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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04. 안녕 낯선사람(4)
작성일 : 17-06-22 22:37     조회 : 41     추천 : 1     분량 : 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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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촬영팀이 도착하고 셋째 날이 되는 오후. 결국 사고가 터지고야 말았다.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에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물고기를 잡고 벽돌을 만든 두 연예인은 얼굴이 벌게진 채 센터로 돌아왔다.

  특히 여자 밀가루는 속이 안 좋다며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자리에 누웠다.

 

 "내가 너무 굴렸나?"

 

  생각보다 체력이 약하네. 이러다 몸살이라도 나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먼 길 온 사람을 병내서 돌려보낼 수는 없지.

  나는 큰맘 먹고 한인 슈퍼에서 사뒀던 과자 한 봉지와 비타민을 누워있는 여자밀가루에게 슬며시 갖다 주었다.

  사건은 루디남매의 집에서 일어났다.

 

 "Esta enferma? (이 사람 아파?)"

 "No tomo el almurzo por el calor. (더위 때문에 점심을 못 먹었어.)"

 "Que pena. (불쌍해.)"

 

  쉬는 시간을 갖고 다시 찾은 루디 남매의 집에서도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호세 마리아의 침대에 걸터앉아서는 아무도 다가오지 말라는 아우라를 풍겨댔다.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다는 말에 호세 마리아가 망고를 바구니에 담아왔다. 전날 마당의 망고나무를 보고 좋아했던 그녀를 위한 배려였다.

  마침 남자팀 촬영 때문에 이쪽에는 카메라가 없는 터라 아이가 여자 밀가루를 위해 망고 껍질 벗겨 얼굴 앞에 내밀었다.

 

 "뭐야?"

 "Coma. (먹어요.)"

 

  탁-

  여자 밀가루가 인상을 찌푸리며 호세 마리아의 손을 뿌리쳤다. 망고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흙과 함께 뒹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 자리에 있던 기자님과 간사님, 남매의 가족 모두가 얼어붙었다.

  놀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강가에서부터 참고 있던 가족이 화난 얼굴로 소리를 높였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안 그래도 계속 비린내 나는 거 참고 있는데, 그 손으로 깐 걸 입에다 갖다 대잖아!"

 "점심도 못 먹었다니까 생각해서 갖다 준 거잖아요."

 "누가 갖다 달래? 냄새나서 싫다고. 아, 짜증 나게."

 

  아이는 울고, 가족들은 언성을 높인다. 간사님과 기자님은 이 상황을 어찌할 줄 모르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가족들을 말리고 있다.

  후우,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결국 이 사달이 나는구나. 내가 이래서 촬영을 반대했던 건데.

  더는 안 되겠다. 모금이고 나발이고. 나는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인내의 끈을 쿨하게 놓아버렸다.

 

 "너, 가라."

 

  나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아이의 침대에 앉아있던 그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지금 쟤 편드는 거야?"

 "아무렴 내가 네 편이겠니?"

 "나 여기 방송하러 온 거거든? 대우를..."

 

  대우? 그래, 무개념녀. 너 오늘 잘 걸렸다. 내가 그 대우란 것 한 번 제대로 해드리지.

  나는 양손을 허리춤에 얹고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그리고 무개념녀의 커다란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요즘 방송은 리얼이 대세라서 앞뒤 안 보고 지 성격대로 막 하나 보지?"

 "뭐?"

 

  비아냥대는 말에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나는 그녀가 반박한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노력하고 있어. 네가 무시할 만큼 자격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내가 언제..."

 "한국 방송 시스템은 모르겠지만, 너처럼 예의 없고 개념 없는 애는 이쪽에서 사절이야."

 "허...!"

 

  그녀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부지런히 자기의 편을 찾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일한 그녀의 편은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이런 이런, 이 정도밖에 안 되면서 이 진해연한테 기어올랐단 말이야?

 

 "그리고, 너 몇 살이야? 지금 여기에 너보다 어린 사람이 어디 있어서 또박또박 반말이야. 싸가지 없게."

 "......"

 "안 나가?"

 

  소란을 전해 듣고 급히 안으로 달려온 지부장님과 감독님, 매니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해연! 지금 뭐 하는 거야?"

 "지금 제가 문제가 아닐 텐데요."

 

  내 눈짓을 따라 지부장님의 시선이 루디 남매의 성난 가족들 앞에서 멈췄다. 지부장님은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 급히 그들에게 향했다.

  커다란 눈으로 나를 죽일 듯 노려보던 무개념녀는 들으란 듯이 울음을 터뜨리며 밖으로 나갔다. 감독님과 매니저도 뒤를 따랐다.

  화가 풀리지 않은 채 호세 마리아를 향해 돌아서는 나를 남자 밀가루가 막아섰다.

  이건 또 뭐야?

 

 "말이 심하시네요."

 "니들이 이틀 동안 해온 짓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도 못하죠."

 

  곱지 않은 반말에 그의 반듯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연예인이라고 자존심은 있어서.

 

 "당신들이 한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여기서 당신들은 뜨내기일 뿐이지."

 "하...!"

 

  뜨내기란 말에 밀가루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그런데 이것들이 왜 아까부터 헛웃음질이야.

 

 "이 사람들의 문화, 생활, 어려움... 그 어느 것 하나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죄다 헤집어놓고 가는 건 무슨 심보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구요."

 "우리가 뭘 헤집어놨다는 거죠? 그리고 여기 온 지 겨우 3일밖에 안 된 우리가 뭘 얼마나 알아야 하는데요?"

