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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세탁방 하녀가 된 세라 파갈
작성일 : 17-07-18 15:38     조회 : 25     추천 : 0     분량 : 7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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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숨 죽인 채, 주인의 한발 한발을 지켜보았다.

 

 주인은 그를 이끄는 페르몬에 끌려 인내심이나 경계심이 느슨해진 상태였다.

 

 그 여자의 상처에서 난 피와 체취들이 시갈의 온 몸에 스며들어 있었다.

 

 게다가 그 여자가 벗어 놓고 간 옷을 뒤쪽에 가져다 둔 상태였다.

 

 주인은 저 함정을 보지 못하고 자신을 매혹시키는 향기의 주인을 확인하고 싶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갈은 기다렸다.

 

 주인의 한발 한발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뚜벅. 뚜벅.

 

 

 주인의 한발이 균열 위에 올라섰다.

 

 

 체중을 완전히 그 위에 싣는 순간, 아래로 사라지고 말았다.

 

 주인이 손을 뻗어 시갈을 잡으려 했지만 순식간에 깊은 함정 속으로,

 

 

 쿵! 잠시 정적이 흘렸다.

 

 

 으아아아아악.

 

 고통으로 울부짓는 비명소리가 동굴 안을 진동시켰다.

 

 동면에 들려하는 수천마리의 독사들을 화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고통으로 주인은 폭주로부터 다시 안정을 찾을 것이다.

 

 시갈은 천천히 몸을 돌려 오른쪽 뒷다리를 들어 올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복수!!!!!

 

 천천히 함정을 항해 아랫도리에 힘을 줬다.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함정 안으로 쏟아졌다.

 

 

 주인, 난 사람이 아니라 초식동물이라고.

 

 

 

 *

 

 

 

 

 주인이 쓰는 약의 원료 중 5할이 이 독사 바이보라스의 독이었다.

 

 보통사람들에겐 소량도 치명적이나 주인에겐 내성이 생겨 며칠 심각한 근육통에 시달릴 뿐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정신이 깨면 기어 나오든 절뚝거리며 나오든 살아서 나올 것이다.

 

 하지만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올지는 장담하기 조심스럽다.

 

 조금이라도 의식이 돌아온다면 시갈이 메고 있는 가죽가방에서 그의 약을 스스로 꺼내리라.

 

 해가 지고 달빛이 동굴 입구를 비췄다.

 

 시갈은 간간이 함정 속 어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시갈은 한구석에 주인이 숨겨둔 밧줄을 그곳으로 떨어트려 주었다. 밧줄의 한쪽 끝은 시갈이 단단히 물고 있었다.

 

 한 참 후 밧줄이 팽팽히 당겨지고, 시갈은 천천히 동굴 입구 쪽으로 뒷걸음질치며 줄을 잡아 당겼다.

 

 주인이 가슴에 줄을 동여맨 채 끌려 나왔다.

 

 달빛이 닿는 곳까지 그를 끌어당겨 그의 상태를 보았다.

 

 힘겹게 그가 꿈틀거렸다.

 

 

 “으으윽.”

 

 

 얼굴이 들어나자 울퉁불퉁 개구리알집처럼 우글우글 부어오른 모습에 시갈은 투레질을 했다.

 

 그의 몸에 붙어 딸려 나온 뱀들이 스르륵 다시 어둠속으로 기어들어갔다

 

 

 

 

 * *

 

 

 

 

 

 파갈성을 떠난 지 보름 만에 카라스 성에 들어섰다.

 

 

 “노예가 아니라 완전 상전이네.”

 

 

 마차 안에서 눈보라를 피하고 있는 세라는 마부석에서 마차를 몰고 있는 남자들에게 미안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험준한 하얀 산자락 아래, 회색의 맹수가 자리 잡고 앉아 있듯 카라스성이 눈보라 사이로 희미하게 내려다 보였다.

 

 상상을 초월한 거대한 성이었다.

 

 언뜻 보아도 파갈성의 네 배 이상 되는 규모였다.

