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낮을 가리지 않으면서까지 열두 강시에게 만종섬섬을 전했다.
열정을 넘어선 집념이었다.
-슈슈슉, 콰쾅
그 결과, 주변 숲은 황폐하게 변해 버렸다. 이에 만족한 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외쳤다.
“우리는 하나다!”
강현은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하늘로 젖혔다.
만종섬섬은 어떻게 보면 미완성의 경공이었다. 표풍비 본인이 만들어 놓고 감당이 안돼서 무공서에 그리 적어 놓은 것 같았다.
잘못하다간 오히려 죽기 십상인 자살경공이었다. 그래도 그냥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신공이라 틈날 때면 수련을 했다.
검을 들고 마주한 수연에게 대련에 앞서 말했다.
“수연아, 천변무를 네 지닌 재량껏 펼치도록 해라.”
“예, 사부님.”
수연은 단전에서부터 흘러나온 기를 모아 검에 내력을 한껏 불어 넣었다. 검에 푸르스름한 검기가 맺혔다.
-우웅
수연이 남들과 다른 특이한 점은 내력을 불어 넣은 검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을 정도로 한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타앗! 천이단극.”
수연의 검이 앞을 향해 쇄도했다.
-쉬이잇
검기가 실린 수연의 검이 허공을 가로질러 옆구리로 깊게 들어왔다.
-카가각
몸을 돌려 세우며 검을 쳐내자 서로 부딪치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수연을 밀쳐 거리를 벌렸다.
“천변화수.”
강현의 검식이 수차례 기묘하게 변하며 수연의 어깨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수연은 뛰어 오르며 강현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군악호산.”
왼발을 앞으로 묵직하게 밟고 보법을 펼치는 수연의 검이 무겁고 진중하게 변했다.
-두우웅
망설임 없이 찔러오는 수연의 검을 보고 있었지만, 중압감에 몸을 쉽사리 뺄 수가 없었다.
강현은 같은 초식으로 맞대응했다.
“군악호산!”
-콰창
상대적으로 내력이 약한 수연이 뒤로 일장이 넘게 주룩 밀렸다. 곧바로 틈을 주지 않고 따라 붙으며 바로 다음 검식을 전개했다.
“일검만환.”
강현이 일으킨 검식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검 날이 빛처럼 수연을 향해 쏘아졌다.
-슈슈숙
하나하나가 경시할 수 없는 진검이었다.
“으음.”
수연은 정신을 집중하고 침착하게 검을 앞으로 곧게 내뻗으며 찔렀다.
“태한방갑.”
천변무 중에서 방어검식인 태한방갑을 펼치는 수연이었다. 무엇이든 뚫어버릴 기세의 강현의 검기가 실린 검이 수연의 방어에 막혀 버렸다.
-따다당
강현이 힘을 약하게 조절한 탓도 있었지만 태한방갑의 위력이 한몫했다.
“흠, 아주 훌륭했다.”
“히힛, 사부님. 감사합니다.”
강시만큼 튼튼하고 부담 없는 대련상대도 없었기에 실전 경험이 부족한 강현과 수연은 강시들과 여러 상황들을 만들어 가며 대련을 반복해서 무공을 쌓아나갔다.
“수연아, 이번엔 민경과 대련을 해 보거라.”
“예, 사부님.”
수연은 사부인 강현의 명에 민경과 대련을 시작했다. 서로 잠시 마주보다 민경이 먼저 출수를 했다.
“천인광야.”
-슈슉
민경은 화살처럼 수연을 노리고 검을 찔렀다. 검은 사정을 두지 않고 구석구석을 찔렀고, 수연은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갔다.
민경은 수연이 요리조리 잘도 빠져 나가자 좀 더 몰아 부치려는지 검식을 연속해서 전개했다.
“천인비기, 천인지로.”
-꿀꺽
바로 코앞에서 날아오는 민경의 검을 보고 긴장한 수연은 마른침을 삼켰다.
수연은 달려드는 민경을 향해 만리비행 표풍비의 무공을 사용했다.
“만교잠행.”
수연은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꺼지듯이 몸이 사라졌다.
-피이잇
민경의 검은 목적을 잃고 수연이 없어진 빈 허공만을 갈랐다. 사라졌던 수연은 민경의 등 뒤로 나타났다. 대단한 경공이었다.
-휘리릭
등 뒤에 있음을 눈치 챈 민경은 순간적으로 몸을 회전시켜 검을 내리 그었다.
-파가가각
검기가 수연이 아닌 바닥을 긁고 지나감에 돌이 부서지며 튀고, 흙먼지가 높게 날렸다.
민경은 허리를 뒤로 완전히 구부려 검을 찔렀다. 예기치 못한 방향의 검로에 수연은 당황하여 피하지 못하고 숨을 들이켰다.
“허업!”
-부르르르
검기가 흐르는 민경의 검이 수연의 명치 부근에서 멈췄다. 얼마나 빠른지 수연은 놀라 들이켰던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휴우! 가르침 감사합니다. 민경님.”
제자인 수연을 보호하고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강현의 명에 충실히 따르는 민경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하는 수연에게 민경은 어색하게나마 살짝 미소를 지어줬다.
“후훗.”
“너희 둘 다 그동안 대단한 무공증진을 이루었구나. 이거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는 걸.”
열심히 수련하는 수연과 강시들의 무공실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나 수연의 무공이 눈에 띄게 늘은 것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강현이 잘 몰라서 그렇지 수연이 타고난 칠음절맥과 강현의 피가 한데 섞이며 무공에 적합하게끔 체질이 변하고 있는 중이었다.
“헤헤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의 칭찬은 언제나 수연을 기쁘게 했다. 좋아하며 수련에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
“저, 저·······. 피식.”
