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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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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6 비밀스러운 대화들 (1)
작성일 : 19-06-06 22:58     조회 : 98     추천 : 0     분량 : 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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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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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물간 그릇이나 빚었던 뒷방 늙은이. 캐서린은 가끔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겸손마저 조용히 존경했다. 그 증거로 아르티제 마을의 모든 집이 캐서린의 작품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으니까.

 

  캐서린의 마지막 작품은 그녀의 집무실 책상에 앉으면 보기 좋은 위치에 있다. 빛으로 가득하신 영혼들을 새긴 황금빛 그릇. 그녀는 매일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유작이 될 그 그릇을 젖은 수건으로 한 번, 마른 수건으로 한 번 닦으며 마음을 정리했다.

 

  그릇을 닦고 나면 집무실의 벽난로에서 피어오르는 불씨를 점검했다. 가을 파종이 끝나고부터는 날이 빠르게 쌀쌀해졌다. 아침저녁으로만 불씨를 살피면 감기에 걸릴 일은 없었다. 화로를 다루던 그녀는 불씨를 어디까지 키워야 할지도 잘 알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은 그녀는 집무 전에 올리는 짧은 기도를 마친 뒤 금테 안경을 쓰고 깃펜을 들었다. 어제 있었던 일 중에 미처 기록하지 못한 것은 없는지, 사제들에게 알려야 할 오늘 할 일은 없는지 천천히 살폈다.

 

  이 성소에서 가장 연로하고도 덕이 깊은 사제인 그녀의 업무는 적지 않았다. 성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고, 마을과 소통하며, 중앙 성소나 다른 성소와의 교류도 끊어지지 않게 한다.

 

  사제들에 대해서 기록하는 일도 중요하다. 사제들이 맡은 바를 성실히 하고 있는지, 그들 사이에 관계는 어떠한지, 어딘가로 파견을 보내거나 새로운 일을 맡길 때 누가 좋을지. 그녀는 사제들의 이름이 적힌 공책을 하나씩 만들어 관리했다.

 

  루카스는 요즘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작업실에 들어가 있는 시간 못지않게 성소에 무언가를 찾는 시간도 늘어났다. 던스턴은 그렉의 연습을 지켜보고, 남는 시간에는 새로운 성가 작곡에 들어갈 모양이었다. 가사를 만드는 일 때문인지 체칠리아와의 접촉도 평소보다 늘었다. 그렉은 가끔 그림자를 얼굴에 드리울 때가 있었다.

 

  그리고 체칠리아. 캐서린은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그녀는 요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장미 향초를 성소 곳곳에 피워두며 결계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결계는 항상 깨져 있었다. 초가 다 타버려도 결계는 한동안 유지된다. 그러니까 누군가 결계에 손을 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여기서부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 아이가 시인의 숲이 아닌, 성소에 결계를 치는 이유는 알고 있다. 모든 일은 초하루 밤에 시작되었다. 그렉은 숨기고 싶어 했지만, 캐서린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성소를 빠져나가는 흡혈귀의 끝자락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영원한 빛들이 그녀에게 이야기해주기도 했고.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사제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이 일이 그렉의 마지막 관문이 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수행 사제가 본당 사제에게 받는 마지막 시련 말이다. 그리고 그 시련은 성소의 사제들 모두가 한뜻이 되어야만 해결할 수 있다.

 

  사실 캐서린은 이 시련이 그렉만이 아니라 체칠리아에게도 가르침을 주기를 바랐다. 그녀의 온당한 복수심은 처음부터 정처를 잃었다. 에어드부르가와 캐서린이 힘을 합쳐 그녀에게 비극을 일으킨 모든 흡혈귀를 세상에서 소멸시켰으니까. 그래서 체칠리아가 시인의 숲을 넘어 모든 흡혈귀에게 복수의 날을 돌린 것이지만.

 

  거기까지는 좋았다. 흡혈귀는 본디 교단에 있어 몇 안 되는 적대 대상이니까. 하지만 체칠리아는 언젠가부터 도를 넘기 시작했다. 시인의 숲을 에두르는 장미 덩굴을 심은 것이 시작이었다. 성소와 시인의 숲이 가져야 할 소통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셈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장미에 독을 심어 시인의 숲을 천천히 말려 죽이기 시작했다.

