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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28.……그건 사랑이에요.
작성일 : 17-11-06 18:07     조회 : 17     추천 : 0     분량 : 8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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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철수가 들어오자 제이는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철수 씨, 이제 오셨어요?"

 

 ‘말디’의 한국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철수가 집에 있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이제 같이 차를 마시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어져서 서운하긴 했지만, 일에 열중하고 있는 철수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제이는 그에게 서운함을 내비치지 않았다.

 

  "매일 밤늦게 오시더니 오늘은 저녁 먹기 전에 들어오셨네요."

 

 제이는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온 철수를 보면서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침 오늘의 저녁 메뉴를 카레로 정했는데, 카레는 철수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제이는 예상치 못한 우연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오늘 저녁은 카레에요. 옷 갈아입고 얼른 나오세요. 카레는 식으면 맛없어요."

 

 제이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주방으로 달려가서 국자로 카레를 휘저었다.

 

  "……제이."

 

  "네?"

 

  "오늘 저녁은 됐습니다. 난 저녁 먹고 왔으니까 제이 혼자 먹어요."

 

  "에이, 그러면 후회할걸요? 오늘 제가 만든 카레가 얼마나 맛있는데요. 한 입이라도 드셔 보세요."

 

  "……안 먹는다고 했잖습니까."

 

 철수의 싸늘한 목소리에 제이는 국자를 젓고 있던 동작을 멈췄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제이가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철수 씨, 혹시 어디 몸이 안 좋으세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철수는 눈에 띄게 제이를 피하며 세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차가운 그의 행동에 상처를 입은 제이는 움직이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제이는 철수의 상태가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고 느꼈다.

 

  '갑자기 철수 씨가 왜 그러지?'

 

 처음으로 아빠와의 소원했던 관계에 대해서 털어놓았을 때 철수는 오히려 따뜻하게 제이를 보듬어 주었다.

 

 그의 품에 안겼을 때 제이는 마치 따뜻한 곰 인형에 안겨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만 해도 철수 씨랑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콕 집어서 뭐가 이상한지 말할 수 없었지만, 왠지 그가 자신을 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이."

 

  "……네?"

 

  "제이도 집에서는 옷을 좀 제대로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아까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느라 더워진 제이는 평소보다 훨씬 짧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아."

 

 민망해진 제이는 자신의 다리를 교차시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고는 집에서 노출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할 말이 없어진 제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제이도 같이 사는 나를 배려해서 조금 신경 썼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인 제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저기, 철수 씨."

 

 철수가 방으로 들어가기 전 제이는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나중에 뭔가 드시고 싶으신 게 있으시면 저한테 얘기해주세요.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제이가 오랜 고민 끝에 던진 말이었다.

 

 조금 멀어진 그와의 사이를 조금이나마 좁혀보기 위한 시도였다.

 

 왜 그가 자신을 피하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고 싶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

 

  "앞으론 저녁은 제이 혼자 먹어요."

 

 쾅.

 

 냉정하게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철수를 보고 제이는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야옹."

 

 밑을 내려다보니 노랑이가 제이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면서 그녀를 위로했다.

 

 제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노랑이를 품 안에 안았다.

 

  "……괜찮아, 노랑아.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노랑이를 끌어안고 쓰다듬은 제이의 표정은 침울하고 우울해 보였다.

 

 

 

 ***

 

 

 

 철수의 요구에 닥터 리는 경악하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그릴 바라봤다.

 

  "더 강한 약을 처방해 달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닥터 리의 표정을 살피던 철수가 고개를 돌려 매서운 주치의의 시선을 피했다.

 

  "……흠."

 

 닥터 리는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짚고 신음을 내뱉었다.

 

  "이 선생님. 저도 무리한 요구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아시면서 왜 더 강한 약을 요구하시는 겁니까."

 

  "……."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던 철수는 한 손으로 미간을 만지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닥터 리가 처방해주신 약이 ……이제 잘 듣지 않습니다."

