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겨울과 밤의 검사
작가 : Dr러다이트
작품등록일 : 2017.6.21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 행복과 타오르는 복수심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해매는 검사의 이야기

 
2. 황금이 피를 부른다. 01
작성일 : 17-06-21 14:04     조회 : 30     추천 : 0     분량 : 1164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잘 닦인 가도를 따라 한 대의 마차가 지나가고 있다. 마부석에는 마부가 따로 없이 두 기사가 말을 몰고 있었으며 마차 안에는 지루한 얼굴의 이리스와 크로드, 살짝 긴장한 표정의 렉스가 있었다.

 “따분해......”

 “......”

 렉스는 이리스와 크로드를 살펴보았다. 크로드는 이번에도 불침번을 하려는 것처럼 미리 잠을 자고 있는 상태였고 이리스의 무릎위에는 마야가 그녀를 위해 써준 책이 있었지만 렉스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적혀있어서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몰랐다.

 “따분하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왕자님의 생일파티따위 가지 않는 건데”

 “마님이 써주신 책을 다 읽기 전에는 도착할 것입니다.”

 “엄마 말로는 -회귀의 검-에 대한 이론이라고 하는데 재미있는 내용은 별거 없고 이상한 내용만 너무 많단 말이야 렉스는 읽지도 못할걸?”

 마야가 써준 책은 ‘브람어’라는 이름의 언어였는데 아카샤룬어 계통에 속하는 고대어에 속해서 현재는 아는 사람이 없는 언어다. 그녀의 주요 실험기록은 보안상의 이유로 대부분 이 언어로 되어있다.

 “흠...하지만 외부로 마나를 방출하는 기술이 주를 이루는 검술은 이론적인 내용이 정말 중요합니다. 서리늑대의 검은 이론보다는 몸으로 터득하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제가 보기에 마님이 쓰시는 검술은 뭔가......격이 다른 검술입니다. 깨달음을 많이 요구하는 검술...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이리스는 자신이 칭찬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보였다. 렉스는 그녀의 관심을 돌려보려고 했다.

 “뭐 책이 지루하시다면 명상이라도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남대륙의 검술을 대부분 내면의 단련을 중요시 여기지 않습니까?”

 “명상? 마차에서?”

 “일종의 훈련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마차의 흔들림 속에서도 내면의 균형을 유지하는 훈련”

 렉스의 말에 혹한 그녀는 곧바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비록 마차 안이라 가부좌를 틀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그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역시 아가씨의 재능이란......’

 노스가드성에서도 마야가 용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크로드나 이리스, 나리아정도지만 그녀가 마야가 가르쳐준 검술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처음 그녀가 오러를 발했을 때도 노스가드의 전사들이라면 자연스럽게 깨달게 되는, 냉기를 머금은 푸른색 오러가 아니라 검은색 오러였다. 아마 이미 다른 오러를 쓸 수 있기에 서리늑대의 검을 배우는데 지장이 생겼으리라

 ‘그래도 아가씨라면 분명 훌륭한 영주가 되실 수 있겠지’

 그녀가 명상에 집중하고 있자 렉스도 불침번에 대비해 잠을 자두기로 했다.

 

 “으음......벌써 저녁인가?”

 “일어나셨습니까?”

 “이 근처면 앞으로 3일만 더 가면 되겠군. 이리스 일어나라”

 그는 명상을 하다 잠들어버린 이리스를 깨웠다.

 “우웅......추릅”

 멍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킨 이리스는 침을 쓱쓱 닦아내고는 몸을 일으켰다.

 “자려면 저녁 먹고 천막 안에서 자라”

 “으하아아아암......알겠습니다.”

 마차를 운행하던 기사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식사를 준비했다. 저녁식사가 끝날 때쯤이 되자 이리스도 제정신을 차렸다.

 “모닥불을 교체할 때가 되면 깨우겠다.”

 장작을 넉넉하게 넣었기 때문인지 모닥불은 제법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불이 약해지려면 밤이 절반은 지나가야 하리라

 “나도 아빠랑 불침번 할래!”

