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복권이
무더운 여름이 어찌어찌 지나고, 가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논에 심은 벼들이 푸른빛을 서서히 벗고 누렇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가을이 되어 제일 신난 사람은 태화였다. 감나무에 감이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감이 홍시가 되기 전에 따서 껍질을 깎아 매달면 곶감이 된다. 그렇게 뒷마당에 늘어선 감나무에서 반은 미리 따다 곶감을 만들고, 반은 익을 때까지 두었다가 홍시가 되면 따 먹었다. 둘 다 태화 몫이다.
뒷마당으로 이어진 언덕에 감나무 말고도 과일나무가 몇 그루 더 있었다. 사과, 배, 복숭아, 석류 등 과일 좋아하는 태화는 가을이면 나무들을 돌보고 열매를 따고 하느라 바쁘면서도 신이 났다.
산 좋아하는 정화는 가을이면 아침에 산에 올라가 점심때까지 내려오지를 않았다. 밤, 도토리, 은행까지 산에는 주울 것이 천지였다. 늦가을에는 한 짐씩 칡뿌리도 걷어왔다.
민화는 많아진 집안일을 거드느라 손도 발도 바빴다. 흙을 좋아하고, 들을 좋아하는 민화는 내내 채소밭에서 채소를 거두어들이는 일을 했다. 애호박에, 고추에, 상추에, 채소밭은 착한 아기처럼 돌봐준 만큼 맛있는 것들을 내주었다. 잘 자란 무를 뽑아다 겨우내 먹을 무말랭이를 만들고 무청은 처마 밑에 매달아 시래기를 만드는 일도 민화 몫이었다.
아무래도 민화 하는 일이 노미랑 많이 겹치다 보니 민화는 내내 노미랑 손맞춰 하는 일이 많았다. 끝없이 나오는 바느질감은 민화가 없었으면 노미 혼자 못해냈을 것이다.
한번은 좀 우스운 일이 있었다. 내일 다들 산소에 벌초하러 갈 때 입을 옷을 밤새 꿰매야 하는데, 그날은 민화도 없이 노미 혼자 바느질감을 잡았다. 식구대로 옷을 꿰매다 보니 도저히 그 밤에 일을 다 마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낮에 일이 많아 너무 고단했던 노미는 안 되겠다 싶어 이불에 먹이는 풀을 가져다 옷들을 붙였다. 얼마나 깔끔하게 잘 붙였던지 솜씨 좋은 사람이 바느질한 듯 옷이 반듯했다.
그렇게 새벽같이 옷들을 입혀서 진화랑 도련님들 모두 산에 벌초를 하러 갔다. 그런데 한참 벌초하고 있는 중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러자 도련님들 옷이 비에 젖으면서 풀로 붙여둔 부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윤화랑 민화랑 태화 옷은 어깨는 바느질을 해서 소매만 떨어져 나간 채로 입고 있을 수 있었는데 진화랑 남화랑 정화 옷은 아예 다 떨어지는 바람에 두 사람은 떨어진 옷을 가슴에 끌어안고 맨몸으로 집에 와야했다. 다행히 바지들은 다 바느질을 한 걸 입혀서 아랫도리까지 벗은 채로 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윤화가 노미를 내내 놀렸다. 얼마나 미안하고 민망하던지, 노미는 한동안 도련님들한테 옷을 줄 때마다 바느질 검사를 받아야 했다.
바빠진 논일 때문에 모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노미도 미순이도 식구들 삼시 세끼에, 사이사이 새참에, 하루 여섯 끼의 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도 그 해는 산도 들도 모두 풍년이었다.
대충 바쁜 일들을 마친 한가한 어느 날 오후, 진화가 마당 한가운데 의자로 쓰는 나무 둥치를 하나 갖다 놓고 동생들을 불렀다.
“다들 나온나. 이발하자!”