 

  "핑크색 알약 말씀하시는 거 맞으시죠?"

 

  "네. 그래요. 핑크색 알약."

 

  "……."

 

  "……발작 증상이 왔을 때 그걸 먹었는데도 쉽게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

 

  "아무래도 약이 너무 약한 것 같으니 조금 더 성분이 강한……."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살짝 머리에 열이 오른 듯 닥터리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팔짱을 끼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닥터 리는 사뭇 심각한 표정이었다.

 

  "조금 더 강한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 약속도 없이 불쑥 저를 찾아오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우뚝.

 

 부산스럽게 철수의 주변을 서성이던 닥터 리가 걸음을 멈췄다.

 

 철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저도 모르게 입안이 바짝 말랐다.

 

  "죄송하지만 저는 대표님에게 더 강한 공황 장애약을 처방해 드릴 수 없습니다."

 

 닥터 리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철수는 저도 모르게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이 선생님."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없습니다. 여기서 더 강한 약을 처방받게 되면 대표님의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생길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보다 더요?"

 

  "네, 그럼요.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이 안 좋아지실 겁니다."

 

 닥터 리의 차가운 목소리에 철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제가 여기에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잠깐만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제가 의사로서 드리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요. 강 대표남!"

 

 닥터 리의 부름에 철수가 우뚝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래도 상담시간 1시간은 채우고 가셔야 합니다. 강 대표님 부탁 때문에 제가 약속을 취소하고 마련한 자리입니다."

 

 등을 돌리고 있던 철수가 닥터 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은 괴로움으로 잔뜩 일그러져있었다.

 

  "이 선생님은 공황 장애 증세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건지 모르시는군요."

 

  "……."

 

  "정말로 심장이 찢어나갈 듯하고 당장이라고 죽음이 엄습해오는 그 기분을 이 선생님이 아십니까?"

 

  "물론 저는 모릅니다."

 

  "……."

 

  "하지만 대표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럼 새로운 약을 처방해 주세요."

 

  "그건 안 됩니다."

 

  "이 선생님!"

 

 철수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면서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닥터 리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뜰뿐이었다.

 

  "……여기서 더 강한 약을 먹으면 대표님이 죽을 수도 있어요."

 

  "……,"

 

 저벅저벅.

 

 닥터 리는 철수와 마주 보고 있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여기 와서 솔직히 저에게 전부 다 털어놓아 보세요. 왜 더 강한 약을 처방받고 싶어하는 건지, 언제부터 발작 증세가 심해졌는지."

 

  "……."

 

  "앞으로 남은 시각은 20분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에요. 솔직하게 저한테 모든 것을 털어놓으면 금방 시간이 지나갈 겁니다."

 

 닥터 리가 가만히 자신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자, 출입문 앞까지 나섰던 철수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자아, 그럼 다시 시작해 보도록 하시죠."

 

 들뜬 한숨을 내쉬던 철수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니까 제가 제 은인이었던 선생님의 딸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속으로 어렴풋이 '윤 제이'라는 여성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닥터 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제 정신건강에 훨씬 좋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닥터 리는 경청하고 있다는 듯이 다시 한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모르겠지만 그녀와 함께 있을 때 공황 발작 증상이 더욱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귀가 솔깃해진 닥터 리는 조금 더 앞으로 몸을 당겼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그녀와 함께 있을 때만 공황 발작 증세가 심해진다는 것입니까?"

 

  "……항상 그렇진 않습니다."

 

  "그럼 언제요?"

 

  "그냥 가끔 그녀와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나, 그녀와 밀폐된 공간에 함께 있는 다거나 그럴 때 갑자기 심장이 쿵쾅대면서 토기가 올려옵니다."

 

  "……."

 

  "그리고 또 이상하게도 그녀가 늦게까지 집에 오지 않거나 연락이 되지 않으면 심각하게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빙빙 도는 기분입니다."

 

 철수의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닥터 리가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대표님."