 “응? 불침번은 밤에 안 자야해서 많이 피곤할거야 일찍 자야지.”

 “마차에서 많이 잤어. 오랜만에 아빠랑 둘이서 있고 싶은걸”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렉스경은 일찍 자게”

 어차피 노스가드 남쪽이라 마물이 등장하거 하진 않을 것이다. 뭐 나온다 해도 자신 혼자면 충분하지만

 “어? 후작님 그러면......”

 “일찍 자라면 일찍 자게”

 “자자 이만 들어가세”

 “오늘 푹 쉬고 내일 교대 좀 해주면 되지 않나?”

 모처럼 딸이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는데 저렇게 분위기 깨서야! 크로드가 눈에 힘을 팍 주고 노려보자 마차를 몰던 두 기사가 자연스럽게 한 팔씩 렉스를 붙잡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모닥불 앞에는 크로드와 이리스만이 남았다.

 “헤헤헤 아빠 재미있는 이야기해주세요”

 “그래그래”

 이리스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크로드의 무릎위로 올라갔다. 마야보다는 조금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리스가 좋아하는 이야기면 그 이야기지? 매일 들으면 지겹지 않아?”

 “응 난 엄마가 해주는 이야기도 좋지만 아빠이야기도 좋은 걸”

 “그래그래”

 이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노스가드의 시초에 대한 이야기이다. 크로드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부터 지겹도록 들은 이야기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지만 그만큼 많이 들었기에 머릿속에 똑똑히 박혀있었다.

 “먼 옛날 남대륙과 북대륙이 갈라지기 이전에 ‘선’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제국은 ‘가장 어두운 3일 밤’사건과 함께 대륙이 나눠지면서 붕괴했습니다.”

 산맥 너머의 로뎀과 셀도란제국을 거쳐 여러 왕국으로 분열된 북대륙 동부에 비해서 기나긴 역사를 가진 메이트라 왕국은 고대의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대륙 분열되기 이전의 제국에 대한 것부터 지금까지 그 역사는 무려 1000년이 넘었다.

 “메이트라의 영주는 살아남은 이들을 모아서 메이트라왕국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를 결집시켜 밀려드는 마물의 공세를 견뎌냈습니다.”

 메이트라 왕국은 원래‘선’제국의 북동쪽에 위치한 지방 이름이었다. ‘선’제국시대 당시에도 메이트라는 ‘끝의 산맥’의 마물이 몰려오는 장소라 원래 메이트라를 지키는 병사 외에도 제국의 기사들이 와서 마물퇴치를 도왔다. 하지만 붕괴와 동시에 그런 지원은 끊어지고 메이트라의 사람들은 밀려드는 마물들과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해야 했다.

 “하지만 메이트라의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저항했습니다. 다행이 메이트라 국왕에게는 유능한 세 장군이 있었습니다.”

 매의 눈을 가졌다고 불렸던 ‘호크아이’, 영리하고 재빠른 ‘로드러너’, 그리고 냉정하고 강맹한‘노스가드’ 메이트라의 영주는 스스로를 왕이라 선언하고 세 장군에게 작위를 내려 메이트라를 지키게 했다.

 메이트라의 서부를 책임지는 ‘호크아이’,부족한 거주지 확보를 위해 당시 미 개척지였던 동부를 탐험하는 ‘로드러너’ 그리고 가장 험한 북쪽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노스가드’

 메이트라가 안정을 되찾은 것은 200년도 체 되지 않았다. 북부, 서부의 방어선이 붕괴되면서 수도까지 마물이 밀려든 적도 있으며 극심한 가뭄이 오거나 홍수가 일어나면 식량을 구할 장소가 없기에 마물의 고기를 뜯으며 버텨야 했다.

 긴 세월동안 무수히 많은 가문이 생겨나고 스러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왕가를 비롯한 세 가문만은 그 명맥을 유지하고 휘하 가신들을 늘려가며 각자의 의무를 지켰다.

