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준은 20호짜리 캔버스 두 개를 카운터 위에 놓았다.
“얼마죠?”
“두 개요?”
“예.”
“24,000원입니다.”
시내 화방에서 캔버스를 산 예준은 작업실로 가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가로수의 연두색 잎이 제법 짙어질 만큼 봄이 한창이었지만 예준의 하루는 아이들 미술학원, 화방, 지하 작업실로만 채워졌다. 그나마 가까운 거리에 방파제가 있어 다행이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바닷가에 나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키면 막막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게 자식새끼가?”
차창 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예준은 앞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큰 소리로 전화를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였다. 엄마뻘 되는 아주머니는 몹시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저거 아버지 환갑이라 여행가는 데 같이 못 간다 하잖아.”
“아니 그러면 하다못해 30만원이라도 보내든지.”
“그러니까 말이야.”
“썅노무 새끼, 애써서 키워놔 봤자 소용도 없다니까.”
“집에 갔더니 천리향인가 지랄인가 한 박스 배달 시켜 놨더라. 참. 나.”
“그게 저거 아버지 환갑 선물이가? 생각이 있나 없나?”
“그게 자식이가? 짐승만도 못하지. 완전히 빡쳐서 진짜. 나이 서른이 다 됐는데 그 정도 정신머리도 없나? 꼴도 보기 싫다 진짜.”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여성은 아마도 아주머니의 친구 같았다. 열이 잔뜩 받은 아주머니를 달래려고 맞장구를 쳐 주는 것 같은데 그럴수록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더 과격해졌다.
예준은 스마트폰을 켜고 엄마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지난 2월 설에 못 내려간다는 전화를 한 이후로 통화 버튼을 한 번도 눌러 보지 못했다. 엄마는 앞에 앉은 아주머니처럼 자식의 뒷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지만 아주머니만큼이나 자식 때문에 속이 쓰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준은 먹먹한 마음을 애써 달래려고 창밖을 쳐다보고 크게 한 숨을 쉬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아주머니의 짜증이 자신을 향한 것 같아서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