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6
작성일 : 19-10-01 15:40     조회 : 28     추천 : 0     분량 : 1958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마동은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마동이 대기실로 나오니 바통을 이어받은 학생하나가 진료실로 초초히 들어갔다. 학생역시 입을 막고 기침을 했다. 분홍간호사는 언제 나왔는지 아까의 미소보다 질이 좀 더 좋아진 미소를 한 채 꼿꼿하게 카운터에 서 있다가 처방전의 종이를 건네주었다.

  분홍 매니큐어의 긴 손가락.

  영화 속 복장처럼 보이는 타이트한 분홍색의 간호사복.

  간호사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마동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간호사는 어떻게 입어야 잘 어울리는 복장이지? 반문했다.

  간호사는 엄마 같은 미소와 펑퍼짐하거나 바지를 입고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분홍간호사처럼 타이트하고 육감적으로 보이는 복장은 안 되는 것일까.

  하지만 분홍간호사가 입은 복장은 간호사와 아주 잘 어울렸다. 전혀 답답해하지 않아 보였고 보는 마동역시 답답하지 않았다. 마동은 평소 하지 않던 생각에 고개를 흔들며 간호사가 건네주는 처방전을 받아서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왔다. 간호사는 허리를 굽혀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지만 과하지 않는 인사였다.

  간호사와 의사는 무슨 관계일까. 두 사람은 그저 사회적 동료가 아닐 거야. 병원에서 혼자 일하는 간호사가 어디 있을까. 분명 의사와 애인사이이거나 부부이거나. 그러니 두 사람만으로도 병원은 나름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부부 사이라고 하기에는 두 사람의 나이차가 너무 나 보였다. 간호사는 이제 20대 초반으로 보였고 의사는 멋있고 젊어 보였지만 나이는 40대 중반. 하지만 외모 상으로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다면 이상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동은 머리가 아팠다. 어째서 이런 생각을 집중해서 하는지 자신도 놀랐다. 병원을 나오니 태양이 너무 뜨겁다는 것을 이제야 느꼈다.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밀어내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완구도매점 주인에게도 인사를 하고 왔던 골목을 지나쳤다. 만두가게에 만두모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이 나가고 난 뒤에 만두가게는 손님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먹고 간 흔적이 아직 테이블위에서 치워지지 않고 있었다. 문득 만두 가게안의 모습이 1984의 식사 때마다 단체로 줄을 서서 밥을 먹었던 지저분한 식당의 모습과 흡사해 보였다. 지저분한 테이블과 벽과 천장의 오래된 몰딩이 눈에 들어왔다. 약국으로 가서 처방전을 약사에게 내 보였다. 약사는 고객유치에 필요한 미스코리아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마동의 약을 지으러 파티션 안으로 들어갔다. 그 미소는 안심되지 않는 미소였다. 분홍간호사의 미소와 질적으로 차이가 났다. 약사라기보다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약사에게 훈련받은 미소 같았다. 마동은 약이 나오기까지 약국안의 약들을 둘러보았다. 약은 그 이름과 종류를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았다. 세상에 나와 있는 약의 종류는 대략 5만여 가지. 대한민국의 약국에 비치된 종류는 대체로 200여 가지. 좀 더 비치된 약국도 있겠지만 로테이션이 되어야 해서 대체로 그 정도의 양이다. 없는 약을 처방받으면 야국에서는 비슷한 약을 조제해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이제 어지간한 병에는 약을 먹거나 바르거나 투여하면 진행을 멈추거나 나을 수 있다. 반면에 그 약발이 듣지 않으면 좀 더 강하고 자극적인 약을 처방받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제약회사(대한민국 땅덩어리보다 더 큰)의 마수가 전 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약의 소비를 지속적으로 부추기고 있어서 식품회사와 어두운 거래를 통해 그에 응당 하는 바이러스를 일부러 퍼뜨린다는 음모론의 성립이 정말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무지라는 건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은 무지의 세계에서 허덕일 수도 있다. 콜라의 재료가 무엇인지 아직 알려진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제약회사가 약을 끊임없이 만들어서 판매를 하려면 사람들이 소비를 해야 순환이라는 체재에 부합 할 수 있다. 그것이 그쪽에서 바라보는 균형이었다. 비타음료도 약국 안의 냉장고 속에 가득했다. 비타민은 빛을 받으면 무용지물이다. 투명한 병의 비타음료는 비타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사람들은 비타민으로 알고 손을 뻗어서 집어 마셨다.

  약의 종류는 정말 5만 가지만 있을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역시 그 다음을 생각하기를 마동은 포기했다. 약사는 돌아서서 약품을 보고 있던 마동을 불렀다. 약사는 약 먹는 방법을 알려주고 마동은 현금으로 계산을 했다. 약사는 마동에게 냉장고에서 시원한 비타음료를 하나 꺼내서 서비스로 건네주었다.

  “약사님도 지금 밖에 나가면 태양이 몹시 뜨겁다고 느낍니까?” 마동의 질문에 변하지 않을 웃음을 지닌 약사의 표정이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그러니까 못 견딜 정도로.” 질문이 좀 이상했지만 어차피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 상관없었다. 말라서 뼈가 살갗을 뚫고 나올 것 같은 광대를 실룩거리는 약사는 흥미로운 듯 마동을 쳐다보았다.

