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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흘러내림(제4권) - 열매
작가 : 말레이
작품등록일 : 2020.8.20

이 소설 "흘러내림"은 언어의 시작 점인 창세 때부터 2040 여 년 대의 미래까지를 언어와 문자를 소재로 이어가는 소설로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언어 등의 모든 것이 오늘 우리모두에게까지 흘러 내려왔으며 이 흘러내려옴은 막힐 수 있는 강과 내처럼 수평적 흐럼이 아니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수직적인 흘러내림이고 그렇게 우리에게 주신 것 중의 귀한 우리의 문자(한글)와 언어(한국어)를 세계에 널리 알리며 그 배에 복된 소식도 나누어야 한다는 주제로서 제1권 - 뿌리, 제2권 - 나무, 제3권 - 가지, 제4권 - 광합성 중의 제4권이다.

 
또 하나의 훈련과 연단
작성일 : 20-08-30 19:08     조회 : 46     추천 : 0     분량 : 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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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훈련과 연단!

 

  내가 대학을 마칠 때 까지 삶과 생활에 있어서 미처 해결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과 타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2년여의 세월! 을 보내고 그리고 또 대학 4년을 공부하느라 군 입대문제가 늦어졌던 것이다.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이제 사병으로 군대에 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은 문제 같았다. 그래서 대학 4학년 초에 학사장교를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막상 원서를 제출해 놓고 보니 다른 것은 차후 문제였고 첫 번째의 관문이 체력검정을 받는 것이었다. 만약 이 체력검정의 현장에서 체력 미달로 탈락이 되면 그 사람은 이유 불문하고 그냥 집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경북 영천에 있는 ‘삼사관 학교’에 가서 여러 가지의 체력검정을 받는데 내가 자신이 있어서 무조건 만점을 받는 종목도 있었지만 내게 가장 어려운 세 가지의 종목이 있었다. 6분 안에 들어와야 만점인 1.5Km 오래달리기와 1분 안에 13회를 해야 하는 턱걸이 그리고 1분 안에 60회를 해야 하는 윗몸 일으키기가 나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제일먼저 오래 달리기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뛰었다 하면 그래도 꼴찌는 면하고 항상 뒤에서 2등을 도맡아 왔던 터였다. 물론 이제까지 오래달리기에서 6분 안에 들어와 본적이 역시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출발신호와 함께 30명이 출발선을 출발하였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대학 4학년 학생들이 이렇게 체력이 약한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리면 달릴수록 수검 받는 동료들은 뒤 처지는데 반면에 나는 달리는 것이 가볍게 느껴지면서 앞으로 더 잘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필시 내 힘이 아닌 것 같았다. 결과는 6등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들어온 시간을 보니 딱 만점에 해당하는 6분에 들어왔으니 이는 내게 있어서 가히 기적이었고 나의 사전에 경사 중의 경사였다. 전국의 대학에서 몰려온 동급생들(아니, 엄밀히 보면 공부를 같이 하여 동급생이었지만 사회생활 등으로 늦게 입학을 하였으니 후배들, 그리고 더 늙은 선배들이 함께 뒤 엉켜 있었다.)은 대부분 뒤이어 들어와서는 땅 바닥에 들어 누우면서 하는 말이“아! 그 동안 술, 담배를 너무 많이 마셨는가 보다. 이제는 못 뛰겠어!”라고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힘과 용기를 얻은 나는 문제가 되지 않는 일반 종목들을 거쳐 드디어 턱걸이 부문에 도착을 하였다. 당시 시험관이던 장교가 이렇게 말하였다.“여러분에게 시간은 얼마든지 줄 터이니 끝까지 최선을 다 하기 바랍니다.“ 그 말이 처음에는 그 장교의 허세로 들렸다. 왜냐하면 턱거리라는 것이 어디 아무리 시간을 많이 준다고 한들 될 수 있는 것이던가? 끈기를 가지고 철봉에 매달려 있다고 하여도 최대 2분을 못 넘기고 다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히려 그 말이 내게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그 장교의 말대로 정말 최대한 힘을 기울여 13개를 할 때까지 철봉을 붙잡고 늘어진 결과 정말 만점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위기인 윗몸 일으키기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방위병에게 임하였는지 방위병은 쉴 사이 없이 소리 높여 숫자를 계속 세면서 나의 체력검정을 통과를 돕고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을 합친 체력검정은 결과적으로 기적이었다. 시험관이 호출하는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데 가을 낙엽 떨어지듯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이어서 신체검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도 며칠 후 다시 군인 병원들을 전전하며 정밀 신체검사를 받고 나서도 다시 최종 결과를 기다려야만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감사하게도 합격이었다. 그날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럽던지!...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이미 학사장교에 합격을 해 둔 나는 소집통보가 올 때까지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졸업 후 바로 교단에서 운영하는 신학연구원에 입학을 하였다. 이곳에서 청파동의 야간학부에서 공부를 하였던 동기들을 만나 그 동안 전혀 알지 못하였던 동기생의 정을 쌓아갔다. 그렇게 한 학기를 공부한 이후 87년 10월 10일에 제10기 학사 사관후보생으로 영천 삼사관 학교에 입교를 하기 위하여 휴학을 하였다.

