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타협이 없다는 모두를 막기 위해 순간 허점 하나가 떠올라 허겁지겁 꺼냈다.
“나 치수 모르잖아. 몸에 안 맞으면 어차피 안 어울릴 거야.”
그렇다. 한 번도 자신의 치수를 잰 적이 없으니 어림짐작으로 적당히 가져온 드레스들임이 틀림이 없다며, 이겼다고 생각이 들 때, 히데아가 부드럽게 입 꼬리를 올려 악의 없이 방긋 웃어 보이는 그 미소가 오늘따라 무섭다.
“드레스 전부 세이나님의 치수에 맞춘 거랍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에?”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천공의 땅에 올라와 현궁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한 번도 재어 본적이 없는 자신의 치수를 히데아는 이미 다 재었다고 말을 하니 머릿속에 잠깐 먹구름이 낀 듯 멍해졌다.
“불편하고 귀찮은 것을 싫어 하시 길래, 틈틈이 조금씩 재어 놓고, 언제든 쓸 수 있게 드레스들을 만들어 놓았어요.”
“......”
히데아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작은 소형 줄자를 꺼내며 증거를 보여주니, 상황이 대충 짐작이 가 세이나는 허탈한 듯 영혼 빼고 웃었다.
초반에 히데아는 세이나의 옆에서 틈이 보일 때마다 샥하며 어깨 한번, 잠깐 졸 때 팔 쪽을 쭈욱 재보고, 기지개를 피고 있을 때 이때다 싶어 등을 재보는 식으로 여기저기 촘촘히 재었다.
모두에게 들키지 않고 전부 치수를 잴 수 있었던 것이 모두가 그녀를 믿고 있기도 했었지만, 무척이나 재빠르며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 인식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들어맞는다.
‘아.. 내가 사람 보는 눈이 너무 좋은 건가? 천재가 옆에 있네.. 하..하하..’
넋 나간 사람처럼 웃고 있는 세이나의 앞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고, 고개를 들고 보니 제일 입기 싫은 드레스를 들고 웃고 있는 로이에와 시녀들이 속내를 숨기지 않고 방긋 사악하게 웃는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성화와 더는 도망 갈 수 있는 방편이 없어서 그대로 갈아입혀질 수밖에 없는 개미지옥으로 주륵 빠져 들어갔다.
세이나가 드레스의 지옥에서 허덕일 때, 근처의 다른 방에서도 옷 때문에 불편함을 겪고 있는 이가 있었다.
바이안은 목을 조이는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불편함을 호소했다.
“답답해.”
기사들이 입는 정복도 나름 답답하지만, 그래도 움직이기에는 나쁘지 않은 디자인으로 되어 있고, 익숙한 반면, 현제 그가 입은 옷은 귀족들이 입는 예복보다 더한 황족만을 위한 다는 듯이 더 없이 화려한 예복이다.
게다가 황후가 그동안 아들에게 좋은 옷을 늘 입혀주고 싶어도 제대로 못해왔던 마음이 커서, 이번에 신이 나서 선물로 준 예복인지라 거절 할 수도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입었지만 답답함에 벗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성장하면서 늘 입어 왔던 것은 편한 훈련복장이나, 갑옷으로 무장한 모습인지라 몸의 근육이 예복은 아니라고, 숨쉬기 힘들다며 비명을 지르듯 터질 것 같으니 아무리 자신의 어머니의 마음이라도 참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입으니까, 이제야 네가 황자가 맞긴 맞구나 싶다.”
정복을 대충 입고 널브러진 론의 말에 그에게 시선을 돌린 바이안은 론의 정복과 바꿔 입고 싶었다.
“준비 다 됐냐?”
바이안은 론에게 뻗으려는 손을 거두며 자신들을 부르는 하일에게 시선을 넘겼다.
문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묻는 하일은 바이안이 말끔히 입은 모습에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옷걸이가 좋긴 좋네.”
“벗고 싶다.”
차가운 말투로 진심을 털어 놓는 바이안의 말에 상당히 불편해 한다는 것을 안 하일은 그를 달래주는 방법을 사용했다.
“주군이 보시면 새삼 반하시겠는데?”
“그렇군.”
예전에는 감정의 높낮이를 구분하기 어려웠던 동료인 바이안이 요즘도 물론 표정의 변화는 거의 없지만 그때보다 알아보기 너무 쉬워져, 때때로 귀여워 보이자 하일은 자신의 말에 상기 된 듯이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갭에 더는 참지 못해서 고개를 살짝 틀어 입을 막고 큭큭 소리를 죽였다.