진화는 일본에 갔을 때 이발 기술을 배워왔다. 이발 기술 배우러 일본에 갔던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 봐도 진화가 얼마나 동생들을 예뻐하고 귀하게 여겼는지 알만하다. 워낙에 인물들이 훤하기로 유명했으니 진화는 동생들이 더벅머리로 지내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는 사람에게 이발 기술도 배우고 이발 도구도 사 온 진화는 항상 곱고 단정하게 동생들 머리를 다듬어주었다. 솜씨가 제법 좋아서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먼 동네에서도 이발해 달라고 오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해서 생긴 달걀이나 닭, 보리, 혹은 생선 등이 꽤 쏠쏠한 살림 밑천이 되기도 했다.
여름내 자란 머리카락이 다들 꽤 길어 있어서 진화는 추석 오기 전에 동생들 머리를 다듬어줄 생각이었다. 정화가 제일 먼저 자리에 앉았다. 진화는 노미를 옆으로 불러 잘 보고 배우라고 했다. 진화 머리는 노미에게 깎아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전까지는 윤화가 대충 배워서 진화 머리를 깎아주었는데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익숙한 듯 자리에 앉은 정화의 어깨를 커다란 보자기로 두르고 진화는 솜씨 좋게 이발을 해주었다. 잠깐 사이에 머리가 깔끔해졌다. 그렇게 태화 민화 차례대로 머리를 깎고 남화 석이까지 머리가 단정해졌다.
태화는 뒷머리를 너무 많이 자르지 말라고 조르고, 민화는 앞머리를 너무 많이 자르지 말라고 조르고, 석이는 옆머리를 너무 많이 치지 말라고 조르고, 남화는 정수리를 올려달라고 조르고, 윤화는 알아서 잘하라고 졸랐다.
“당신이 함 해보겠능교?”
하더니 갑자기 진화가 윤화 머리를 노미에게 맡겼다. 알아서 하라던 윤화가 깜짝 놀랐다. 노미는 어설프게 가위랑 바리깡(머리를 짧게 다듬는 도구)을 들고 진화가 시키는 대로 윤화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윤화는 뭐라 말도 못 하고, ‘죽이지만 마시오.’ 하는 표정으로 꾹 참고 있었다. 뭐 조금 삐뚜름해지기도 했지만, 서방님이 하라는 대로 했더니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 나왔다. 모두 애써 웃음을 참으며 이 좋은 구경을 했다.
이제 진화 차례였다. 노미는 배운 대로 조심해서 머리를 다듬어 나갔다. 윤화가 좀 안다고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하며 도와준 덕분에 진화의 이발도 무사히 끝났다. 노미의 이발 기술이 플러스 되었다.
머리들을 깎아 놓으니 다들 멀끔하니 어찌나 잘났는지 노미는
“아이고, 우리 도련님들 고마, 너무 너무 이쁩니더.”
하며 감탄을 했다. 미순이도 석이 어깨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어주며
“우리 오라버니도 한 인물 하는구마이.”
하며 안 하던 칭찬을 해주었다. 오누이가 이렇게 다정하니 석이가 미순이를 시집보내기 싫은 것이다.
걸어서 한 시간 반쯤 거리에 읍내가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읍내에 장이 섰다. 한 번 장이 서면 사나흘씩 장이 서서 살 것이 있거나 팔 것이 있으면 날을 맞춰 장에 갔다. 읍내에는 우체국도 있고 경찰서도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판치던 세상이라 남자들은 읍내에 가는 것을 꺼렸다. 특히 관광서에 가는 것은 더욱 꺼렸다. 일본인들은 조선사람들 기 잡으려고 그러는지 아니면 그냥 못돼 처먹어서 그러는지 장정들, 특히 눈에 띄는 훤한 남자들을 보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시비를 걸어 때리고 욕을 보였다. 여자들을 대놓고 희롱하지는 않았지만, 수모를 당하기는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분위기이다 보니 일본인들만 봐도 이가 갈리고 일본말만 들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장에는 가야 했다. 곧 추석이라 준비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노미는 시집와서 거의 매달 장에 갔다. 처음에는 진화랑 갔고 다음 달에는 윤화랑 갔고, 또 그 다음 달에는 남화랑 갔다. 이번에는 태화랑 민화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석이는 거의 매번 쫓아와서 같이 달구지에 양쪽 집 장 본 것을 실어주었다.
