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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놈 nom
작가 : 초파기
작품등록일 : 2017.12.3

화성그룹의 홍보실에 근무하는 과장 최창배는 어느 날 비서실에 새로 온 여직원을 만난다. 여직원은 대학시절 창배를 죽자 따라다닌 서클 후배 유정아. 자유분방한 성격의 창배는 50억 원을 모으면 정아와 결혼하기로 약속한다. 주위에 최창배를 좋아하는 여자들 틈에서 과연 창배는 50억원을 모으고 정아는 과연 그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34. 약속이행 [1부 완결]
작성일 : 17-12-18 19:34     조회 : 43     추천 : 0     분량 : 9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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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배는 가판신문을 보기 위해 광화문으로 차를 몰았다. 연대 앞을 지나 금화터널 입구부터 촛불시위 때문인지 극심하게 차가 막혔다.

 

  가까스로 광화문에 도달해 세종문화회관 앞의 가판에서 성도일보를 산 창배는 신문을 펼쳐 들었다.

 

 

  ‘유진 나노테크, 주가조작 검찰 수사 나서’

 

 

  창배는 이길호에게 전화 하려다 문득 그가 일주일 전에 미국 출장 떠난 것을 깨달았다. 창배는 할 수 없이 나영호에게 전화를 했다.

 

 

  “나 부장, 지금 어디야?”

 

  “밖에서 친구를 만나고 있는데 왜 무슨 일이 있습니까?”

 

 

  창배는 나영호가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응. 방금 이길호 사장한테 전화가 왔어. 급히 누구에게 전할 게 있다고 당신에게 주라고 하던데. 어쨌든 나도 들어가는 중이니 빨리 회사로 들어와.”

 

 

  창배는 차가 멈출 때마다 신문을 읽어 내려갔다.

 

 

  ‘허어, 그럼 처음부터 이게 다 이길호의 농간이었단 말인가?’

 

 

  인터넷 뉴스에서도 유진 나노테크가 의도적으로 주가를 띄웠으며 기술 협정 조인을 한 미국의 피처 나노기술회사도 위장 회사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창배는 윤수에게 전화 했다.

 

 

  “윤수야, 너 뉴스 봤지?”

 

  “…… 봤어.”

 

  “이거 어떻게 된 일이냐?”

 

  “…….”

 

  “말해 봐. 새꺄! 너, 이길호라면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다녔잖아?”

 

  “…… 미안하다. 본의 아니게.”

 

  “이건 미안해서 끝낼 일이 아니야, 인마! 내가 바로 구속이 된다구. 그 새끼가 단순한 사장이 아닌 대표이사를 맡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네가 하도 설쳐 대는 바람에 그놈을 제대로 보질 못했단 말이야. 이 새끼야!”

 

 

 창배의 뒤늦은 질타에 윤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이길호가 벤처 엠엔 알 대표를 할 때 홍보성 기사를 써 주고 답례로 술대접과 촌지를 받아 왔던 게 뒤늦은 후회가 되었다.

 

 

  “창배야, 저…… 있잖아. 나, 그 새끼한테 5억 물렸어. 두 달 안에 세 배로 만들어 주겠다고 해 그때 그 돈을 맡겼는데 다 틀렸어. 그리고 그 새끼 연락될만한데 수소문해 봤는데 연락 두절이야. 혹시 넌 그런 것 없냐?”

 

  “이런, 씨발 놈. 내가 대표이사를 맡았는데 없긴 왜 없냐, 새꺄! 그 새끼 하는 엠엔 알인가 지랄인가 하는 회사에도 은행 개인 보증 서 준 게 20억이 넘어 인마! 그리고 지난 두 달간 그 새끼가 직원들 월급 줘야 한다기에 회사 운영비 조로 내 생돈 이억 원을 내놨어. 직원들도 월급은 줘야 먹고살 것 아냐?”

 

  “나는…… 할 말이 없다. 차라리 그때 그냥…… 시골을 내려갔었어야 했는데.”

 

  “듣기 싫어. 끊어, 새꺄!”

 

  “차, 창배야……!”

 

  “왜 그래, 새꺄!”

 

  “아무튼 슬기롭게 잘 넘겨라. 나도 여기저기 힘을 써 볼게.”

 

  “이런, 씨발 놈.”

 

  창배가 사무실로 들어오자 어디서 걸려오는지 전화벨 소리가 끊이지 않게 계속 울려댔다.