수연이 쉬지 않고 맹렬히 검을 놀리고 경신법을 펼치며 혼신을 다하자 무리가 될까싶어 쉬었다 하라고 말을 하려다 말고 피식 웃었다.
가을로 접어든 장원의 나무들은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었다.
출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연과 수하들의 혼신을 다한 수련을 지그시 지켜보다 눈을 감았다. 그간 지나온 날들을 떠올렸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과연 잘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앞으로의 일들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지만, 집에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저들에게 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자신의 일로 인해 혹여 저들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이들이 잘못되기란 매우 희박했다.
자신을 포함한 수연과 수하들의 무위는 이미, 초절정 고수와 근접할 정도로 대단했고, 내공은 절대 고수와 비슷한 존재들이었건만 이들만 그 사실을 모를 뿐이었다.
출전 당일 강현은 수연과 수하들에게 신신 당부했다.
“너희들에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건 목숨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앞으로 목숨을 도외시 하는 일이 없도록 여기기 바란다. 다들 알아들었지?”
“예, 사부님.”
알았다고 대답을 하는 수연과 달리 강시들은 대답 없이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왜, 대답들이 없어?”
주군의 눈과 마주친 강시들은 눈빛들을 빛내며 대답을 했다.
“예. 알겠습니다.”
알았다고 마지못해 대답을 하는 강시들이나, 철썩 같이 대답하는 제자나 조금은 못미더운 생각이 들었다.
강시들은 알았다고 대답했으나 주인인 강현에게 위험이 닥치면 초개와 같이 몸을 날릴 강시들이었다. 어쨌거나 이젠 다른 방법이 없기에 수하들과 함께 장원을 나섰다.
강호 무림에는 각종정보를 사고파는 크고 작은 방파들이 여럿 존재했다. 최근 들어 위협적인 방파들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명실상부한 무림 최대방파는 당연히 거지들로 이루어진 개방이었다.
중원 각지에 흩어져 있는 거지들이 하남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곳 하남 분타에는 개방의 거지들이 이른 아침부터 때로 모여 있었다.
화령은 수하들과 무공 수련을 하느라 그간 본의 아니게 신세를 진 하남 분타주인 만우배에게 고마움의 말을 전했다.
“만 분타주님, 그동안 신세 많았습니다. 후일 고기와 술대접을 진하게 하겠습니다.”
소방주의 말에 반백의 거지 노인이 얼마 남지 않은 이빨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푸헐헐, 신세라뇨. 소방주님과 잠시나마 함께할 수 있어서 이 노개의 인생에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부디 큰 뜻을 이루어 개방을 빛내주시길 바랍니다.”
“네. 분타주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떠나는 소방주 일행을 거지들이 인사를 하며 배웅을 했다. 화령은 이곳에서 수하들과 수련을 하며 정도 들었기에 아쉬운 마음에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길을 나섰다.
분타를 떠난 지 오래지 않아 번화한 거리가 나왔다. 화령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변을 구경하며 걸었다.
길 양쪽에는 아름다운 비단옷과 장신구를 비롯해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와, 보기만 해도 침을 질질 흘리게 만드는 먹음직스러운 각종 음식들이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령 일행도 음식이 있는 곳을 지나칠 때면 냄새에 홀려 정신을 못 차리곤 했다.
제법 큰 객잔 앞을 지나칠 때 참기 힘든 치명적인 음식의 향기가 화령 일행의 발목을 잡았다.
“으아아, 냄새 한 번 죽인다!”
“꿀꺽, 디지게 배고픈 거.”
무탁과 우보의 식탐에 뭐라 핀잔을 주려던 보연은 그만 두었다. 자신도 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객잔의 값비싼 음식은 거지들에게 그림의 떡이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무탁이 결연한 눈빛을 보였다.
“소방주님, 제가 가서 동냥 한 번 해올까요?”
“그럴래!”
무탁의 말에 소방주 보다 먼저 중우가 침을 흘리며 답하자 객잔으로 들어가려 했다.
“어이, 거치적거리지 말고 길 좀 비켜라. 으응!”
“어어, 뭐야.”
흑의 무복을 입은 기골이 장대한 무사가 객잔 앞에서 서성이는 중우와 무탁을 밀치며 비키라고 한마디 내뱉었다.
같은 일행인 듯 보이는 다른 무사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젠장할, 점소이는 대체 뭐하는 거야! 밥맛 떨어지게 이런 떨거지들이 객잔 앞에서 지저분하게 설치는데도 말이야.”
요 근래에 무인들이 넘쳐나고, 무공을 하는 개방의 거지들도 있기에 혹시나 하며 몸 조심해온 점소이가 재빠르게 다가와 엄청 친절한 낯으로 굽실거렸다.
“에헤헤, 무사님. 저쪽에 좋은 자리가 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점소이의 숙달된 아첨에 눈살을 찌푸리며 입맛 떨어진다는 말투로 투덜거리던 무사는 뒤에 서있는 귀공자풍의 사내에게 공손히 태도를 바꿔 아뢰었다.
“공자님.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어흐음.”
무사는 중우를 밀치며 점소이의 안내로 공자를 모시고 들어갔다. 무사의 무례한 행동에 심기가 불편한 보연은 소방주인 화령에게 말했다.
“소방주님. 그만 가세요.”
“아니다. 우리도 안으로 들어가자.”
“예에, 객잔 안으로요!”
“그래.”
화령은 터벅터벅 앞서서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화령이 들어감에 나머지 거지들도 일렬로 따라 들어갔다.
때 아닌 거지들의 등장에 객잔안의 인물들은 먹던 음식들을 중단하고 일제히 입구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