자주 들르는 건어물전에 갔더니 아지매가
“아이고, 색시는 올 때마다 신랑이 바뀌능교?”
하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도련님들이라고 얘기를 했는데도 아주머니는 놀리느라고 노미 신랑들이 다 잘났다며 웃었다. 잠깐이지만 좋아하는 형수님 신랑도 돼보고 태화도 민화도 신이 났다.
“지가 신랑입니더.”
하고 태화가 노미 팔짱을 끼고 눈썹을 씰룩거리며 웃었다.
“아니라예. 지가 신랑입니더.”
하며 민화가 노미 다른 쪽 팔짱을 획 잡아채며 눈이 안보이게 웃었다.
“아이고마, 둘 다 신랑이라 해라. 신랑이 둘이나 되고 색시는 복도 많네.”
하며 아주머니는 우스워 죽는다. 곁에 있던 아주머니들도 깔깔깔 웃으며 해님이랑 달님 같은 도련님들이 참말로 잘났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그때였다.
“노미야, 노미 아이가?”
누군가 노미를 불렀다.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키가 훤칠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진화 또래의 사내가 서 있었다.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이 어디 관청 같은데 근무하는 사람 같았다.
“저... 복권이 오라버니 아니십니꺼?”
하고 노미가 겨우 누군지 알아보고 아는 체를 했다.
“알아보는구나. 나는 니 보고 바로 알았는데.”
한다. 태화와 민화는 갑자기 나타난 놈, 아니, 남자를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노려보며 형수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아, 지 아부지랑 여기 오라버니 아부지랑 친하셔가 어릴 때 몇 번 뵜습니더.”
하고 대충 설명했다.
“내는 니가 내한테 시집올 줄 알았더니, 진화가 데려갔더구나.”
한다. 농담인지 뭔지 갑자기 노상에서 금쪽같은 형수에게 말을 마구 걸며 친한 체를 하는 것이 태화도 민화도 영 못마땅했다. 태화가 쏘아보며 말했다.
“우리 큰형님을 아십니꺼?”
“니가 진화 동생이구나. 내 좀 안다. 진화랑은 갑이다.”
진화랑 동갑이라고 하니 태화 민화에게는 형이긴 한 것 같은데 좀처럼 정이 안 가게 생긴 녀석이다.
“그래, 아부지 어무이는 다 안녕하시제?”
하고 복권이 노미 부모님 안부를 물었다.
“야.”
하고 노미는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우리 아부지가 어릴 때부터 너를 이뻐하셔가 틀림없이 며느리 삼을끼라 하셨는데, 너그 아부지가 친일파한테는 딸내미 시집 안 보낸다 하셔가 이리 됐다 아이가. 허허.”
하고 말하는 복권이라는 사내는 아버지가 우체국장이고 지역 유지였다. 복권이의 갑작스런 이야기에 노미는 당황스러웠다.
“죄... 죄송하게 됐습니더.”
“죄송하기는.... 어르신이 어디 하고 싶은 말 속에 담아두고 그라시는 분이가. 내도 속에 담아두고 있어가 하는 말이 아이다. 오랜만에 보이 반갑기도 하고, 그래, 진화가 잘해주나?”
“잘해줍니더! 억수로 잘해줍니더! 우리 형은 형수님 밖에 없습니더.”
하고 민화가 나서서 말했다. 태화는 그 부리부리한 눈으로 복권이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다. 그런 동생들이 복권은 좀 귀여웠는지
“그래, 그래, 잘 해주는 거 안다. 워낙에 성품이 좋은 사람 아이가. 진화한테 갔다는 얘기 듣고 참 잘되었다 싶었다.”
하는데 복권의 표정은 어딘가 서늘하다.
“오라버니는, 오라버니도 혼인하셨지예?”
하고 노미가 그래도 좀 다정스럽게 물었다. 다정하게 물어봐 주는 노미가 순간 복권은 고맙다.
“그래, 나도 혼인했다. 좋은 사람이다.”