 이미 몇 번이나 들려준 이야기지만 이야기가 이어지고 조상의 활약상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탄성을 내뱉고 눈을 반짝인다. 웅장한 대자연아래서 차가운 냉기의 힘을 다루는 법을 터득한 전사들, 때로는 밀려드는 마물에 성을 빼앗기고 마물의 침입을 허용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파죽지세로 마물들을 몰아붙여서 험난한 설원의 지배자가 되었다. 몇십, 몇백년이 되도록 그 이름이 지워지는 일 없이 북부를 지킨 노스가드

 “......그래서 지금은 노스가드의 57대손인 이 아빠 크로드 노스가드가 고귀한 노스가드의 성을 이어받아 그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약 200년 전부터는 ‘셀도란의 유배자’라고 불린 일부 마법사들, 켈라인, 에시디아의 성직자들과 그들 틈에 섞여있던 용인들이 합류하면서 마물의 공격으로부터 제법 안전해졌다.

 “그러고 보니 아빠랑 엄마는 어떻게 만났어? 엄마는 남대륙인이고 용인이잖아?”

 “으음 그건......이런! 모닥불을 교체할 때가 되었군. 슬슬 피곤하니 교대를 해야겠어.”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아내를 한겨울에 사냥을 갔다가 얼떨결에 주워왔다고 하면 마야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는가?

 ‘하긴 그때는 조금 심각했지’

 처음 만났을 그 당시의 마야는 삶의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다. 하긴 맨 정신으로 ‘끝의 산맥’을 겨울에 넘을 생각을 할리도 없고 처음 1년간 정도는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 보였다.

 지금도 그녀는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있었지만 용인이라는 특이성을 고려했을 때 가장 관계있을 만한 사건은 그녀를 만나기 약 30년 전쯤에 벌어진‘검은 용의 재림’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수도에 가면은 아마 두 가문의 사람들도 와 있겠지 다른 가문 놈들은 몰라도 그 두 가문은 메이트라의 왕실만큼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응”

 몇 개의 중간도시를 거쳐서 이리스는 메이트라 왕국의 수도 칼리덴성에 처음으로 입성했다.

 

 이리스는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거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귀족아가씨라고 보기엔 조금 경박한 행동이지만 노스가드의 가문 자체가 너무 외진 곳이다 보니 가문 대대로 그런 것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수도는 따뜻하네. 나리아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내년에는 나리아도 성인이니 엄마랑 셋이서 오면 되지”

 “응”

 마차는 칼리덴성에 있는 노스가드가문의 별장에 멈췄다. 3대 가문의 별장치고는 제법 소박한 저택이지만 대대로 노스가드의 귀족들은 사치를 즐기지 않는 편이라 상관없었다. 거기다 노스가드일가의 사람들은 원체 북쪽의 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탓에 이곳에 고용된 하인들은 대부분 빈 저택을 관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크로드님 오랜만입니다. 긴 여행길 피곤하진 않으셨는지요? 식사와 목욕 모두 준비해두었습니다.”

 “아직도 자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군. 일단은 식사부터하지”

 반백의 하얀 머리가 인상적인 지긋한 나이의 노집사는 크로드가 어릴 적에도 이곳의 집사장을 맡고 있던 사람이다.

 “옆에 계신 숙녀 분은 첫째 따님인 이리스 아가씨입니까?”

 “응 할아버지는 누구야?”

 “허허 저는 이 저택의 관리를 맡은 안데르센 그리비라고 합니다.”

 “나는 이리스 노스가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가씨”

 “잘 부탁해!”

 별장에서의 식사는 성에서의 식사보다 더 호화로웠다. 남쪽지방에서 나오는 새콤달콤한 과일들과 바닷가에서 구해온 생선을 이용한 요리는 북쪽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것들이다. 후식으로 수도에서 유행하는 달콤한 케이크까지 제공되자 이리스는 나오는 접시를 전부 깨끗하게 비우고는 괴로운 듯이 숨을 내쉬었다.

