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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2052년의 내일에 대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2026년의 어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둘 사이에 이어진 다리의 사연이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주는데...

모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경고.

 
더미(Dummy)
작성일 : 17-12-14 10:18     조회 : 52     추천 : 0     분량 : 1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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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은 여전히 남지태 옆에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래, 8살 때다.'

 

 6살 겨울에 할아버지 집에 들어와 살면서 NDR-4로부터 공부를 배웠다. 지금의 기본 교육과 같은 시스템이 그때 막 실행단계였다. 7살 때는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혼돈 시기의 여파로 집에서 홈스쿨링 형태로 A.I에게 공부를 배웠다. 찬도 같았다. 그런데 8살이 되던 늦봄에 정부 정책이 변경되었다며 일주일에 3일을 스포츠 센터에 다니게 의무화 했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학생들의 단체 생활을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했다.

 

 '맞다. 그 첫날 그 애를 봤어. 오민희라고 하던 애를 거기서 만났다.

 ...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간지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보통이라면 두려워했어야 하는데. 혼돈 시기 일인데?'

 

 아이들이 실내 체육관에 모여있다. 8살의 고만고만한 남녀 아이들이다. 그중에 한 여자아이가 자기보다 키가 작고 어린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서있었다. 동생과 함께 있는 여자아이는 똘망똘망한 것이 똑똑해 보이는 아이다. 옆에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남자아이는 신기한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호기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 두 아이 옆에 잘 차려입은 남자아이가 옆에 붙어서서는 여자 아이와 동생을 열심히 보고 있었는데 그게 찬이다. 찬이 연신 민희와 혁을 힐끔힐끔 보았다.

 

 '그래, 남동생이 있었다. 방울처럼 늘 달고 다니던 동생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오민희는 누나 같았고 보호해주는 사람 같아 옆에 있고 싶었다.

 ...

  갑자기 가슴이 멍멍해지며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울림이 몸 속에서 밀려올라 온다.'

 

 아이들이 체육관 안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첫날 모인 아이들보다 작은 수였다. 그 중에 찬과 민희, 혁이 세 명이 공놀이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친구들이 줄어드는 이유를 전혀 몰랐었다.

  반 년이 지나면서 그제야 친구들이 없어지는 이유를 알았다.

 ...

  온 몸을 오글거리던 느낌이 금새 사라지고 오싹한 느낌과 함께 공포가 밀려들기 시작한다. 두렵고 무섭다.

  나는 이제부터 뭐가 떠오를지 알고 있다. 그게 두렵고 무섭다.'

 

 실내 체육관 안에 이제는 20여 명만 모여있다. 처음 인원은 50명이 훨씬 넘었다. 그러다 혼돈 시기의 사고가 나면서 아이들이 줄어들었는데. 어떤 날은 한두 명이 오질 않았고, 어떤 날은 십여 명이 한꺼번에 오질 않는 날도 있었다. 특히 한꺼번에 많은 아이들이 오질 않은 날은 어김없이 그날 저녁 뉴스에 사고 소식이 메인을 장식하는 날이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없어진 친구들이 죽었다고 생각지를 않았다. 그냥 다른 곳에 갔다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10명이 부족하면 며칠 뒤에 다른 아이들 10명이 충원되었고, 다시 며칠 뒤에 몇 명이 부족하면 어디선가 나타난 다른 친구들이 충원되었다. 그래서 단순히 이사나 전학과 같은 개념으로 친구들이 어디로 갔다 생각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없어진 아이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날이 있었는데 그게 약 6,7개월 지났을 때다.