대충 누워있던 론이 자리에 일어나 앉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거기 가면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 지금부터 긴장 타야지.”
바이안이 서있는 곳까지 온 하일은 그의 어깨에 손을 지그시 올렸다.
“오늘은 우리한테 맡겨라.”
“넌 그냥 옛날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면서 주군이랑 알콩달콩 즐겨.”
“......”
가장 믿는 둘의 말에도 누군가를 향한 긴장은 쉬이 가시지를 않았다.
“홀은 넓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많은 곳이야. 물론 주군이 말씀하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포지션을 나누긴 했지만, 무조건 그런다고는 볼 수는 없잖아.”
“우리들 예전보다 상당히 강해졌다.”
하일은 주군을 중심으로 세상이 돈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바이안이 역시나 자신도 이번 일에 나서고 싶은 마음을 가누지를 못하고 있기에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오늘 넌. 기사가 아니라, 대현자님의 에스코트를 맡게 된 파트너인 황자님이야.”
그래서 주군이라고 지칭하지 않고 대현자와 황자라는 신분을 드러내며 그에게 상기 시켜주었다.
“후... 그래. 알았다.”
애써 납득한 대답을 하였지만, 만약 세이나가 말 한대로 일이 일어나면 자신은 분명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발목만 잡게 되리라, 바이안은 손으로 가슴을 문지르며 아리는 마음을 달래며 추슬렀다.
“슬슬 시간 다 돼가네. 모시러 가야지.”
바이안은 팔꿈치로 팔을 툭 건들며 음흉하게 웃는 론의 의도 섞인 말에 피식 작은 호선을 그어 올렸다.
“오늘, 얼마나 아리따우실지 네 눈으로 먼저 봐야지~”
“흐~”
짓궂게 놀리듯 들어온 말에도 바이안은 세이나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었고, 둘은 처음 듣는 웃음소리에 순간적으로 몸을 굳혀버렸다.
그리고 그런 둘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쿵쿵 발걸음이 씩씩하다 못해 바닥이 패일 듯한, 기세로 세이나가 준비하고 있는 방으로 이동하자, 그 뒤에 둘도 아차하며 서둘러 따라 갔다.
문 앞에 도착해서 아직도 닫혀있는 문이 오늘따라 무척 거슬리는지, 바이안은 눈으로 문에 구멍을 뚫기 위해서 한참을 노려보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문이 천천히 열렸다.
사락 하는 소리와 함께 예쁜 드레스자락이 보이며 수줍게 나오는 세이나.
“따란~”
가 아니라 정복위에 검을 차고 멋있는 척 등장한 로이에였다.
상상하며 기다렸던 그녀가 아니라서인지, 기대한 만큼 김빠지는 정도가 상당해서 자연히 로이에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하아~~~”
“알고 한 행동이지만, 나 뭔가 상천데?”
“다 끝난 거냐?”
론의 재빠른 전환 덕에 내려갔던 바이안의 기분이 조금 수면위로 올라왔고, 앞에 당당히 서있는 로이에의 기대해도 좋다는 표정에 문이 어서 다시 열리기를 간절히 빌었다.
“후후 우리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다들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거야.”
문손잡이를 잡고 씨익 미소를 뿌려준 뒤 문을 열었고, 로이에의 장난기에 문 앞에서 나오다 말게 된 세이나는 그녀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햐~ 사람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는 거구나.”
“어째, 좋은 의미로 들리지 않는다 그거.”
론의 감탄에 살풋이 미간을 접으며 태클을 걸때까지도 바이안은 주변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지, 오로지 세이나만을 넋을 놓고 열심히 눈에 담았다.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목석처럼 서있기 만한, 바이안이 의아해진 세이나는 방향을 돌려 그의 앞에 섰고, 그 덕분에 세이나의 정면을 보게 된 바이안의 얼굴이 화앗 붉어졌다.
몇 달 전에 히데아가 바이안에게 다가와 세이나가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인지 질문을 해왔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미지가 있냐는 질문에 대답을 해 준적이 있었다.
현제 세이나가 입고 나온 드레스는 자신이 말한 내용이 많이 수용이 된 드레스였다.
