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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백색살인
작가 : BLED
작품등록일 : 2019.9.30

 
백색살인(21화)
작성일 : 19-10-16 23:08     조회 : 11     추천 : 0     분량 : 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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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형표는 기분이 불쾌했다.

  녹화가 끝난 것은 오래전이었지만 스튜디오 3층 로비에 서서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10월도 다 저물어가고 있는데 때 아닌 늦은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내리는 비는 가을비답지 않게 빗줄기가 굵었다. 가로등 불빛도 빗줄기의 위세에 꺾여 제자리조차 비추지 못할 정도였다. 흐릿한 불빛에 비치는 빗줄기는 마치 물고기의 비늘처럼 번뜩거렸다.

  한참동안을 비가 내리는 밤 풍경을 내려다보던 문형표는 가슴을 누르고 있는 답답함을 쓸어 내기라도 하려는 듯 숨을 크게 몰아 쉰 다음 돌아서서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로 갔다.

  이 시간이면 대부분의 녹화가 끝난 뒤였지만 위층 어디선가 아직 녹화가 끝나지 않았는지 한바탕 커다란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인지 방송국은 아직도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로비를 거의 다 가로 질러 갔을 때 땡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드라마본부장과 예능1팀장이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문형표는 그들을 보자 가득이나 불쾌했던 마음이 더욱 나빠졌다. 다행히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로비에 서 있는 문형표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문형표는 조금 전에 자기가 맡고 있는 토크쇼 프로그램이 이번 주로 종영된다는 것을 통보 받았다. 말인즉슨 시청률이 낮아 광고주들이 광고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건 서로의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될 좋은 핑계거리였을 뿐이다.

  오히려 문형표의 프로그램이 평일에 방송되는 비슷한 여타의 시사토크 프로그램들보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고 있었다. 문형표는 자기 프로그램이 중도 하차하게 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들리는 말로는 예능 1팀장이 자기 고향 후배인 한 중견 탤런트를 새로운 진행자로 내세우기 위해 문형표의 프로그램을 대체해 달라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예능 1팀장의 요구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가 진행했던 프로그램 마다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두 개의 프로그램도 30%대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모든 드라마와 프로그램이 죽을 쑤고 있는 마당에 그나마 예능 1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최고의 시청률을 높이고 있는 마당에 회사로서는 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문형표도 방송 생활만 벌써 20년 넘게 해오고 있는 터라 방송사의 생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광고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밖에 없다면 광고주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프로그램으로 제작되고 편성되어야 맞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방송국이 예능과 오락 위주의 방송 프로그램으로 도배되다시피 하는 세태에서 그나마 교양 있고 시사성 있는 프로그램이란 거의 유일하게 문형표의 프로그램밖에 남질 않았다.

  그런 절박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문형표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고, 자기의 지적인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라 진행을 맡으면서부터 정말 혼신을 다해 진행해 왔었다.

  기존 공중파 방송만 있던 시절에도 경쟁이 치열했지만 지금 같지는 않았다. 프로그램이 개편될 때에도 적어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채널의 종편 방송이 생기면서 방송사들마다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제 경쟁은 방송사간만의 경쟁이 아니었다. 방송 채널이 많아지자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이 넓어졌다. 덩달아서 그 시청자들을 쫒아 광고주들의 선택 폭도 넓어졌다.

  방송사가 시청자와 광고주를 선도하던 시절의 방송처럼 해서는 치열한 시청률 싸움에서 이길 수 없게 되자 방송사마다 저마다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다른 방송사와의 차별화 전략이기도 했지만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문형표가 몸담고 있는 ‘PBC'종편 방송사는 특별히 오락과 뉴스에 집중했다. 다른 종편 방송국들이 주로 기존의 언론사가 출자한 것과는 달리 ‘PBC' 종편 방송사는 국내의 유력한 대승그룹 계열사였다.

  대승그룹은 ‘PBC'종편 방송사뿐 아니라 신문, 라디오, 영화와 게임은 물론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춘 멀티플렉스 상영관까지 모두 갖춘 미디어 왕국이었다. 국내에서는 마주할 상대가 없었다.

  외부에서는 사익을 우선으로 하는 대승그룹이 공정성을 유지해야 할 방송까지 장악하게 되었다고 비판의 소리가 높였지만, 오히려 ‘PBC' 종편방송사는 다른 종편 방송사보다 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방송을 보이고 있었다. 넓은 방송국 로비에 들어서면 그들의 지향점을 극명히 보여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청률이 곧 우리의 존재 이유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그 시청률을 위해 예능 1팀장의 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이유가 문형표가 이 방송국을 떠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문형표는 씁쓸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중이 절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절이 중을 내쫒은 것 같았다.