 

  그 아이를 어떻게 말려야 할까. 캐서린은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달리 그녀의 울분을 해결해줄 방법이 없으니까. 그러니 이 시련을 성소의 모두가 거칠 즈음에는 그녀도 마음을 조금 다잡아주길 바랄 수밖에.

 

  사제들의 일과를 기록한 뒤, 다음 업무로 넘어가려는데 그녀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촛불이 살짝 흔들렸다. 이곳에 열어둔 창문은 없다. 영원한 빛들이 조금 소란스러웠다. 초대한 적 없는 이의 방문을 예고하는 그들을 그녀는 좌정시켰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흡혈귀는 그렉의 마지막 시련입니다.”

  “하지만 캐서린이여, 그렇다고 해서 성소에 흡혈귀를 들일 셈인가.”

  “그의 존재가 랴논시 에어드부르가와의 계약에 위반된다는 것도 생각하게.”

 

  삼가 아뢰오나, 잠시 제 집무실에서 침묵해주소서. 캐서린은 기도문의 형태로 그들을 침묵시켜 내보냈다. 영원한 빛들은 기도하는 이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 아무리 세계의 법칙과 하나가 된 그들이라도, 세계의 법칙을 해석하는 살아있는 이들의 의지에 반할 수는 없는 탓이다.

 

  그녀는 벽난로의 열기가 닿는 곳에 주전자를 놓아두고 자리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벽난로의 굴뚝을 통해서 검은 연기가 들어와 남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대낮에 돌아다니는 흡혈귀가 있다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가끔 그런 별종 흡혈귀가 태어나곤 하니까. 놀라운 것은 그의 외모가 스물도 넘기지 않은 앳된 모습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눈빛으로 인사를 보내고, 다시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읽으며 말했다.

 

  “여기에는 왜 오셨나요.”

  “제가 여기에 오는 것이 잘못되기라도 한 것입니까.”

  “흡혈귀가 성소에 발을 들인다는 것이 위험한 일이기는 하지요. 당신께 말이에요.”

 

  조지는 조금 놀라웠다. 눈앞의 사제는 성소나 사제 자신이 아니라 그를 걱정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곧 도발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곳에서는 흡혈귀가 언제 죽어도 이상할 일이 없는 곳이니.

 

  한편 캐서린은 신경을 긁는 흡혈귀의 말투에 주목했다. 저주받은 자로서 빛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성소나 교단에 대해 원망 섞인 빈정거림에 가까웠다. 그래도 흡혈귀는 현명한 축에 속했다. 자신을 찾아왔으니까. 체칠리아의 앞에 나타났다면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고꾸라져서 가슴팍에 말뚝이 박혔을 것이다.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조지.”

 

  조지, 캐서린은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렉이 속세에서 맺었던 인연 중 하나였던가. 그리고 어렴풋이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흡혈귀의 창백한 피부와 머리카락 탓에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녀는 그렉의 이름이 적힌 공책을 꺼내 조지의 이름을 적었다. 한동안 자주 보게 될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오실 것인지요.”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은데, 장미의 결계가 쳐져 있더군요.”

  “그러면 오늘은 어떻게 들어오셨는지.”

  “그 결계에 틈이 있었습니다.”

 

  결계가 계속 무너지던 것은 이 흡혈귀를 성소에 들이기 위해서였나. 하지만 체칠리아가 눈을 부릅뜨고 결계를 지키려 드는데, 누가 그런 일을 했단 말인가. 캐서린은 조용히 일어섰다.

 

  “당신을 환영합니다, 흡혈귀 조지. 차린 것 없는 곳이지만, 빛의 구원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그 말에 조지는 예를 표했다. 빛의 구원을 입에 올렸을 때 표정이 살짝 굳기는 했지만.

