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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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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2 생각지 못한 재회 (2)
작성일 : 19-05-23 23:00     조회 : 92     추천 : 1     분량 : 4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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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갔네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렉?”

 

  아침 기도를 끝낸 그렉의 오르간 연주를 듣던 던스턴이 물어보았다. 그렉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모양이었다. 그가 아침 연습에 들고 온 악보 더미 옆에는 몇 권의 책이 쌓여 있었다. 분명 저것들을 읽느라 밤을 새운 것이겠지.

 

  『창세기』, 『저주의 기원』.

 

  처음 사제가 배움을 받을 때 다루는 책들이다. 그렉은 한참 전에 이것들을 모두 완독했을 터인데. 던스턴은 잠시 의문을 가졌지만, 그가 이 책들을 다시 꺼낸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궁금한 것이 생겨 책을 읽다가 밤을 새웠습니다.”

 

  한편 그렉은 던스턴에게 간밤의 일에 대해 사실대로 말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괜히 걱정 끼치는 것 같아 아무것도 아닌 양 둘러대었다. 다른 사제들이 일어나지 직전에, 그는 영원한 빛들에게 기도를 올렸다. 밤에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사제는 자신의 몸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너무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는 것은 자제하도록 하죠. 오늘 아침 연습은 여기까지 하고, 마을을 돌면서 바람을 쐴까요.”

  “채비하겠습니다.”

 

  사제들은 주기적으로 조를 짜서 마을을 돈다. 거동이 불편하여 성소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같이 기도해주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기부나 간단한 의뢰를 받기도 한다. 성소를 운영하는 사제들의 삶은 마을 사람들에게 달린 셈이다.

 

  사제들은 최저한의 생필품을 얻어 청빈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만약 성소에 물건이 남는다면 마을 밖으로 나가 전부 팔아버린다. 그 돈으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과 마을 사람들을 돕고, 마을의 예술가들을 후원한다. 새벽녘 교단은 구원에 이르는 가르침을 예술로 설파했다. 사제 대부분이 예술가로 활동하는 이유였다.

 

  그렉은 나무지게를 등에 지었다. 누군가 자신의 등에 안기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조지도 자신의 등에 자주 안겼다. 형리의 아들에 왜소한 체격인 그는 다른 또래에게 자주 맞았다. 그렉의 앞에 울면서 나타나면 등에 업고 집에 데려다주곤 했다. 그는 이어지려는 회상을 끊어내려고 고개를 저었다.

 

  “마을 순찰을 하러 가는 건가요?”

 

  두 사제의 뒤에서 체칠리아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살짝 입을 가린 채 하품을 하고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그녀의 적갈색 눈동자가 그제야 빛을 발했다. 그녀는 문학으로 빛을 찬양하는 문호(文晧) 사제다. 며칠 전부터 새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니, 아침 기도가 끝나자마자 어두운 방에서 깃펜을 붙잡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날짜를 헤아리더니 벌써 그 시기라며 중얼거렸다.

 

  “슬슬 양초를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요?”

  “그렇군요. 푸줏간에서 기름을 받아오죠.”

  “부탁할게요, 던스턴 사제님. 그렉 사제님도 순찰 잘 다녀오고요.”

  “다녀올게요.”

 

  그럼 출발하죠. 마찬가지로 등에 지게를 진 던스턴은 그렉의 지게 끈을 잡아주며 말했다. 두 사제는 성소가 있는 언덕길을 내려왔다. 마을로 오는 사제들을 본 아이들이 마을 곳곳을 돌며 사람들에게 사제의 방문을 알리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게 건네줄 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챙겨 나왔다. 사제들은 마을 사람들의 손을 일일이 붙잡으며 안부를 전했고, 그들이 건네는 것은 거절 없이 받았다.

 

  던스턴이 받은 것은 대체로 갓 따온 채소나 과일이었다. 던스턴이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알고 있어서였다. 사제들은 모두 아르티제가 고향이고, 사람들 역시 오랫동안 사제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어디에 누가 살고, 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한 달하고 반 뒤면 정식으로 사제가 되는 그렉에게도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동안 힘냈구나. 사람들은 그렉의 손을 잡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렉은 감사를 전하며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걸어갈수록 그의 지게는 무거워졌다.

 

  그렉은 계속해서 걷다가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어릴 적에 자신이 살았던 집 앞이었다. 그의 가족은 이제 아르티제에 살지 않는다. 가업을 물려받아야 할 그가 돌연 사제가 되려는 이유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렉?”

  “아, 갑니다!”

 

  던스턴은 어느새 먼발치에 있었다. 자신의 옛집에 멈춰 생각에 잠긴 그렉을 부르는 던스턴의 표정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그렉은 지게에 올린 짐들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던스턴의 뒤를 바짝 따라잡았다.

 

  두 사제는 푸줏간에 들어섰다. 피를 빼기 위해 거꾸로 매단 가축들의 비린내가 올라왔다.

 

  “계십니까?”

  “아이고, 던스턴 사제님 아니십니까. 오늘은 체칠리아 사제님이 바쁘신가 보죠?”

 

  던스턴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푸줏간 주인이 창고에서 뛰어나왔다.

 

  “그녀는 한창 집필 중이랍니다. 조만간 또 신간이 나오겠지요.”

  “그거참 잘 되었네요! 저희 아들놈이 체칠리아 사제님의 글을 굉장히 좋아합죠.”

  “아이가 올바르게 자라겠네요. 체칠리아 사제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들이 늘 그렇답니다.”

  “허허, 너무 올바르기만 해서 탈이지요. 시장바닥에서 장사하는 사람의 덕목도 배웠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만.”

