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의 제안대로 원길과 미령, 세 사람은 유명 호텔 스위트룸에서 만났
다. 성현이 포커치고 적당히 술을 마시자고 했고 원길도 삼정으로 세상
이 들끓듯 시끄러운 데 조용한 곳이 좋았다. 미령이 원길의 휠체어를 밀
고 약속 장소인 룸으로 향했다.
원길은 사이버수사대장에 전화를 받은 후부터 딴생각에 젖어있었다. 알
턱이 없는 미령은 불안하기만 했다. 동거남으로 착각해 자신을 의심을 하
고 있는 원길이 언제 어디서 돌변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다 왔어요..."
"........."
"원길씨?"
"네? 네...!"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촌오빠 기대되는데요. 미령씨처럼 매력적이고 기
지가 뛰어난 분일지 궁금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원길씨 다 알고 있다면서 자꾸 속아주는 이유가 뭐에요...
미령이 불편한 듯 원길을 내려봤다.
스위트룸을 열자 성현이 기다렸다는 듯 정중앙에서 서 있었다. 최대한 공
손하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원길은 하나라도 놓칠까봐 성현의 행동
을 뚫어지게 봤다. 인사를 받지 않고 그대로 거실 소파에 몸을 옮겼다.
성현이 약간 뒤틀린 얼굴로 원길을 봤다.
"안녕하십니까?"
성현이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조금 늦으셨습니다..."
실실 쪼개듯 성현이 웃었다.
원길은 그때까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
"음료수라도 드시겠어요?"
미령이 물었다.
"술에 얼음 띄워 갖다 주겠어요..."
"네... 사.. 사촌 오..빠도?"
찔리는 게 있는지라 부드럽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래. 나도 한잔 만들어다줘."
간이 주방으로 미령이 나갔다.
실내 공기는 냉냉하기만 했다. 성현과 원길이 질세라 서로를 노려봤다.
"우리 언제 본 적 있지 않습니까?"
겨우 원길이 입을 열었다.
"그럼요."
"미령씨 아파트 입구에서요..."
"아니.. 아니.. 그 전부터 구면이죠?"
원길이 눈썹을 씰룩거렸다.
"하하하!!! 신문에 오르내리는 분 아니십니까?"
이해한 듯 시선을 미령에게 바꿨다.
"왜 속아주십니까?"
번뜻 놀라 다시 성현을 향했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 같이 대단한 양반이 그거 하나 조사 못하겠습니
까? 이해할 수 없군요... 속아주는 이유를...."
"그건 미령씨가 내 여자니까... 보호하고 존중하려는 거요.."
"오... 감동인데요."
성현이 비꼬았다.
원길이 홍조 띈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때마침 미령이 술잔을 들고 걸어왔다.
"초저녁부터 그렇긴 하지만 포커 게임이나 하죠?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진 않지만 지금과 같은 제안을 거절하지 않죠..."
침착하게 대꾸했다.
"난 목적이 있는 게임엔 진 적이 없어요..."
원길이 강하게 말을 덧붙였다.
"하하하!!! 그러세요? 어디 두고 봅시다"
성현은 먼지를 털 듯 게임방으로 걸어갔다.
미령이 걱정스럽게 원길을 봤다.
사납게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