 

 차츰 줄어들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절반이 안 되는 20명 안팎만이 남게 되었다. 며칠 뒤, 남은 20명은 버스를 타고 다른 곳에 있는 스포츠센터로 이주를 하였다. 거기에 가서 생소한 환경과 생소한 친구들을 만나고서야 그들은 자기들 주변에서 없어지는 친구들이 다른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결국 1년하고도 반 년이 넘어서는 처음 인원의 절반도 안되는 인원만이 남게 되었다. 20여 명. 하지만 처음 만났던 아이들로 치면 채 10명이 되질 않았다. 처음 50여 명 중 10명 만이 살아남았다. 민희와 찬이 친구처럼 나란히 서있었는데 이번에는 민희 옆에 혁이 없었다. 단 둘이만 있었다. 그때 한 어른이 나타나 아이들 이름을 불러 두 곳으로 갈라놓았다.

 

 "유찬, 너는 A조야. 여기, 여기 서.

  다음은 오민희, 넌 B조야. 저기, 저기 서.

  다음은...'

 

 두 그룹이 일렬로 서서 체육관을 나오고 있다. 밖으로 나온 두 무리는 두 대의 버스에 따로 탔다. 찬이 버스에 타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다른 버스를 봤다. 그때 다른 버스에 민희가 막 타려고 하고 있었다. 민희도 버스에 오르다 말고 고개를 돌려 찬을 봤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애처롭게 보았다. 그들의 어린 두 눈에는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민희는 울고 있었고, 찬도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다. 마지막...

 ...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민희를 보지 못 했다. 일 년 반 동안을 가장 친한, 유일한 친구로 지냈는데.

 ...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찬이 많이 두려웠고 무서웠나 보다. 스스로 오들오들 떨기까지 하였다. 따뜻한 봄날의 햇살 아래에서 그는 한기가 든 사람처럼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떨고 있었다.

 

 '그그그... 그래. 그그그...그때 민희가 말 했어.

  자기는 오 박사 집에 살고 있다고.

  그그그... 그래! 분명히 들었어.

  옆에 있던 남자 애를 보고 오 박사 아들이라고.

  분명히 기억난다.'

 

 찬이 기억에 빠져 있는 사이 집에서 남지태의 부인이 나오다가 남편 옆에 낯선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뒤에는 휴고가 쟁반에 차를 들고 따라왔다.

 

 부인이 작은 소리로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누구예요?"

 

 그 말에 남지태가 올려다 보며

 "아, 여보. 이 사람. 날 찾아온 손님."

 

 부인이 원망하듯이 남편을 보며

 "당신도 참. 여전하오 여전해. 진작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우리만 먹을 차를 가지고 왔는데."

 

 그때 찬은 부인의 말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 부인이 있어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인이 상냥하게 인사를 받아 주며

 "예, 안녕하세요. 잠시만 기다려요. 우리 휴고가 차를 가지고 올 테니."

 

 찬이 다시 앉지 않고 그대로 서서

 "아니요. 아닙니다. 이제는 가 봐야죠. 그런데 어르신, 혹시 그 오민희라는 사람 연락처는 알 수 없을까요?"

 

 그 질문에 남지태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며 찬을 빤히 봤다.

 "방금 말했잖아. 못 들었어?"

 

 찬이 당황했다. 딴 생각을 하느라 못들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남지태가 빙그레 웃었다.

 "방금 모른다고 했는데. 찾을 방도가 있으면 찾아 보라고. 우린 잘 모른다고. 다 말했는데."

 

 부인이 남편의 말에 뭔가 알고 있다는 듯

 "아! 박사님 집에 살던 그 여자애 말하는군요. 내 기억에는 오 박사님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부인이 다른 곳에 가서 살게 되었다며 아들만 데리고 가면서 여자애가 혼자 남게 되었다는 소문을 얼핏 들었는데."

 

 남지태가 몰랐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였다.

 "그래, 난 몰랐는데. 그런데 여보, 그 애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내 자식도 지키...질...

 ...

 혼돈 시기를 보냈는데."