  “그럼요, 여름이니까요. 저 온도에 누가 견디겠습니까. 연일 일사병으로 누군가는 쓰러지고 뉴스에 보도되는 현실입니다. 가장 무더울 때 아닙니까. 그래서 저기 주차요원이나 시장바닥에서 장사를 하는 할머니들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약사의 말에 마동은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다음 주면 사람들 대부분 여름휴가를 가지 않을까 하는데요. 우리도 다음 주에 갑니다(웃음). 태양은 매년 더 뜨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올해도 73년 만의 더위라고 하던데요. 사람은 매년 뜨거워지는 밖으로 나가고 말이죠(웃음).” 약사는 고객유치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마 잠이 들어도 그런 웃음을 짓고 있을 것 같았다. 안면근육의 이상으로 약사는 더 이상 그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게 되어버린 조커가 떠올랐다.

  마동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일과시간에 집중하여 작업을 하려면 입맛은 전혀 없지만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대로변의 식당이나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려고 했지만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 시간은 모두 일을 하는 시간이어야 했지만 마동의 생각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정오가 조금 지난시간에도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우아하게 시간을 들여 외식을 하고 쇼핑을 즐겼으며 미용실에서 머리를 만졌다. 생산과 소비가 눈에 보이는 모습이었다. 마동은 사람들이 몰려 있지 않은 곳을 찾아서 가려했지만 일반 회사원들과 점심을 밖에서 때우려는 사람들로 식당역시 북적였고 카페 안에는 얼음이 가득 들어간 음료를 마시기 위해 필사적으로 줄을 서 있는 모습에 머리가 더 아파왔다. 회사의 식당은 시간상 음식을 다 치웠을 것이다. 태양은 눈부심을 넘어섰고 열기가 너무 뜨거워 숨쉬기가 힘들었지만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몸이 냉했다. 마동은 아까 그 만두집에서 만두를 먹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는 식당으로 마동은 가고 싶었다. 만두모녀가 앉았던 식당의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마동은 치우지 않은 만두통과 물 컵과 단무지가 담긴 작은 그릇을 한곳에 모아서 홀에 보이는 주방의 선반에 올려놓았다. 씻지 않은 식기들 위로 파리들이 자신들의 세상인양 비행을 하고 있었다. 마동은 테이블에 앉아서 주인을 불렀다. 주인은 누가 이 시간에 이런 곳에 왔지? 하는 표정으로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어디선가(마치 만화에서 악당이 갑자기 등장하듯) 나타났다. 주인은 남자였고 오십은 족히 넘어 보였지만 더 이상의 나이를 감지할 수는 없었다. 눈썹위로 두건을 쓰고 있었다. 불안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그 불안해 보이는 얼굴은 억울한 표정을 만들어내며 마동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이 사람도 나를 구청직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 나타나는 얼굴을 하고 얼굴의 억울한 표정은 마동이 들어오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왔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만두 한 접시 먹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목소리가 쇠했다.

  “아, 예, 예.”

  주인은 뒤로 돌아서 물 컵에 물을 받아서 마동 앞에 놓았다. 만두집 안은 7평도 채 되지 않는 장소에 테이블이 3개가 있고 나머지는 냉장고가 차지하고 있었다. 여름이지만 에어컨은 보이지 않았고 선풍기가 벽에 한 대, 홀의 중앙에 한 대 뿐이었고 선풍기의 날개 팬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만두종류는 딱 하나 뿐이었다. 고기만두 1인분에 2,500원. 뒤로 돌아서 만두를 찌고 있는 주인의 뒷모습에도 억울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주인은 생각났다는 듯 선풍기를 마동 쪽으로 가지고 와서 강풍으로 선풍기를 틀었다. 선풍기는 천식환자가 내뱉은 기침소리를 몇 번 내더니 팬이 돌기 시작했다. 막상 팬이 돌고나니 성능이 나쁘지는 않았다. 바람은 정확하게 마동에게 와서 시원하게 닿았지만 마동은 덥다고 느끼지 못했기에 미풍으로 낮췄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트위터에 접속을 하려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마동은 물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은 목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이상하고 또 이상했다. 물 컵을 들어서 보니 오래된 사기로 만들어진 물 컵이었다. 흠집이 많았고 컵에 그려진 촌스러운 새의 그림으로 봐서 이곳은 오래된 만두집이라는 게 짐작이 갔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는 없었다. 만두 한 접시가 연기를 내며 마동 앞에 놓였다. 맛있게 드시라며 주인은 나타날 때처럼 사라졌다. 만두집에는 적막이 흘렀고 무서운 고요를 깨트리는 것은 돌아가는 선풍기의 소리였다. 만두는 총 10개가 누워 있었고 마동은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에 넣고 씹었다. 냉동만두였다. 만두의 속은 다진 고기와 채소가 신선함을 잃은 채 오랫동안 냉동 보관되어 있다가 스팀 기에서 해동시킨 맛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마동은 만두를 억지로 넘겼다. 역시 감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어린 시절에 엄마는 만둣국을 해줬었다. 그건 어렴풋하나마 기억이 났다. 아버지가 만둣국을 좋아했고 김치로 만두 속을 만들어 만둣국 안의 만두를 터뜨리면 김치가 터져 나와 벌겋게 만둣국에 퍼져서 떠먹었던 기억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이렇게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니 마동은 어릴 때는 꽤 만둣국을 먹었다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먹은 만둣국이지만 지금 씹어 먹고 있는 만두처럼 맛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곡된 기억 속에서 음식 맛을 기억하는 이들은 잘 없었다. 맛있었다. 또는 맛없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기억될 뿐이다. 맛있다, 맛없다 이외의 맛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다.