  사관학교에서의 훈련은 그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특수 훈련이었고 극기 훈련이었다.

 

 “여러분은 군을 원하였고

 군은 여러분을 키워줄 것이다.!”

 

 당시 삼사관 학교의 교장이었던 어느 장군이 첫 강의에서 하던 환영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군에 입대하기 전 170Cm의 키에 몸무게 53Kg이었던 내가 학교장의 첫 훈시처럼 그렇게 시작된 훈련과 하나하나의 고비를 넘길 때 마다 나의 체력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기는 하였지만 물론 후보생으로 입교하였다고 하여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임관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관과 신사라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강력한 훈련을 통하여 강한 장교를 육성하고자 하는 군과 그 임무를 맡은 구대장 들은 아주 냉철하고도 차갑고 후보생들을 몰아 붙였고 마치 후보생들을 낙오시켜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때까지 워낙 가볍고 날렵한 몸매? 를 유지하고 있었던 데다가 거기에 근력이 붙으면서 점점 더 장교의 모습으로 변신해 가고 있음을 미처 알 수 없었고 오직 눈앞에 주어진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어 내겠다는 사명감으로 불타가기만 하였을 분이었다. 아직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나의 눈빛이 독사의 눈처럼 빛났던 것은 바로 이제까지의 여러 가지 극한 상황에서 무엇을 어찌할 바를 모르며 부드럽고 유하던 사고 속에서 무언가 아쉬움을 느끼던 내면의 갈등이 후보생 과정의 훈련을 통하여 분명한 목표와 사명감으로 정리가 되면서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 없는 눈빛으로 다져진 것은 역시 마음의 변화 때문이었으리라.

  그러한 극한 상황을 통하여‘다부지고 당찬 만능 소대장!‘을 만들어 낸다는 이 삼사관 학교의 훈련과 교육은 그렇게 내 어린 시절의 순박함을 밀어내고 목적지인 고지를 향하여 생명을 걸고 나아가는 전사를 만들어 내었고 날이 가면 갈수록 나의 눈에는 한줄기 빛이 반짝이는 매섭고 날카로운 눈매로 마치 먹이를 발견한 매의 눈매처럼 변해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매사의 행동과 말은 그야말로 결단과 냉철 그 자체였다.

  그렇게 한겨울을 지내며 5개월의 훈련을 마치고 88년 2월 28일에 2만 촉광이 빛난다는 다이아몬드 하나를 머리와 어깨에 달고 소위에 임관을 한 이후에 광주에서 보병으로서의 구체적인 병과 교육을 거치고 나서 자대에 배치를 받게 되는데 이미 병과 교육을 마쳐가는 동기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풍문이 자자했다. 특전사는 자신이 지망을 하고 더 신체적 조건으로 떨어진다니 내 스스로 그곳에 지망할 일도 없을 것이고 또 지망한다 하여도 역시 체력조건상 거부당할 것이 분명한대 문제는 특공대였다. 특공대 역시 특전사처럼 정기적으로 천리 행군을 하고 낙하산 훈련을 하는 등의 강한 훈련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문제는 특공대로 갈 장교는 컴퓨터가 무작위로 지명을 하여 부대로 배치를 한다는 것이었다. 설마 특공대는 숫자적으로 적고 일반 육군부대는 그렇게도 많은데 정말 설마 특공대로 떨어지지는 않겠지? 마치 시험을 보고 나서 성적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구대장의 발표를 기다리는데 마음이 조마조마 할 뿐이었다. 상무대의 구대장은 후보생 시절의 구대장들 과는 달리 병과 훈련을 받는 동안에 이미 임관한 같은 장교로서 아주 신사적으로 병과 훈련을 받는 훈련생들을 대하였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훈련도 끝이 나게 되어 있었다.

