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훗.오늘은 매점에 뭐가 들어왔을라나~"
평소랑 다름없이 나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매점으로 걸어갔다.
그날은 1주일에 한번있는 신상품이 들어오는 날이었고 특히 나현이 입고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던 신상 햄버거의 첫 판매일이었다.
'무려 한달이 넘게 기다렸다고! 절대로 놓칠 수 없어!'
벌써부터 버거가 제 손에 쥐어진 것처럼 나현은 우헤헤 게걸스럽게 웃어보였다.
사이즈부터가 기존의 버거들을 압도하는 크기에 진짜 한우불고기로 만든 패티를 써서 500개만 한정생산 및 판매하는 특별한 버거였다.
당연히 가격 또한 기존의 버거들과는 전혀 달랐고 포장지 뒷면에 일일이 추첨코드가 적혀있어 당첨코드가 박힌 버거를 구매한 사람에게 종합 한우선물세트와 기프티콘을 증정하는 이벤트까지 벌이고 있었다.
"만약 당첨이라도 된다면 태성 오빠랑 단 둘이서 한우를..에헤헷~"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킨 나현은 더욱 발걸음을 바삐 놀려 이미 전쟁터가 되버린 매점에 뛰어들었다.
벌써 문제의 버거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났던지라 제법 넓은 매점 내부는 학생들의 아우성과 고함으로 들끓고 있었다.
"어디서 새치기질이야 새꺄! 저리 안 꺼져?!"
"뭐 이 새꺄?! X만한게 어디서..버서스 한판 불어볼텨?!"
여기저기서 이미 버거의 선주문권을 둘러싼 혈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나현은 혼란을 틈타 놀라운 스피드로 한정판 한우버거 3개를 주문했다.
이미 나현의 안면이 익을대로 익은 매점 아줌마가 즉시 결제를 마친 뒤 나현의 손에 버거들을 넘겨주었고 무사히 목적을 완수한 나현은 현역 럭비선수도 울고 갈 현란한 무빙으로 매점을 빠져나왔다.
"헤헷~내 꺼 2개랑 태성 오빠 꺼 1개! 이거면 충분하겠지?"
남들은 1개도 챙기기 어려운 한정판 버거를 3개나 건진 것에 나현은 몹시 의기양양해졌다.
즉시 교실로 돌아가기로 한 나현은 또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복도 모퉁이를 꺾어들어갔고 그 순간 퉁하는 충격과 함께 나현의 몸이 휘청하고 뒤로 넘어졌다.
"꺗?!"
"아얏!"
거의 동시에 터져나온 비명소리가 짧은 순간 복도에 울려퍼졌다.
난데없는 충돌에 나현은 품에 꼭 안고있던 버거를 복도 바닥에 떨어뜨렸고 이내 벌떡 몸을 일으킨 나현은 급히 떨어뜨렸던 버거들을 후다닥 주워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다..다행이다! 2개는 무사해! 근데 나머지 1개는 어디있지..?'
슬쩍 두리번대기 시작한 나현은 곧바로 마지막 버거를 발견하였다.
자신의 앞에 꼴사납게 넘어져있던 여학생의 오른다리 밑에 한정판 버거가 그대로 짓눌려있었다.
"으앙! 안돼! 내 소중한 버거!!"
"응? 아앗! 미..미안해! 급하게 달려오느라 그만..!"
급히 얼굴을 붉히며 사과하는 여학생에게 나현은 하늘이 무너진듯 비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꺾었다.
나현의 'OTL' 자세에 여학생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잠시 후 한참을 머뭇거리던 여학생이 짜부되버린 버거를 조심스레 들어 나현에게 건네주었다.
"저..정말로 미안해.그거 500개만 판다는 한정판 버거 맞지?"
"응..내가 2개 먹고 태성 오빠한테도 1개 주려고 3개나 샀어…."
곧바로 대꾸하던 나현은 잠시 눈물을 그치며 여학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눈에 봐도 헬쓱한 안색을 가진 자신과 비슷한 키의 또래 여학생이었다.
매일밤 악몽이라도 꾸는건지 눈가에 짙은 다크서클이 깃들어 있었고 나름 단정하게 늘어뜨린 남색의 단발머리 아래로 푸른색 테의 범생이 안경이 자리잡고 있었다.
"너..괜찮은거야?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으..응.괜찮아.요즘 계속 잠을 설쳐서 조금 피곤한 것 뿐이야."
"그..그래? 음..많이 힘들겠다.밤에는 푹 자야 좋은데.."
짐짓 자신을 걱정해주는 나현에게 여학생은 어쩐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대꾸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저..그보다 내가 찍어버린 버거 말인데.."
"아하핫..괜찮아.아직 2개는 멀쩡하니까 1개쯤 찌그러져도 문제없다구."
"그..그래? 알았어.그럼 나 이제 다시 가볼께?"
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선 여학생은 곧바로 나현을 지나쳐 매점 쪽으로 달려갔다.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난 나현은 짐짓 힐끗 뒤를 돌아보고는 허겁지겁 교실로 되돌아갔고 이내 교실로 되돌아온 나현은 곧바로 태성의 앞으로 다가갔다.
"태성 오빠! 이것 좀 먹어봐요! 오늘 겨우겨우 구한 한정판 한우버거라구요!"
나현의 부름에 시체처럼 엎어져 자고있던 태성이 슬쩍 고개를 들어올렸다.