  약을 먹기 위해서, 또 오후의 중요한 작업을 위해서 마동은 만두의 맛을 느낄 수 없었지만 억지로 씹어 먹었다. 약봉지 안의 약 한 봉을 뜯어서 물과 함께 삼켰다. 일인분에 2,500원 하는 만두를 3개 집어먹고 마동은 오천 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만두집을 나섰다. 나서면서 만두집을 보니 곧 없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주방의 식기위해서 비행하던 파리들이 이동을 해서 마동이 먹다 남긴 만두위에서 비행을 했다. 밖으로 나오니 태양의 열기와 광채가 더욱 빛나고 뜨거웠다. 약을 먹어서인지 몸이 무겁다거나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증상은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것보다는 덜한 기분이 들었다. 약을 먹고 바로 약 효과가 나타날 리가 없다. 이건 단지 플라시보일 것이다. 태양은 그야말로 내일부터는 더 이상 이글거리지 않을 것처럼 격하게 타올랐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뜨거운 태양 밑에서 장을 보고, 태양의 열기에 자동차열기까지 겹친 곳에서 일을 하고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도로를 건너다니거나 건물 안에서 밖에서 우르르 나오기도 했다. 움직이는 초현실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마동은 사무실로 가기위해 천천히 그늘을 따라서 걸었다. 도로의 가장자리에는 불법주차를 단속하기 위해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을 마련해서 요금을 시간제로 받고 있었다. 구청은 그렇게 주차요금으로 받은 자본은 불우이웃에 돕는다고 했지만 실제로 어딘가로 흘러 들어가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역시 검은 음료의 재료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도로변에 의자가 있고 한 주차요원이 뜨거운 태양 밑에서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주차를 하고 빠져나가는 자동차들을 감시자의 눈으로 관찰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꽤 젊은 나이로 보였으며 태양 밑에서 사시사철 일을 해서 그런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대부분 주차요원들은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여자주차요원(나이가 많은 아주머니들)들은 눈만 빼고 모든 신체를 가리고 있었다. 그들 중 유독 저 젊은 주차요원은 검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두텁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안경테의 색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얼굴이 검게 그을렸다. 마른 체형이라 머리가 더 크게 보였으며 턱이 마치 고인돌을 보는 듯했다. 무표정한 얼굴과 마른굴곡에 보기 이상할 정도로 큰 턱을 지니고 있었다. 그 턱은 앞으로 조금 나와 있었는데 마늘고 빻을 만큼 튼튼하게 보였다. 마동의 눈에만 기이하게 보였는지 사람들은 그의 큰 턱을 보고도 지나치거나 관심이 없다.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동의 눈에는 마치 인간의 얼굴에서 벗어난 반인처럼 보였다. 표정이 빠져버린 그의 얼굴에서는 무더운 여름에도 전혀 더위에 굴종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충실하겠다는 것이 엿보였다. 무표정 속에서 약간 붉게 물든 눈동자는 아주 빠르게 이쪽저쪽을 훑어보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차가 저 멀리서 주차공간에서 시동을 걸면 의자에서 튕기듯 일어나 그쪽으로 쏜살같이 갔다. 누군가 주차요금을 내지 않고 그대로 주차공간을 빠져나가면 어느 샌가 그 차의 앞으로가서 주차요금표를 창문에서 떼어 낸 후 조용하게 창문을 두드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주차요원에서 요금을 지불했다. 주차요원이 어디 있는지 못 봤다며 말하는 운전자도 있었지만 그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요금을 징수하면 무표정한 얼굴로 차가 나갈 수 있도록 몸을 비켜줄 뿐이었다. 표정이라는 것이 고인돌의 턱을 사진 주차요원에게는 딱히 필요가 없어 보였다. 요금을 징수 받은 주차요원은 무표정하게 왼손바닥으로 차의 보닛이나 트렁크부분을 두드려서 출발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전혀 땀을 흘리지 않고 무표정한 주차요원을 ‘고인돌’이라 부르기로 했다. 고인돌은 할 일을 마치면 다시 돌아가는 텐테이블의 바늘처럼 의자가 있는 자리로 총총히 되돌아가서 앉았다. 그리고 매의 눈으로 자신이 할당받은 구역 안의 주차구간을 샅샅이 주시했다. 고인돌의 움직임에서 불필요한 움직임은 전혀 찾아 낼 수 없었다. 의자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보거나 담배를 피거나 누군가와 말을 섞지도 않았고 무더운 날씨나 주차요금을 내지 않고 그냥 가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고인돌은 그만의 세계 속에서 이 세계를 접목시켜 활동하고 있었다. 그것이 타인과 다른 모습이지만 많은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고인돌만의 방법일지 몰랐다. 고인돌은 독자적인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다. 약 때문인지 플라시보 때문인지 불쾌한 증상들은 사라졌다. 태양의 무시무시한 열기도 조금은 참을만했다. 그렇지만 태양이 쏘아대는 빛은 너무나 눈이 부셨다. 눈을 제대로 뜨고 있기 힘들 정도였다. 아직 가을이 오려면 한참 남았는데 선글라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일]