 

 철수가 고개를 들어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제이 씨를 볼 때 드는 감정은 어떻습니까? 아주 상세하고 자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냥 귀엽죠."

 

  "그리고요?"

 

  "같이 있으면 재밌고 즐겁고. 가끔 제 건강을 생각해서 영국식 홍차 같은걸 끓여주기도 하는데 전 사실 커피는 좋아하지만 차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그래도 제이랑 같이 먹는 건 맛있더라고요."

 

 닥터 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철수의 표정을 응시하며 말했다.

 

  "제이 씨에 대한 감정을 물으니까 많이 혼란스러워 보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조금 머리가 아프네요."

 

 철수가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집자 닥터 리가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이 풀린 듯 철수는 입가로 따뜻한 커피가 남긴 커피잔을 가져갔다.

 

  "대표님."

 

  "……."

 

  "대표님이 제이 씨한테 가지는 감정은 간단하게 말해서."

 

  "……."

 

  "……그건 사랑이에요.”

 

 충격을 받은 듯 철수가 멈칫하고 동작을 멈첬지만, 닥터 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철수 씨가 그녀에 대한 감정을 부정하는 건, 혹시나 예전에 있었던 사건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이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뇨. 그건 분명히 사랑이에요."

 

 닥터 리는 꽉 조이고 있던 머리끈을 푸르고 다시 묶으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 전 여자친구와 있었던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대표님은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을 무척 두려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

 

  "그러므로 제이에 대한 사랑을 느낄 때마다 공황 장애 증상이 더욱더 심화 되는 것입니다.”

 

  "그럼 제이가 멀어질 때마다 발작 증세가 심해지는 이유는요?"

 

  "당연히 사랑하기 때문이죠."

 

 닥터 리의 간단명료한 대답에 속마음이 들킨 듯 철수는 살포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제이 씨를 사랑하니까 멀어지는 것이 무서우면서 두렵겠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의 전 여자친구와 있었던 사건 때문에 제이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발작 증상이 심해지는 데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철수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닥터 리는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독일에서 여자 친구와 납치된 그 날, 대표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으십니까?"

 

 

 

 ***

 

 

 

 집으로 들어서기 전 철수는 대문 앞에 서서 잠시 들어가는 것을 망설였다.

 

  ㅡ 대표님이 제이 씨한테 가지는 감정은 간단하게 말해서 사랑이에요.

 

 오늘 했던 닥터 리와의 상담을 떠올린 철수의 입가에 비소가 걸렸다.

 

  '사랑? 사랑이라고? ……정말 말도 안 되는군.'

 

 바쁜 시간을 쪼개서 닥터 리의 상담실로 찾아갔건만 결국 별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온 철수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아무래도 다른 정신과 의사를 알아봐야겠어.'

 

 닥터 리도 훌륭한 정신과 의사였지만 철수는 그녀가 자신의 주치의답게 그가 원하는 처방을 내려주길 원했다.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 상담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철수는 상담보다 좀 더 강한 약을 원했다.

 

 철수는 닥터 리가 마지막에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ㅡ 독일에서 여자 친구와 납치된 그 날, 대표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으십니까?

 

 그걸 닥터 리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철수는 그날 밤 그곳에서 빠져나오면서 모든 것을 가슴에 묻어두기로 맹세했으니까.

 

 그러니까 닥터 리에게도 그 날의 끔찍했던 일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삐.

 

 손가락 지문을 대고 안으로 들어간 철수는 고소한 된장찌개 냄새를 맡았다.

 

  "철수 씨, 오셨어요?"

 

  "……아, 그래요. 제이."

 

 닥터 리가 자신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인지 철수는 괜히 그녀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오늘도 저녁은 안 드실 건가요?"

 

  "네, 밖에서 먹고 왔습니다."

 

 제이의 질문에 짧게 대답한 철수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 데 그녀가 철수를 다시 불렀다.

 

  "철수 씨."

