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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영주의 퇴폐미
작성일 : 17-07-18 15:39     조회 : 18     추천 : 0     분량 : 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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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할리부인과 몇몇 사람들이 허겁지겁 세라에게 갔다.

 

 문 앞에서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 영주가 있는 동안은 누구도 그의 방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세라가 방에서 나오지 않은 지 5일째였다.

 

 할리도 일가친척 가운데 파갈가문 때문에 목숨을 잃은 자들이 열 한명이나 있었다.

 

 주어진 직무를 다해야 하는 소임을 빼면 세라를 위해 특별히 신경 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굶주림을 못 견디면 어쩔 수 없이 기어 나오려니 하며 신경 쓰지 않았는데, 영주가 느닷없이 돌아와 할리는 무척 난감했다.

 

 세라를 그대로 두자니, 영주의 현 상태를 감안하면 그녀의 목숨이 위험 할 상황이었다.

 

 약을 주입한 직후의 영주 상태는 평소보다 더 치명적이다. 걸리적거리거나 불편하면 그냥 그의 방식대로 간단하게 치워버렸다.

 

 그의 손끝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날카로운 손톱에 살이 베이고 독이 들어와 고통이 수반 된다.

 

 그와 가까이 있다가 그의 피나 땀, 타액이 닿게 되어도 포진이 일어나며 작열감을 동반한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롭게 만들었다.

 

 

 “할리, 어쩌죠? 허락 없이 들어갔다가 우리까지……아우, 저는 못 들어가요.”

 

 

 모두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그래도 오늘 와 보려던 참이었는데, 젠장!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할리부인은 심호흡을 한 후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차하면 줄행랑을 칠 요량으로 문은 열어두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평소보다 몇 배 짙은 독향이 훅 들어와 숨을 참았다.

 

 세라가 침대 밑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자신의 입을 막아 소리가 세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영주는 침대 한 가운데 大자로 뻗어 잠이 든 듯 조용했다.

 

 할리부인은 세라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맥을 확인했다. 희미하게 뛰고 있는 맥이 조만간 멈춰버릴 것 같았다.

 

 그녀를 들쳐 업고 침실을 벗어나려는 순간,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영주의 발! 기겁을 하고는 뒤로 자빠졌다. 그 바람에 세라는 또 한 번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할리, 내 방에서 멀 훔쳐가는 거야?”

 

 “영주님, 아닙니다. 훔치다니요.”

 

 

 할리는 납작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훔치려던 게 아니면 왜 그리 놀라?”

 

 “새, 새로운 하사품이 5일 동안 먹지 않고 고, 고집을 피워 목숨이 위험해서 데리고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5일?”

 

 “네.”

 

 

 할리는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도 할 말을 해내었다.

 

 

 “영주님, 저 여자가 저리 빨리 죽어버리면 황제가 무슨 트집을 잡을지…….”

 

 

 영주가 물끄러미 의식을 잃고 있는 세라를 응시했다.

 

 할리는 떨리는 자신의 손을 주먹 쥐었다.

 

 영주가 한쪽 무릎을 꿇어 앉아 얼굴 위로 드리워진 그녀의 붉은 머리를 거두었다.

 

 그림을 감상하듯 표정 없이 한참이나 그렇게 내려다보았다. 세라의 눈두덩이와 볼이 꺼져 있고 입술이 말라 있었다.

 

 영주가 그녀의 목 동맥을 짚어 본 후,

 

 

 “고작 이렇게 끝내려고 그 난리를 치게 해?”

 

 

 그녀의 턱선을 따라 쓰다듬다가 턱을 지그시 눌러 입술을 벌렸다. 영주의 손끝을 따라 그녀의 턱에 붉은 자국이 도드라지게 올라왔다.

 

 할리는 그 자국들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마지막 인사는 해야지.”

 

 

 그의 입술이 내려와 세라의 입술을 덮었다.

 

 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긴 입맞춤이었다. 치명적인 입맞춤이었다.

 

 이 방에 들어 온 하사품들 중에 가장 빨리 치워지는 기록으로 남겠군.

 

 막상 눈앞에서 세라의 마지막을 보게 되어 죄책감이 들었다.

 

 물론 자신이 직접적으로 세라를 죽음으로 내민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사상태까지 이를 만큼 독하게 군 세라. 이 방만에도 욕실로 가면 얼마든지 물을 마실 수 있었다. 탁자 위에 말린 과일과 육포도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영주. 희미하나마 남아 있는 생명을 치명적인 독에 절은 타액으로 끊어버리는 영주가 책임을 져야했다.