"뭔 뜬금없이 한우 타령이야..? 또 매점에서 뭐 사온거냐?"
"당근이죠! 오늘은 평범한 과자나 빵도 아니라 무려 한.정.판 버거라구요! 오빠 것도 사왔으니까 한번 드셔보세요!"
곧바로 멀쩡한 버거를 들이미는 나현에게 태성은 못 이기는척 한숨을 쉬며 버거를 집어들었다.
한눈에 봐도 화려한 금색 포장지에 싸여진 버거는 겉표지에 그려진 그림만 봐도 충분히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무슨 매점 버거 하나에 6500원씩이나 호가해? 사이즈는 또 왜 이렇게 크고?"
"후훗.그야 당연히 특대 사이즈 버거니까요! 저는 2개나 사왔다구요 2개나.."
잠시 행복하게 웃어보이려던 나현이 이내 찌그러진 버거의 포장지를 벗겨냈다.
본래라면 나현이 포장지를 뜯자마자 소스를 비롯한 일부 내용물이 조금 흘러나왔고 이에 슬쩍 깨름칙한 표정을 짓던 나현은 애써 버거를 입으로 가져갔다.
"쯧..이리 내.그딴 개떡같은 버거를 누가 먹냐? 내 꺼랑 바꿔줄테니까 멀쩡한 거 먹어라."
"엑? 태..태성 오빠.그치만 그건 오빠 꺼인데..?"
"애초에 니가 사왔는데 니꺼 내꺼가 어딨어? 군소리 말고 얼른 내놔."
곧바로 나현에게서 버거를 낚아챈 태성이 자신이 들고있던 멀쩡한 버거를 나현에게 들이밀었다.
잠시 어안이 벙벙하던 나현은 이내 쑥스럽게 웃으며 태성의 버거를 받아들었고 이내 한입 크게 베어물은 나현이 행복한 웃음을 피어올렸다.
"에헤헷~역시 엄청 맛있어요! 태성 오빠가 줘서 그런가?"
"웃기고 있네.그보다도 이 버거는 왜 이 모양 이 꼴이냐? 들고오다가 어디에 자빠졌냐?"
"음..네.급하게 뛰어나온 어떤 여자애랑 정면으로 부딪쳤거든요.근데 하필 그 애가 그걸 다리로 깔고앉는 바람에 그만.."
금세 울상을 짓는 나현에게 태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참, 조심 좀 하지..그래서 그 여자애는 어떻게 됐는데?"
"일단 제대로 사과해주고 바로 매점으로 가버렸어요.뭔가 엄청 피곤해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잠을 많이 설쳤다고 하더라구요."
"흐음..그러냐? 뭐 어지간히 신경쓰이는게 많았나 보지.너무 신경쓰지마."
심드렁히 대꾸한 태성은 이내 찌그러진 버거를 우적우적 단숨에 씹어넘겼다.
생각보다 태성이 부드럽게(?) 대해주자 나현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시금 버거를 냠냠 먹어치웠고 그 사이 태성은 버거를 다 먹어치운뒤 포장지를 슬쩍 뒤집어보았다.
'흐음..과연.추첨코드 중에 당첨코드가 섞여있다 이 말이지?'
짐짓 포장지 뒤를 유심히 들춰보던 태성은 곧바로 PDA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였다.
해당 홈페이지를 찾아낸 태성은 즉시 포장지 뒷면의 코드를 PDA 액정에 가져다댔고 그 순간 삐빅하며 태성의 PDA에 '경축 당첨'이란 금색 문구가 아로새겨졌다.
'뭐야 이게..? 당첨? 지금 농담하는거지? 경품은 대체 뭐지?'
즉시 경품을 확인하던 태성은 떡하니 모습을 드러내는 한우선물세트의 위용에 일순간 움찔하며 경악했다.
당첨된 것이야 기분좋았지만 문제는 하필 경품이 식품이라는 것이었고 이내 슬쩍 고개를 돌린 태성은 나현을 힐끔대며 쳐다보았다.
'후우..다행이군.완전히 포만감에 찌들어있어.'
순식간에 버거 두개를 전부 해치운 나현은 두 손으로 배를 감싼 채 느긋하게 의자에 반쯤 누워있었다.
운좋게 당첨 사실을 들키지 않았다는걸 깨달은 태성은 곧바로 PDA에 뜬 창을 전부 닫았고 나지막히 속으로 중얼대기 시작했다.
'저 먹순이한테 들켰다간 분명히 하루만에 싹 거덜나겠지?'
또다시 나현을 돌아보던 태성은 다시금 졸린 척 하품을 하며 책상 위에 드러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나현의 시선을 속이기에는 최적의 수법이었고 이내 4교시 시작 종과 함께 채윤 선생이 들어와 바로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재수가 좋은걸? 제발 끝까지 평온하게 흘러가면 좋겠는데..'
담담히 속으로 중얼대던 태성은 짐짓 고개를 돌려 바로 옆의 창밖을 돌아보았다.
물결 모양을 띄는 한 무리의 구름이 두둥실 하늘 위를 흘러가고 있었고 햇살은 여느 때보다도 더욱 따스하고 포근했다.
'한숨 푹 자기 딱 좋은 날씨네….'
저절로 마음이 느긋해진 태성은 이내 채윤이 뭐라 할 새도 없이 스르륵 눈을 감아버렸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