 

 혼돈 시기라는 말 이후로는 누구도 더 이상 그 일에 대하여 입을 열지 않았다. 눈치로 보아 부인이 하다가 중단한 자기 자식 이야기는 아마도 그 시기에 자식을 잃은 모양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혼돈 시기에는 다 누군가를 잃었고 그 이별의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에 덩달아 수다스러웠던 남지태도 입을 닫았다. 찬은 눈치로 그 상황에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 조용히 있었다.

 

 말이 막히고 나서도 잠시 동안 있던 찬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음을 알고는 바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 갔다.

 

 돌아서 가는 찬을 보며 남지태의 부인이 눈물을 훌쩍이며 말했다.

 "우리 애가 살았으면 딱 저 나이 정도는 되었겠죠."

 

 남지태가 큰일 날 소리 한다는 듯

 "어허, 또 그런 소리. 이제 다 잊자고 했잖소."

 

 부인이 눈물을 훔치며

 "그래도 생각나는 걸 어쩌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식인데.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 우리 아들인데."

 

 "또또 이런다. 또 시작이야. 그만합시다."

 화를 내듯이 거칠게 차를 들어 후루룩 마셨다.

 

 아랑곳 하지 않고 부인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멀어지는 찬의 뒷모습을 마치 자식을 어디에 보내는 부모의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수요일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제는 곳곳에서 크로우의 폭발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이전 이틀 동안은 그야말로 폭주하는 자살 소식에 아주 간간히 크로우를 잡았는데 폭발하였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런데 수요일부터는 자살 소동은 여전하였지만 그에 덩달아 크로우를 잡는 과정에서 폭발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렸다. 그야말로 대응이 가능해지는 양상이었다.

 

 혜정이 살고 있는 동네의 10층 아파드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자살자들이 있었다. 특히 이곳은 다른 동네와 달리 고층의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곳이라 크로우에 의한 사고가 더 빈번히 일어났다. 그래서 어제 같은 경우 동일한 시간에 각 아파트 옥상들 마다 자살자들이 서있다가 마치 도미노처럼 순차적으로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끔찍한 모습도 보였다.

 

 그랬던 그곳에 하루가 지난 오늘은 옥상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아 놓자 집 창문을 통해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와 동시에 아래에서는 사람을 회유하여 자살을 유도하던 크로우가 휴고들에 의해 잡혀 폭발을 하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크로우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이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그런 크로우를 잡는 소동이 있었다.

 

 다른 곳도 양상은 같았다. 크로우를 만난 사람이 지나가는 자동차에 뛰어들었는데 그 광경을 본 휴고 중 몇 대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고 다른 몇 대는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한 크로우를 잡았다. 자살을 유도했던 크로우는 자동차로 뛰어든 사람에서 채 몇 걸음 가지를 못해 휴고들에게 잡혀 벗어나려 발버둥치다가 폭발을 하였다.

 

 어떤 곳에서는 크로우가 사람을 자살하게 회유하려하자 옆에 있던 휴고가 주인을 보호하며 앞에 있는 휴고가 크로우임을 알렸다. 그렇게 되자 휴고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휴고는 잡으려 했고 사람들은 휴고에게 크로우를 박살내라 했다.

 

 "뭐해 휴고. 저 휴고 박살내버려. 더 이상 사람들 죽이지 못하게 박살내버려."

 

 "박살내. 박살내서 없애버려."

 

 모여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쳤지만 휴고는 입력된 명령에 의해 같은 휴고와 싸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크로우를 잡거나 도망을 못치기 막고만 있었다. 그때 건장한 청년이 쇠파이프를 들고 나타나더니 크로우를 내리쳤다. 그때부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방망이나 돌을 들고 나타나 크로우를 공격하였다. 급기야 휴고들이 주인들과 사람들을 폭발을 한다고 피하게 했다.

 

 "지금 폭발합니다. 제 주위에서 피해 주십시오. 지금 자폭단계 모드입니다. 제 주위에서 멀리 떨어져 주십시오."

 

 "주인님, 피하셔야 합니다. 이 휴고 폭발합니다."

