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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회상 - 환각일뿐이야!
작성일 : 17-07-19 16:44     조회 : 21     추천 : 0     분량 : 5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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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침실로 들어오는 두 쌍의 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쌍은 독수리인장이 장식된 검은 구두.

 

 한 쌍은 치맛자락 속에 모습을 감췄다 드러냈다하더니 가까이 오지 않고 침실 입구에서 멈췄다.

 

 

 “분노로 달궈진 심장은 섬세함을 잃게 되지.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날아든 독침을 맞고도 못느끼니 말야.”

 

 

 부드러운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말이 맞지? 결국 여자들이 나서야 한다니까. 안 그래 세라? 다들 미하루라고 했지만 내 눈엔 딱 너였거든. 공작이 머리를 잘 썼지. 네게 아론을 가르치라고 한 것 말야. 아론이 아직 어려서 자각 못했던 거지. 이번기회에 확실해 질 테니 두고 봐.”

 

 

 부드러운 목소리의 여자가 안타까운 듯 읊조렸다. 중년의 나이에 어울리는 기품과 여유가 성숙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했다.

 

 

 “자, 세라 이제 어떻게 할래? 이제부턴 전부 네 손에 달렸는데.”

 

 

 아론의 옆에 앉아 있던 세라가 천천히 일어났다. 아론은 세라의 치맛자락을 잡았지만 너무나도 쉽게 손안에서 미끄러져 나가 버리는 바람에 고통 중에 허탈함마저 느꼈다.

 

 세라가 남자 앞에 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아론은 희미하게 보이는 장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라가 왜 목숨을 구걸하는 걸까?

 

 그녀라면 목숨보다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했다.

 

 

 “하……지마.”

 

 

 아론의 신음소리에 섞인 말에 세라가 이쪽을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머리를 숙였다.

 

 남자가 상체를 숙이자 그의 얼굴이 들어왔다. 역시 황제였다.

 

 황제가 손등을 내밀자 세라가 황제의 손가락에 낀 반지에 키스를 했다.

 

 아론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이 모두 일그러진 채 조각조각 인식이 되어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세라가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제가 세라의 턱을 들더니 천천히 얼굴을 그녀 위로 내렸다.

 

 

 안 돼! 싫어! 세라, 그를 밀쳐버려!!!

 

 

 둘의 입맞춤을 보고 있는 분노로 일그러진 푸른 눈동자.

 

 붉어진 혈관들이 금세라도 터지고 말 것처럼 팽창되고 있었다.

 

 계속되는 뜨거운 전류의 흐름이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한계점에 다다른 아론은 정신을 잃었다.

 

 

 “리딕이 아론을 이겼다면 오늘 파갈 가문은 끝장이 났겠지만, 아론이 이겼으니 파갈가문에게 시간을 벌어줬군.”

 

 

 황제가 입술을 떼며 말했다.

 

 

 “리딕이 이기든 아론이 이기든 결국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꿔 버리면 그만이지. 그게 황족의 특권이란다.”

 

 

 뒤에 서 있는 여자가 말했다.

 

 

 “화족남자를 남편으로 둔 선배로서 조언하지. 쓸데없이 풀어주려 하지 마. 그럴수록 그들은 더 괴로워 해. 그냥 여자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겐 유일한 기쁨이니까.”

 

 

 황제와 닮은 흑단 같은 머리카락의 여자는 손목에 걸고 있는 비단 주머니를 들어 보였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순순히 해독제를 넘긴다면 너무 시시해지지. 이건 억제제일 뿐이란다. 맹독이 목숨을 빼앗지 않도록 그저 진정시켜줄 뿐이지. 억제제라 해도 부작용까지는 막아주지 못해."

 

 

 그녀의 회색 눈은 곱게 휘어 있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환각과 고열에 시달리게 될거야. 설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뜻이지."

 

 

 그것을 세라에게 건넸다

 

 

 “이제부턴 우리, 같은 배에 탄 거네.”

 

 

 황제의 큰 누나이자, 리딕의 부인이 말했다.

 

 세라는 주머니를 손에 꼭 쥐고 일어서 아론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앉아 주머니를 열어 작은 약병을 열었다.

 

 그것을 아론의 입에 가까이 대고 기울였다. 살짝 벌려진 입술사이로 또로록 검은 액체가 굴러 들어갔다.

 

 이제껏 맡아봤던 어떤 독보다 쓰디쓴 향이 퍼져 나왔다.

 

 

 

 

 **

 

 

 

 

 괴물이 되어 리딕을 난도질하고 세라의 목을 조르는 악몽에 놀라 아론은 눈을 떴다.