 

  보나 마나 각 언론사에서 기자들이 걸어오는 전화라고 추측한 창배는 일층 자판기에서 뽑아온 이온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는데도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여덟 시 반이 돼 가는데 나영호는 아직 들어오질 않았다. 창배는 혹시 기자들이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문득 정미의 아버지 심병수가 생각났다. 어쩌면 그도 코너에 몰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자 혹시 하는 마음으로 그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누구세요?”

 

 

 전화는 다행히 정미의 엄마가 받았다.

 

 

 “저, 창뱁니다.”

 

  “기다려요.”

 

 

  순간적으로 심병수에게 아버님을 바꿔달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어르신을 바꿔달라고 해야 할지 잠시 머뭇했다.

 

  그러는 사이 전화는 곧바로 심병수에게 연결이 됐다. 창배는 심병수를 바로 연결해 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나 한편으론 정미의 엄마가 정미가 아니고 심병수를 바로 바꿔 준 것을 보고 벌써 그들도 이 사태를 알고 있었음을 눈치챘다.

 

 

  “자넨가?”

 

  “예.”

 

  “소식 들었습니까?”

 

  “다 알고 있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네. 자네한테는 안 된 일이긴 하지만 우리 이제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하세.”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미는 오늘 미국으로 떠났네. 당분간 언니 네 있으면서 그곳 학교를 알아볼 작정이니, 이제 모든 걸 잊게.”

 

  “아니, 저 그게 아니고…….”

 

  “나는 자네를 도울 힘도 없고, 이 일로 자칫 내 정치생명이 끝날지도 모르네. 모두를 위해, 이것으로 끝을 맺는 게 좋아.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 큰 딸애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네. 만일 걔가 약혼식을 봄으로 연기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될 뻔했을까 싶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네. 자넨 아직 젊으니 부디 희망을 잃지 말게나.”

 

  “이, 이런……!”

 

 

  심병수는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창배는 근래에 와서 정미의 태도를 미루어 볼 때 심병수는 사전에 이일을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창배는 단 하루 사이로 절벽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아, 늦어 죄송합니다.”

 

 

  나영호가 그제야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 있었다.

 

 

  “그런데, 회장님이 뭘 전해 주라는 겁니까? 연락이 안 되던데.”

 

  “나 부장, 이리 좀 와 봐요!”

 

 

  나영호는 무슨 일인가 싶어 창배의 앞에 다가섰다.

 

 

  “지금부터 똑똑히 들어, 이 새끼야! 회장님이라니, 아직 정신 못 차렸어!”

 

  “어이쿠!”

 

 

  창배가 느닷없이 내지른 주먹에 갑자기 무방비 상태에서 얼굴을 얻어맞은 나영호는 그대로 자기가 방금 들어왔던 문가에 나뒹굴었다.

 

 

  “아니, 당신 미쳤어! 갑자기 왜 그러는 거요?”

 

  “어쭈? 이 새끼 놀고 있네!”

 

 

  창배는 다가가더니 이번엔 발로 나영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어구구…….”

 

 

  나영호는 옆구리에 손을 대며 일어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먼저 주먹으로 맞은 입가에선 어디 가 터졌는지 피가 죽 흘러내렸다.

 

 

  “이거 한번 읽어봐!”

 

 

  창배는 가져온 가판신문을 나영호의 앞에 내던졌다.

 

 

  “이게 뭐요?”

 

  “입 닥치고 똑바로 읽어 봐, 이 새끼야!”

 

 

  나영호는 바닥에 떨어진 신문을 주워 더듬거리며 관련 기사를 찾아 읽었다.

 

 

  “아니, 이럴 수가……!”

 

 

  흘러내리는 피가 하얗게 변한 그의 얼굴 위에서 더욱 선홍빛을 뗬다.

  나영호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눈치였다.

 

 

  “너 새꺄! 바른대로 말해. 너 이거 이길호하고 다 짜고 한 짓이지?”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아니긴, 이 새끼가 아직 정신을 못 차리네!”

 

 

  창배의 잇따른 주먹에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나영호는 피투성이가 되어 다시 바닥에 널브러졌다.

 

 

  “바로 말해. 너희들 때문에 내 인생 종 치게 생겼다. 이 씨발 놈아! 아직 정신 못 차린 것 같은데,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게 해 주지.”

 

 

  창배는 책이 진열된 책장에 가 양주를 한 병 꺼내왔다.