 

 "여러분 피하세요. 다치십니다. 우리는 괜찮으나 여러분은 다치게 될 겁니다. 피하십시오."

 

 사람들이 다 피하고 났을 때 주변에 있던 휴고들이 폭발하는 크로우 주변으로 성벽처럼 벽을 쌓았다. 폭발과 함께 파편들이 날아왔는데 휴고들이 그 파편들을 몸으로 막았다.

 

 찬은 모니터을 통해 지금의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 수요일 오전에도 찬은 여전히 사무실 의자에 앉아 앞쪽 모니터에서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혜정의 동네, 그러니까 자신이 첫 크로우를 만났던 마켓이 있던 동네의 영상이 나왔을 때는 아는 동네라 반가움마저 들었다. 슬프고 안타까운 자살 소동을 보며 반가워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아는 곳이라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반가운 느낌이 왔다.

 

 마지막 영상을 볼 때는 엉덩이가 들썩였다. 지난 금요일 파괴된 두 휴고만 아니었으면 지금 현장에 나가 저런 상황을 막을 수 있을 건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 아쉬워하는 이유는 사고로 두 휴고를 잃고는 결심을 했었다. 그들이 수리되어 다시 재생될 때까지는 현장에 나가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때는 1,2일 안에는 수리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워낙에 현실적으로 파괴되는 휴고가 급격하게 늘어나던 시기라 시간이 제법 많이 걸렸다. 평소라면 길어야 이틀 짧으면 하루 만에 복구되는 것이 휴고 수리였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제는 모니터에 사고 영상이 사라지고 어제의 현황과 지금까지의 현황이 나타났다. 어제의 크로우 현황은 S시에서 총 100건의 크로우 발견 소식이 있었다. 여기서 100건은 한 대의 휴고가 여러 명과 접촉하였을 때의 개별적인 수까지 다 포함된 카운터다. 따라서 크로우 자체만으로 따지면 20여 대 안팎이었다. 그중 5대는 포획 과정에 다시 자폭이 일어났고 나머지 10여 대는 마켓 사고 때처럼 종적을 감추었다. 전국의 다른 시를 합하면 10여 개 중도시에서 크로우가 300건 출현하였는데 개별적 크로우의 수로 따지면 100대 정도 되었다. 그중 5대가 동일하게 자폭을 했다. 나머지는 추적 도중 사라졌다.

 

 마지막 칸 결과 내용은 큐브가 직접 읽어주었다.

 "현재까지도 크로우의 행동을 지배하는 프로그램을 분석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사라진 크로우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게 되는지도 밝히지 못했습니다.

  고무적인 현상은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던 환경에서 에이아이들이 주인을 보호하려는 모드로 전환되면서 엔디알 일레븐 사이에 휴고를 통한 방어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줄을 다 읽고 나서 찬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사무실 안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겼다.

 

 '잡을 수가 없다.

 ...

  잡았다 하더라도 자폭에 의해 정보를 밝힐 수도 없다.

 ...

  자폭한 크로우는 또한 분석이 안 된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끝낼 수 있지?'

 

 생각을 하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걸음을 멈추고 앞을 보며 말했다.

 

 "크로우에 대한 시민의 관심은 어느 정도야?"

 

 찬의 말에 큐브가 모니터에 몇 개의 뉴스 방송을 보여주었다.

 

 한 뉴스에서는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 사태로 인하여 사람들이 불안하여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는 방송을 하고 있다. 주거 구역 중앙에 자리한 공원에 사람들이 나오질 않고 있음을 일요일 전의 영상과 일요일 후의 영상을 비교하여 보여주었다.

 

 다른 뉴스에서는 전국 각 시청에 최근 들어서 개인의 휴고가 이상하다는 신고가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로 인해 개인 A.I를 관리하는 MPI 7의 하위 실행 A.I인 시 산하 가정 A.I 관리 부서 담당 PS-5에 속한 휴고의 출동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했다.