많이 파이지는 않았지만, 하얀 색감의 천이 어깨와 가슴 쪽으로 연결이 되어 고정시킨 듯 이어져 있고, 그 밑으로 넓게 퍼져 내려온 검은 색감의 치마의 위에 반투명한 하얀 천이 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천에 빨간색 실로 예쁘게 수 놓여진 꽃과 나비들이 날아다니었고, 위와 아래를 구분 짓기라고 하려는 듯이 검은색의 부드럽고 윤이 나 반짝이는 기다란 천이 허리를 한 바퀴 감싸고 등 뒤로 큰 리본을 만들어 길게 내려와 있었다.
마지막으로 긴 숄을 어깨와 팔에 걸친 모양으로 너무 과하게 귀여움만 어필하지 않고 적당한 귀여움과 고운 여성상을 넣은 모습에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반?”
바짝 다가온 것도 인지하지 못했던지라 갑자기 가까이에서 들리는 소리에 움찔하며 크게 몸을 흔들자, 세이나는 걱정스러워져 더 가까이 붙었다.
목에는 자신이 주었던 목걸이가 여전이 걸려있었고,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귀에 달린 작은 백 진주가 움직임에 맞춰 흔들린다.
갸웃 고개를 기울이며 비치는 안개꽃모양의 머리장식이 눈에 박히고 눈이 마주치자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바로 다시 고개를 왼쪽으로 휙 하고 돌려 완전히 세이나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엥?”
바이안의 이상행동에 뭐다냐? 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바이안은 오히려 좋아 죽는 것과 곤란해 죽을 것 같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세이나와 바이안의 키 차이가 상당하기도 했지만, 고개를 숙이니 보이는 세이나의 가슴이 눈에 박혀버리자 그는 당황을 누르기 위해 노력했다.
세이나가 늘 편한 옷을 고집하다보니 그동안 몰랐는데, 저렇게 입고 보니, 컸다.
물론 전에 세이나의 품에 안겨진 전적도 있어 어느 정도는 굴곡이 있다 예상은 했었다.
작은 체구에 클 수도 있다는 것에 감격하다가 그런 자신에게 깜짝 놀라 힐책을 하고, 그러다 다시 떠오르니 좋다가 흠칫하며 서둘러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봤지만 무리다. 그것도 그런 게 눈앞에 있지 않는가.
“바안?”
세이나가 고개를 돌리는 곳으로 이동을 하면서 시선을 맞추니, 어쩔 수 없이 자연히 보이는데, 어찌 머릿속의 망상을 막을 수 있을까.
주변에서는 휙 하고 피하면 샥 하고 마주하고, 다시 휙 하면 샥 하는 행동을 무한 반복하는 세이나와 바이안을 보면서 차마 큰 소리로 웃을 수는 없어 서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조용히 숨을 참았다.
예쁜 모습을 실컷 봐도 모자란 판에 마음껏 볼 수가 없는 현실이 곤혹스럽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은 세이나가 바이안의 얼굴을 억지로 두 손으로 잡아 고정을 시킴으로 일단락이 지어졌다.
“가만있어.”
“그..”
“스읍~”
“응.”
초반부터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하는 바이안이 진정이 되니, 그의 모습이 그제야 자세히 눈에 들어온다.
깔끔하고 심플한 느낌의 하얀색 슈트에 붉은 수실과 금색의 수실이 서로 엮여 왼편의 어깨에 걸쳐지듯 놓여있었고 그 어깨에 금장으로 고정 시켜 정리를 하였다.
목 아래에 까지 닫혀 있는 셔츠에는 황가의 대표적인 꽃이 붉은 실로 곱게 수가 놓여 슈트 안쪽에서 언뜻 보였다.
바지의 양 옆으로는 골반부터 바짓단까지 길게 붉은 색으로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가의 문양이 금색으로 크게 수가 놓아진 남청색의 망토를 가볍게 걸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머리를 깔끔하게 오른편으로 올린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에 바이안은 옷을 새로 해서 입지를 않는지, 아무리 고급스러운 옷감이라도 늘 조금씩 헤져 보이는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만을 보였었다.
그 후에 보는 모습도 늘상 기사들이 입는 편한 복장만 하고 다니니 지금의 복색은 세이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잘생김을 향이 좋은 기름에 구워서 맛좋은 소금을 살살 뿌렸네.”
세이나만의 감탄사를 혼잣말처럼 읊지만 정작 듣고 있는 바이안은 자신에 대한 칭찬이라는 것은 알아듣지 못하고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