 "으...배불러”

 “어차피 수도에 있는 동안은 질리도록 먹을 텐데 체하지 말고 적당히 먹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리스의 접시와 마찬가지로 크로드의 접시도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이리스는 크로드의 접시를 보고는 불신어린 표정을 짓다가 살짝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나리아랑 엄마도 단거 좋아하는데 혼자만 오니까 미안해”

 크로드는 이리스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비단처럼 찰랑거리는 그녀의 머리는 전혀 헝클어지지 않고 그의 손짓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였다.

 “엄마는 가끔씩 왔었고 나리아도 내년부터는 올 거니까 걱정마라 하지만 이리스가 가주가 되고 나면은 자주오지는 못하겠지”

 “으......”

 먹을 것과 후작의 작위사이에서 갈등하던 소녀는 욕망을 이겨냈다.

 “그, 그래도 난 아빠 뒤를 이어서 노스가드의 후작이 될 거야!”

 “그래그래 장하다 우리 딸”

 크로드와 이리스가 도착하고 4일 후 왕자의 성인식이 열렸다.

 노스가드의 문장이 박혀있는 마차가 왕성에 도착했다. 이리스는 마야가 준비해준 드레스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장신구를 걸치지 않았고 크로드도 검은색 바탕의 간소한 예복을 갖춰 입었다.

 왕성연회는 아직 나이가 어린 유력가문의 후계자들이 참가하는 삼월의 홀과 각 가문의 가주나, 고위관리가 참가하는 태양의 홀로 나뉘어있다.

 “여기서 부터는 따로 가야겠구나. 그래도 잘 할 수 있지?”

 “나도 이제 어른인 걸”

 “그래 그렇지”

 크로드는 볼을 살짝 부풀리는 이리스를 보고 작게 미소 짓고는 태양의 홀로 향했다. 이리스도 곧이어 렉스의 안내에 따라 삼월의 홀로 향했다.

 렉스는 홀의 입구까지 그녀를 데려다 주었다.

 “저도 여기까지입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따가 봐”

 렉스가 홀의 입구를 지키던 시종에게 무어라 말을 전하자 시종은 그녀가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에 맞춰 그녀의 입장을 알렸다.

 “노스가드후작가의 이리스 영애가 오셨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그녀에게 집중되는 시선들, 호기심, 동경 그녀의 성인식 때와 달리 불순한 의도로 가득찬 시선도 섞여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 또래의 남녀가 많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드레스가 어떻다거나 춤 솜씨가 어쨌느니 예법이 멋지다는 둥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어대는 그런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녀가 흥미를 가진 것은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음식들뿐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다.

 “아름다운 아가씨가 연회에 와서 음식부터 찾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당신은?”

 이리스가 막 접시로 손을 뻗으려는 찰나 한 여성이 그녀를 말렸다. 이리스와 달리 노출도 높은 의상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어서 조금 경박하다고 느낄 정도로 화려했다.

 “내 이름은 트리시 로드러너, 왕위 계승식도 아니고 노스가드의 아가씨를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만나서 반갑습니다. 트리시후작영애 저는 노스가드의 이리스라 합니다.”

 이리스는 그녀가 다른 3대 가문의 영애라는 사실을 깨달자 자세를 바로잡고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 걸 따지는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어울리지 않는 예법은 그만두고 편하게 해 같은 3대 가문의 동료인데”

 “알았어.”

 분명 그녀가 더 나이가 많아보였지만 이리스는 편하게 반말로 대답했다. 트리시도 그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였다.

 “메이트라 최고의 마도공학자인 노스가드후작 부인이 그렇게나 아름답다던데 이리스를 보니 사실인가 봐”

 “뭐 아빠도 한눈에 반했다고 했으니까”

 “개인적으로 마법공학에 관심이 많은데 한번 심도 깊게 이야기를 나눠볼래?”

 “난 검술이 특기라 마법공학은 별로......”

 “에이 빼지 말고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 좀 해 봐”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대화를 계속했다.

 

 아리따운 아가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좀처럼 다른 이들이 끼어들지는 못했다. 간혹 그녀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남자들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트리시가 날카롭게 차단했다.

