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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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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12 순록을 탄 여인의 승리 (2)
작성일 : 19-07-11 22:58     조회 : 103     추천 : 0     분량 : 4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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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칠리아는 아침 기도를 끝내고 곧바로 루카스의 뒤를 밟았다. 체칠리아의 얼굴이 평소보다 어두웠다. 루카스가 작업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자, 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루카스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루카스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끝내 그녀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루카스 사제님!”

 

  걸어 잠근 문이 철컥거리고 열렸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루카스의 얼굴 반쪽이 보였다. 체칠리아는 말소리 하나하나에 배신감과 분노를 지르밟으며 말했다. 고압적인 시선을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캐서린의 말을 떠올렸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들어가도 되겠죠, 루카스 사제님?”

 

  루카스는 문을 열고 체칠리아를 안으로 들였다. 체칠리아는 루카스를 거의 밀치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루카스는 당황하지도 않고, 가만히 그녀의 행동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품 안에서 밀랍 봉인이 뜯긴 비적성의 서신을 꺼냈다.

 

  “루카스 사제님, 비적성에 뭘 보내신 겁니까?”

 

  루카스는 답하지 않았다. 체칠리아는 두루마리를 펼치고 읽어나갔다.

 

  체칠리아 사제님과 아르티제 성소에 모든 빛의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르티제의 두 사제님이 비적성으로 보내신 내용을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저희는 두 사제님의 서신이 서로 충돌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사제님들이 비적성으로 보내는 서신에 한 점의 거짓도 싣지 않았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 분의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보다 이를 실제로 관찰하여 적절한 도움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이에 이 서신이 아르티제 성소에 도착할 즈음에는 비적성에서 전담 사제가 파견될 예정이며….

 

  “하, 다시 읽어도 기가 차네.”

 

  체칠리아는 두루마리에서 시선을 떼었다. 온몸에 열기가 올랐다가 또 한기가 스몄다. 그녀는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루카스 사제님, 뭐라고 보내셨기에 이 사달이 난 겁니까?”

 

  루카스는 자신의 품 안에서 비적성의 답신을 꺼냈다. 앞부분은 체칠리아가 받은 것과 똑같은 의례적인 인사말이다. 중요한 것은 뒤의 내용이지. 루카스는 중얼거렸다.

 

  특히, 루카스 사제님이 주장하고 계신 내용은 흥미롭고도 위험한 사안입니다. 비적성은 지속해서 시인의 숲을 주시해왔습니다. 만약 루카스 사제님이 말씀하신 바가 사실이라면, 흡혈귀 에어드부르가를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시인의 숲을 안정화해야 합니다.

 

  “흡혈귀 에어드부르가를 위해서라도?”

 

  체칠리아는 비적성이 그 표현을 썼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다들 단단히 미친 게 분명해. 아니지, 비적성이 미쳐버린 것은 아닐 터다. 루카스가 던진 서신에 설득당한 것이겠지. 체칠리아는 다시 물어보았다.

 

  “뭐라고 보내셨나요, 루카스 사제님.”

 

  루카스의 대답을 기다리려는데 작업실의 문이 열렸다. 그렉이었다. 체칠리아의 굳은 얼굴이 어색하게 풀어졌다. 그렉은 그녀의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직 촛불도 켜지 않은 작업실의 어둠 덕분이었다.

 

  “아, 체칠리아 사제님도 계셨군요. 잘 되었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그렉 사제님?”

 

  손님이 왔다는 그렉의 말에 체칠리아와 루카스는 서로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렉은 계속 말을 이었다.

 

  “두 분을 보고 싶으시다 하셨습니다. 루카스 사제님을 모시려고 여기로 왔습니다.”

  “그 손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루카스의 말에 그렉이 대답했다.

 

  “캐서린 사제님과 집무실에서 말씀을 나누고 계십니다.”

 

  두 사람은 빠른 걸음을 언덕을 내려갔다. 성소 지하로 내려가자,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체칠리아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는 소리에 두 사제는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들어와요. 체칠리아, 그리고 루카스도.”

  “처음 뵙겠습니다. 체칠리아 사제님, 루카스 사제님.”

 

  캐서린과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은, 어두운 갈색의 사제복을 입은 사내였다. 부드러운 금빛 장발에 금빛 눈동자를 가진 그의 눈매는 유순하게 내려가 있었지만, 눈빛은 강인했다.

 

  그 사제의 허리춤에는 세검이 칼집 채로 달려 있었다. 세검의 손잡이 끝에는 끈으로 매단 작은 종이 흔들리고 있었다. 체칠리아는 그 세검이 보통 물건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세검을 허리에 찬 사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차례로 악수를 하였다.

 

  “안토니오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토니오 사제님.”

 

  캐서린은 두 사람에게 의자를 가져와 앉으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집무실 한쪽 벽에 놓인 의자 두 개를 끌고 왔다. 체칠리아와 루카스가 자리에 앉자, 캐서린은 두 사람에게도 차를 주었다. 안토니오를 사이에 두고 체칠리아와 루카스의 미묘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두 사람이 비적성에 서신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놀랐답니다.”

 

  캐서린은 자신이 받은 비적성의 서신을 서랍에서 꺼내며 말했다. 본당 사제는 성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에, 비적성에서 그녀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서신을 보냈다고 했다.

 

  “서신을 보내기 전에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캐서린 사제님.”