  조선후기 춘화 속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정자위에서 달밤에 부엉이 울고 대청마루를 침실삼아 정사를 벌이거나 풍광이 좋은 산천을 배경으로 섹스를 즐기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자연과 남녀의 몸이 하나가 되는 음양의 조화로 야외 정사는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예전의 에로틱 공간이라면 추수절을 앞둔 보리밭이나 물레방앗간과 폭포가 단연 으뜸이었다지만 지금은 밤의 해변이나 계곡도 좋을 것이다. 침엽수가 우거진 자연림 속에서 달빛을 받으며 섹스를 즐기면 꽤 낭만적이거나 멋진 일이다. 파도 소리, 풀벌레 소리가 울려 퍼지고 먼 곳에서 들리는 인기척은 없어서는 안 될 야외 섹스의 묘미이다. 너무 고요하기만 해도 어딘가 이상하다. 섹스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가정에서 단조로운 섹스보다 황폐하고 지저분한 화장실 옆에서 격렬하게 하는 섹스를 사람들은 동경했다. 결혼하고 몇 년 지나면서 남자들은 창녀들과의 격렬함을 찾아서, 아내들은 보이프렌드를 찾아서 헤매기도 한다. 물위로 얼굴만 내민 채 물 속에서 하는 은밀한 짓거리, 산책길에 밤바람을 즐기며 껴안은 채 걷다가 나무에 기대어 하는 키스, 인적 없는 밤바다, 으슥한 리조트 풀장 근처에서 들리는 가쁜 숨소리는 영화 속에서만 가능할까. 파도 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무드가 집으로까지 이어져 가면 부부는 더 없이 좋은 사이가 된다. 야외 섹스는 우리 조상들도 즐기는 편이었으며 예부터 건강한 정사로 불렸다고 한다.

  야. 외. 섹. 스. 는. 우. 리. 조. 상. 들. 도. 즐. 기. 는. 편. 이. 었. 으. 며. 예. 부. 터. 건. 강. 한. 정. 사. 로. 불. 렸. 다. 고. 한. 다.

  책에서 본 문구와 활자들이 마구 마동의 머릿속에 나열되었다. 마동의 머리와 온몸의 세포는 가슴골이 깊은, 미쳐 보이기까지 한 신비한 여자와 야외에서 하는 섹스를 그리며 흥분을 지속시키고 있었다. 마동은 여자를 떠올릴 때마다 페니스가 피노키오의 코처럼 조금씩 자라나는 것 같았다. 트레이닝복 앞섶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그렇지만 현실은 생각의 정론처럼 이어지는 귀결이 아니라 변증적으로 행해지는 모순이 가득했다.

  나는 어째서 그런 생각 따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마동은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지만 이미 해버린 생각을 지우개로 지운다거나 없애지는 못했다.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의 물방울들이 뇌의 표피에 가득 붙어 촉촉하게 만들었다. 흥분되는 기분을 멈출 수가 없었다. 비가 떨어져서 탁탁 튀었지만 달은 희미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달이 지니고 있는 냉철한 달빛을 마동은 쳐다보았다. 오늘밤에는 달이 청아하지 않았다. 구름에 가려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마동은 대나무공원의 벤치에서 여자가 오고 있는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떨어져 벤치에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벤치의 끝을 잡고 팔굽혀 펴기를 15회씩 두 번을 했고 천천히 무릎을 구부렸다 펴는 것을 다시 세 번 반복했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그녀가 걸어와야 했지만 긴팔에 긴치마를 입은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애가 타기 시작했다. 머리의 한편에서는 어서 조깅코스를 달리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여자를 기다리고픈 마음이 마동을 그 자리에 계속 잡아 두었다. 늘 마음과 머리가 부딪힌다. 여자에게 다가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마동은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 보는 신비하고 이상한 여자를 생각할수록 마음속에 흐리고 엷은 비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지금 내가 뭐하는 것일까. 모르는 여자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영화에서는 일어나는 일을 내가 꿈꾸고 있는 건가.

  마동은 계속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머리카락 끝에 붙은 빗방울이 허공으로 춤을 추며 떨어져 나갔다. 비는 소나기에서 강도가 줄어들어 흩날렸다. 치누크가 불어와 흩날리는 빗줄기를 지그재그로 세상에 뿌렸다. 사선으로 떨어진 비가 마동의 어깨와 콧등을 적셨다. 한 여름에 떨어지는 비는 더 이상 시원하지 않았지만 땀을 흘리고 맞은 비는 상쾌한 기분을 자아내게 했다. 마동은 손등으로 콧등의 비를 닦은 후 조깅코스의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 보았다. 마동의 페니스가 조금은 진정이 되었지만 아직은 트레이닝 하복의 앞섶이 봉긋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지금은 개불이 딱딱하게 냉동이 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마동은 약간 빠르게 걸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지만 가슴골이 매력적인, 긴팔에 긴치마의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되돌아서 200미터를 왔지만 사람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스쳐 지나치기도 했는데 이제 돌아가 버린 것일까.

  마동은 혼란스러웠다. 기이한 기분을 자아내게 하는 바람부터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의 여자까지.