 

 

  “자 이거 이길호가 미국에 갔다 와 나한테 선물한 술이다. 이길호에 감사한 마음으로 네가 먼저 맛이나 봐라.”

 

  “아악……!”

 

 

  창배가 나영호의 터진 얼굴에 술을 들이붓자 나영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비명을 질렀다.

 

 

  “어떠냐? 이길호가 본다면 아마 꽤나 가슴 아파할 거다. 이 새끼야!”

 

  “다, 당신……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요?”

 

  “어쭈. 이 새끼 봐. 정말 형편없는 놈이네. 술까지 먹여줬더니 감사할 생각은 않고. 좋아!”

 

 

  창배는 책상 쪽으로 가더니 한쪽 구석에 놓인 골프 가방에서 아이언을 하나 꺼내 들었다.

 

 

  “자, 이리 와. 이제부터 바른말이 나오게 해주지. 가능하면 내가 이것을 안 휘두르게 했으면 좋겠어. 나는 대학에서 한때 아이스하키를 했다구. 내가 슬쩍만 휘둘러도 네 머리 날아가는 건 문제도 아냐.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얘, 얘기할게요.”

 

 

  창배의 색다른 면을 본 나영호는 어쩌면 정말 창배가 저것을 휘두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숨이 턱하고 막혔다.

 

 

  “이리 와 앉아!”

 

 

  나영호는 창배의 맞은편 의자에 와 앉았다.

 

 

  “처음부터 이길호와 짜고 한 건가?”

 

  “그,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회장님이 그렇게 튈 줄은 저, 정말 몰랐습니다.”

 

  “회장이라고 하지 마, 새꺄!”

 

  “예. ……이 신문을 보는 순간 이길호 회장이, 아니…… 이길호 새끼가 출장을 빌미 삼아 도피한 걸 알았습니다.”

 

 

  창배가 눈을 부라리자 나영호는 얼른 이길호에 대한 호칭을 뺐고 말했다.

 

 

  “전환 사채 발행했을 때 청약금 들어온 건 모두 어떻게 됐어?”

 

  “예. 그, 그건 사채업자한테 빌린 돈으로 전부 들어갔습니다. 대신 사채업자로부터 증권을 넘겨받아 주식으로 전부 전환하고 저한테는 주가동향을 체크하라고 지시했어요. 그러다 아데사 캐피탈과 룩스 캐피탈 등이 우리한테 투자키로 했다고 한 게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자 갑자기 주가가 상한가를 치기 시작해 그때 모두 팔아치웠습니다. 한 90억쯤 시세차익을 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제야 창배는 자기와 윤수가 이길호의 농간에 완전히 휘말렸음을 깨달았다.

 

  창배는 나노기술 전문 투자사인 아데사 캐피탈과 룩스 캐피탈이 내년부터 유진에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비공식으로 한두 군데의 아는 기자에 슬쩍 흘려 기사가 나오도록 했었다.

 

  이는 공식 기자회견일 경우 각 언론의 오보에 의한 큰 피해를 생각한 이길호의 얄팍한 수완에 결국 자신이 놀아난 꼴이 되고 만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럼 이길호가 하는 엠엔 알 인가하는 그것 은 어떻게 된 거야?”

 

  “그거 다 껍데기 회사예요. 아버지가 돈 있어 감투 갖고 싶어 하는 젊은 놈한테 넘겼어요. 거기서 몇 푼 받아 증권사 수수료 하고 사채 이자 주고 깨끗이 끝냈지요.”

 

 

  창배는 이곳 13층에 그의 방이 만들어진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그럼 일전에 내가 그 회사에 방문했을 때 네가 들어와 이길호와 하시모토 사와 계약 어쩌고 한 것도 전부 짜고 한 짓인가?”

 

  “…….”

 

  “왜, 말 안 해?”

 

  “죄송합니다. 그것도 이길호 회장…… 아니, 이길호 새끼가 다 시켜 짜고 한 짓입니다. 이길호는 그때 최 사장님이나 신문사에 있는 김윤수 차장을 이번 일에 작업하기 좋은 적임자로 판단했던 거 같습니다.”

 

  “음……. 이길호는 지금 미국 어디 가 있나?”

 

  “글쎄,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전에 인디애나의 포트웨인 인가하는 조그만 소도시에 딸이 있다고 하는 얘길 듣긴 했는데 확실하진 않습니다. 저도 며칠 전부터 연락이 되지가 않아 궁금하던 차에 사장님이 이길호한테 연락이 있었다고 하기에 달려온 겁니다. 이 일이 끝나면 저 한 테 이십억 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새끼가…….”

