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는 꼭 숲속의 공주를 깨우는 멋진 왕자가 될 거야!"
"왜? 리아는 공주님인데?"
"싫어! 공주는 맨날 구박받고, 남한테 도움만 받잖아. 내가 도와줄 거야! 내가 왕자처럼 멋지게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울 거야!"
어린 리아는 나무로 만들어진 장난감 칼을 들고 소리쳤다. 눈앞에 불을 내뿜는 용이라도 있는지 그녀는 허공에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마당을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보던 안드리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가브리엘을 봤다. 가브리엘이 그의 손등을 제 손으로 덮어주며 마당을 뛰노는 리아의 모습을 지켜봤다.
"괜찮아. 리아는 남성성이 조금 강한 평범한 여자애일 뿐이야."
"그렇지만... 혹시 우리 때문은 아닐까?"
"그런 말 마. 상담사도 괜찮다고 말했잖아. 어렸을 때, 남자애가 호기심에 치마를 입거나, 화장을 할 수도 있는 것처럼, 여자애도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정체성이 확실히 정해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라."
"그래도 가브리엘. 만약에... 만약에 우리가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거라면..."
"우리가 게이라고, 우리 딸이 동성애자가 된다는 건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이야. 그건 너도 알고 있잖아."
가브리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드리아. 리아는 단지 남성성이 강할 뿐이야. 아니."
"뭐가?"
"우리 딸은, 단지 소꿉놀이보다 밖에서 전쟁놀이를 하는 걸 좋아하고, 인형보다 로봇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야. 여자라고 꼭 모두가 솜인형을 좋아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만..."
안드리아는 불안한 눈초리로 리아의 움직임을 쫓았다. 리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장난감 칼을 여기저기 휘둘렀다.
"난 불안해. 그러니까... 우리는 정상적인 부모가 아니잖아. 거기다 리아는... 결국 모든 걸 알게 될 거야. 초등학교만 가도 분명 알거야. 그때, 리아가 우리를 원망할까봐 그게 두려워."
"있잖아. 우리는 그걸 다 알면서도 결정한 거잖아. 앞일을 너무 걱정하지마. 아직은 몇 년이 더 있은 후의 일이잖아. 지금은 그냥 이 순간을 즐기자고. 리아를 봐. 얼마나 예뻐. 나는 단 한 순간도 여자를 보며 예쁘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우리 딸 리아는."
가브리엘이 안드리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리아를 눈에 담았다. 마당을 뛰놀며 미소 짓는 리아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예뻤다.
"리아는 우리 딸이고, 우리는 그녀의 부모야. 난 부모 없이 이모 밑에서 자랐어. 부모의 역할이 꼭 낳아준 사람에게만 자격이 있는 건 아니란 걸 알아. 우리는 잘하고 있어. 앞으로도 잘 할거고."
"고마워. 늘 당신이 옆에 있어줘서."
"안드리아. 우리는 그저 리아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든 지켜봐주고 믿어주면 돼. 우리딸, 리아에게는 그거면 충분할 거야. 정말 강한 아이니까."
가브리엘과 안드리아가 서로를 다독이고 있을 때, 리아는 뛰놀다가 그만 돌에 걸려 넘어졌다. 그들이 깜짝 놀라 리아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리아가 울지도 않고 혼자 힘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아빠. 나 넘어졌어."
리아는 방긋 웃으며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그녀의 해맑은 눈동자가 햇살에 비쳐 반짝거렸다. 그녀를 보는 가브리엘과 안드리아의 입가에도 환한 햇살이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