  “그래도 여러분들이 다 생각이 있어 그리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답니다.”

 

  캐서린의 손이 안토니오를 향했다.

 

  “안토니오 사제님은 비적성 소속 사제님 중에서도 흡혈귀에 오랫동안 맞서 오신 분이라고 합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이곳까지 먼 걸음을 해주셨다고 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안토니오는 품에서 양피지 두루마리를 두 개 꺼냈다. 체칠리아와 루카스가 보냈던 서신의 필사본이었다. 안토니오는 두 서신을 읽고 든 생각을 이야기했다.

 

  “세 사제님의 답신에는 체칠리아 사제님과 루카스 사제님의 발언에 충돌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만, 제 판단에 모순이라고 부를 만큼의 충돌은 아닙니다.”

 

  체칠리아는 루카스가 보낸 서신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안토니오는 계속 말을 이었다.

 

  “루카스 사제님께서는 흡혈귀 에어드부르가가 영원한 빛이 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셨고, 체칠리아 사제님께서는 흡혈귀 에어드부르가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새로 출현한 흡혈귀를 방치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잠깐.”

 

  체칠리아가 말을 끊었다.

 

  “흡혈귀 에어드부르가가 영원한 빛이 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체칠리아 사제님.”

  “흡혈귀는 절대로 영원한 빛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거기에 어려움이 있는지 없는지는 일개 사제가 판단할 일이 아니지 않나요?”

  “하지만 그 상황을 목격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루카스의 말에 체칠리아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루카스 한 사람의 증언이라면 착각할 수도 있지만, 루카스의 서신에는 그 상황을 캐서린도 목격했음을 명시하고 있었다. 체칠리아는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저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흡혈귀 에어드부르가가 영원한 빛이 되었다면, 체칠리아의 오랜 증오는 갈 곳을 잃는다.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둘 뿐이다. 증오를 지울 것인가, 그래도 계속 증오할 것인가. 체칠리아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캐서린에게 물었다.

 

  “이게 시련이었습니까, 캐서린 사제님?”

  “가능하면 이런 식으로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미안하다는 그녀의 말에 체칠리아는 김이 샌 모양이었다. 상황은 이렇게 틀어졌고, 그녀는 생각보다도 너무 일찍 알게 되어 버렸다. 캐서린도 이걸 원한 것은 아니었다. 캐서린은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올려 체칠리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허망한 그녀의 표정에 다시 결의가 들어서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좋습니다.”

 

  체칠리아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에어드부르가가 정말로 영원한 빛이 된 것이라면, 사제로서 그녀의 이름이 저주받은 곳에 떨어지는 일이 없게 할 겁니다. 아직도 그녀가 흡혈귀라면, 제가 직접 그녀를 빛으로 태우겠습니다.”

 

  증오를 지울지 말지, 지금 정할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을 확인하고 그녀의 눈과 손으로 증명한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 아직 시련은 끝난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끝날 시련이었다면, 체칠리아에게 시련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캐서린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 어쩐지 안심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에어드부르가의 권속을 자처하는 흡혈귀 조지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했다. 에어드부르가를 용서하는 것과 조지의 존재를 용인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

 

  안토니오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미리 다 해두었다. 남은 것은 비적성의 사제가 관용을 베푸는 것뿐이다.

 

  세 사람은 창고에서 필요한 물건을 꺼내왔다. 체칠리아가 만든 장미 향초와 연기를 일으키는 향로,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따른 무기들.

 

  사제에게 무기를 사용하는 순간은 몇 되지 않는다. 사제는 생존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생명을 해칠 수 없기 때문에, 무기는 대체로 의식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도구들이 진짜 날붙이라면, 사제들은 무언가를 벨 수 있었다.

 

  “성 안토니우스의 종과 검, 제가 비적성의 인가를 받아서 쓰고 있는 이것도 그렇죠.”

 

  성 안토니우스는 저주로 신체가 뒤틀려 머리가 셋이 달리고 불을 뿜는 거대한 흡혈귀 도마뱀을 죽인 성인이다. 그 도마뱀은 밑에 수많은 흡혈귀를 다스리고 잡아먹기도 하는 흡혈귀의 왕이기도 했다.

 

  성 안토니우스는 네 위의 영원한 빛이 내리는 가호를 받았다. 이 가호로 흡혈귀가 주는 상처를 입지 않고, 흡혈귀들을 종소리로 잠재우고 검으로 목을 쳤다고 한다. 성 안토니우스는 흡혈귀 도마뱀의 폭거를 끝내고 저주의 확산을 막은 공로로 영원한 빛이 되었다.

 

  “흡혈귀를 물리치기에 완벽한 무기 중 하나인 셈이죠.”

  “그러고 보니 성 안토니우스면, 안토니오 사제님의 성직명과 같군요.”

  “우연히 그렇게 된 겁니다.”

 

  성직명은 사제가 얻게 되는 특별한 이름이다. 성직명은 고대 언어로 짓는데, 성인이 되거나 살루티스 중앙 대성소의 선지자 중 한 사람이 되면 태어날 때 얻은 세속의 이름을 고대 언어의 방식으로 바꾸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성 안토니우스의 종과 검을 제가 받게 된 것에 무관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요.”

  “그렇겠죠. 자신과 이름이 같은 성인은 늘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니까요.”

 

  체칠리아의 대답에 안토니오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밤이 되면 바로 움직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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