 

  캐서린은 벽난로의 열기에 끓기 시작한 주전자로 차를 내왔다. 흡혈귀에게 독으로 쓰이는 것은 들어가지 않았답니다. 조지는 캐서린의 대접에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캐서린은 그저 차를 마실 뿐이었다. 두 사람의 사이의 적막함은 꽤 오래 이어졌다.

 

  “주인은 어느 분이신지요.”

  “당연한 것을. 시인의 숲을 다스리시는 여주인, 아름다운 것과 죽은 자의 피만을 원하시는 랴논시. 나의 주인은 에어드부르가입니다.”

 

  캐서린은 그 대답에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는 권속을 만들지 않는 흡혈귀다. 아니, 아르티제 성소와 나눈 계약에 따라 권속을 만들면 안 된다. 그런 그녀가 권속을 만들었다니. 캐서린이 어렴풋한 기억에서 떠올린 그 얼굴이 조지였다면, 그는 흡혈귀가 되어 신체의 변화를 잃은 지 이미 수년이 지났다. 다르게 말하면, 에어드부르가는 계약을 어기고도 수년간 이를 숨겨왔다는 말이 된다.

 

  아무리 장미 덩굴로 시인의 숲과 성소 사이의 연결이 끊겼다고 해도, 에어드부르가가 계약을 어긴다니. 그럴 수 있는 것인가. 체칠리아는 그녀를 신용하지 않지만, 캐서린은 그녀를 믿고 있었다.

 

  “무언가 오해가 있지는 않으신지요.”

  “무슨 말입니까.”

  “에어드부르가는 계약에 따라 권속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나는 기억합니다. 그녀가 나의 목덜미에 두 송곳니를 박아 넣었던 부활의 순간을.”

 

  기억까지 있는가. 에어드부르가가 갈증 끝에 견디지 못하고 지나가던 조지를 덮쳐 피를 빨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권속을 만들면 안 되는 계약에 따라 흡혈귀가 되지 못하게 수를 썼을 터인데.

 

  캐서린은 외부의 개입이 가능할지 생각해 보았다. 이미 죽은 조지의 피를 에어드부르가가 취하고, 버려진 시체에 누군가 조지의 영혼을 다시 집어넣고 기억도 조작했다던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비적성에 속하지 않은 캐서린에게는 어려운 문제였다. 그렇다고 체칠리아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러면 당신은 에어드부르가와 함께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도 저를 권속으로 인정하고 계십니다.”

 

  에어드부르가도 조지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해결책은 있었다. 에어드부르가에게 직접 물어보면 된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녀는 자신까지 속이지 않으리라. 그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주를 쾌락으로 삼은 흡혈귀들을 모두 숙청할 때 둘은 같은 전장에 섰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조금 나중에. 그녀는 눈앞의 흡혈귀와 그렉의 관계가 조금 궁금해졌다. 오 년 전의 그 날을 그녀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렉이 울부짖으며 찾았던 그 아이는 조지가 분명했다. 조지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흡혈귀가 되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운명은 이다지도 잔인한가.

 

  “차가 식고 있네요. 다시 데워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조지는 캐서린이 내준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달콤하고 어딘가 씁쓸한 맛이었다. 확실히 흡혈귀에게 유효한 독 같은 것은 들어있지 않았다. 캐서린이 자신을 해칠 의도가 전혀 없음을, 그는 속으로 인정했다. 캐서린은 그의 찻잔에 다시 차를 따라주었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군요. 당신과 그렉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그렉 형이 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까.”

 

  캐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는 조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나를 잊으려고 한 것인가.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보통 사이가 아니구나. 그녀는 짐작했다.

 

  “들려줄 수 있나요?”

  “긴 이야기가 될 겁니다.”

  “이 뒷방 늙은이에게 남는 것은 시간뿐이죠.”

 

  조지는 캐서린이 준 두 번째 잔을 들어 조금 마셨다. 식었을 때보다 더 단맛이 돌았다. 차갑게 식은 창백한 몸에 온기가 조금 돌았다. 조지는 캐서린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까지.

 
작가의 말
 

 2019년 8월 4일, 일부 내용에 오타가 있어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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