  이 모든 게 내가 만들어 낸 현실의 모순일까.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긴팔의 긴치마를 입은 여자와 스치는 야릇한 접촉이 있었고 시각적으로 들어온 정보가 정확하고 생생했다. 마동은 자신이 받아들여서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뇌파를 끄집어내보고 싶었다. 이것이 진정 마동이 꿈꾸고 있는 모습인지 아니면 실제로 마동이 눈으로 본 모습인지 지금은 판단을 미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일 정신과 상담도 받아야하고 끝내지 못한 회사의 작업도 있었다. 마동은 지금 평범한 조깅코스에서 일어나는 평범하지 않는 현상에 알 수 없는 이질감을 심각하게 느꼈다. 기이한 기분에 사로잡혔지만 정신을 다듬고 다시 달리기 위해서 준비운동을 했다. 준비운동이 끝나자마자 마동은 다시 앞으로 달렸다. 페니스는 달리면서 에너지를 소모하니 반비례적으로 크기가 줄어들었다. 달리는 행위가 심장에 건강한 무리를 주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면 심장은 페니스를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발기를 멈추는 것에 운동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대나무 숲을 옆으로 훅하고 지나쳐서 앞으로 달려 나아갔다.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완전하게 보이지 않았다. 단 한명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는 인간도 천천히 걷는 사람의 모습도, 인간의 형태를 띤 어떠한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 길고양이의 모습도 오늘따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깅코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사람들의 숨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비는 더 이상의 비이기를 포기한 듯 가는 실처럼 하늘에서 떨어졌다. 흩날리는 비가 걷는 사람들을 더 많이 젖게 만든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터치해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57번’을 틀었다. 소나타 23번의 출발을 알리는 연주가 시작되고 베토벤의 피아노 단조가 이어진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하는 연주곡이다. 이 곡을 연주하려는 피아노 전공자들마저 어려워한다. 요구되는 손가락의 기교가 목적을 부여받은 인간이 목적을 향해 달려가듯 고도의 기술을 필요하기도 하지만 이 곡은 무엇보다 건반이 아주 무겁게 느껴지는 곡이다. 곡이 가져다주는 느낌이 묵직하여 연주자들은 연습하기에도 많이 힘들어했다. 중반부로 갈수록 불에 타오르는 듯 뿜어나는 에너지가 느껴져서 연주자들은 이곡의 마력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베토벤은 귀족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지만 자신이 하는 음악이 권력이나 귀족 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음악적인 부분에서 귀족과의 마찰이 있으면 곧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귀족과의 트러블이 심해지면 책을 집어던지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귀족에게 음악을 팔아치우기도 했으니 어쩌면 돌 같았던 베토벤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베토벤은 천재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노력파였다. 하루는 비가 오고 난 후 일층의 천장으로 물이 계속 떨어졌다. 일층에 살고 있던 주인이 화가 나서 이층의 베토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더니 피아노를 치다가 손가락에 통증이 오면 담아놓은 빗물에 손을 넣어 통증을 식혀가면서 노력을 하고 있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마동은 베토벤의 곡을 대학교 때 동거를 했던 연상의 여자 덕분에 알게 되었다. 반년정도 같이 살았다. 1학년 여름이 시작하는 시기부터 겨울까지 같아 보냈다. 자취를 할 때 마동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연상의 걸프렌드와 함께 살림을 합쳤고 덕분에 서로 방값을 줄일 수 있었다. 그때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그녀 덕분에 베토벤의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소나타 23번 이 곡을 유난히 많이 들었고 빠져들게 되었다. 연상의 걸프렌드는 당시 음악가들의 생활과 생각들도 마동에게 많이 들려주었다. 마동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들었다.

  마동은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서 조깅을 하니 페니스는 완전히 쭈그러들어서 팬티의 가장자리 어느 부분에 힘없이 푹 꼬꾸라져 버렸다.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켜 달리는 것에 세포들이 반응함에도 불구하고 페니스만이 운동신경에 반응하지 않고 힘이 빠져 그저 몸에 붙어있다는 것을 보면 인간의 육체라는 것 역시 참 알다가도 모를 미지의 세계임이 분명했다.

  다. 른. 곳. 의. 근. 육. 이. 발. 달. 할. 수. 록. 페. 니. 스. 는. 부. 드. 러. 운. 굴. 처. 럼. 변. 한. 다.

  이제 서서히 여름밤의 어둠은 그만의 농밀함을 더해갔다. 그 농밀함에 질투라도 하는 듯 마동의 숨은 더욱 거칠어졌다. 강변을 따라 희미한 달의 모양이 마동을 따라오다가 어둠에 휩싸여 없어지기도 했다. 달빛은 구름과 어둠과 비를 뚫고 희미한 것을 넘어서 엷은 빛이 되어 허공을 비추었지만 마동은 그 희미한 달빛의 신비함과 속삭임을 느낄 수 있었다. 달의 속삭임은 오래전 군대에서 초소근무를 서며 들을 수 있었던 속삭임 그것이었다. 달은 말없이 마동을 배신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왔다. 마동은 희미한 달을 바라보며 앞으로 달렸다.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 달은 희미한 달빛을 발하다가 다시 서서히 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달빛이 구름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어둠은 그 농도를 궁극적으로 진하게 만들었다. 강변의 조깅코스를 비추던 가로등의 불빛도 달빛처럼 퇴색되어 가로등의 기능을 잃어버린 채 가로등이라는 명제로만 남아있었다.

  강변의 끝으로 나갈 즈음 저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마동의 뇌리에 자동적으로 긴팔의 여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 여자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힘껏 달려서 앞에서 걸어가는 그 사람이 누군가 알아보려고 따라 붙었다. 뒷모습이 가까워질수록 그녀가 맞았다. 여자는 흡사 어둠에 존속되어 있는 존재 같았다.