 

 두통이 극심했다. 도로 눈을 감고 신음 소리를 삼켰다.

 

 한참 후에 고통이 물러가고 다시 눈꺼풀을 올렸다.

 

 낮선 침실의 풍경이 점차 선명해져 왔다. 그에 따라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고급스런 벽지와 가구들.

 

 

 “아직 황성안이야. 네가 깨어나는 대로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어.”

 

 

 차갑고 냉소적인 그 목소리가 이처럼 반갑게 파고든 적이 없었다. 아론은 소리 나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의자에 세라가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빛이 닿지 않아 어깨 위로 짙게 그늘이 져 있었다.

 

 

 “마차를 준비시켜야겠군. 파갈성으로 돌아가야지.”

 

 

 마치 별일 아닌 방문을 마치고 파갈성으로 돌아가자는 단조로운 투였다. 납치를 당했던 여자의 심정이 저리도 담담할 수 있을지 아론은 잠시 의문이 들었다.

 

 세라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이 한 마디로 그 모든 것을 대신하기로 했다.

 

 

 “괜찮으십니까?”

 

 

 대답이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아론의 푸른 눈동자가 무겁게 짙어져 갈 무렵 세라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

 

 

 아론은 세라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늘 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마차 안에서 세라는 자꾸만 벌어지는 겉옷의 깃을 여몄다. 급기야 머리에서 핀을 빼더니 외투 앞섶을 여미고 단단히 고정시켰다.

 

 처음엔 추워서 그러나 싶었다.

 

 하지만 아론에게서 나는 고열로 마차 안은 후끈거렸다. 세라의 이마에서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파갈성까지 절반 거리쯤 왔을 때 마차가 섰다. 마부에게 마차 삯을 선불로 후하가 치렸는데도 길이 험하다고 돈을 추가로 요구했다.

 

 

 “이보게, 지금은 수중에 돈이 없으니 성에 도착하면 값을 후하게 치르겠네.”

 

 "선불 아니면 움직일 수 없지만, 저희도 먹고 살아야 하니 이해해주시고 약속 지켜주십시오. 마차가 많이 상했을까 싶어 그러는 것이니까요.”

 

 “알겠네.”

 

 

 세라는 마부가 엄살을 부리는 것을 알면서도 조용히 순응했다. 딱 봐도 환자 같은, 식은땀으로 범벅인 아론과 귀족 티가 나는 세라는 만만한 고객이 돼버린 것이다.

 

 마부가 문을 닫았다.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던 아론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가 문을 거칠게 밀쳐 열더니 세라가 손쓰기도 전에 마차 밖으로 나갔다.

 

 

 “아론!”

 

 

 불안한 기운이 그녀를 감쌌다. 세라는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몸을 빨리 일으켜야 하는데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아론이 제정신이 아닌 지난 며칠동안의 공포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가까스로 마차 밖으로 나와 두려운 눈빛으로 아론을 찾아 움직였다.

 

 

 “이봐요 뭐 하는 거요? 대체 왜이래요?”

 

 

 마부가 화를 내고 있었다.

 

 

 “그만두지 못해요!”

 

 

 아론이 마차에 연결된 말들을 풀며,

 

 

 “마차가 상하는 게 싫다고 했잖아!”

 

 

 말리려던 마부를 아론이 성가신 듯 팔꿈치로 툭, 얼굴을 치니 그대로 쓰러졌다.

 

 그저 가볍게 쳤을 뿐인데 나무통처럼 그렇게 넘어갔다.

 

 세라가 서둘러 마부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기절한 상태였다.

 

 

 “……아론.”

 

 

 말 두 마리 사이에 서서 아론이 세라를 돌아 봤다.

 

 

 “말 타고 가죠. 찜통 같은 마차 안 보다 나을 것 같은데.”

 

 

 천사같은 온순한 제자에게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칠고 난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부의 상태를 한 번 더 살핀 후 세라는 몸을 일으켰다. 아론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가 무섭게 느껴져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바짝 다가 온 아론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목으로 내려왔다. 파란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제야 세라는 자신의 목을 더듬어 보았다. 옷깃은 벌어진 채 꽂아 둔 핀이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세라는 뭐라고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말 대신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나왔다.

 

 아론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뭔가 보고 있는 듯 눈동자가 움직였다.

 

 

 “제가……그런 겁니까?”

 

 

 세라는 아론이 그녀의 목을 조였던 공포가 다시금 밀려와 온 몸이 얼어버렸다.