 

 제이가 자신에게 내민 것은 카모마일 차가 담긴 상자였다.

 

  "요즘 철수 씨가 밤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시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준비했어요. 불면증에 좋은 차예요."

 

 가만히 제이의 손에 들린 차를 바라보고 있던 철수가 손을 내밀어 상자를 받았다.

 

  "……고맙습니다."

 

  "저, 정말요?"

 

 제이는 환하게 표정을 밝히면서 좋아했다.

 

  "사실 저는 철수 씨가 차는 안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사면서도 괜히 샀나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카모마일 차는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네요."

 

 자신이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뛸 듯이 기뻐하는 제이를 철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이 여자를 내가 ……사랑한다고?

 

 제이한테 드는 지금 내 감정이 사랑이라고?

 

  '아냐, 이건 사랑일 리가 없어.'

 철수는 다시 냉정하고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다음에는 이런 거 챙겨주지 말아요. 제이도 요즘 바쁘잖아요. 제이가 하는 일이나 신경 쓰세요."

 

 냉정하게 몸을 돌린 철수의 등 뒤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흐윽!"

 

 뒤를 돌아보니 제이의 두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고 있었다.

 

  "……제이!"

 

 자신이 크게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철수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제이는 장례식장에서 처음 봤던 그 날보다 훨씬 더 서럽게 펑펑 눈물을 쏟고 있었다.

 

 철수는 살며시 제이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철수 씨, 제발 제 질문에 하나만 대답해 주세요. ……흑1"

 

 제이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철수는 당황한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제가 철수 씨 기분 나쁘게 한 거 있나요?"

 

  "……제이."

 

 끝까지 철수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가슴이 아픈 듯 인상을 섰다.

 

 제이는 강해보이지만 아직 약하고 어린 여자였다.

 

  "제가 뭔가 잘못한 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얼마든지 고칠게요."

 

  "제이, 그런 거 아니예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러지 말아요. 제이는 아무 문제 없어요."

 

 자신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제이를 보자 철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목구멍이 콱 막혀서 더 말문을 열지 못했던 철수가 그녀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그냥 요즘 내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제이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에요."

 

  "……흐윽."

 

  "울지 말아요. 제이는 아무 문제 없어요."

 

 그동안 쌓인 응어리를 풀어내듯이 눈물을 쏟아내는 제이를 품에 안고 철수는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계속 제이의 등을 토닥거렸다.

 

 

 

 ***

 

 

 

  "어머, 어떡해. 눈이 완전히 부었잖아."

 

 실컷 울고 나서 속은 시원했지만, 다음날 일어나니 눈꺼풀이 잔뜩 부어서 그야말로 처참할 지경이었다.

 

  "……흐응, 어떡해."

 

 제이는 거울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렇게까지 서럽게 울었을까 싶지만, 가끔 눈물을 흘리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밖으로 나가지."

 

 철수의 아침을 차려주기 위해 일찍 일어났는 데, 퉁퉁 부은 눈꺼풀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고민하던 제이는 결국 저번에 사용했던 선글라스를 다시 꺼내 들었다.

 

  "철수 씨, 일어나셨어요?"

 

 제이는 미니 오픈으로 따뜻하게 데운 블루베리 베이글에 바닐라 크림치즈를 듬뿍 바르면서 철수를 인사했다.

 

  "……그게 뭡니까?"

 

  "베이글이에요. 커피랑 같이 먹으면 얼마나 든든한데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철수가 손가락으로 그의 콧등을 살짝 두드렸다.

 

  "아, 선글라스요? 그게……."

 

 제이는 난처한 듯 말끝을 흐리면서 블루베리 베이글을 반으로 잘랐다.

 

 깨끗하게 잘린 블루베리 베이글 사이로 균일하게 발라진 바닐라 크림치즈가 보였다.

 

  "사실 눈이 많이 부었거든요. 그래서 급한 대로 선글라스 낀 거예요."

  "어디 봐봐요."

 

 철수가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 돼요."

