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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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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5 생각지 못한 재회 (5)
작성일 : 19-06-03 22:30     조회 : 75     추천 : 0     분량 : 4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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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전, 한 영주가 흡혈귀와 전쟁을 벌여 패배했다고 한다. 시인의 숲 한가운데에 있는 다 무너진 성이 바로 그 전쟁의 증거다. 흡혈귀는 자신들의 새 영토에 숲을 심었다.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울 만큼 어두운 숲이 인간과 흡혈귀의 피를 머금고 자라나 흡혈귀에게 어울리는 저주받은 숲이 되었다.

 

  지금 그 숲을 지배하는 단 하나 남은 흡혈귀가 허름한 옥좌에 앉아 있었다. 백은이 섞인 금발이 창백한 피부의 반사광에 투명하게 반짝였다. 금사로 수놓은 검은 드레스를 입은 흡혈귀의 금빛 눈동자가 숲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 꺼져가는 화염 같은 공허한 눈동자였다.

 

  그녀는 권위 없는 공허한 존재였다. 숲의 주인이라 불리는 그녀의 역할은 두 가지였다. 이 땅에 새로운 흡혈귀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과 아르티제의 사람들이 시인의 숲을 안전하게 쓸 수 있게 관리하는 것. 살아남기 위해 성소와 계약하여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 계약이 지금 깨질 위험에 처했다. 너는 어찌하여 여기에 있는가.

 

  “에어드부르가, 나의 주인이시고 숲의 주인이신 랴논시 에어드부르가시여.”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어린 흡혈귀가 그곳에 있었다.

 

  “무슨 일이냐. 나의 조지.”

  “숲의 순찰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이 모두 곤히 잠드는 밤입니다.”

 

  에어드부르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는 옥좌의 그림자가 닿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가만히 서 있었다. 숲의 주인은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조지를 오랫동안 바라보면 어떤 연민이 섞인 두통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있어 그런 존재였다.

 

  그녀는 조금 특별한 흡혈귀였다. 랴논시, 아름다운 생명과 이미 죽은 것만을 탐하는 흡혈귀의 여러 종류 중 하나였다. 오 년 전, 폭풍우가 쏟아지는 숲길을 달리던 마차가 미끄러져 뒤집혔다. 에어드부르가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곧 있으면 어른이 될 소년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렉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이끌린 소년이었다. 보답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연정을 보내던, 마음이 유약한 아이였다. 에어드부르가는 조지를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그렉을 지켜볼 때 곁들일만한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죽어버린다니 불쌍하구나. 미안한 일이지만, 그녀는 조지가 조용히 죽기를 바랐다. 죽음으로 육신과 영혼이 멀어지면 흡혈귀의 저주에 물들지 않는다. 이 땅에 새로운 흡혈귀가 태어나지 않는다. 그녀는 계약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갈증을 축일 수 있다. 아주 오랜만에 말이다.

 

  그랬을 터였다.

 

  그날 에어드부르가의 세상은 바뀌었다. 얼마 후, 조지는 에어드부르가를 주인이라 부르며 찾아왔다. 에어드부르가는 계약을 어긴 것이 될까 두려웠다. 그녀는 조지를 숨겨두고 랴논시의 삶을 가르쳤다. 다행스럽게도 조지는 흡혈귀로서 다른 이의 피를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나의 조지, 아름다운 그렉에게는 가지 않는 것이냐.”

  “장미의 향이 성소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 여사제가 너를 눈치챈 모양이구나.”

 

  시인의 숲을 감싼 장미 울타리는 피할 수 있지만, 성소를 감싼 장미의 향기는 뚫고 들어갈 수 없다. 에어드부르가는 한숨을 쉬었다. 체칠리아의 일은 항상 유감스러운 이야기다. 그녀가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 체칠리아를 비롯하여 다른 사제들에게도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위한 계약이었다. 계약에 따라 에어드부르가는 흡혈귀의 출현에 책임을 져야 한다. 목숨을 걸고 시인의 숲과 아르티제를 위해 그 흡혈귀와 싸워야 한다. 하지만 에어드부르가는 조지를 죽일 수 없었고, 체칠리아는 흡혈귀의 움직임을 알아버렸다. 명백한 계약 위반이었다.

 

  체칠리아는 어쩌면 시인의 숲에 불을 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과 조지를 몰아내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당연한 권리 행사이기에. 에어드부르가는 옥좌에서 일어났다.

 

  “내가 직접 가보아야겠구나.”

  “위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결계는 주인님께도 위험합니다.”

  “아니, 나는 다 방법이 있다. 너는 따라오지 말고 여기에 머물러라.”

 

  에어드부르가는 그렇게 말하고는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조지는 그녀를 뒤따르지 않고, 연기가 되어 숲을 떠나는 여주인의 기척을 느꼈다. 그러고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았다. 초승달은 어느새 구름에 가려 빛마저 내보이지 않은 채 사라졌다.

 

  에어드부르가의 검은 연기는 시인의 숲에서 멀어질수록 금빛으로 변해갔다. 시인의 숲을 둘러싼 장미 덩굴의 울타리를 지나, 그녀는 성소의 근처로 내려앉았다. 그녀의 모습은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에 있던 그녀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황금빛 아우라가 그녀를 감쌌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모습을 둘러본 에어드부르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성소의 옆, 작은 별실로 들어갔다. 화경 사제인 루카스의 작업실이었다. 루카스는 그녀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예를 갖추었다. 며칠 전 그녀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정말 놀랐지. 그녀가 영원한 빛이 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게다가 그것을 에어드부르가는 비밀에 부쳤다. 이 얼마나 복잡한 상황인지.