 

 외곽성문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세라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정교하게 깔린 벽돌 길을 따라 이동할 때, 세라는 구획정리가 잘 된 시가지를 보았다.

 

 대량의 적설량을 감안한 뾰족한 지붕들과 길게 경사진 지붕들이 낯선 풍경이었다.

 

 거리와 골목골목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지만 굴뚝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살아있는 삶의 현장이었다.

 

 소문처럼 저주 받은 얼음 도시 같지 않았다. 어찌 보면 동화책이나 명화에서 등장하는 엘프족의 하얀 도시처럼 환상을 일으키는 풍경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혹독한 날씨 속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살고 있다니.”

 

 

 마법 같은 경치에 정신을 놓고 있다가 자연스레 저 멀리 솟아오른 검은 바위산에 박혀 있는 본성에 시선이 닿았다.

 

 검은 바위산을 뚫고 기둥을 세워 만든 입구를 보니 포효하는 맹수가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있는 것 같았다.

 

 본성은 대마왕의 소굴처럼 소문과 꽤 근접한 분위기였다.

 

 외곽성문에서처럼 본성의 정문도 기사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병사들이 신속히 문을 열어 주었다.

 

 

 “이 곳이 그토록 소문이 무성한 카라스 영주가 있는 곳이구나.”

 

 

 마차가 섰다.

 

 세라는 누군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자조했다.

 

 스스로 문을 열고 내렸다.

 

 기사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었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들은 쉬지 않고 마차를 몰았으니.

 

 눈보라를 맞으며 말을 타고 왔다면 세라는 주검이 되어 도착했을 것이다.

 

 그들과 시선과 부딪쳤다. 싸늘한 눈빛에 세라가 흠칫 놀라 망설이다가,

 

 

 “저……기사님.”

 

 

 분명 들리고도 남았을 텐데 그들은 그대로 가버렸다.

 

 덩그러니 홀로 본성 입구 아래 남겨져 있으니 겁이 덜컥 들었다.

 

 입구로 이어지는 높은 계단들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도망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눈보라 치는 광활한 땅에서 여기만큼 안전한 곳이 있을까?

 

 세라는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비웃었다.

 

 덩치 큰 병사 한 명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저 짐승의 아가리로 들어갈 때가 온 것인가?

 

 

 

 **

 

 

 

 세라는 중년의 몸집이 크고 남자같이 생긴 여자에게 보내졌다. 커다란 이불에 솜을 덧대어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할리부인, 새로운 하사품입니다.”

 

 

 할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세라를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바느질을 계속 해 나갔다.

 

 옆에서 일하던 다른 여자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직접 데리러 오라던?”

 

 

 덩치 큰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들의 눈들이 이리저리 세라를 탐색했지만 특별한 것을 찾지 못하겠다는 듯 할리처럼 바느질로 이내 시선을 돌렸다.

 

 병사는 세라에게,

 

 

 “할리부인이 시키는대로 해. 이분이 이 성안에서 일하는 하녀들의 총관리자이니.”

 

 

 병사는 방을 나갔고, 세라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동안 서 있었다. 커다란 이불 한 채가 완성되자 할리부인이 일어서 세라를 향했다. 다른 여자들은 이불을 정돈하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세라에게 따라오라는 턱짓을 하고는 앞장섰다. 복도를 지나 끝방의 문을 여니 뜨거운 수증기가 폐 속으로 확 들이닥쳐 세라는 몸을 돌려 나오려했다. 우왁스러운 손이 그녀의 뒷덜미를 잡아채더니 수증기 속으로 끌어당겼다.

 

 

 “아얏!”

 

 “이거 무슨 냄새야? 벗어.”

 

 “네?”

 

 “지독해서 못 참아 주겠군.”

 

 

 할리부인은 목소리도 우악스러웠다.

 

 세라는 뿌옇게 보이는 할리부인의 형체 쪽을 보며 몸을 움추렸다.

 

 

 “이렇게 더러운 하사품은 또 처음이네.”