한다. 노미는 잘됐다는 듯 빙그레 웃어주었다. 복권은 그렇게 맑게 웃는 노미 얼굴을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 괜스레 가슴 한쪽이 아프다. 얘기를 더 했다가는 태화랑 민화가 터지지 싶어 노미는 서둘러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하고는 두 도련님을 잡아끌어 자리를 뜨려 했다.
“진화 보거든 우체국으로 내 좀 보러 오라 해라. 한참 몬 봤다 아이가. 그눔아는 와 나오질 않노?”
태화랑 민화는 여전히 멀대 같은 녀석이 자기 큰형에게 이놈 저놈 하는 것이 영 마땅치 않다. 볼수록 싫은 녀석이다.
“아 참, 노미야!”
하고 돌아서는 노미를 복권이 다시 불러 세운다.
“니 다케짱 온 거 아나? 부산에 발령받아 왔다는데, 니 보고 싶다 하더라.”
태화랑 민화는 ‘다케짱은 또 누꼬?’하는 표정이다. 노미는 정신이 다 없다. 크게 죄지은 것도 없는데 노미는 대충 알았다고 고갯짓만 하고는 도련님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식은땀이 다 쭉 났다.
집으로 오는 길에 태화는 아직도 분이 안 풀린다는 듯, 사실 뭐 그렇게 분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복권인지 뭔지 하는 놈이 마음에 안 든다는 얘기로 내내 툴툴거렸다.
“그 눔아는 뭐 그렇게 생깄노? 인물이 반반한 거이 여자 엄청 호리게 생깄다 아이가?”
민화는 태화가 좀 심하다 싶었다.
“그래도 형수님 아는 분이고, 큰형 친구라는데 니 너무 말을 막 하는 거 아이가?”
태화는 자기가 생각해도 좀 심하다 싶기는 했다. 사실 복권이 딱히 예의 없이 군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치미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뭔 일인데 그라냐?”
하고 석이가 궁금해 했다. 노미는 여간 당황스럽지가 않았다.
“됐심더. 열서너 살 때 보고 한 번도 못 본 오라버니인데 그 집 어르신이 지를 그저 농으로 자꾸 며느리 삼자 하셔가 그렇습니더.”
“그 눔아는 우리 형수님 한티 엄청 맘이 있었던 모양이든데요.”
하며 태화가 씩씩거린다.
“아따, 우리 형수님이야 워낙에 고우시니 다들 탐을 내고 했겠제.”
하고 석이가 거들었다. 노미는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하고 싶었다.
“곱기는 무슨... 그냥 아부지들끼리...”
하고 노미가 말을 하고 있는데,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는지 태화가 벌컥 소리를 치며,
“그눔아는 모 먹고 그렇게 키가 크노? 허여멀게가 눈은 또 왜 그리 디룩거리노? 사내가 사내답게 생기야지 인물만 반반하면 다가? 아무한티나 막 눈웃음치고 잉?”
민화가 가만히 태화를 바라본다.
“그래, 니는 참말로 사내답게 몬 생겨가 좋겠다. 됐다. 속 시끄럽다. 고마해라.”
했다.
“근데... 다케짱은 누굽니꺼?”
하고 민화는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노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린 시절 참으로 노미를 좋아해 주던 일본 소년이 있었다. 세상천지에 친구 아닌 이가 없던 노미 아버지는 일본인 경찰서장과도 술친구로 지냈다. 그 집에 딸들이 많았는데 딸을 셋인지 넷인지 연달아 낳은 후에 늦게 본 귀한 아들이 다케짱이었다.
노미 보다는 서너 살 많았지만 어릴 때부터 좀 왜소하고 병약해서 자기 나이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그 집 딸들이 노미를 매우 예뻐해서 아버지는 한 달에 서너 번씩 경찰서장 집에 갈 때마다 노미를 꼭 데리고 갔다. 그렇게 몇 년을 가깝게 지내다 보니 노미는 언니들에게 일본말도 배우게 되었다. 다케짱은 노미에게 늘
‘私達は友達だよ。(와타시타치와 토모다치다요) 우리는 친구야.’