 

  감정적으로 대응한 무개념녀와는 달리 그가 딱딱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따질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미 한국에서부터 스스로 점검하고 왔어야 할 질문이다. 즉, 너희는 기본도 안 된 상태로 왔다는 의미지.

  이런 애들에게 더 말해 무엇하랴. 고개가 저절로 절레절레 흔들린다.

 

 "그래. 방송이니까 진심까진 바라지 않을게요. 다만, 적어도 이곳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죠."

 

  피해라는 말에 그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답을 내놓으라는 표정으로 한참이나 내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답을 할 마음이 전혀 없는 나는 아직 울고 있는 아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두 발짝도 떼지 못해 그에게 팔이 붙잡혔다.

 

 "내 말 아직 안 끝났어요."

 "이거 놓으시죠."

 "우리는 도움을 주려고 촬영하러 온 거예요."

 "모금이 되면, 그 돈이 전부 아이한테 가는 줄 알아요? 안타깝게도 아니거든요."

 "그게 무슨..."

 "자기가 얻는 것도 별로 없는데 왜 억지로 얼굴을 팔아야 하는 거죠? 아무리 외국 방송을 볼 일이 없다 해도 저 사람들 다 수치심 느껴요."

 

  그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너도 연기돌이니?

  이제 더는 할 말도, 해줄 마음도 없는 나는 그의 어깨를 툭 밀치고 아이와 가족에게로 걸어갔다. 어찌나 열이 받았는지 손이 덜덜 떨린다.

 

 "하아..."

 

  지부장님과 함께 가족에게 사과하고 설득하는데 꼬박 2시간이 걸렸다. 해는 이미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결국, 오늘 촬영은 중단되었다. 현재로서는 더 촬영이 가능한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그 와중에 무개념녀는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난리를 친 모양이다.

  그리고 당연한 결과겠지만 나는 밤에 지부장님께 불려가 된통 혼이 났다.

 

 "내가 네 고집과 성격에 촬영팀이랑 한 번은 부딪칠 줄 알았다만, 이 정도로 실망하게 할 줄은 몰랐다."

 "......"

 

  나는 변명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애쓰신 지부장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녀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한 톨도 없다.

  오히려 속이 상했다. 혼날 것을 예상하긴 했으나 다른 사람도 아닌 지부장님이 날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 서운함마저 든다.

 

 "아이 생각하는 네 마음은 잘 알겠다만, 그래도 언니인 해연이 네가 먼저 사과하자."

 "하지만...!"

 "상대가 잘못은 했지만 네 해결방법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은 너도 알고 있잖니."

 "......"

 "그게 여기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은 거야. 이 녀석아."

 

  고집도 고집이지만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는 28년을 살아오면서 애초에 남에게 사과할만한 일을 만든 적이 없었다. 내가 태어나서 남 앞에 고개 숙인 적은 단 한 번, 1년 전 그 날 뿐이었다.

  어느 정도 잘못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내가 먼저 사과할 일은 아니잖아!

  하지만 지부장님은 완고했다. 내일 보자는 말만 남기고 문을 나선 지부장님의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침대를 발로 걷어찼다.

  젠장!

 

 

 *

  다음 날.

 

 "언니, 죄송해요."

 

  촬영팀의 차가 센터로 들어올 때, 나는 마당을 쓸면서 마음속으로 화해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 밀가루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와 사과의 말을 건넸다. 응? 아직 연습 중인데 대뜸 사과하면 어떡해?

  아니, 그보다 죽어도 사과하지 않을 것 같은 그녀가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머리카락을 상콤하게 양쪽으로 땋은 그녀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머리 모양처럼 몸을 베베 꼬며 말했다.

 

 "사실, 저를 이렇게 혼낸 사람이 우리 사장님 말고는 처음이라 화도 났었는데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언니 말 틀린 거 하나 없더라고요."

 

  왠지 그럴 거라 예상하긴 했다. 22년 인생을 오냐오냐 예쁨만 받고 자라왔겠지.

  그래서 이 친구에게도 볼리비아에서 마주친 모든 것들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름대로 힘들었겠지.

 

 "아니에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오래 일해서 힘들었을 텐데. 배려하지 못한 내 탓도 있어요. 나도 미안합니다."

 

  나 역시 현지 인솔자로서, 그리고 나이를 6살이나 더 먹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을 했기에 새벽까지 생각해두었던 사과의 말을 전했다.

  3주간의 사전 작업으로 지쳐 다소 비뚤어져 있던 건 사실이니까.

  현지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을 더 배려하지 못한 내 잘못은 분명히 인정해야 했다.

 

 "저기,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네가 이미 부르고 있잖아...요.

  그러나 나는 부지불식 간에 마음속 말을 내뱉는 경향이 있으므로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밀가루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그녀가 폴짝 뛰더니 내게 팔짱을 끼고 몸을 흔들었다.

 

 "전 언니같이 성격 있는 사람이 좋아요."

 

  그거 칭찬이니, 돌려 까기니? 오해하면 약간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인데 말이야.

  그래도 초롱초롱한 눈빛은 적어도 거짓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그녀의 말과 행동이 진심인지 연기인지 알 방도는 없으나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린 날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친구가 귀엽기도 했고, 어차피 잠깐 들렀다 가는 뜨내기들 보다는 이 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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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객 17-06-22 22:36
 
재밌네요. 여기까지 한 달음에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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