 

  “당신은 이길호완 언제부터 알게 됐어?”

 

  “먼저 엠엔 알을 인수하기 전에 저는 이길호가 주가조작으로 돈을 번 회사에서 경리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번에 이십억 인가를 벌어 엠엔 알을 인수했는데 그때 도와준 저를 수족같이 부려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번엔 너무 욕심을 부렸습니다.”

 

  “가! 새꺄!”

 

  “예?”

 

  “그만 꺼지란 말이야, 이 새끼야!”

 

  “그런데 하나 물어보겠는데, 이제 최 사장님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네가 그걸 알아 뭐 해?”

 

  “인간적으로 정말 안 돼서 그러는 겁니다.”

 

  “그럼, 이 새꺄! 사기를 치지 말았어야지. 내 인감 하고 전부 다 갖고 지랄 떨더니……. 빨리 꺼져! 꼴도 보기 싫어. 아니, 가자! 네가 가는 곳까지 태워다 줄 테니.”

 

 

  창배는 혹시 전화를 해 오는 기자들이 사무실로 쳐들어오기 전에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장님, 너무 사람을 믿지 마십쇼.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습니다. 만일 교도소 가게 되면 내 꼭 한번 면회 갈게요.”

 

 

  나영호가 그의 집 앞에서 내리며 창배에게 말했다. 막상 나영호가 내리자 창배는 갑자기 모든 연이 끊긴 듯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당장 내일부터 아니면 오늘 밤부터라도 검찰에서 수배를 할 텐데, 당장 어디로 도피를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운전대에 잠시 얼굴을 묻고 엎드려 있던 창배는 일어나 차의 시동을 걸었다. 생각나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대학교 때 놀러 가 몇 번 묵었던 설악 해수욕장의 한 민박집.

 

  그곳은 불과 삼 년 전인가 한 번 갔었을 때도 그대로 있었다. 단, 달라진 게 있다면 투숙객들의 편의를 위해 샤워실과 주방이 단장되었을 뿐.

 

  창배는 남부순환 도로로 달리다 양재 사거리를 지나자 천천히 우측으로 차를 꺾어 들어갔다.

 

  ***

 

  “정아 씨죠? 제가 오전에 전화드렸던 김윤숩니다.”

 

 

  화성빌딩 일층 커피숍에 앉아 있던 윤수는 안에 들어서는 여자를 보자 그녀가 곧 창배가 말한 정아임을 직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게 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진작 한 번 얼굴을 봤었어야 했는데 유감입니다. 창배에게 정아 씨 얘기를 한번 듣긴 했습니다.”

 

  “……예.”

 

  “아까 전화로 잠깐 말씀드린 대로 낮에 창배를 만났습니다. 면회가 안 되는걸 저희 신문 법조 팀장이 힘을 써 잠깐 봤죠.”

 

  “건강은 어때요. 괜찮은 가요?”

 

  “그 새끼, 아니…… 죄송합니다. 우리끼리는 버릇이 돼 나서, 걔가 워낙 강골이잖아요. 잘 있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한 어느 정도나 살게 될까요?”

 

  “확실한 건 재판을 받아 봐야 알겠지만 아마 정상참작이 많이 돼 오래지 않아 나올 가능성도 있어요. 특히 생각지도 않게 그 회사에 있던 나영호란 사람이 창배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길호에게 당한 일이라고 적극 나서 주고 있어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도 곤욕을 치를 텐 데 아주 고마운 사람이죠.”

 

  “윤수 씨가 힘들겠지만 변호사는 아주 유능한 사람으로 선임하세요. 모든 비용은 제가 대겠습니다.”

 

  “그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친구들이 나서고 있으니 까요. 참, 그리고 이거…….”

 

  “이게…… 뭐죠?”

 

  “창배가 형이 일산에 하는 슈퍼에 맡겨 놓았다고 정아 씨에게 전해 주라고 해서 제가 가져온 건데요.”

 

 

  창배는 정아에게 입구를 밀봉한 누런 서류봉투를 건넸다.

 

 

  “번거롭게 해 죄송합니다.”

 

  “천만에요. 친구 일인데요. 앞으로 일을 하려면 정아 씨를 자주 만나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저는 지금 신문사로 들어가 봐야 해, 이만 일어나야겠습니다.”