 

 또 다른 뉴스에서는 병원과 소방 당국의 구급 출동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이유는 휴고를 믿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휴고가 가지고 오는 음식을 먹지 않거나 휴고를 믿지 못해 직접 일을 하다 보니 아사 위험자와 안전사고 위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집에서 휴고의 도움을 받기를 거부한 일부 사람들은 음식을 먹지 못해 아사 직전까지 간 상태에서 NDR-11의 신고로 병원에 호송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 외의 뉴스에서도 혼란에 빠진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PSWC가 보는 크로우의 문제와 시민이 보는 크로우의 문제는 사뭇 달랐다. PSWC는 자살할 위험이 있는 사람의 수와 시민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저승사자 같은 크로우의 수로 모든 것을 나타냈다. 그에 비해 시민들은 그 모든 일을 앞선 시간의 공포인 혼돈 시기에 결부하여 위험 인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숫자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에게 닥칠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식하여 다시금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중이었다.

 

 제아무리 완벽한 A.I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인간 심리의 변화와 인간 정신세계의 혼란을 인간 스스로가 아닌 로봇인 A.I가 다 책임지고 안정시킬 수는 없었다. 거기는 아직까지는 인간의 영역이었다.

 

 갑자기 밖에서 김동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에 찬님 있어?"

 

 큐브가 바로

 "김동주씨가 찾아 오셨습니다."

 

 그 소리에 놀란 찬이 다급히

 "들어오십시오."

 

 사무실 문이 열렸다.

 

 

 트레일러 문이 열리더니 민희가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들어왔다. 아마도 방금 뭔가를 하고 손을 씻은 모양이다. 그녀가 자기 자리에 가서 앉을 때 그녀의 뒤를 따라 휴고 한 대가 들어왔다. 휴고의 손에는 검은 가방이 들려 있다. 그런데 그 가방은 화요일 어제 그녀의 H-휴고가 다용도실 안에 넣어두었던 그 가방이다. 두려워서 열어보지 못했던 그 가방을 그녀는 결국 열어보았던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열어본 것이 아니라 현장에 가지고 와 직접적으로 뭔가를 한 모양새다. 가방을 들고 온 휴고는 그녀의 뒤 테이블에 가방을 올려놓고는 나갔다.

 

 "다 조사를 하신 겁니까?"

 

 민희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응, 그런데 조사랄 거 없어. 그냥 본 거야."

 

 "뭐가 궁금하셨던 겁니까?"

 

 "우리 상식 밖의 괴물 휴고의 행동이 왜 일어날까 해서. 내가 알고 있는 에이아이 아시모프 법칙이 없나 해서 확인했어."

 

 "찾으셨습니까?"

 

 "아니. 못 찾았어. 내 예상 그대로 잘 되어 있었어."

 

 "그럼 왜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진 걸까요?"

 

 "나도 그걸 모르겠어. 괴물이 된 휴고를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것 같아."

 

 이야기를 하고 민희가 앞쪽 모니터를 보다가 조금 놀란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 저기 저 휴고가 있는 곳 큰 화면으로 보여줘."

 

 데이비드가 그녀가 가리키는 화면을 큰 화면으로 확대하여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어두운 지하의 모습과 휴고의 불빛이 비치는 곳에 있는 사물들이 보였다. 휴고의 움직임에 따라 좁은 구역이 밝게 보이며 사물의 선명한 모습이 영상에 나타났다.

 

 민희가 손사래를 치며

 "아니, 그쪽이 아니라 방금 전에 비추었던 물건.

 ...

  그래! 우측으로."

 

 화면에 휴고의 불빛이 이동하며 다른 물건을 비춘다. 그러다 인형에 이르러 불빛이 멈추었다. 여자 인형으로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고 노란 머리를 하고 있다.

 

 "멈춰, 멈춰. 거기. 바로 거기 멈춰. 트레이시 인형이다."