  맙소사.

  다리의 움직임도 없었고 옷의 흔들림도 전혀 없이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 그 여자가 맞았다. 마동은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수그러들었던 페니스가 다시 고개를 들려고 했다.

  아아, 페니스는 늘 의식과 무관하게 불쑥불쑥 고개를 들어 올리려 하는 것일까.

  마동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다. 어쩌면 또 다른 자아의 움직임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 잠깐 본 여자에게 사랑을 느낄 리가 없다. 욕망일까. 본능이라고 말하기에도 이상하다. 욕망을 느끼는 것 또한 기이하기만 했다. 성욕을 느낀다고 하기에는 페니스가 너무 본능적으로 반응을 했다. 세상에 ‘너무‘가 붙는 것은 부정적인 요소가 강할 때이다. 마동이 머릿속에서 그 여자를 생각하는 순간 정확히는 그녀의 가슴골을 떠올리는 순간 발기하기 시작했다. 그래, 성욕이라면 성욕일 수 있다. 마동은 자신이 건강해서 그런 것이리라. 애써 자신에게 희망을 북돋아주었고 계속 달려서 그녀가까이 갔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말이라도 건네 봐야겠다. 빗줄기는 가늘게 떨어지다가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다. 변덕스러운 날씨라고 하지만 이렇게 이질감이 드는 날은 처음이었다. 가로등은 불빛이 미약했고 그나마도 몇 개 건너 하나씩 가로등의 전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긴 레이스가 달린, 여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원피스의 그녀가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긴치마가 바닥에 닿아서 질질 끌렸지만 여자는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걸어간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마동은 여자를 사로질러 그녀를 앞지르려고 했지만 왜 그런지 그녀를 따라잡는 것이 힘들었다. 여자는 마동이 달리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앞으로 가고 있었다. 마동은 여자의 미스터리한 눈빛이 떠오르고 그녀의 가슴골이 떠올랐다.

  아, 이런 제길. 오 하느님.

  믿지 않았던 하느님을 속으로 찾았다. 마동은 딱딱해져가는 페니스를 느낄 수 있었다. 여자는 천천히 걸어갔지만 마동이 따라 가기에는 벅찰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필시 무슨 장치를 한 것이다. 마동은 팔의 반동을 세차게 주고 앞으로 더욱 질주했다. 그 반동 때문인지 휴대전화의 음악이 베토벤의 연주에서 박선주의 노래로 바뀌었다.

  [섞이고 섞이고 섞이는 달콤한

  숨소리 내리는 코크 넘버 파이브

  유어 마이 에브리띵……]

  노래는 뒤죽박죽이었다. 마동은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이어폰을 빼는 순간 자연의 소리라고는 전혀 들리지 않는, 완연한 무음의 세계에 들어와 버린 기분이 들었다. 여름의 소리, 공간의 소리와 강변에서 마땅히 들려야 하는 소리들, 바람소리조차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마동은 귀를 한 번 후볐다. 소용없었다. 애초에 소리라는 것이 생성되어 있지 않은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곧이어 웅 하는 천지창조의 울림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목욕탕에서 잠수를 한 다음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강변을 메우고 있는 여러 가지 소리가 하나의 공명이 되어 귀안으로 들어와 웅웅 거렸고 마동은 손가락으로 귀안을 다시 건드렸다.

  정말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군.

  마동은 세차게 달려 그녀의 바로 뒤까지 따라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등을 두드리려다가 다시 손을 내렸다. 이 세계에 그녀와 자신만 다른 공간에 고립되었다는 순간의 느낌이 이어폰을 빼버린 그때 들어버렸다.

  “저기……”

  여자가 멈추었다. 질 좋은 스포츠카가 잘 달리다가 그대로 멈추듯 여자는 섰다. 멈추는 순간 그녀의 드레스 역시 무중력상태의 물건처럼 그대로 가만히 멈춰버렸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뒤이어 몸이 따라서 천천히 돌았다. 예의 그 숨 막히는 가슴골이 마동의 눈에 들어왔다. 여자의 가슴골은 자주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동안 여러 번 봐왔었다. 마동은 자신 앞에 있는 기이한 여자의 가슴골을 보고 숨이 멎을 뻔했다.

  어쩌면 내가 매일매일 조깅을 하지만 이 운동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일까.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분명 숨이 막히는 가슴골이었다. 그때 여자의 신비스러운 눈빛과 마주쳤다. 눈동자는 매혹적이었다. 한국적인 눈빛을 지니고 있진 않았다. 그러한 눈빛이 어떤 눈빛이며 눈동자인지 마동은 설명하기 힘들었다. 마동의 페니스는 이미 트레이닝의 모양새를 이상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도 않았다. 마동은 여자의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았다. 이 순간을 어떻게든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그녀에게 빨려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제가 누군가를 헤친다거나 그런 사람인 아닙니다.” 마동은 두 손으로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손짓을 했다.

  제길, 하며 생각했다. 고작 이 정도의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여자는 신비한 눈동자로 고혹적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달빛과 흡사했다.