 

  “예. 바쁜데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윤수를 먼저 보낸 정아는 건네받은 봉투를 뜯고 속의 물건을 꺼냈다. 꼭 보석 상자 크기만 한 물건의 겉포장을 뜯어내자 생각대로 예쁜 보석함이 나왔다.

 

  정아가 조심스레 뚜껑을 열자 그 안에 가는 금반지가 들어있었다. 옛날 노인네들이 꼈던 투박한 금반지 모양에서 크기만 작고 가늘었다.

 

 

  “…… ?”

 

 

  정아는 금반지를 꺼내다 밑에 접혀있는 메모지를 발견하곤 서둘러 폈다. 접힌 메모지 안엔 웬 열쇠가 들어있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메모지 엔 <신림동 대현 빌라 501호> 주소와 간단한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정아는 바닥에 떨어진 열쇠가 바로 메모지의 집 주소의 열쇠임을 직감하곤 궁금한 생각에 곧 약도가 적힌 주소지를 찾아 나섰다.

 

  집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날씨가 흐리고 을씨년스러워 일찍 귀가들을 해서인지 대현 빌라 인근으론 차를 세울 데가 없어 왔던 길로 되돌아가 문이 닫혀있는 신발가게 옆에 세워놓고 다시 걸어올라 왔다.

 

  대현 빌라는 정아가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데 집안에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리만큼 조악하게 지어져 있었다.

 

  오층까지 걸어 올라간 정아는 호수를 확인한 다음 조심스레 키를 꽂아 천천히 옆으로 비틀었다. 곧 시커먼 어둠이 아가리를 턱 벌리고 정아를 삼킬 듯이 버티고 있었다.

 

  정아는 전기 스위치를 찾아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실내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도배도 돼 있고 깨끗하게 정리 해 놓은 집일지 언 정 오래 비워져 있어 뿌연 먼지가 곳곳에서 기지개를 켜며 정아에게 아우성을 쳐댔다.

 

  신을 신은 채 조심스레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서던 정아의 눈엔 먼저 벽 한쪽 가득 들어차 있는 종이 박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정아는 그 앞의 바닥에 마치 들어오는 사람의 눈에 쉽게 띄도록 놓은 사람의 의도가 충분히 엿보이는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정아는 곧 편지를 주워 선 채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정아 보아라!

 

 먼저 이런 결과를 보여 주게 되어 면목이 없다. 어쩌자고 내 팔자가 이렇게 꼬였는지 알 수가 없구나. 강원도에 갔다가 지금 막 올라오는 길이다. 너, 설악 해수욕장에 있는 혜진 민박집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왜, 학교 다닐 때 모임에서 몇 차례 가 머무른 곳 말이다. 그 집에서 며칠 지내면서 난 많은 생각을 했다. 해변에 앉아 주마등같이 내가 살아온 과정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밤새 통음을 하며 나와 맺었던 주변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며 만남이란 것에 대한 인연을 부정해 보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쩌자고 물속의 흔들리는 수초와 같은지. 정아 너에게 부끄러운 일이 있어 고백한다. 나는 화성을 떠나고 유진에 있으면서 한 여자를 알게 됐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고, 아니 사랑이란 말은 달리 표현하는 게 좋겠다. 어쨌든 나는 국회의원의 아버지를 가진 그 여자의 가문을 좋아했고 그 여자 또한 잘 나가는 벤처 회사를 - 물론 이번 일이 있기 전 까지겠지만 - 맡고 있는 남자의 그 대표자라는 직함을 몹시 사랑해, 돌아오는 봄이면 우리는 곧 약혼식을 올릴 예정으로 수순을 밟아가던 중이었다.

 

  그 일환으로 얼마 전 너를 만나 보신탕을 먹었던 그 날, 사실 나는 너에게 최후의 이별을 고 하려 했었지만 차마, 네 면전에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너와 헤어진 나는 곧 나의 우유부단함을 통탄해하며 바로 그 여자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하는 이율배반적인 잘못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녀는 몸이 아파 계속 통화를 할 수 없다며 금세 전화를 끊고 말았다. 이미 그때 그녀는 내가 맡고 있는 회사가 깨지고 나와의 관계도 깨지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는데 우매하게도 나는 그 어느 하나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아 야!