 “우리 가문 사람들은 마법공학에 관심이 많거든 마법공학이라는 게 험지를 탐험할 때 참 편해 요즘은 북동쪽으로 올라가는 중인데 아공간마차가 있으니 보급이 너무 편하거든......그래서 마야님께서는 요즘 뭘 만들고 계셔?”

 “요즘? 아......그러니까 아이언 나이트라는 걸 만드셨는데......”

 “아이언 나이트? 그건 뭐하는 건데?”

 “아이언 나이트는 그냥 성벽만큼 커다란 강철거인이야 마법사들이 여럿이 붙어야 움직이는데......”

 강철거인을 움직여야 하는데 다섯이 넘는 마법사가 붙어야 하는 것과 멧돼지를 잡으려고 만든 함정에 발이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트리시는 박장대소했다.

 “하하하 아이고 배야 큭큭. 그거 당장은 못써먹겠네 뭐 마야님은 천재지만 가끔은 실수할 수도 있지 다른 건?”

 “으음 그것 말고는 뭐...이 드레스랑 이거 정도랄까?”

 이리스의 드레스가 특이하긴 하다. 은이나 금으로 만든 장신구를 걸치는 것은 흔하지만 여성용 드레스는 물론이고 남성용 정장에도 금속장식이 붙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하지만 트리시의 눈은 이리스의 목에 걸린 회중시계에 가있었다.

 “저기 그것 좀 자세히 보여줄래?”

 “이거?”

 이리스는 목에 걸어둔 회중시계를 풀어서 손으로 돌렸다. 트리시의 눈은 시계를 따라 빙글빙글 돌았다.

 “잠깐만 줘봐”

 “응”

 그녀는 가볍게 시게를 집어던졌다. 트리시는 드레스가 불편할 텐데도 공중에 던져진 회중시게를 받아내고는 이리스에게 핀잔을 주었다.

 “후우 조심히 다뤄! 마법공학으로 만든 물건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비싸다고 이런 자잘한 것도 고치려면 수리비가 20골드도 넘을 걸?”

 “어, 어? 미, 미안”

 이리스는 마야한테 들은 대로 회중시계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해줬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간을 볼 수 있는 시계라는데 솔직히 잘 시간에 시간을 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어.”

 “......”

 “트리시?”

 “......이건 걸작이야”

 노스가드의 꼬마아가씨는 아직 이 물건의 진짜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 기존 해시계는 대부분 크기가 너무 커서 휴대하기 불편하고 비가 오는 날 이면 시간을 잴 수 없다. 반면 회중시계는 날씨의 영향을 받지도 않고 불침번을 설 때도 시간을 정확하게 나눌 수 있다.

 할짝

 그녀는 시계의 안 초침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을 멈추고는 혓바닥을 내밀어서 시계의 표면을 핥았다.

 “뭐, 뭐하는 거야?”

 이리스는 물론이고 한 발자국 떨어진 위치에서 두 사람을 보던 사람들도 그녀를 보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3대 가문 중에도 자유분방하기로는 최고인 로드런너가의 여식답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역시 이거 본 메탈이네 그리고 이 정도면 마나코어는 초소형인가? 이정도 크기에 이렇게 정교한 마나코어라니......대단해......”

 “저기 그걸 맛으로 아는 거야?”

 트리시의 관심은 회중시계에 집중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리스는 그녀의 손에서 다시 시계를 뺏어왔다.

 “아! 해안가 주변은 습도가 높아서 본 메탈로 된 장비를 선호하는 사람이 제법 있거든 그보다 조금 더 보여주면 안 돼?”

 “안 돼”

 “그러면 그 드레스는? 그것도 마법공학으로 만든 거라며”

 “아 이건 인스턴트 아머라는 건데”

 “인스턴트 아머라......혹시 갑옷이야?”

 “대충 이런 거랄까?”

 이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과 충분히 거리를 벌린 후에 갑옷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드레스에 달린 금속장식에서 얼음이 돋아나면서 하나의 갑옷을 이루었다.

 “오오오”

 “우와~ 차가워 진짜 얼음이네.”