  “체칠리아 사제님께 괜찮은 글을 써줄 수 있는지 부탁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야 정말 감사합죠!”

 

  푸줏간 주인은 고개를 돌려 그렉을 보았다. 그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워했다.

 

  “오랜만이구나, 그렉! 아, 아니지. 그렉 사제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에요. 바리안 아저씨. 아직 정식으로 사제가 된 것은 아니니까 괜찮아요.”

  “그렉, 이제는 사제로서의 자각을 가질 때입니다.”

  “뭐든지 처음은 익숙하지 않은 법이지요. 그건 그렇고, 기름이 필요해서 오셨죠?”

 

  푸줏간 주인은 잠시 기다려달라며 창고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큰 통에 돼지기름을 담아왔다. 그렉은 지게를 내렸다. 미리 준비해온 넓은 천으로 통을 감싸 지게에 올리고, 다른 물건들을 그 위에 다시 담았다.

 

  “감사합니다. 혹 저희가 도울 일이 있지는 않은지요.”

  “아닙니다! 저희 집에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죠. 마침 오늘 잡은 닭이 있는데, 받아주시겠습니까?”

  “받아두시지요, 그렉. 오늘 저녁에 닭을 먹으면 기력이 좀 돌아올 테죠.”

  “아,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 이렇게 받기만 하는 것은 너무 죄송한데 혹 저희가 할 일이 정말 없을까요?”

 

  그 말에 푸줏간 주인은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잠시 자신을 따라오라고 부탁했다. 그의 뒤를 따라간 길은 푸줏간 뒤쪽 수풀로 이어졌다. 길의 끝에는 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은 흡혈귀 에어드부르가가 다스리는 ‘시인의 숲’에서 흐르는 지하수를 길어 쓰고 있었다.

 

  “이 우물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밤마다 우물 근처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며칠 전부터 그랬지요.”

  “음, 그렇다면.”

  “정화가 필요하겠군요.”

 

  정화, 사제들이 저주를 떨쳐내는 의식을 말한다. 물론 그렇게까지 거창한 것은 아니다. 때로 저주는 상처받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나, 겹겹이 쌓인 오해에서 비롯되기도 했으니까. 사제들은 그저 영원한 빛의 힘을 빌려 문제를 풀어낼 뿐이다.

 

  물론 아주 드물게 문제의 원인이 심각한 것일 때도 있었다. 흡혈귀나 늑대인간은 실재하는 공포이자 저주에서 비롯된 만들어진 종족이지 않던가. 어느 쪽이든 던스턴은 이번 정화가 그렉에게 좋은 교육이 되리라고 여겼다.

 

  “일단은 성소에 짐을 내려놔야겠군요. 밤에 찾아오겠습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사제는 푸줏간을 떠나 다시 성소를 향해 걸었다.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면 어느새 성소가 보이는 언덕이었다. 힘들면 짐을 좀 더 나눌까요. 던스턴이 물었지만 그렉은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다들 노고가 많았어요.”

  “아닙니다. 캐서린 사제님. 다른 사제님들은 작업이 한창이신가요,”

  “그런 모양이에요. 둘 다 영감이 떠오를 때는 밥도 먹질 않으니 말이죠.”

 

  그들을 마중 나온 것은 캐서린이었다. 체칠리아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화경(畵烱) 사제인 루카스 역시 성소에서 조금 떨어진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양이었다. 던스턴은 푸줏간 주인 바리안의 이야기를 꺼냈다. 캐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일단 저녁을 먹읍시다.”

  “알겠습니다.”

 

  사제들의 청빈한 생활은 식사에서도 드러난다. 호밀과 밀가루를 섞어 부풀린 빵에 약간의 포도주, 그리고 텃밭에서 직접 기른 콩이나 다른 채소가 올라온다. 그렉이 받은 닭 한 마리 덕분에, 오늘은 평소보다 식탁이 풍성했다. 두 사람의 빈자리는 신경이 쓰였지만, 그들은 나중에 알아서 끼니를 해결할 것이다.

 

  “세계 그 자체이신 원초의 빛, 원초의 빛과 함께하시는 아홉 선지자. 그리고 선지자들의 뜻을 받들어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영원한 빛들께 아뢰오니.”

 

  캐서린이 손을 모으고 식전기도의 운을 떼었다. 뒤이어 던스턴이 기도문을 외웠다.

 

  “이 앞에 놓인 음식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지나간 모든 이들과 한때 생명이었던 이들에게, 감사를 바치옵고 그들의 평안과 구원을 바라옵니다.”

 

  세 사람은 기도를 마치고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빵을 찢어 채소나 과일을 싸서 먹는 것이 보통이다. 오늘은 닭 육수도 있으니 적셔 먹어도 좋다. 빵을 먹다가 목이 막히면 포도주를 한 모금 곁들였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그들에게 구원이 있기를 바라옵니다.”

 

  비교적 간단한 식후기도가 끝나고, 그렉과 던스턴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정화 의식에 입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두운색의 사제복과는 확연히 다른 순백의 로브였다. 이 옷을 입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왔네. 그렉은 자신의 모습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정화 의식에 필요한 물건도 챙겼다. 기도서와 양초, 양초를 올릴 놋그릇. 자신들과 바리안까지 포함해서 각각 세 개씩이다. 가죽으로 만든 가방에 넣고 그들은 성소를 나섰다.

 

  “긴장되지는 않나요?”

  “조금은 떨립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옆에 있지 않습니까.”

 

  던스턴은 그렉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두드리고는 함께 성소를 나왔다. 캐서린은 제단 근처에서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영원한 빛들과 잔잔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하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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