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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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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9 비밀스러운 대화들 (4)
작성일 : 19-07-01 23:02     조회 : 89     추천 : 0     분량 : 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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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녀왔습니다. 기다렸나요?”

  “아닙니다, 던스턴 사제님.”

 

  던스턴은 늦지 않게 온 거 같다며 성소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렉보다 열 살 정도 어린아이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마을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본래 성소는 교리와 더불어 예술을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다. 아르티제에서는 주로 노래를 가르쳤다. 그림이나 문학, 도예도 가르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루카스와 체칠리아는 혼자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고, 캐서린은 본당 사제로 바쁘게 사는 탓이었다.

 

  “안녕하세요, 던스턴 사제님!”

 

  아이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던스턴도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함이었다.

 

  “오늘은 그렉 사제님과 함께 노래를 가르쳐드릴게요. 그렉 사제님의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었죠?”

 

  그렉은 수행 사제 시절 던스턴의 노래 수업에서 반주만 맞추었다. 목소리를 되찾는 기간도 길었거니와 아직 누구를 가르칠 형편이 안 된다고 자신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그렉은 몸을 구부려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었다.

 

  “잘 부탁해요. 여러분.”

  “잘 부탁합니다!”

 

  던스턴은 제단 앞에 놓인 작은 보조 오르간에 앉았다. 그렉은 던스턴과 눈빛을 맞추고 손가락을 흔들어 박자를 세었다. 천천히 밝은 음색의 연주가 이어졌다. 그렉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기다립니다.

  모든 생명들이

  빛이 되는 그날.

  모든 생명들이

  다시 만날 그날.

 

  나는 기다립니다.

  모든 생명들이

  빛이 되는 그날.

  모든 생명들이

  웃게 되는 그날.

 

  그렉의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그렉은 노래를 들어준 사람들의 앞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던스턴도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자, 그러면 오늘 제가 부른 노래를 배워보도록 할까요?”

  “네!”

 

  아이들이 그렉의 주변으로 가까이 다가와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던스턴은 그렉이 노래를 가르치는 모습을 천천히 살폈다. 반주를 쳐주면서, 들은 그의 목소리는 편안하고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슬퍼 보였다. 계속 노래를 들으며 그 안에 잠겨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렉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말로 표현한 적은 없었다. 그의 숨겨진 마음은 항상 노래와 드문드문 들려오는 기도문에서만 느낄 수 있었다. 슬픔을, 그리움을, 애틋함을, 미안함을, 억울함을, 울분을, 원망을. 그는 그렇게 천천히 물에 녹이고 말리면서 바람결에 보내고 있었다.

 

  사실은 지금도 그랬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부른 노래에는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모든 생명이 빛이 되는 그날이 온다면. 마음속에 묻어둔 인연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그렇게 되더라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던스턴의 귀에 들렸다.

 

  “자,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그렉 사제님, 다음에도 노래 가르쳐주세요!”

  “그래요. 다음에는 다른 노래를 가르쳐줄게요.”

 

  아이들이 상기된 볼로 성소를 우르르 뛰쳐나간 뒤에야, 그렉은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긴장했던 두 다리가 풀리면서 그는 의자에 쓰러지듯 걸터앉았다. 던스턴은 오르간 의자에서 자세를 몸을 틀어 그렉을 바라보았다.

 

  “어땠나요, 그렉?”

  “즐거웠어요. 힘들기는 했지만요.”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의 아이를 한꺼번에 다루기는 솔직히 쉽지 않죠.”

  “그래도 좀 괜찮았어요.”

  “그랬나요?”

  “네. 오랜만에 옛날 생각도 났네요.”

 

  그렉은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무심결에 말로 튀어나온 생각의 힘은 너무나도 강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을 혼자 곱씹는 그렉의 옆으로 던스턴이 다가와 앉았다.

 

  “그러고 보니, 그렉의 옛날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렉은 천천히 던스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역시 옛날의 기억에 잠시 잠겨있던 모양이다. 그렉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두 살 어린 여동생과 네 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잘 놀아줄 수 있었던 것은, 동생들과 놀아준 경험 때문이었군요.”