  자대배치 한 주를 남겨두고 드디어 구대장이 배치 받을 자대를 발표하는 시간이 되자 구대 장 은 군번과 이름을 호출하면서 전출가야 할 부대를 알려주었고 먼저 이름이 호명된 다른 동기들의 탄성과 만족의 함성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드디어 나의 군번과 이름이 불렸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기다려온 시간! 일반 부대이겠지! 라고 생각하는 나의 귀에 ‘203특공대!’라는 청천 병력 같은 부대명이 들려왔다. 아! 이 어찌 나 같은 약골에게 강하디 강한 그런 부대라니 군이 무언가 판단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았고 부대배치를 통보하는 그 구대장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결정은 군이 한 것도 아니었고 오직 컴퓨터가 무작으로 지명하도록 프로그래밍을 하였다는데 그 컴퓨터가 나를 지명한 것뿐이었다.

  한 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자대로 가서 신고를 마치고 나서 시작된 부대생활은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임무였고 특히 특공병사들을 훈련시키는 일은 체력이 약하였던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었음이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부여받은 임무와 그것을 감당해 내겠다는 투철한 정신은 이미 중심을 잡고 있는 터였다. 그러므로 실제 부대원을 통솔하는 일이며 올림픽 작전 및 각종의 크고 작은 작전과 많은 훈련으로 전투력을 만들어 내는 일에 투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지휘 통솔 능력이 배양되어갈 수 있었고 병과교육을 받으면서 걱정하던 그 걱정은 모두가 하나의 기우였다. 그 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고 또 군인이라면 누구나 감당해 낼 수 있는 그런 일 이었다. 또 국가와 임무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이 나의 어깨에 달려 있는 한 나는 모든 일을 감당하고 나아갔다. 후보생의 과정이 무조건 강함을 키우는 과정이라면 실제로 부대원을 지휘하면서는 강함과 온유를 함께 공부하는 기간이었고 후보생 때는 오직 무기를 익히고 전술과 전략을 익히고 사물을 활용하는 것을 배웠다면 부대에서는 지휘하면서 사람과의 관계성을 배우는 기간이 되었다. 그리고 강인한 부대원들을 직접 지휘 통솔하면서 체력적으로도 그만큼 단련되어 갔고 무엇보다도 특별한 임무로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에 대하여 철저하게 몸으로 익히고 감당해 내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이 내게 있어서 중요한 성장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군 생활을 통하여 나에게 남은 것은 모든 것에 대한 실제의 사실! 이 무엇보다 중요함으로 무엇이 사실 이냐 와 옳고 그름에 대한 바른 선언! 을 중요시하는 데 생각의 관점을 갖게 되기도 하였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실수나 잘못은 용서되고 이해될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문제가 있었다 하여도 상대방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거나 시인하면 잘못된 것도 용서 하지만 그렇지 않고 그것을 감추거나 변명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그것을 철저히 규명하려는 경향과 사고가 자리 잡기도 하였다. 그야 말로 군대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사고에 생활방식 속에서 사실과 진실 그리고 진리가 중요하다는 사고에서 용서를 키워가야 하는 부분이 과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것 역시 후에 목회와 선교의 현장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 씩 조금 씩 이해하고 용서하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자라게 됨은 참으로 다행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군 창설 이래 장사병을 떠나서 의무복무로는 가장 긴 시간을 군에서 보냈던 만 3년 5개월의 군 생활을 그렇게 마치고 한 편으로는 무겁게 짓누르던 어떤 속박으로부터 탈출하는 것 같아 속이 후련하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언가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부대와 전우들을 남겨둔 채로 원래의 생활터전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군 생활을 마치면서 나는 누님에게 다시 얹혀서 누님께 어려움을 주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동안 사귀어 오던 아내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독립하여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학교에 복학을 한 나는 열심히 학업에 임하였다. 초중고 때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지만 사람은 다 때가 있는 모양이다. 목회와 선교사역에 있어서 가장 기초이면서 중요한 학문이 바로 신학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니 한 시간 한 시간의 강의 시간이 예사롭게 보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정말 교수님의 머리가 뚫어져라 바라보며 강의에 열중을 하였다. 그리고 자연의 풀 한포기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조차도 점점 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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