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국은 은호의 손을 잡으면서, 연호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가 손을 잡고 있음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깍지를 낀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본관 건물에서 정원으로 나가고 있었다.
“··· 휘원 오빠가 죽은걸, 직접 확인하셨어요?”
두 사람이 정원에 다다르자, 은호가 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녀의 물음에 은국이 은호의 손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은호에게 자신이 본 일들을 말해줄 시간이었다.
시체들의 사인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모든 시체를 일일이 확인했던 은국은 은호를 천천히 벤치에 앉혔다.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두 사람이 앉은 벤치의 옆에는 백색의 가로등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은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휘원과 그의 부인될 여자를 포함한 몇몇은 총기에 의해, 다른 이들은 확실하지 않아. 민환이 회의에서 말해줄 거야.” 은국이 말했다.
그는 잡고 있는 은호의 손에서 온기를 느끼며, 천천히 오른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은국은 이내 은호의 몸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당황해하지 않고 벤치에서 일어나, 벤치의 뒤에서 은호의 몸 전체를 껴안았다.
“흐으··· 휘원 오빠·· 믿기지, 믿기지가 않아요···. 오빠가 뭘·· 뭘 잘못했다고···.”
“··· 그래.”
은호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받아내고 있었다. 은국은 그런 그녀의 말에 천천히 그녀를 토닥이며, 자신의 온기를 전해주었다.
“며칠··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밥도 먹고··· 그랬는데···.”
“··· 응.”
은국은 은호의 모습이 결혼식장에서의 다휘의 모습과 겹쳐져서 보이는 듯했다.
“하···. 다휘는, 다휘 양은·· 얼마나 힘들까···. 가족, 가족인데···.”
“·· 그래. 이젠 우리가 보호해주자.”
“네··. 꼭, 네에···. 그럴 거예요··. 꼭 지킬 거야···.”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3년이란 시간 동안 서로가 사랑하는 사람이 된 두 사람이었기에, 은국은 그녀를 달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은호는 그의 품속에서 한참을 안겨 있다가, 눈물이 다 그치고 붉어졌던 코가 다시 돌아와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휘원의 죽음은 여전히 그녀에게 커다란 사건이었다.
* * *
한편, 그 시각. 다휘의 방 안.
연호는 다휘의 방 안에 있는 욕실에서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물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굉장히 조용한 도서관 안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는 서서히 눈이 감겨왔다.
오늘 하루 동안 이러저러 피곤한 일이 잔뜩 있긴 했다.
토요일이라 보통은 바쁘지 않은 게 맞지만, 다른 마피아 조직과 동맹 체결 건에서 서류의 실수가 있어서 통째로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간부가 각자의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막대한 서류를 고치고 있었을 때였다.
휘원의 결혼식이 5시에 진행될 예정이었고, 결혼식장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충분히 고려해서 3시 45분 정도에 모두 함께 출발할 계획이었다.
민환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전투 일원 중, 그나마 한가한 몇 명을 미리 식장에 경호와 동향을 살필 겸 보냈었다.
그리고 일이 생각보다 늦어져서 4시가 조금 지나서야 출발할 수 있게 되어서, 다 함께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암살부에 출장을 가있던 ‘도 선우’를 제외한 모두가 가려고 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전투 일원들끼리의 훈련에서 폭탄 한 개가 누군가의 실수로 폭발해서, 치료와 뒷수습을 위해 은호가 남기로 했다.
사고 현장에서 진위를 파악하다 보니 출발 시간은 더욱 늦어졌고, 결국 4시 30분이 되어야 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5시가 다 되어가는데, 민환이 보낸 이들에게서 돌연 연락이 왔다.
‘For Luciano의 뱃지를 단 남자들이 여러 명 결혼식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양복을 입어서 하객이겠거니 싶었는데, 몇 분 되지 않아 다시 나왔습니다.’
‘그때 뱃지를 보고 확신했고, 현재 두 명씩 두 조로 나누어서, 한 조는 식장 내부 파악, 다른 조는 추적 중입니다.’
‘보고합니다. 현재 입구 문틈으로 하얀 연기가 새어 나왔는데, 그걸 마신 현수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에 진입할 수 없을 것 같아, 현수에 대한 조치를 우선으로 여겨,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다른 조는 여전히 추적 중이라고 합니다.’
이 다섯 개의 문자가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게 되었다.
이후 진탁이 결혼식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고, 그들이 결혼식장에 도착하기 직전이 돼서야, For Luciano의 사람들을 모두 놓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도착한 그들은 ‘연기에 정신을 잃은’ 일원을 생각하며 두려움을 안고, 결혼식장 안으로 돌입했다.
그리고 식장 안에서 발견한 여자, 현 다휘.
붉게 물든 카펫의 위에 쓰러진 두 시체를 끌어안고, 끝도 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녀.
연호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떠올리며, 잠에 빠질 듯 말 듯 몽롱한 기분이 되었다.
이내 그의 정신을 깨워준 건, 방 안의 욕실의 문을 열고 나온 다휘였다.
.
.
“저기, 다 갈아입었어요.” 다휘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다휘에게서 등을 돌리고 눈을 감고 있던 연호가 천천히 눈을 뜨고 몸을 돌렸다.
그는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털고 있는 다휘를 보며 나지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다휘야.”
“··· 네?”
연호의 목소리에 다휘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 미안해. 더 일찍 가지 못해서.” 연호가 말했다. 그는 다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미안한 감정과 가족의 죽음을 직면하게 한 기분, 그리고 그녀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한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았다.
연호는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 괜찮아요.”
그리고 다휘의 작은 대답에 그는 고개를 번쩍 들고 다휘를 바라봤다.
다휘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지만, 떨어뜨리지는 않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연호가 살짝 기운이 빠지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도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두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아줘.”
너를 지켜내지 못해서 미안해.
혼자만 남기게 해서 미안해.
연호는 이어 나오는 말들을 간신히 삼켰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래. 이거면 되겠지.
앞으로 같이 있어주면 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