  이제 내가 검찰에 들어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들어가면 얼마나 살고 나올진 모르지만, 나는 지금 이 집에서 나가는 대로 바로 검찰에 자진 출두할 예정이다.

 

 그런데…… 너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그건 뭐냐 하면, 언젠가 내가 오십억 원을 모으면 너하고 결혼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넌 아직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와 뻔뻔스럽긴 하지만 그게 아직 유효한지 어쩐지는 알 수 없구나. 그러나 그게…… 아직도 유효하다면 말이다, 내가 준 반지를 끼어 보거라. 이미 끼고 있다면 그 손을 높이 들어보아라. 고맙다. 지금 네 앞에 쌓여 있는 박스들을 보아라. 난 너와 약속대로 오십억 원 이상을 벌었다. 그럼 안녕.

 

 추신: 앞에 놓인 몇 개는 위장용 빈 박스 임.

 

 

  “형, 내가 그전에 형을 만났을 때 얘기했지.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간다구.”

 

 

  편지를 다 읽은 정아의 눈 주위가 붉어졌다.

 

  잠시 후 정아는 위에서 박스를 하나 꺼내 겉의 테이프를 떼어 낸 후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했다. 빼곡히 들어찬 안에 천만 원쯤 묶인 뭉칫돈이 열 개씩 담긴 걸로 보아 정아는 곧 박스 하나에 일억씩이 담겨 있음을 알았다.

 

 

  “후후.”

 

 

  원 상태로 해 놓고 밖으로 나오는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고. 그새 내리기 시작한 어둠이 그 웃음을 조용히 묻었다.

 

 

 

 
작가의 말
 

 놈 nome, 1부 기업 편이 끝났습니다.

 2부라 할 수 있는 다음 게재 예정은 사교육 시대의 학원 편으로 기숙학원을 이어 다룰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꽁냥이 18-01-26 00:34
 
끝까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조금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초파기 18-02-05 19:4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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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 마음을 열면 2017 / 12 / 26 80 0 3928   
40 40. 자습감독 2017 / 12 / 25 57 0 4041   
39 39. 임시거처 2017 / 12 / 25 44 0 5224   
38 38. 버킨 금도끼, 은도끼 2017 / 12 / 23 37 0 3807   
37 37. 정아는 너무해 2017 / 12 / 23 38 0 5161   
36 36. 빈집 2017 / 12 / 22 39 0 3937   
35 35. 귀가 [2부 시작: 학원 편] 2017 / 12 / 22 38 0 2959   
34 34. 약속이행 [1부 완결] (2) 2017 / 12 / 18 44 0 9414   
33 33. 주가조작 2017 / 12 / 17 37 0 5644   
32 32. 선택의 기로 2017 / 12 / 17 33 0 5029   
31 31. 사채 발행 2017 / 12 / 16 38 0 7668   
30 30. 갈등의 씨앗 2017 / 12 / 15 35 0 6177   
29 29. 스카우트 제의 2017 / 12 / 15 34 0 5055   
28 28. 돈을 갖고 튀어라 2017 / 12 / 14 34 0 6629   
27 27. 기 죽이는 일들 2017 / 12 / 14 33 0 4788   
26 26. 나 보고 야생마래 2017 / 12 / 13 40 0 4064   
25 25. 이순옥 2017 / 12 / 13 38 0 4545   
24 24. 최미정 2017 / 12 / 13 39 0 4103   
23 23. 임을 위한 행진 2017 / 12 / 11 43 0 4204   
22 22. 인맥 넓히기 2017 / 12 / 11 37 0 9788   
21 21. 임도 보고 뽕도 따고 2017 / 12 / 10 38 0 5820   
20 20. 바늘 도둑이 꿈꾸는 것은 2017 / 12 / 10 35 0 5374   
19 19. 머리 굴리기 2017 / 12 / 10 34 0 3523   
18 18. 무슨, 에로 비디오 찍습니까 2017 / 12 / 8 33 0 6559   
17 17. 속곳 자락만 보이네 2017 / 12 / 8 35 0 4777   
16 16. 어휴, 너무 오버십니다 2017 / 12 / 8 32 0 6059   
15 15. 아주, 난리가 났어 2017 / 12 / 7 32 0 4947   
14 14.베이비, 일억 삼천을 당기다 2017 / 12 / 7 34 0 5255   
13 13. 컴백! 베이비 2017 / 12 / 7 36 0 4710   
12 12. 저 멀리 서광이 2017 / 12 / 7 35 0 5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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