하고 말했다. 그러다 노미가 열 살쯤부터인가 복권이도 함께 노는 사이가 되었다. 복권이와 다케짱은 동갑이거나 다케짱이 한 살 정도 많았다. 하지만 자기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복권이와 자기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다케짱은 친구라기보다는 형 아우 같았고 다케짱은 그래서 노미랑 더 친했다.
몇 년 후, 다케짱의 아버지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노미는 다케짱과 헤어지게 되었다. 다케짱은 노미와 헤어지는 것을 너무나 아쉬워했다.
“ノミちゃん、僕はノミちゃんのこと、忘れないよ。”
(노미찬 보쿠와 노미찬노 코토 와스레나이요)
노미야 나는 노미를 잊지 않을게
“ノミちゃんも僕のこと、忘れないでね。”
(노미찬모 보쿠노 코토 와스레나이데네)
노미도 나를 잊지 말아 줘
라고 말했다. 그렇게 다케짱은 노미의 어린 시절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동무였다.
노미는 도련님들에게 대강 이런 자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뭐, 그다지 나쁜 놈은 아닌 모양이네예.”
하고 민화가 말했다. 태화도 웃으며,
“우리 형수님이 아기 때도 엄청시리 예뻤는가 봅니더.”
했다.
“지가 쪼매 예뻤지예.”
하며 노미도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다. 모두 다 그렇게 와하하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가, 복권이도 만나고, 그 일본놈도 만나고 했다고?”
하며 진화가 바느질한다고 앉아있는 노미 뒤로 와서 어깨 뒤로 고개만 내밀고는 볼멘소리를 했다. 동생들이 장에서 있던 얘기를 다 이른 모양이다.
“만나긴 누굴 만납니꺼. 물어보니 대답을 한 것이지예.”
“물어보믄 그래 다 대답해주고 그라나?”
하며 진화는 여전히 입이 부어서 시비를 건다. 얼른 끝날 것 같지 않아 노미는 난감했다.
“와예? 지 이쁘다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니 질투납니꺼?”
“질투는 무슨? 내한테 반해가 마늘을 다 쪼사놨음서.”
노미는 그만 얼굴이 빨개졌다.
“누...누가 마늘을 다 쪼샀다꼬... 그냥 눈이 잘 안 보이가.”
“그래 엄청 낼로 보고 싶었나?”
“하이고! 참말로! 보...보고 싶기는?”
“내 그렇지 않아도 복권이한테 니 마늘 쪼샀던 얘기했다. 복권이가 얼굴이 노래지더라.”
“뭐! 뭐라꼬요? 그... 그애길 했다꼬요?”
노미는 기가 막혀 진화 가슴을 손으로 밀쳤다.
“그 얘길 하믄 우얍니꺼. 남사스럽게.”
“와? 하믄 안돼나? 나는 재미있어가 한긴데.”
“서방님! 할 얘기가 따로 있지예. 우리 사이에 있던 얘기를 와 남한테 합니꺼. 잘 한깁니꺼? 야? 잘했냐꼬예?”
노미가 하도 서슬이 퍼레서 야단을 치니 진화도 조금 잘못했나 싶었다. 그러더니
“내 잘못했다. 잘못했다.”
하고 킥킥 웃으며, 노미 어깨랑 옆구리를 막 손으로 찔러댔다.
“아픕니더! 와 찌릅니꺼? 서방님이 잘못해놓고 와 지를 찌릅니꺼?”
하며 노미는 약이 올라 진화에게 눈을 흘겼다.
“한 몸이라 그렇다. 한 몸이라! 우리는 한 몸이라 내가 잘못해도 니가 혼나고, 니가 잘못하면 내가 혼나고 그라는기다.”
하며 진화는 킥킥 웃으며 계속 노미 여기저기를 찔렀다. 아프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해서 노미는 몸을 꼬며 웃고 말았다.
우리 할아버지는 꼭 자기가 잘못해놓고는 할머니를 막 찌르고 괴롭히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한 몸이시라 그렇단다. 참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