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밤중도 아닌 데 왠 홍두깨가 출몰했지?
내가 사는 동네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라는 고는 설마를 떠올리자마자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며 콩닥거렸다.
그리고는 부디! 도 기원했다. 부디! 부디!
“누구……. ?”
고개를 돌리는 순간 또 기절초풍할 뻔 했다.
상상하고 기대했던 그 사람이 아닌, 정말로 한번도 보지 못한, 홍두깨가 아닌 밤중도 아닌 벌건 대낮에 떡 하니, 뒤에서부터 눈 앞으로 오더니 윙크부터 쫑긋하고는 음흉한 미소로 노려보는 데 오줌도 찔끔, 오금도 찔끔 저리게 했다.
어디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서 고개를 수도 없이 흔들어대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빤히 쳐다봤다.
헉 그런데 이 무엄한 산적과 해적이 교미해 나온 것 같은 놈이 볼을 세게 꼬집어 흔들어 댄다.
생판 처음 와 보는 이 동네도 동네지만 생판 처음 보는 남산만한 철판으로 된 배가 붙어 있는 바닷물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 부두에서 볼을 꼬집어 비틀어대는 놈은 분명히 해적이 맞는 것 같았다.
무섭고 두려웠다.
볼을 비트는 바람에 눈을 꽉 감아 버려 해적의 정체 아니 얼굴도 보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기로 하고 눈을 떴다. 눈 앞에 벌어지는 광경에 실신할 뻔 했다. 발끝에서 목 끝까지 가는 긴 옷을 입은 해적이 분명했다. 노려보고 있었다.
‘해적인가?’
그때 귀에 익은 잔소리가 음성 톤을 세게 올려 귀청을 찢어지게 했다.
“야! 임마! 오빠 몰라봐? 따라 와!”
수리는 솔직히 아주 서운했다.
연어가 바로 알아 채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옛 연인끼리 하는 그런 상봉을 기대했다.
어색하게 쳐다본다거나 눈물을 찔찔 흘리며 껴안는다 던가 하는 그런 상봉을 상상했다.
또 가슴이 이글거리며 불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자취방 앞 콩알만한 골목도 또 떠올랐다.
연어도 어이가 없었다.
내가 누구다 라고 관동성명이나 명함 같은 걸 주기를 원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정말 아무런 감흥도 없는 재회였다.
사실 여기에 온다고 할 때 동명이인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도 했다. 설레었다.
정말 개 똥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생각은 신체를 변하게 했다.
바로 입 꼬리를 돌려 입이 영원히 본래 모습대로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뒤틀어 치켜 올려지고 있었다.
하필 그때 ‘흥!’소리가 나와 이 해적의 심기가 건드려진 것 같았다.
뒤도 쳐다보지 않고 손부터 꽉 부여 잡고 끌다시피 당겨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연어는 졸졸 아장아장 깡충깡충 꽁무니를 따라 갔다.
오빠는 무슨 오빠?
신랑이었지.
여전히 터프 했다.
손바닥도 여전히 두툼했다.
손바닥 구조를 잘 몰라 거기를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손목을 바로 지나 엄지로 올라가는 살은 여전히 굵직하고 토실토실했다.
갑자기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한창 뜨겁게 불 피울 때 이 사람이 음부 위의 도톰한 살점을 꽉 잡아 당겼다가 비틀었다가 하면 같이 이 사람의 도톰한 부위를 똑 같이 잡아 당기기도 하고 까르륵거리기도 했다.
누구 살이 더 도톰한지 내가도 했다.
거기처럼 도톰하지만 보들보들한 것 같기도 한 이 손을 놓지 않고 배에서 내려준 사다리 같은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방금 전도 느꼈지만 어제도 엊그제도 만난 사람처럼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몇 발짝 오르지 않았는데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무서워.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걸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팔자걸음이었다.
“왜? 어디가 어때서? 네가 예술을 모르는 무미건조한 애였잖아. 그리니 네가 발레 걸음을 모르지. 나 한때는 잘 나가는 발레 선수였어”
어이가 없었다. 그럼 깡패들은 전부 발레를 했단 말인가?
“아래로 쳐다 보지마. 내 엉덩이만 쳐다보고 따라와. 아래로 보면 어지러워. 나처럼 팔자로 밟아. 여기서 멋 부린다고 똑바로 계단 밟다가는 바로 바다로 쏙 들어간다. 나 헤엄칠 줄 몰라”
나이가 들면 거짓말도 저렇게 능청스럽게 하는 가 의문이 들었다.
처음 눈 앞에 나타났을 때 빨간 명찰을 달고 왔었다. 머리는 깡패 같은 깍두기 머리였다. 나룻배타고 난 뒤 폼 낸다고 백사장에서 치던 그 짓은 그럼 뭐란 말인가? 웃기지도 않았다.
그렇게 배 구경을 모조리 시켜주고는 이 산적 아니 해적 같은 놈의 차에 올랐다.
그 배위로 오르고 내리고 차에 타고 그 몇 분의 중간 세월 동안 머리 속은 수많은 벌떼들이 윙윙거리며 날아 다녔다. 가끔 파리떼도 엥, 엥, 엥, 엥…. 대며 어수선하게 했다.
처음 온 그의 사무실은 낯설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취방이나 사무실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그때처럼 해야만 했다. 주방이 없어 주방장은 생략, 세탁기가 없어 세탁 반장도 생략 그러나 청소 반장 역할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았고 그 뒤도 같았다.
허리가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웠다. 겨우 엉거주춤하게 의자에 앉는 모습을 보더니 매일 본 사람처럼 편안하게 말을 무슨 백 원짜리 동전 던져주듯이 툭 던지며 했다. 기분이 약간은 상했지만 곧 예전으로 감정이 돌아가 버린 것 같기도 했다.
“소파 바닥보고 반듯하게 누워봐. 배에 올라갈 때 사다리 밟는다고 근육이 긴장한 모양이네. 경직된 근육은 바로 풀어줘야 해. 내 보지 말고 소파 바닥 봐”
변한 게 있다면 그때는 방바닥 위 이불, 지금은 푹신한 소파였다. 그러나 얼굴을 파묻기는 싫었다. 홀아비 집 같았다. 사무실에 손님이 거의 오지 않는지 옷이 걸레 역할을 할 것 많아 일어나려고 헸지만 왠지 그대로 있고 싶었다.
“아직 디스크 안 고쳤어? 그 새끼가 안 고쳐 주돼?”
‘이게 무슨 말? 그 새끼?’라니? 누굴 보고? 그 보다 이 놈이 언제부터?’
“그런데 오빠! 난 줄 어떻게 알았어? 그런데 그 새끼는 누구야?”
‘억’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누구냐고 묻자마자 손바닥에 힘이 잔뜩 넣어 허리를 인정사정 없이 눌러 버렸다. 숨이 퍽하고 멎는 줄 알았는데 이내 시원해졌다. 직업이 안마사인지 물어 보고 싶었지만 한발 늦었다.
“너! 입사하면서부터. 결혼 축의금 중에 가장 많은 돈 기억나지?”
연어는 벌떡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 놈의 배 계단을 밟고 오르내리는 사이 너무 긴장한 탓에 허리가 경직되고 말았다. 꼼짝 하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다. 그러나 겁내 하지 않았다. 어디 한 두 번이었나. 이 놈이 덮친 적이.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 새끼는 누구?’ 연어는 엎드려 누운 채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