 

 그렇다 해도……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할리…….”

 

 

 나른한 목소리가 매혹적으로 들여왔다.

 

 할리부인이 바닥에 닿아있던 고개를 살짝 들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영주가 소파로 가더니 늘어지게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남 목숨 걱정할 처지야 지금?”

 

 “…….”

 

 

 할리부인은 다시 고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눈을 감았다. 그녀의 얼굴에 스쳐간 죄책감이 들통 났다.

 

 

 “할리.”

 

 

 녹아내릴 듯 감미롭게 그녀를 불렀다.

 

 

 “너도 여자잖아.”

 

 

 할리는 마른 침을 삼켰다.

 

 

 “날 만지고 싶지?”

 

 

 영주는 천천히 상의 버클들을 위에서부터 차례로 풀기 시작했다.

 

 영주의 단단한 근육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할리는 카라스 성에 온지 15년이 넘었지만 영주의 유혹을 받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지금껏 조심하고 또 조심한 것도 있었지만 남자보다 더 남자 같은 우악스런 그녀한테까지 이런 일이 오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영주의 치명적인 유혹이 할리만은 피해 갈 것이라고 성 사람들이 그토록 장담했건만 잘 못된 예단이었다.

 

 정신이 말짱할 때 도망쳐야 할 텐데, 번개처럼 빠른 영주의 움직임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었다.

 

 

 “할리. 날 봐야지.”

 

 

 명령대로 할리는 눈을 들어야했다.

 

 고개를 든 할리는 숨이 막혔다. 소파에 머리를 기댄 챈 내려 보는 검은 눈동자가 분명 삿된 것인데도 지독히 쓸쓸하고 애잔했다.

 

 주변의 검은 색에 대비하여 눈처럼 깨끗하게 보이는 피부를 어루만져 보고 싶었다.

 

 흰 대리석처럼 단단하고 매끄러운 살결에 할리의 눈이 고정 되자, 영주는 천천히 벌어진 상의를 젖혀 매혹적인 어깨를 드러내었다.

 

 수평으로 뻗은 쇄골과 유려한 승모근, 목을 타고 흐르는 불거진 혈관들이 불세출의 조각처럼 완벽했다.

 

 

 “오, 세상에.”

 

 

 할리는 숨 쉬기 고통스러운지 가슴을 주먹으로 두 번 두드렸다.

 

 

 “……카라스 영주님.”

 

 “가까이 와봐.”

 

 

 할리는 홀린 듯 무릎으로 기어 영주에게 다가갔다. 커다란 충견처럼 그의 무릎 사이로 들어 온 할리는 영주의 유혹에 이대로 넘어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할리, 크크크크.”

 

 

 영주가 소리를 삼키며 웃자 그의 복근들이 움찔거렸다.

 

 그가 할리의 푸석한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는 파르르 눈꺼풀을 떨었다.

 

 

 “하룻밤 사이에 내 방에서 두 명이나 죽어 나간 적 있던가?”

 

 

 할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기억으론 없었다. 그도 고개를 저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할리의 이마를 가볍게 쓰윽 가로로 훑고 지나갔다.

 

 데인 것처럼 붉은 자국이 선명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할리, 내 다리 사이에서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꺼져.”

 

 

 영주의 표정이 냉랭하게 변했다.

 

 

 “이건 특별 하사품을 제대로 관리 못한 벌이다.”

 

 

 그가 할리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할리는 열화가 서서히 이마에서 느껴지기 시작하자 기겁을 하고 영주에게서 물러났다.

 

 이마에 손을 대지도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더니 휘청거리며 방을 뛰쳐나갔다.

 

 밖에서 몰래 지켜보던 사람들도 할리를 뒤따라 서둘러 사라졌다.

 

 영주는 잠시 그대로 앉아 있다가 침대로 가 누웠다.

 

 독이 완전히 스며든 이 상태가 어찌나 편안한지.

 

 금단현상과 거부반응 후에 존재하는 평온이었다. 이 이상 바랄게 없었다.

 

 악몽 같은 기억들도 이 순간만큼은 그를 괴롭히지 못했다.

 

 그의 정신은 지긋지긋한 기억들과 질척대는 감정들을 버리고 진공상태로 들어서 가뿐하게 공간을 유영하고 있었다.