 트리시는 이리스의 드레스에 직접 손을 댔다. 주위 사람들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많은 시선이 집중되자 부담이 된 이리스는 얼음갑옷을 해체했다.

 “인스턴트아머라니 노스가드부인께서 또 신기한 물건을 만드셨군요. 실례가 아니라면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그녀가 인스턴트아머를 시연하기 위해서 몸을 일으키자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윤이 나는 금발에 단정한 외모는 귀족의 평균수준이고 금실로 수를 놓은 백색의 예복은 너무 화려하지도 소박하지도 않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은 사내였다.

 “편하실 대로”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전 모나트 메이트라라고 합니다.”

 “와, 왕자님! 시, 실례했습니다. 이리스 노스가드라고 합니다.”

 아직 시종의 그의 입장을 알리지 않은 것을 보면 몰래 나온 것 같다.

 다시 그녀의 목에 걸린 회중시계를 바라보는 트리시와 달리 이리스는 파티의 주인공이 오자 안절부절 했다. 모나트는 그런 그녀에게 쟁반에 들고 있던 와인을 건네주었다.

 “뭐 저도 이런 연회는 처음이라 너무 거리감을 두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그 저기 하,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일단 왕자님이다. 이리스의 입장에서는 함부로 하기 많이 꺼려졌다. 괜히 호들갑을 떠는 그녀에게 트리시가 말했다.

 “저기 나랑 이야기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면서 너무 겁먹는 거 아니야? 심지어 나이도 내가 더 많은데”

 왕가의 바로 아래 있는 게 3가문이다. 메이트라왕국의 규모는 별로 크지 않아 아직 공작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 그래도 왕자님인데...”

 "뭔가 생각했던 것 보단 요조숙녀였네“

 “저도 마법공학에 제법 흥미가 있는데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저, 저기...”

 솔직히 당황스럽다. 자신은 마법공학 같은 것보다 검술이 좋은데 계속 마법공학이야기만 물어본단 말인가?

 “저는 마법공학은 잘 몰라요. 그런 것 보다는 검술이 더 좋은데......”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이리스는 정말 귀여웠다. 분명 지금 열다섯 살이 된 자신보다 2살은 많을 터인데 행동을 보니 마치 여동생이라도 생긴 것 같아서 트리시와 모나트는 미리 짜 맞춘 것처럼 주제를 돌렸다.

 “메이트라의 북부를 책임지는 노스가드의 검은 유명하지”

 “너무 저희가 묻고 싶은 것만 물어 보았군요. 죄송합니다.”

 두 사람은 그녀를 생각해서 주제를 바꿔주었다. 모나트를 평범한 귀족이라 생각했는지 다른 귀족들도 조금씩 접근해서 테이블의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저희도 대화에 끼어도 되겠습니까?”

 “어? 너희들은......”

 새로 온 귀족 중에는 노스가드의 가신 가문도 있었다. 그들은 이미 그녀의 성인식 때 이리스를 본적이 있기에 그녀가 수도의 분위기에 익숙해지도록 잘 도와주었다.

 “과연 이리스영애는 검술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저는 아버지 뒤를 이어 백성들을 지키는 의무를 지켜야 하니까요. 가문의 검술이 아직 미진해서 조금 걱정이에요.”

 “들리는 말로는 이미 오러를 다루실수 있다는데 너무 겸손한 말이군요.”

 “어머니의 검술도 남대륙의 전승을 이어받은 명맥이 깊은 검술이지만 서리늑대에게는 서리늑대의 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요.”

 “과연 이리스영애는 생각이 제법 깊은 것 같습니다.”

 사교계에 겨우 첫발을 내딛은 이리스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검술에 관한 질문은 그녀가 직접 대답하고 마법공학에 대한 질문은 기술에 관심이 많은 트리시나 노스가드에 인접한 가신가문의 자제들이 해결해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기사 한 명이 모나트를 데리러 왔다.

 “이런 슬슬 시간이군요. 조금 있다 다시 보겠습니다.”