  “제 말은……”

  마동은 달리면서 흘린 땀에 식은땀까지 더해져서 민소매의 상의 셔츠가 더 젖어 버렸다. 거기에 내리는 비까지 겹쳐서 냄새가 심하게 날 것이다. 이렇게 냄새나는 몸으로 여자에게 말을 걸다니. 마동은 속으로 자신을 나무라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서 마동은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 갑자기 미스터리한 눈의 그녀가 마동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조깅코스를 벗어나 풀숲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역할 수 없었고 그러기도 싫었다. 마동의 손목을 잡은 그녀의 손의 감촉은 부드럽고 냉기가 흘렀다. 차가운 그녀의 손은 마동에게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따라와요,라고 말했고 마동은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마동과 그녀가 달려가니 비가 사선으로 다시 떨어져 얼굴에 튀었다. 마동이 고개를 슬며시 돌려서 본 그녀의 얼굴은 비에 젖지 않았다. 분명 비는 하늘에서 떨어져 그녀의 얼굴에 닿았지만 닿지 않았다. 비는 마치 땅에서 쏘아올린 불꽃이 하늘로 아성을 지르며 올라가서 빛의 포자로 분해가 되어 사라지듯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서 소멸해버렸다. 비는 그야말로 그녀의 얼굴에서 무화되었다. 그녀의 얼굴뿐 아니라 그녀의 옷 역시 비에 젖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동은 당연하게 받아 들였다. 이상하지 않았다. 페니스는 트레이닝 앞섶을 보기 흉하게 만들었지만 이상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언제나 꿈꾸고 있었는지 모른다. 손목을 통해 전해져오는 그녀의 느낌은 그녀역시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 옅은 비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녀를 통해서 전해지는 건 욕정의 감정이었다. 그것은 불같았고 거센 파도 같은 것이었다. 마동은 손목이 잡힌 채 그녀가 이끄는 대로 조깅코스의 바닥을 벗어나 대나무 숲 쪽으로 달려갔다. 야외의 잡음은 들리지 않았다. 웅웅……. 하는 공명만 귀전에서 맴돌았고 얼굴에 치누크가 몰고 온 빗방울의 시원한 감촉이 있을 뿐이었다. 손목을 잡은 그녀의 손은 깊은 질문을 수없이 담고 있었다.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는 질문도 있고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도 있었지만 대체로 대답 할 수 없는 종류의 질문을 그녀의 손은 지니고 있었다. 마동은 잡힌 손목으로 그녀의 부드럽고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무언의 언어를 듣고 마음의 무중력을 느꼈다. 몸이 공중부유의 상태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물에 의해서 몸이 떠 유영하는 것처럼 마동은 지구 안에서 또 다르게 느껴지는 중력의 힘에 놀랐지만 잠시 뿐이었다. 그녀는 빨리 걷는 듯 보였고 마동은 손목을 잡힌 채 빠른 속력으로 그녀가 이끄는 대로 달려서 따라갔다. 마동은 전력질주 하듯 달렸다. 서서히 구름에 의해서 희미한 달빛의 혼탁함마저 사라졌다. 세계는 완벽에 가까운 내밀한 어둠을 만들었고 마동은 그녀와 함께 어둠속을 달렸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했지만 머릿속 뇌는 사고의 운동성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강아지가 자신의 발바닥을 자연스럽게 핥듯 마동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강변의 외지에 있는 대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비가 좀 더 세차게 우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동의 사고가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 그녀의 입술이 마동의 입술에 닿았다. 그녀의 입술은 촉촉했지만 다정하지는 않았다. 마동의 몸은 불같이 달아오르고 페니스는 터질듯 팽창해있었지만 그녀의 입술은 냉기를 머금은 듯 시리도록 차가웠다. 마동은 그녀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입술은 작은 어촌의 겨울 밤바다처럼 아주 차가웠고 고요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달이 구름 속에서 어설프게 나와 빛을 전해주었고 미미한 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는 잘 다듬어진 조각품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마가 반듯했고 코가 오뚝했다. 몸에서인지 얼굴에서인지 짜릿한 향이 났다. 체취 같은 냄새였다. 향은 마동의 사고를 한 단계 떨어트리는 역할을 했다. 마동의 사고는 더 이상 단계를 나아가지 못했고 페니스는 곧 터져버릴 것처럼 부풀어 올라있었다.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모래괴물처럼 땀은 계속 흘렀고 비를 맞아서 60년대 누벨바그영화 속에 나오는 존재감 없는 엑스트라처럼 보였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마동의 입술을 원하고 있었다. 마동은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그녀의 가슴은 풍족했고 유두역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마동은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입에서 작고 뚜렷한 신음 소리가 한차례 흘러나와 비오는 허공을 갈랐다. 대나무 숲의 가장자리 벤치에서 마동은 그녀를 껴안고 입을 맞췄다. 그녀는 마동의 무릎위에 올라앉았다. 그녀는 마동을 위해 치마를 걷어 올려주었다. 속옷이 없었다. 그녀의 몸은 비에 젖지 않았지만 그곳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마동의 몸은 비에 젖었지만 페니스만은 젖지 않았다. 마동은 그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렇지만 그녀의 끝에는 닿을 수 없었다. 그녀의 세계에서 밝은 어둠이 손짓하며 마동을 불러 들였다. 축축한 그녀는 마동을 꼭 감싸 쥐었고 마동은 돈으로 외국의 처녀를 아내로 맞이한 늙은 농부가 첫날밤에 힘없이 쓰러지듯 힘이 빠져나갔다. 마동은 창피했다. 그녀가 차가운 손으로 마동의 얼굴을 만졌다. 마동의 시선은 그녀의 가슴골로 옮겨갔다. 곧 생각났다는 듯 마동의 페니스는 고개를 들었다. 더욱 딱딱하고 크게 일어섰다. 그녀의 가슴골은 깊고도 훌륭했다. 마동은 얼굴을 숙여 그녀의 가슴골에 묻었다. 알 수 없는 야릇한 충동의 아름다운 향이 났다. 뇌에 벌침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공간이 엷어지고 탁해졌다. 술에 취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골에서 올라오는 향을 맡으니 시간이 뒤바뀌었다.

