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중에 양 손바닥이 볼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그 잠시 사이에 선박에 대한 생각이 신랑 배로 가버려서 인지 얼굴이 약간 화끈거렸다. 상상 임신을 하게 한 원인이 갑자기 그려졌다.
회장님이 눈을 지긋이 감고 무슨 생각인지 골몰히 하고 있어 윤부장은 아무 말도 없이 서서 앉으라는 말이나 아니면 다른 어떤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은 36년 전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는 울산이 아주 작은 도시였다.
그날 계약을 마치고 울산 시내는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을 하러 갔다가 은행을 지나쳤다.
그때 손에 든 서류 가방을 돈 가방으로 착각한 날치기가 가방을 잽싸게 낚아 채 내달릴 때 어린 고등학생 하나가 그 뒤를 달려가 그 놈의 등을 거의 비행하듯이 날아가 걷어찼다.
등치는 남산만한 게 몸을 아주 날렵했다. 날치기가 그 자리서 나뒹굴다가 비틀대며 일어나서는 칼을 끄집어 내 그 학생을 위협하면서 도망가려고 했다.
그때 회장은 그냥 놔주라고 소리를 질렀다. 가방에는 돈이 하나도 없었지만 서류는 굉장히 중요했다. 그 서류가 없었다면 지금 이 회사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으리라고 회장은 장담할 만큼 중요했다.
그러나 그 소매치기 손에는 칼이 있었다. 회장은 혹시 라는 걱정이 앞서서 가만히 놔두라고 했다. 전쟁터에서 홀홀 단신으로 내려오면 숱한 죽음을 경험했다. 돈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생각밖에 없어 다급하게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 학생의 발을 벌써 하늘을 올랐다가 내려 온 뒤였다. 너무 늦었다.
그때 뒤에서 그 학생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서 몇 명이 뛰어가는 순간에 그 날치기가 칼은 그 학생의 심장으로 향했고 둘 다 길바닥에 아주 잠시 뒹굴다가 길바닥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그때 뒤에서 쫓아온 한 녀석이 심장에 꽂힌 칼을 빼면서 그 고등학생을 보고 빨리 도망가라며 소리를 질렀다. 뒤따라온 일행들에게 업고라도 가리며 지시를 내리는 것 같았다.
지시를 받은 일행들이 그 놈을 울러 매고 도망을 가려고 했지만 그 놈은 도망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가 머리를 한대 세게 맞고는 기절을 했는지 축 늘어져 누워 있다가 다시 눈을 뜬 채 누워서 그 시체를 쳐다보고 있었다.
소매치기는 그 자리서 즉사했고 회장은 경찰서에 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했지만 선처는 없었다. 도망가라고 지시를 내리는 친구가 그 놈의 친척 형이었고 그 동네에서 꽤 알려진 조직폭력배 행동대장이었다. 그 놈도 마찬가지로 같은 주먹잡이였지만 그 놈은 고등학생이고 경찰 명단에는 없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주먹잡이였다.
회장은 그때 소매치기의 가족들에게 합의금을 주고 경찰에게도 선처를 요청했지만 법도 법이지만 그날 사건은 전국으로 퍼질 정도로 떠들썩한 사건이라서 한 명은 벌을 받아야 했다.
그 친척 형이 고등학생인 동생의 앞날을 위해 살인의 죄를 자처해 뒤집어 쓰고 감옥을 대신 가게 되었다. 그날 인연으로 그 청년들도 청년이지만 회장은 그때 그 경찰과도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때 그 경찰관의 아들이 그 녀석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기였다. 그런 사연으로 회장은 인연을 항상 소중히 여기게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회장은 그 형이라는 친구가 출소할 때까지 면회를 자주 가게 되면서 동생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 명석하기로는 형이 훨씬 명석했지만 동생도 우둔하지 않아 그때부터 회장이 이 놈들을 지원해주고 도움도 받게 되었다. 지금 또 그 놈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난 세월의 회상을 마쳤는지 회장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자네 말이야! 배 타 본적 있나?”
‘난데없이 또 무슨 배?’ 생각이 정리 되기도 전에 대답이 먼저 나가 버렸다.
“아! 예!”
“언제?”