 

 “카라스영주가 널 잡아먹다가 더러운 걸 알고 우리한테 불호령이라도 떨어지면 곤란하니 깨끗하게 씻어라.”

 

 “아암, 깨끗해야 먹기도 좋지.”

 

 

 뒤늦게 들어온 여자들이 킬킬 거리며 말했다.

 

 할리부인이 그녀들을 쏘아 보았지만 세라는 수증기 때문에, 밀려오는 불안감 때문에, 그들의 말이 진실인지 장난인지 알 길이 없었다.

 

 참을성 없는 할리부인이 세라의 옷을 거칠게 벗겼다. 팔을 잡아 당겨 탕 앞에 세우고는 뜨거운 물을 머리 위에서 들이 부었다.

 

 앗! 뜨거!

 

 수증기에 익숙해진 눈이 점차 그 곳이 뭐하는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너 때문에 하루 종일 한 빨래들이 도로 더러워 질 지경이야! 대충 씻고 이거 입어!”

 

 

 누군가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 붙였다.

 

 거적때기 같은 속옷과 원피스가 그녀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발가벗겨진 세라는 서둘러 그것을 주워 입었다.

 

 

 “저거 보이지? 다 해놓기 전엔 여기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좋아.”

 

 

 세라는 할리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입이 절로 벌어졌다.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들이 넓은 공간 안에 가득했다. 세 명의 여자가 커다란 통을 각자 하나씩 앞에 두고 요란하게 빨래를 납작한 돌 위에 연신 내리치고 있었다.

 

 저 많은 것을 고작 세 명이……?

 

 세라까지 합치면 네 명이지만 일주일을 해도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벌써부터 팔이 뻐근해지는 것 같았다.

 

 

 *

 

 

 

 꼬박 이틀이 지난 후 저녁,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혀진 세라는 녹초가 된 몸을 끌고, 할리부인을 따라 커다란 침실에 와 있었다.

 

 강한 풀 향기가 풍겼다.

 

 

 “지금부터 네게는 질문 할 권리 따위는 없다. 오직 듣고 대답만 해. 알았나?”

 

 “네.”

 

 “영주님의 침실이다. 영주님께서 성을 비우시는 동안은 내가 시키는 일을 하면 되고, 일 끝나면 여기서 잔다. 문은 꼭 잠그고 자는 게 좋을 거야. 영주님이 오시면 너에게 따로 일을 시키지 않으니 개인 시중을 들면 된다.”

 

 “개인 시중이라면?”

 

 

 찰싹! 순간, 세라의 눈앞엔 별이 번뜩였다. 정신 차려 보니,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었다. 얼얼한 뺨을 감싸고 할리부인을 올려다보았다.

 

 서둘러 일어서지 않으면 또 맞을 것 같아 비틀비틀 몸을 일으켜 그녀 앞에 다시 섰다.

 

 아무래도…… 질문하지 말랬는데 질문해서 맞은 것 같군.

 

 

 “영주님은 이따금 이곳을 사용하신다. 주로 군사들과 함께 막사에서 지내시다가 씻거나 부상을 치료할 때 오시곤 하지. 그 때 불편하지 않도록 수발을 들어드리고 심부름을 해드리면 돼. 보아하니 너도 귀족출신 같은데 하인들이 널 위해 했던 일들을 떠올려 보면 되겠군.”

 

 

 할리부인은 자기가 할 말만 뱉어내고 나가버렸다.

 

 드디어 혼자 남겨졌다.

 

 영주의 커다란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침대 머리 쪽 벽은 검은 바위의 거친 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침대 틀도, 두툼한 침구류도 검은색 아니면 짙은 회색이었다.

 

 공간을 둘러보니 온통 검은색 천지였다. 커튼, 카페트, 검은 모피가 걸쳐진 쇼파.

 

 영주가 검은 색을 선호하는지 바위 때문인지 모르지만 음산한 검은 분위기가 세라의 기분을 무겁게 했다.

 

 검은 기사가 떠올랐다.