  “당신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군요.” 마동은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녀는 빨려들어 갈 눈빛으로 마동을 보며 “사라 발렌샤 얀시엔”라고 말했다. 이상한 이름이었다.

  이곳 사람이 아니다. 마동은 생각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녀는 마동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마동을 더욱 껴안았다. 마동은 입이 벌어지고 신음이 목에서부터 올라왔다.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 일은 세상 도처에 널려있었다. 그녀의 얼굴피부는 투명했고 매끈했다. 결점을 찾을 수 없는 피부였고 마동은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차갑지만 매끄러운 피부가 닿는 느낌은 사람의 피부와 동질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흥분을 자아냈고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싫었다. 자세하게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미국의 한 모델과 비슷한 얼굴이었는데 누구인지 떠오르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언뜻 봤을 때 안젤라 카사모안을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이서 보는 얼굴은 전혀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 정확하게 닮은 사람이 있었지만 확실하게 다가가려 하면 실체가 희미해져 버렸다. 닮은 사람이 모델이 아닐 수도 있다. 많이 본 얼굴의 모습이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이상하지만 언뜻언뜻 스치는 얼굴이 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는 여자가 누구와 닮았다는 것을 떠올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때, 목이 따끔거렸다. 강변이라서 모기가 많은 것을 간과했다. 평소에 모기에 물린 것에 비해 몇 배의 따끔함이 느껴졌다. 마동과 그녀는 벤치에서 서로 포갠 모습이었고 마동은 한 손으로 그녀를 끌어안고 목 부분을 다른 손으로 탁 쳤다. 그리고 양손으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꽉 끌어안았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 사라 발렌샤 얀시엔, 사라 발렌샤 얀시엔, 사라, 사라, 사라.

  마동은 숨이 타올랐다. 더불어 흥분의 강도도 크게 다가왔다. 마동의 몸은 불덩어리처럼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몸은 얼음 같았다. 차가움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닌 그녀는 약간 입을 벌리고 눈을 감고 마동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조화를 이루었다.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윗도리를 내리려고 했다. 옷이 잘 벗겨지지 않았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입고 있는 원피스는 그녀의 육체에 착 달라 붙어있는 하나의 주체처럼 보였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자신의 긴 손가락으로 윗옷을 능수능란하게 밑으로 내렸다. 가슴골을 만들어냈던 그녀의 가슴이 드러났다. 가슴은 아름다웠다. 그녀의 가슴은 수술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자연적인 가슴이지만 커다랗고 물을 집어넣은 풍선처럼 탱탱했다. 비가 떨어져 그녀의 가슴을 적셔야 했지만 빗방울은 그대로 가슴부근에서 소멸하거나 닿지 않고 밑으로 떨어졌다. 그녀에게서 젖은 곳이라고는 오직 축축한 그곳뿐이었다. 빗속으로 희미한 달빛이 내려와서 그녀의 가슴을 비췄다. 달빛은 받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은 옥빛처럼 반들거렸고 마동은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차갑고 보들보들한 감촉이 마동의 손으로 전해져왔다. 어떤 불온함도, 어떤 사상도 그녀의 가슴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단지 손목을 잡았던 손으로 전해지는 약간의 두려움을 그녀의 가슴을 통해서 조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희미하게 전달되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유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으며 마동은 그 유두를 빨았다. 혀에 힘을 주었다.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안고 그녀의 뭄을 움직였다. 크고 탱탱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젖가슴이 아래위로 흔들렸다. 세상에서 유일한 나비의 움직임처럼 그녀의 가슴이 마동이 움직일 때마다 위 아래로 춤을 추었다. 나비는 오직 날갯짓을 하기위해 태어난 것처럼 우아한 날개의 움직임인 동시에 생존의 움직임이었다. 마동은 조금 세게 몸을 흔들었다. 그러고 싶었다. 그녀는 긴 머리를 늘어트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약간 벌어진 입으로 그녀의 목젖이 보였다. 선명하게 보이는 목젖은 마동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으로 아련하고 신비스럽게 보였다.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던, 그동안 알고 있던 목젖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마동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계속]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2 변이하는12 2019 / 10 / 8 34 0 21981   
11 변이하는11 2019 / 10 / 7 26 0 19241   
10 변이하는10 2019 / 10 / 6 29 0 20402   
9 변이하는9 2019 / 10 / 5 26 0 21172   
8 변이하는8 2019 / 10 / 4 27 0 18890   
7 변이하는7 2019 / 10 / 3 24 0 21133   
6 변이하는6 2019 / 10 / 1 29 0 19583   
5 변이하는5 2019 / 9 / 30 31 0 23028   
4 변이하는4 2019 / 9 / 29 35 0 21282   
3 변이하는3 2019 / 9 / 28 28 0 21887   
2 변이하는2 2019 / 9 / 27 46 0 24508   
1 변이하는1 2019 / 9 / 26 293 0 24291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젖은 어둠은 마
교관
그녀를 사랑한
교관
번개 맞는 인간
교관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