 

  “캐서린 본당 사제님께라도.”

  “그녀는 내 말을 믿어주겠지만, 그 밑에 있는 체칠리아가 나를 믿을 수 있느냐.”

 

  그 말에 루카스는 한숨을 쉬었다. 영원한 빛이 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그녀도 복수심을 누그러뜨릴 것 같습니다만. 루카스는 다시 자리에 앉아 작업을 계속했다. 몇 주 전부터 계속해서 작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며 계속 작업하던 것을 엎고 다시 시작하기 일쑤였다.

 

  정말이지, 나 같은 건 재능이 없는데. 있는 거라고는 눈밖에 없는데. 습관처럼 나오는 루카스의 혼잣말을 듣고 에어드부르가가 그의 뒤에서 화폭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어깨너머로 고개를 쑥 내밀자 루카스는 흠칫했다.

 

  “확실히 내 취항은 아니다만, 아름답지 않다거나 재능이 없다는 말은 아니지 않으냐.”

  “무엇을 보고 계신 겁니까.”

  “네가 덮어둔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지.”

 

  루카스는 그 말에 얼굴이 벌게졌다.

 

  “혹시 다른 영원한 빛들도 볼 수 있는 겁니까?”

  “몰랐단 말이냐?”

 

  이래서 이 눈은 피곤할 뿐입니다. 그는 그렇게 한탄했다. 허락받은 눈을 가진 자는 조금만 더 수련하는 것으로 영원한 빛과 대화하거나 만지는 것도 가능하다. 거기에 재능이 더해진다면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애써 부정해온 사제나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자신만이 알고 있는 영원한 빛에게 인정받는 것은 그렇게까지 즐거운 감각이 아니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 다른 영원한 빛들이 이곳에 오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 이유도 알 것은 같구나.”

 

  알면 앞으로 그만 와주시면 안 됩니까.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허락받은 눈을 가진 자는 영원한 빛에 둘러싸이는 삶 그 자체가 시련이었다. 루카스는 그 시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파 작업실에 틀어박힐 때는 그 어떤 영원한 빛도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 에어드부르가는 그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지만.

 

  “조금만 네가 도와주면 앞으로 너를 찾아오지 않으마.”

  “무엇을 말입니까.”

  “성소를 장미 향의 결계가 둘러싸고 있더구나.”

  “그건 그렉에게 흡혈귀가 들러붙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당신 말고 다른 흡혈귀가.”

  “그렇지. 그 아이가 그래서 그렉을 못 만나고 있단다.”

  “그건 그 흡혈귀의 탓입니다. 당신에게 있어서는 계약 위반이고.”

 

  거기에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루카스는 깊숙하게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체칠리아가 알게 된 일을 캐서린이 모를 리 없다. 그러니까 캐서린과 이야기하라고 했는데도.

 

  “내가 이야기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 아이가 직접 말해야지.”

  “잠깐만.”

 

  루카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진심입니까. 루카스가 눈빛으로 물어보았다.

 

  “흡혈귀를 성소 안으로 들일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입니까, 지금?”

  “장미의 결계만 치워주면 그 아이가 알아서 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흡혈귀입니다. 성소에 들어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요. 결계가 사라져도 성소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저주가 빛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릴 겁니다.”

  “그 아이는 이미 성소에 발을 들인 적이 있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성소에 발을 들이고도 멀쩡한 흡혈귀라니. 에어드부르가도 하지 못한 일을 어떻게 에어드부르가의 종복이 한단 말인가. 루카스는 알고 싶지 않았던 부분도 알아야 자신이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흡혈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그 아이는 조금 특별하다. 내 모습이 지금 이렇게 변하는 것처럼.”

 

  또 부르고 있어. 에어드부르가의 모습이 흡혈귀의 것으로 다시 변하고 있었다. 루카스는 그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영원한 빛을 흡혈귀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저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어떻게 저주에 속박된 존재로 바꾼단 말인가.

 

  그러니까 이 상황을 처음부터 믿을 수 있고 경험 많은 캐서린에게 맡기라고 한 것인데. 루카스는 자신이 사제로서도 예술가로서도 재능이 없음을 다시 피력했다. 에어드부르가의 황금빛 아우라는 검은 저주로 변했다. 그리고 처음 그녀가 루카스의 곁으로 찾아왔던 것처럼 연기가 되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아니다. 너는 지금 내가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사제.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러겠지.”

  “언제까지 말입니까.”

  “네가 그 아이를 도와주게 될 때까지.”

  “그 뒤로는 제 작업실에 찾아오지 않으실 겁니까.”

  “그래. 약속하마.”

  “그렇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루카스의 말에 에어드부르가는 미소를 흘리며 사라졌다. 영원한 빛과의 약속은 절대적이다. 루카스는 캔버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늘도 색을 칠하지 못하고 끝내는가. 그는 작업실을 밝히는 촛불을 하나씩 꺼뜨리고는 문을 잠그고 나왔다.

 

  어떻게 해야 체칠리아 몰래 그 향초들을 모두 끌 수 있지. 루카스는 생각에 잠기며 성소로 돌아왔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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