 

 그녀는 마치 아주 기쁘다는 듯이 트레이시 인형이라고 불렀다.

 

 "트레이시 인형이라니요?"

 

 민희가 신기하다는 표정 같기도 하고 행복하다는 표정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인형 이름이야. 내가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인형과 같은 인형. 그 인형이 분명해. 그게 저기 있었네."

 

 "본인 겁니까?"

 

 민희가 정색을 하며

 "아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같은 제품이라고. 그런데 저긴 어디야? 어딘데 인형이 있어?"

 

 데이비드가 명령을 내렸는지 불빛을 비추는 휴고가 움직여 주변을 보여주었다. 가정집 책상 같은 것도 보였고 가구도 보였으며 소파도 보였다. 그냥 봐도 거실이나 서재 같은 느낌이다. 도저히 지하철 안이라고 생각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불빛이 마지막에 멈춘 곳은 책상 위다. 책상 위에 있는 작은 사진 액자에 멈추었는데 그 액자에는 사진 두 장이 있었다. 한 사진은 결혼식 사진이고 다른 사진은 가족사진이다.

 

 민희가 모니터의 사진을 유심히 보며

 "언제 발견했어."

 

 "이제 막 발견한 곳입니다."

 

 민희가 사진에 관심이 많은지 손을 흔들어 정지하라는 표시를 하며

 "정지, 정지. 어디야?"

 

 "저도 지금 다시 확인 중입니다. 지하철 내부 설계도에 없는 비밀 장소입니다.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곳입니다."

 

 민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비밀 장소란 말이지.

  비밀 장소."

 

 그 말을 하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질 않고 모니터만 봤다. 모니터에는 여전히 그녀가 정지 시킨 사진 두 장이 보인다. 그녀는 사진을 한참 동안 보다가 대뜸 말했다.

 

 "우리 방호복과 방독면 있지."

 

 "예,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걸?"

 

 민희가 밖으로 나가려는지 움직이며

 "그거 준비해줘. 들어가 직접 봐야겠다."

 

 "직접 들어가시겠다고요?"

 

 민희가 그제는 아예 문 앞에 서서

 "응. 뭐해 빨리 문 안 열고. 어서 열어."

 

 그녀의 단호한 명령에 트레일러 문이 열렸다. 민희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밖으로 나갔다.

 

 

 김동주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급해 보이는 얼굴 표정과 행동이다. 오죽 급했으면 들어서기가 바쁘게 입을 열었다. 얼굴 표정이 기쁜 표정을 하고 조금은 큰 소리로 외쳤다.

 

 "찾았어. 드디어 찾았어."

 

 찬이 놀라며

 "무슨 소립니까? 찾다니?"

 

 동주가 찬 바로 앞에 와서는

 "자네 휴고를 공격했던 크로우의 출처를 찾았다고. 우리 MPI 7이 어젯까지 B시에 존재하는 휴고 전부를 전수 조사한 끝에 찾았어."

 

 찬이 놀라움과 다른 한편으로는 기쁜 얼굴을 하였다.

 "어디 휴고입니까?"

 

 "B시 소속 의원 소유의 피 휴고였어. 김중수 의원인데. 그 의원의 지역구 관리 휴고야."

 

 "피 휴고요? 피 휴고면 공공 휴고인데?"

 

 찬은 P-휴고라는 말에 조금은 의외라는 듯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그가 금요일 본 휴고는 은색 휴고가 아니라 개인 휴고들처럼 다양한 색의 옷을 입은 휴고였다. 그건 누가봐도 분명히 개인 휴고인 H-휴고였다. 그래서 김동주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만요. 내가 본 것과는 너무 다른데요. 개인 소유의 휴고가 어떻게 에이치 휴고가 아니라 피 휴고입니까? 그것도 은색이 아니던데."