 일국의 왕자로서 성인식을 맞이하는 모나트는 아마 이제 태양의 홀로 가는 것 같았다. 각 가문의 실세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자 이야기는 충분히 즐긴 것 같은데 슬슬 춤이라도 한 곡 추고 와야지 이리스도 같이 갈래?”

 “난 됐어.”

 이리스는 그렇게 말하고 음식이 쌓여있는 테이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대화 뒤에 몰려드는 피로감은 검술을 단련할 때 느끼는 피로와는 종류가 틀리다.

 “실례가 안 된다면 춤 한곡 같이 추시지...”

 “지금은 조금 피곤해서 힘들 것 같네요.”

 “이리스영애께서는 검을......”

 “수도에 온건 처음이라 아직 적응이 덜 됐어요.”

 물론 그녀에게 춤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자 예법에 맞춰 정중하게 거절하고는 재빨리 테라스로 벗어났다. 아무래도 왕실 주방장이 직접 만들었을 음식들은 맛보지도 못하고 포기해야 될 것 같다.

 “이곳에 계셨군요. 간단하게 드실 거리를 챙겨왔는데 조금 드시겠습니까?”

 “아...그러니까”

 “엘모스자작가의 제임스입니다.”

 엘모스자작가는 노스가드의 가신가문중 하나로 비교적 남쪽에 위치한 영지다. 규모가 조금 있는 농경지가 있어 노스가드성에 보급되는 곡물이나 상단들은 주로 엘모스령을 거친다.

 제임스는 접시 가득 생선요리와 디저트, 그리고 과일주스까지 접시 가득 채워왔다.

 “직접가시긴 힘드실 것 같아서 이리스영애님이 좋아하실만한 걸로 챙겨왔습니다.”

 “고마워”

 음식을 먹으며 밖을 바라보니 슬슬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이런 장소는 나랑 안 어울릴지도”

 “그런 것 치고는 제법 잘 어울리셨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건 너랑 트리시...언니가 제법 많이 도와주신거지”

 이리스는 그녀의 호칭을 뭐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언니라고 했다. 자유분방한 그녀라면 이 호칭이 제일 어울릴 것이다.

 “다른 3가문의 자제와 왕자님까지 만나고 오셨으니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셨다고 봅니다.”

 “그러고 보니 호크아이가문의 사람은 못 봤네.”

 “호크아이가의 후계자는 아직 어리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이리스는 노스가드의 가신가문이나 3대 가문 이외의 귀족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른 가문에 대해 관심을 가질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조금 반성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제임스가 말했다.

 “아버지께 듣기로 노스가드를 비롯한 3가문은 자신의 영지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대화를 나눈 이들 중에 나중에 영애께서 후작이 되셨을 때도 볼 사람은 얼마 없을 것입니다. 굳이 기억하시려고 노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와서는 그 무게가 조금 퇴색된 감이 있지만 3대가문은 이 땅의 안전을 책임진다. 사병육성에 제한이 없고 왕위계승권 다툼이나 파벌싸움 같은 일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 독립된 나라에 가깝다.

 “그런가?”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노스가드의 가신치고는 드물게 상업과 농업을 중시하는 엘모스가문답게 그는 다른 귀족과 인맥을 다져둘 필요가 있었다.

 “아빠는 뭘 하고 있으려나?”

 그녀가 밖으로 나왔어도 왕실연회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연재 끝 공지? 2017 / 7 / 23 673 0 -
공지 추가 연재 관련 공지 2017 / 6 / 25 720 0 -
6 2. 황금이 피를 부른다. 02 2017 / 6 / 21 24 0 4511   
5 2. 황금이 피를 부른다. 01 2017 / 6 / 21 31 0 11643   
4 1. 노드가드의 말괄량이-03 2017 / 6 / 21 34 0 3052   
3 1. 노드가드의 말괄량이-02 2017 / 6 / 21 36 0 9134   
2 1. 노드가드의 말괄량이-01 2017 / 6 / 21 66 0 8661   
1 -프롤로그- 헤매는 검은 용 (2) 2017 / 6 / 21 315 2 2011   
 1  2  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