 

  "귀여울 것 같은데. 한 번만 보여주면 안 됩니까?"

 

  "아, ……안 된다니까요."

 

 제이는 얼른 철수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까이 다가온 철수가 그녀의 양 손목을 붙잡고 지그시 눈을 마주쳤다.

 

  "아, 정말 철수 씨 왜 이러세요."

 

  "귀여운데요?"

 

  "……네?"

 

 황당해하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피식 웃으면서 잡고 있던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이거 잘 먹을게요."

 

 철수는 제이가 만든 베이글과 커피를 손에 들고 눈인사했다.

 

  "네, 잘 가요. 철수 씨."

 

 살짝 미소를 머금은 철수가 나가마자 제이는 얼른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살폈다.

 

  "……귀엽다고?"

 

 거울을 보니 자신의 눈꺼풀은 여지없이 퉁퉁 부어 있었다.

 

  "……치, 거짓말쟁이."

 

 하지만 제이의 입가에는 은은한 웃음이 떠올랐다.

 

 아직도 철수는 예전처럼 자신과 함께 저녁을 먹거나 차를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이는 철수를 기다리기로 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수에게는 자신을 피하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철수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으면 그가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줄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때까지 기다리자."

 

 제이가 청소기를 꺼내자 노랑이가 얼른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노랑아, 미안해. 하지만 청소기는 꼭 하루에 한 번씩 돌려야 해."

 

 제이는 청소기를 돌리고 여기저기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먼지떨이로 철수의 책상 위의 먼지를 쓸어내리던 와중에 제이는 실수로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약통 툭 건드렸다.

 

  "어머, 어떡해!"

 

 약통이 떨어지면서 핑크색의 알약이 우수수 떨어졌다. 제이는 황급히 약통에 약을 다시 주워 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약이지?'

 

 제이는 약통 뒤에 쓰여있는 이름을 살펴보았다.

 

  "다이아제팜(diazepam)……?"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알약의 이름에 제이의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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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그건 사랑이에요. 2017 / 11 / 6 18 0 8686   
27 27.강 레옹과 윤 마틸다 2017 / 11 / 6 17 0 8600   
26 26.보고만 있어도 좋은 사이 2017 / 11 / 6 14 0 8195   
25 25.두 사람 신혼부부죠? 2017 / 11 / 6 17 0 8649   
24 24.‘표적’이라 불리는 사나이 2017 / 11 / 6 14 0 8410   
23 23.그럼 나랑 사귈래요? 2017 / 11 / 6 19 0 7797   
22 22.만나서 뭐했습니까? 2017 / 11 / 6 16 0 8274   
21 21.연애하는 기분 2017 / 11 / 6 20 0 8500   
20 20.우리 이제 같이 살아요 2017 / 11 / 6 15 0 8426   
19 19.동거와 홈 셰어의 미묘한 차이 2017 / 11 / 6 19 0 8169   
18 18.아침형 인간 vs 올빼미형 인간 2017 / 11 / 6 18 0 8480   
17 17,다시 만난 철수 2017 / 11 / 6 15 0 8328   
16 16.그녀와 잘 어울리는 집 2017 / 11 / 6 14 0 8622   
15 15.인류애가 넘치는 남자 2017 / 11 / 2 20 0 7889   
14 14.난 독일로 돌아갑니다 2017 / 11 / 1 19 0 8558   
13 13.발송인불명 편지 2017 / 11 / 1 24 0 8661   
12 12.눈을 뗄 수 없는 여자 2017 / 11 / 1 13 0 7755   
11 11.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당신 2017 / 11 / 1 19 0 8472   
10 10.당신이 내 곁에 없다면 2017 / 10 / 31 20 0 8112   
9 9.혹시 나 좋아해요? 2017 / 10 / 31 19 0 8653   
8 8.불안한 사각관계 2017 / 10 / 31 13 0 8381   
7 7.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것 2017 / 10 / 31 20 0 8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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