트에 쓰고 내가 만들었다고 우기면 끝 아냐? 어차피 이 아이디어를 아는 사람이 노트 없는 임윤아와 내 노트에 써졌다고 우기는 나뿐일 텐데.’

 

  ‘암만 남의 아이디어가 탐난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아아, 시끄러. 그럼 네가 임윤아한테 주든가.’

 

 

  “그러고 권리하가 나한테 노트를 넘기고 갔어. 내가 따지려고 걔 따라 락커로 갔는데 오픈 시간이라 급한 대로 내 가방에 놔두고 일했어. 일 끝난 뒤엔 내가 노트를 가지고 있었단 걸 깜빡하고 집에 가져가다 뒤늦게 발견했는데 자꾸 권리하의 말이 생각난 거야. 솔직히 궁금한 것도 있어서 살짝 보게 되다가 나도 모르게 해선 안 될 짓을 했어. 내가 너무……, 내가 너무 한심해. 난 이제 로제와인에 있을 자격이 없어. 이런 상태로 어떻게 다시 복귀할 수가 있겠어. 나는 사람들 그 반응 더 이상 못 봐, 못 견뎌.”

 

 

  효린은 압박감을 버티지 못하고 허리 숙여 울었다. 명수는 그런 효린을 감싸 안아 말했다.

 

 

  “나는 너를 이해해. 내가 널 지켜봐왔으니까. 로제와인의 분위기 때문에 하루 이틀하고 관둔 사람도 많은데 여린 네가 그 곳을 버틴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불안한지 잘 알아. 그런데 내 생각엔, 남들의 시선을 버틸 생각보다 윤아에게 사과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너 로제와인에 계속 있고 싶지?”

  “응.”

 

  “이 일은 절대로 묻을 순 없어. 잊어서도 안 돼. 사람들의 시선도 비난도 이미 엎질러 놓은 네 일의 죄 값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너를 다시 인정해줄 때까지, 네가 완벽하게 자리 잡을 때까지 내가 도와줄게. 아예 밑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앞으로 올라갈 일만 있으니까.”

 

 

  다음 날 휴일. 윤아가 거실 소파에 누워 잠든 외삼촌을 발견했다. 테이블엔 책 여러 권이 어지럽혀 있었고, TV는 켜져 있었다. 한참 해양 다큐가 방송되고 있었다. TV 속 게가 탈피를 하고 있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더 큰 골격을 가지기 위해 기존 골격을 벗어내는 과정이었다. 게가 안간힘을 쓰며 몸통을 드러냈는데, 기존의 허연 골격과 달리 새 골격은 빨갰다. 몸통에서 마디와 다리가 서서히 나왔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탈피하는 것을 멈췄다. 그러다 다시 몸통을 흔들었는데 쉽게 나오지 않았다. 게는 하던 행동을 멈췄다. 시간이 지나도 더 이상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외삼촌, 일어나셔요.”

 

 

  윤아가 외삼촌을 흔들어 깨웠다. 분명 외삼촌은 책을 보다 지쳐 드라마를 봤을 것이다. 그러다 잠들었을 것이고. 외삼촌이 비몽사몽 눈을 뜨며 기지개를 켰다.

 

 

  “어, 으, 응? 왜?”

  “잠은 방에 가서 주무셔요. 거실은 추워서 감기 걸려요.”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래야지.”

 

 

  외삼촌이 눈을 반쯤 감고 비틀대자 윤아가 외삼촌을 부축해 방으로 데려갔다. 그런 후 다시 거실로 나와 테이블에 어질러 놓였던 책을 정리했다. 그 동안 TV에서 탈피 과정을 하던 게가 꿈틀대더니 기어코 자신의 옛 껍데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윤아는 시계를 보다가 방에서 나갔다. 신발장에 대현의 신발이 없었다.

 

 

  “얘는 나한테 말도 없이 효린이 만나러 갔으면서 왜 아직까지 안 오는 거야. 곧 있으면 버스 막차인데.”

 

 

 -

 

 

  대현은 켜진 핸드폰 화면으로 시계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효린이 당황한 기색으로 대현을 쳐다보았다. 몸이 경직되었다.

 

 

  “야, 너는 이 밤에 어딜 싸돌아다니다가 오는 거야?”

 

 

  대현과 효린은 근처 벤치에 앉았다. 편의점에서 갓 사온 따뜻한 캔 커피를 들고서, 잠시 동안 찾아온 정적. 대현이 어색한 분위기를 먼저 깼다.

 

 

  “미안하다. 애들 앞에서 너 망신 줘서.”

  “되, 되게 직설적으로 말하네.”

  “뭘. 맞는 말이잖아.”

  “그래도 이렇게 그 말 하려고 찾아올 줄 몰랐어.”

 

 

  대현은 머쓱했던 것인지 캔 커피를 모조리 마셨다. 목이 바짝바짝 타올랐다.

 

 

  ‘맥주 한 잔 하려려니 여자라서 할 수도 없고.’

 

 

  “좀 더 좋은 방법으로 생각해 낼 수도 있었는데, 예전의 사건으로 또 다시 누군가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나니까 오히려 소리쳤던 것일지도 몰라.”

 

 

  “예전의 사건?”

 

 

  “네가 입사하기 전에 한 여자가 있었는데, 매번 조리실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거든. 사람 갈구는 건 기본이고 만만하고 소심한 애 골라서 아이디어 훔친 사건도 있었어. 그러다 마스터 귀에 들어가 소동이 더 커졌었단 말이야. 로제와인 역사상 가장 안 좋게 퇴출된 경우지. 사람의 아이디어 자체는 되게 소중한 거라서, 이번 경우도 사실 마스터 귀에 들어갔더라면 위험했어. 마스터께선 분명 나를 믿고 총주방장 자리를 물려주신 건데 내가 다른 멤버들의 속사정 몰라주고 생긴 일이라면 끔찍하지. 신뢰를 잃는 것도 모자라 팀원까지 잃어봐.”

 

 

  대현은 상상도 하기 싫은 듯 몸서리를 쳤다.

 

 

  “힘들었지?”

 

 

  어떠한 말보다도 더 뭉클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누가 더 고통스러웠다느니, 누가 더 힘들었다니 따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어. 우리 나이는 다 똑같이 힘들어하고 있잖아. 내가 과연 이 자리에 계속 머물러도 되는 사람인가. 이 일에 적합한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엄청 불안해 나도. 나는 네가 노력하는 모습을 알기 때문에 안 좋은 방법을 선택 했을 때 무엇보다 안타깝지 않았나 싶었어. 그래서 좀 더 화가 났던 거고.”

 

 

  대현이 고갤 돌려 효린을 보며 말했다.

 

 

  “너 다시 출근해라. 다시 출근 하고 싶잖아. 안 그래?”

  “그야 그렇지만…….”

  “남들 시선이야 죗값이라 생각하고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 첫 입사 때랑 다를 거 없을 걸. 힘든 거 있으면 어느 정도 도와줄 생각 있으니까. 네가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거라고 보여줘.”

 

 

  ‘명수랑 똑같은 말 하네.’

 

 

  “노, 노력할게. 고마워.”

  “그럼 난 간다.”

  “버스 막차 시간 지났지 않아?”

  “괜찮아. 지하철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대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 가다가 돌아서서 말했다.

 

 

  “힘내라.”

 

 

  효린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만 끄덕였다. 대현이 생각보다 팀원에게 정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무심하면서도 힘내라고 하는 말에 진심이 느껴져서.

 

 

  “정말 힘낼 수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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