 

  껄끄러운 두 사람과 마주치기 싫었던 문형표는 그들이 자기를 알아보기 전에 몸을 피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계단을 택했다. 그러나 문형표가 계단을 향해 막 몸을 돌리려는 순간 고개를 든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에이. 씨팔……. 오늘 일진 정말 더럽네.’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형표는 그냥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이 더 자존심 상할 것 같아서였다. 엘리베이터로 들어서는 문형표를 보고 당황해 하던 예능1팀장이 금방 얼굴 표정을 바꾸며 아는 체를 해왔다.

  “아! 선생님이 지금 시간에 웬일로? 아!! 지금 녹화가 끝났나보죠?”

  ‘이 자식이 누굴 놀리나……. 갑자기 웬 선생님?!’

  방송국에서는 나이 많은 원로 연예인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문형표가 아직은 그런 호칭으로 불릴 만큼 나이가 많거나 방송 경력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예능팀장의 말투가 불쾌하게 다가왔다.

  “선생님은 무슨……. 퇴근이 늦으셨네? 두 분다.”

  문형표는 속내를 감추고 드라마본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문형표의 프로그램을 종영하도록 지시한 본부장은 문형표의 말을 못들은 척 딴청을 피웠다.

  문형표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 서로 가벼운 목례를 하고 각자의 차로 향했다. 그들과 헤어져 자기차로 간 문형표는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자동차 타이어에 발길질을 해댔다.

  “에이. 씨팔!!! 나이도 어린놈이 마치 자기가 혼자 이 방송국을 먹여 살리는 것처럼 유세를 떨고 지랄이야. 지랄이…….”

  문형표는 자신의 익스플로러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 연기가 열어놓은 창문 틈새로 빠르게 빠져나가 지하 주차장의 형광등 불빛과 어울러져 엷은 코발트빛을 띄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깊숙이 빨아들인 알싸한 담배의 니코틴 향이 온 몸의 긴장을 다소 누그러트렸다.

  문형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참에 방송을 접고 다른 것을 해 볼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직은 좀 더 현직에 있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냥 연극계에 남아 있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사람들이 그냥 자기를 잘나가는 연예인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의 과거 경력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연예인이라기보다는 진보 지식인으로 자리매김 할 정도로 경력이 화려했다.

  문형표는 어린 시절부터 머리가 비상했다. 서울의 명문 K중학교와 K고를 졸업한 뒤 단번에 전국의 내로라하는 수재들만 간다는 명문 S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갔다.

  S대학교 법학과에 다닌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재학 중에 사법고시는 따 놓은 당상이고, 미래의 엘리트 코스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했다. 본인이 원한다면 명예와 부와 권력을 한꺼번에 가질 수 있다는 말과 동의어이기도 했다.

  원래 문형표는 조용하고 정적인 성격이었다. 굳이 따진다면 내성적인 성격에 문학을 좋아하는 보통의 학생이었다. 그래서 S대 법대에 입학했을 때에도 주변에서 난리 법석을 떨었지만 정작 본인은 무덤덤해 했다. 그는 그냥 다른 선배들이 걸었던 것처럼 법관이 되어 자기의 길을 걸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 때 문형표는 뜻하지 않은 커다란 운명과 만나게 되었다. 대기업에 납품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대기업의 부당하고 집요한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부도가 난 것이다. 그 바람에 살고 있던 집마저 채권자들에게 다 넘어가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다음 해에 세상을 뜨게 되었다.

  집안이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되다시피 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만 살던 문형표의 어머니는 문형표의 학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파출부 일을 해가며 삶을 꾸려갔다.

  그러나 그때 이미 문형표의 마음은 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순진하게도 이 세상의 현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었었다. 불행은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가혹했다. 그러던 중 설상가상으로 문형표의 어머니마저 그가 대학교 3학년 때 뺑소니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불행은 연속해서 온다고 했지만 자기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문형표는 사법고시에서 떨어졌다. 한 번의 실패는 법대생이라면 대부분 겪는 일이었지만 문형표는 사법고시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법관의 길을 포기한 문형표에게 사법고시 합격은 의미가 없었다.

  대기업의 횡포와 무책임한 뺑소니 운전자에게 부모를 잃은 문형표는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처럼 생각하는 지식인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문형표는 공부보다는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던 시위에도 적극적이었고, 강렬하고 직설적인 대자보로 많은 학생들을 열광시켰다. 뛰어났던 재능이 엉뚱한 방향으로 벗어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교수들이 그의 생각을 되돌리려 했지만 문형표의 생각을 바꿀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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