 

 "아! 그건. 의원의 지역구 관리 피에스 파이브에 소속된 휴고라서 그래. 의원들에게는 의회가 공공 피에스 파이브와 피 휴고 몇 대를 지급하는데 그중 한 대야."

 

 찬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그쪽 피에스 파이브가 명령한 사건입니까?"

 

 동주가 고개를 저으며

 "그게 좀 복잡하게 됐어. 사고 있던 날 피에스 파이브가 자기 소속 휴고의 행방불명 신고를 시 로봇 관리부서에 했더라고."

 

 "행방불명요?"

 

 "응, 피에스 파이브 말로는 갑자기 통신 연결이 안 되면서 어떤 통제도 적용이 되질 않아 신고를 했다는 거야."

 

 "제길, 또야. 또. 그래도 의심스러우니까 피에스 파이브를 더 조사할 필요가 있겠는데요."

 

 "지금 재조사하는 중이야. 작은 실마리 하나는 풀린 거겠지."

 

 "크로우가 대체 어디서 왔나 했더니 그냥 일반 휴고에서 온 거군요. 그렇기는 한데... 문제는..."

 

 찬이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아마도 이걸로는 실마리가 되질 않는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계속 말하기도 전에 김동주가 가로막고 나섰다.

 

 "참, 내가 이 소식만 전해주려고 온 것이 아닌데. 자네 휴고 두 대가 방금 관리 부서에 입고되던데. 식당에서 봤어. 그걸 전해주려고 달려왔는데. 엉뚱한 소리를 했군. 나는 전했으니 이만 가네."

 

 찬이 나가는 동주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바쁜 사람처럼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아마도 서둘러 자기 사무실로 가서 그간 발견된 크로우들의 주인을 찾을 생각인 모양이다. 김동주라면 그렇게 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죽음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니.

 

 김동주를 보내고 나서 돌아서 앞쪽 모니터를 보며

 "로이와 레온이 도착했는지 확인해 봐."

 

 "예."

 

 모니터의 화면이 PSWC 3구역 안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관리 사무실 창고 영상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트럭에서 로이와 레온이 스스로 걸어서 차에서 내려 창고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찬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오랫동안 떨어진 친구를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감회가 새로워 가슴이 찡했다. 그렇게 반가운 얼굴로 모니터를 보고 있을 때 큐브가 말했다.

 

 "방금 김동주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 추가할 내용이 도착하였습니다."

 

 "뭔데? 보여줘."

 

 영상에 각 지역의 자폭한 휴고 주인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B시 사건은 동주의 말처럼 김중수 의원의 지역구 관리 휴고였다. 다른 곳의 경우 개인 휴고도 있고 공공 휴고도 있었다. 문제는 어디서도 소유주의 특별한 특징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연결 고리가 되거나 연관성 있는 조건이 어디에도 없었다. 다양한 직업군 아니면 직업이 없는 개인의 휴고였다.

 

 영상의 자료를 본 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공통점이나 의심스러운 곳이 없어."

 

 "모든 할 나인도 혼란 상태입니다."

 

 찬이 의자에 앉으며

 "제기랄 더 복잡해지네. 방법이 없는 거야?"

 

 큐브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영상만 다시 자신들이 감시하는 대상자들의 일상 화면으로 교체하였다. 그때 찬은 화요일 만났던 남지태가 말했던 오민희를 떠올렸다. 그날 남지태가 오민희를 찾으면 가능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가 아직까지 그녀를 찾지 않고 있는 이유는 자살을 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두려움, 무서움, 고통.

 

 5000만 명 중에서 4500만 명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은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보낸 사람의 입장에서는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열 명 중 한 명만이 살아남은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모든 것이 사라진 기억일 뿐이었다. 찾고자 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무서움이었다.

 

 그게 무서워 그는 그녀를 찾아볼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또 어디서 언제 어떻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겁이 났다. 그런 고통을 겪고 싶지가 않았다. 스스로 도망치고 회피할 수 밖에 없었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어제 집에서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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