 

 그는 휘청거리며 뒤돌아섰다.

 

 

 “꿈인 줄 알았는데…….”

 

 

 좌절감이 그의 온 몸을 짓눌러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땅 속에 박혀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아론은 갑작스레 온 몸이 뻐근해짐을 느꼈다. 말에게 닿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거미줄에 걸린 듯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을 부르는 세라의 울부짖음이 수중 속에서 듣는 것처럼 선명치가 않았다. 심장부근에서 느껴지는 타들어 가는 통증에 고개를 숙였다.

 

 굵은 침이 박혀들어 가 있었다.

 

 침들 빼려고 손을 갖다 대었으나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허상이었다.

 

 몸을 돌려 세라를 봤다.

 

 어느 새 나타난 황제와 들러붙어 농염한 키스를 나누며 보란 듯이 그를 비웃고 있는 그녀.

 

 

 “세라!”

 

 

 아론은 머리를 저었다.

 

 

 “분노로 달궈진 심장은 섬세함을 잃게 되지.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날아든 독침을 맞고도 못느끼니 말야.”

 

 

 황제를 닮은 검은 머리 여인이 아론의 뒤에서 귀가에 속삭였다.

 

 아론은 그 여자의 목덜미를 잡고 자신에게서 떼어냈다.

 

 

 “저리 떨어지지 못해!”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헐떡였다.

 

 

 “아, 아론. 흐윽 헉! 아론. 나……야. 세……라.”

 

 

 그 소리에 검은 머리 여자 얼굴이 순식간에 세라로 바뀌고, 아론은 경악하며 손을 곧바로 떼었다.

 

 세라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느라 헐떡이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내가…… 세라의 목을.

 

 뒷걸음질 치는 그를 본 세라가, 달려와 그를 붙잡았다.

 

 아론은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며 말고삐를 잡으려고 뻗었으나 헛손질만 되풀이 했다. 고삐가 여러 가닥으로 보였다.

 

 

 “아론, 이대로 가면 안 돼.”

 

 

 아론은 대답하지 않고 고삐를 잡기 위해 계속 말에게 다가섰다. 결국 겁에 질린 말은 묶여 있지 않았기에 숲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환각일 뿐이야. 아론, 제발 진정해!"

 

 

 아론은 이리 저리 주변을 살피더니 강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세라가 그의 팔을 두 손으로 잡았으나 그의 거센 뿌리침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비명소리에 잠깐 멈칫하고 뒤 돌아보았다.

 

 검은 머리여자가 요염한 자세로 앉아 조롱하듯 비웃고 있었다.

 

 달려가 다시 한 번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아론은 그 충동을 간신히 붙잡고 주저 없이 강물 속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가더라도 치료하고 떠나. 이렇게 가면 안 돼!”

 

 

 세라는 울먹였다.

 

 아론은 멈출 수 없었다. 언제 또다시 그녀의 목을, 조르게 될지 모르니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고통 중에 자신을 잃고 그녀에게 한 짓이 혐오스러웠다.

 

 세라는 수영을 못한다.

 

 그가 이 강을 건너도 그녀는 건너지 못할 것이다. 그가 건너편까지 도달하지 못한대도 그녀는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펄펄 끓는 용암 같은 그의 몸은 차디찬 겨울 강물이 그저 반가울 따름이었다.

 

 잔잔히 흐르는 거대한 강의 중심을 향해 움직였다. 머리를 잠그지 않고 강물의 흐름에 맞췄다.

 

 어느 순간 적막이 강물처럼 그를 감싸고, 고통도 사그라들고 평온이 찾아왔다.

 

 물의 흐름대로 내맡겼다.

 

 갈등에서 해방되고 있었다.

 

 그녀를 향한 뒤엉킨 감정들 사이에서 마침내 안식을 찾은 듯 정신이 맑아졌다.

 

 

 이렇듯 물 흐르듯 편안히……살고 싶을 뿐.

 

 나를 혼란케 하는 고통을 거부한다.

 

 과도한 기쁨도 지나친 슬픔도 거부한다.

 

 이리저리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바람처럼 가볍게.

 

 언제든지 훌훌 털고 떠나버려도 미련 없이 어디서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삶을 꿈꾼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내 안에 평안이 깃 든다면 그것을 택하고 싶다.

 

 세라…….

 

 너라는 여자는 내게 그러한 것들을 줄 수 없는 존재야.

 

 아무래도…… 넌 위험한 존재야.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끔찍한 것들을 자꾸 흔들어대는 너.

 

 평온을 깨뜨리는……널 거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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