 

  그렉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가족들이다. 사제가 되는 일은 속세와의 연을 끊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어떻게 그게 진짜 가능할까.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은 모든 생명의 본능이다. 사제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대가 불렀던 노래처럼은 아니더라도.”

 

  의외로, 살아있는 동안에 만날 수도 있답니다. 던스턴은 그렉을 위로했다. 하지만 그렉은 그 말에 옅은 부러움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던스턴이 잃어버린 것들은 남은 생에 어떻게 해도 다시 만날 수 없는 것들뿐이니까.

 

  그렉은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던스턴 사제님의 아드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제 아들이요?”

 

  던스턴은 성소의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도 자신과 아내의 손을 하나씩 잡고 들어오는 어린아이가 눈에 아른거린다.

 

  “알베르토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저보다는 클라라, 그러니까 제 아내를 닮았었죠.”

  “던스턴 사제님도 좋은 분이에요.”

  “고마워요.”

 

  던스턴은 조용히 웃었다. 기억을 되짚을수록, 추억은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아빠를 외치며 달려오는 알베르토의 얼굴은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었다. 그 순수함으로 반짝이는 눈웃음을 그는 기억했다. 이제는 깊은 물 속에서 건져 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파서,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게.

 

  그래도 오늘은 그렇게까지 아프지 않았다. 서로의 아픔을 나눌 사람이 있어서.

 

  그렉과 던스턴은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추억을 꺼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그들은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빌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렉은 던스턴의 아내인 클라라와 아들 알베르토의 다음 생이 행복하기를, 던스턴은 그렉의 가족들이 어디에 있든지 행복하기를.

 

  “사실, 던스턴 사제님이 안녕을 함께 빌어주셨으면 하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누구인가요?”

  “어릴 적에 스쳐 갔던 인연 중에, 조지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조지, 그 이름에는 그렉이 지금까지 추억 속에서 건져 올린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울림이 있었다. 던스턴은 어렴풋이, 그렉이 오 년 전의 그 날 차마 말로도 할 수 없는 절규가 조지라는 소년을 향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어떤 아이였나요?”

 

  던스턴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렉은 고개를 높이 들었다. 얼마 전의 그 아이가 서 있었던 스테인드글라스는 환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외로움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았기에 친구가 적었죠.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교단의 가르침에 대해 회의적이기도 했습니다.”

 

  던스턴은 눈을 감고 그렉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소년의 삶을 상상해보았다. 항상 떠돌아다니는 외로운 삶. 풍족했지만 베풀 수는 없는 삶. 교단의 가르침을 멀리할 수밖에 없는 삶. 던스턴은 조지의 부모가 무슨 일을 했을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던스턴은 조지나 그의 부모를 한 번은 본 적이 있었다.

 

  “그 조지라는 아이, 혹시….”

 

  그렉은 던스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던스턴 사제님. 그 아이는 부모님의 일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자식이라고 동네 아이들이 멀리했으니까요.”

 

  던스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부모 밑에 있었다면 부모의 직업이 싫을 법도 하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사람의 마음을 아직도 헤아려주는 그렉의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안타까웠다.

 

  그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조지는 그렉이 성소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행방불명되었다. 조지의 부모는 조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망치듯 아르티제를 떠났다. 그렉의 남은 가족들이 아르티제를 떠난 것도 그즈음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말끝을 흐리며 대화를 맺었다. 남은 것은 그저 기도뿐이었다.

 

  세계 그 자체이신 원초의 빛, 원초의 빛과 함께하시는 아홉 선지자. 그리고 선지자들의 뜻을 받들어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영원한 빛들께 아뢰오니.

 

  세상을 떠난 클라라와 알베르토에게 다음 생의 평안을 주소서. 아르티제를 떠난 그렉의 남은 가족들에게 행복을 주소서. 그리고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조지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소서.

 

  그들은 그저 기도하다가 저녁 식사를 알리는 캐서린의 목소리에 일어났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그렉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힘들었을 테니 들어가서 쉬라는 던스턴의 배려였다. 그렉이 촛불을 올리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그렉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해.”

 

  뒤를 돌아보면, 벽에 비스듬하게 몸을 기댄 루카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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