‘아! 그 배가 아닌데’
그러고 보니 딱 한번 신랑 배가 아닌 바다에 떠 있는 배를 타 본적이 떠올랐다.
“예! 학교 다닐 때…..”
“음! 졸업 여행을 제주도 갔던 모양이지?”
“아~~ 예!”
졸업 여행을 제주도에 간 건 맞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비행기타고 갔다.
배를 처음 타 본건 대학 때 뜨겁게 불 붙었다가 나쁜 새끼로 단정 짓고 기억 속에서 날려버린 선배와 단 둘이 자주 탔던 노 젓는 나룻배였다.
그리고 갑자기 그 놈 배가 떠올랐다.
그 놈 배도 올라 탔다.
그러나 그 배는 물위가 아닌 그 놈의 손에 끌려 은밀히 탄 신체의 한 부분이었다.
허긴 물위에 떠다니는 배도 그 놈의 손에 끌려 타 본, 은밀히 단 둘이 탔던 그 나룻배가 전부였다. 비행기도 그 놈 때문에 처음 탔다. 어디로 튈지 모르던 그 놈이 갑자기 보쌈 싸듯 싸매고 도쿄로 싸매고 간 적이 있었다.
회장님께서 비서가 테이블에 내려 놓은 서류 뭉치를 보고 계셨다. 뭉치 사이 사이가 딱 붙어있지 않을 걸 봐서는 벌써 여러 번 검토를 한 것 같았다.
“윤부장! 자네가 할 일이 있어. 자! 이 서류와 자네가 관리한 장부를 비교해 보게. 수입된 후에 저장 탱크에 있는 재고와 자네들 영업부에서 판매한 수량이 차이가 많이나. 지난 해 매출 실적을 보고 받고 내가 이미 관리부에 시켜서 내사를 했어. 자네가 울산에 가서 실사를 하게. 내사한 결과로는 우리 회사에 누군가가 화물을 빼돌렸어. 짐작 가는 놈도 있고”
윤부장은 놀랄 겨를이 없었다. 이미 내사를 했다면 그 대상은 영업부고 그 영업부의 수장은 윤부장이었다.
그리고 심각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런 일의 대부분은 부서장들이 모인 회의에서 한번쯤 말이 나왔을 법 한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러면 윤부장도 이 회사의 누구도 모르는 누군가가 제보를 했을 가능성도 컸다.
그 누군가가 누군지 오랫동안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여기 전화 번호 있네. 내가 오래 전부터 알던 녀석인데 그 친구가 도와 줄 거야. 이번 배가 들어올 때 다녀와. 직원들에게 알리지 말고. 거기 가면 정군이 상세히 가르쳐 줄 테니 잘 배워 와”
작은 메모지에 볼펜으로 직접 적어준 이름을 보고 제보한 사람이란 걸 짐작은 했지만 윤부장은 또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정수리.
이름도 이름이지만 가야 할 장소가 울산이었다. 같은 이름. 같은 동네. 그 사람 이름과 지역. 동일했다. 묘한 기분이 스쳐갔다. 그 사람이 간혹 생각나긴 했지만 하루에 두 번, 시간적 간격을 두고는 그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사람은 졸업과 동시에 외국에 어느 회사에 입사했다고 했다.
연봉도 꽤 되는 회사라고 모두 부러워했지만 윤부장은 그때 이를 갈았다.
그렇게 떠나고 몇 통의 편지와 전화만 오고 그냥 아무렇지 않은 사이처럼 사라졌다.
지금 회장님이 적어준 이름이 그 사람과 동일인이라면 윤부장은 가기 싫은 것보다 사표를 낼 것이지만 세상엔 한 동네에도 동명이인이 많기 때문에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동명이인인 그 사람은 윤부장이 대학에 입학하고 학교와 공부에 적응하기도 전에 남자란 족속에 적응하게 세뇌시켜 준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과 선배이고 휴가를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만나 위문 편지도 보냈고 답장도 많이 받았고 학교에 적응하면서, 편지에 적응하면서, 남자에게도 적응하게 되었다.
남자도 많은 남자가 아닌 딱 한 사람. 지금 회장님께서 적어주신 정수리였다.
물론 그 사람은 외국 회사에 취직해서 이 나라로 돌아 왔거나 아니면 외국 어디에서 근무하고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