 

 

 

 *

 

 

 

 “특별 하사품이 어제 죽었다며?”

 

 “네에?”

 

 

 바네사는 하마터면 식판이 기울어져 양배추스프를 흘릴 뻔 했다. 동료 하녀들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네사는 집에 가 있어서 모르겠네. 어제 오후에 영주님이 오셨잖아.”

 

 “영주님 유혹에 넘어 갔나 보군요.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

 

 

 울상이 된 바네사는 입맛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귀족출신 노예였다. 곤경에 쳐했어도 기품을 지닌, 그녀을 하대하지 않은 세라와 친해지고 싶었다.

 

 주먹밥을 세탁방에 가져다 줄 때마다 공손히 받고 인사하는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었다. 그래서 영주가 와도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주었는데.

 

 

 “아냐. 기절한 하사품한테 영주가 입을 맞췄대, 찐~하게.”

 

 “왜 갑자기 돌아오셔서…….”

 

 “근데 영주님이 아직도 나오질 않으셔서 시체를 처리 못하고 있어.”

 

 “설마, 시체하고 뒹굴고 그런 건 아니겠지?”

 

 “모르지 뭐. 워낙 비정상인 분이니.”

 

 

 식당에서는 세라의 죽음에 대한 얘기로 시끌시끌했다.

 

 바네사는 자세한 자초지종을 듣고는 할리부인을 비롯해 본성내의 일꾼들에게 분노가 일었다.

 

 바네사는 일주일전에 본성을 떠나 집에 갔다 좀 전에 들어왔다. 천식을 심하게 앓고 있는 동생들이 둘이나 있어서 위급 할 때마다 종종 간병하러 집에 다녀와야 했다.

 

 공짜 아침 식사를 위해 방금 본성에 들어 온, 바네사가 들은 첫 소식이 세라의 죽음이었다.

 

 자신이라도 성에 있었더라면…….

 

 잠깐의 인연이었지만 아쉬움이 컸다.

 

 

 “어떻게 단 한명도…… 너무 잔인해. 전쟁이 나고 사람들이 죽는 것이 걔 잘못도 아닌데.”

 

 

 바네사는 들으라는 듯, 다소 큰 소리로 빽 질러댔다. 사람들은 5일 동안 병든 그녀를 방치했다.

 

 그들은 제각기 시선을 피했다.

 

 때마침, 할리부인과 몇몇 관리자들이 음식을 들고 바네사의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할리부인도 들었을 게 분명했다.

 

 할리부인은 머리에 두건을 둘러 이마를 가리고 있었다.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우적우적 게걸스레 음식을 흡입하면서, 근처에 보이는 식사 중인 젊은 남자 고용인을 불렀다. 입 밖으로 음식 파편들이 튀었다.

 

 

 “피터, 영주님 아직 계시나?”

 

 “한 시간 전에 말 타고 나가신 것은 봤는데 진영으로 돌아 가셨는지는 모르겠어요.”

 

 “곧장 나한테 말해줬어야지. 쯧! 식사 끝나고 따라와. 치워야 할 게 있으니까.”

 

 “……네.”

 

 

 뭘 치워야 할지 그곳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바네사는 수저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돼지들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식판을 비우는 소리들이 오늘 따라 거슬렸다.

 

 세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넋을 놓고 있다가, 순간 조용해진 식당 분위기에 바네사는 정신을 차렸다.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하던 동작을 멈춘 채,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입에 문 빵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할리부인은 사레들렸는지 쾍쾍 거렸다.

 

 바네사는 등을 돌려 입구를 보았다. 그녀 역시 턱이 떨어진 상태로 굳어 버렸다.

 

 약탈을 일삼는 포악한 말코족으로부터 일생동안 국경을 지켜온 공을 기려, 황제가 수시로 영주를 위해 젊고 예쁜 노예들을 하사품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 영주의 방에서 죽어 나갔다.

 

 단 한명도 죽었다가 살아나온 자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새로운 이변이 일어났으니 죽은 자가 식당에 왔다. 그것도 제 발로.

 

 금방이라도 부셔져 해체 될 것 같은 창백하고 파리한 시체가 기우뚱 문기둥을 잡고 있었다.

 

 그것이 한 발을 식당 안으로 들여 놓자,

 

 으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르르 반대편 구석으로 몰렸다. 식당 안은 금새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유, 유유유유……유령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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