 

 그의 머리카락, 심연 같은 눈동자, 그의 몸을 감싼 검은 가죽 옷.

 

 

 ‘……살아남아……내가 갈 때까지.’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지난 이틀 동안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너의 자존심을 지켜 주지.’

 

 ‘카라스 영주는 너의 털끝하나, 피 한 방울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 약속들을 무작정 믿었는데.

 

 그는 그런 약속을 멋대로 해도 되는 위치일까?

 

 지친 몸은 더 이상의 질문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와 달리 바닥에 깔린 돌이 따뜻하게 공간를 데우고 있었다. 찬 기운이 새어들어 오지 않아 포근했다.

 

 세탁 일은 무척 고되어 돌바닥에서도 잘 수 있겠지만 오랜만에 깨끗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수 주 동안의 감옥 생활, 보름간의 거칠고 위험한 카라스행 여정, 이틀간의 쉼 없는 노동.

 

 

 “아론, 너도 파갈성에 처음 왔을 때 이렇게 무섭고 힘들었겠지.”

 

 

 어린 천사같은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좀 더 상냥하게 대해 줄걸 그랬어.”

 

 

 영주의 널찍한 침대에서 지친 몸을 뉘었다. 익숙한 향기에 마음이 안정되었다.

 

 스스르륵 눈꺼풀이 내려오고 잠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가족과 친지들이 죽어 나가는 전쟁이 되풀이 되는 악몽 때문에 한 밤 중에 눈을 떠야 했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눈을 감기만 하면 악몽이 이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커튼 사이로 한 가닥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세라는 일어나 두툼한 커튼을 재쳤다.

 

 눈보라가 멈추고 청명한 달이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설경이 지친 그녀에게 주는, 하늘의 선물처럼 여겨졌다.

 

 

 “아름답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세라는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가문이 몰락하고 노예가 되어도 달이 아름답다고 내뱉을 수 있는 자신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달의 주인은 그녀 자신이었다.

 

 영주가 없는 이 방은 세라가 주인이었다.

 

 태양이 뜨고 불안한 내일이 오기 전까지 자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그녀는 그렇게 고요한 자유에 취해 잠시 밤을 즐기다 이내 곯아 떨어졌다.

 

 

 

  * *

 

 

 

 “일어나!!”

 

 정신에 금이 갈 정도로 우왁스러운 괴성에 놀라 깨어났다.

 

 미처 정신을 다 차리기도 전에 그녀는 세탁 방에 다시 와 있었다. 또 다시 산더미 같은 빨래 속에 파묻히고 식사도 그 자리에서 주먹밥을 받아먹는 정도였다.

 

 누군가 식당에 가서 먹어도 된다고 냉소적으로 말했지만, 그녀 혼자 움직이기 뭣해서 포기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어, 점심 때 식당에 갔다가 왜 할리부인이 그녀를 세탁방에 쳐박아 넣었는지 알게 되었다.

 

 따뜻한 버섯스프와 고기, 빵이 나왔지만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입 속으로 욱여넣었다. 식당에서 느꼈던 시선들과 스스로 드는 자괴감은 씁쓸했다.

 

 화려한 샹델리에 아래 향기가 좋은 꽃, 깨끗한 테이블보, 고급스런 식기들이 그녀 앞에 더 이상 없는 것은 크게 상관없었다.

 

 질기고 풍미가 떨어지는 음식이 입속에 들어가도 아무렇지 않았다.

 

 제멋대로 지껄이고 쳐다보는 자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딜 가나 파갈 가문이 빼앗은 생명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자들을 만나는 것은 그녀의 영혼을 마비시키고 움츠러들게 만드는 독약이었다.

 

 

 ‘쟤는 적응이 빠른 거야 철판을 깐 거야? 식당출입을 하네. 파갈이라면서.’

 

 ‘파갈 하면 이를 가는 자만해도 이곳에도 수만일 텐데.’

 

 ‘저 집안 때문에 우리 집 남자들 다 죽었어! 가만 안 둬!’

 

 ‘영주 손이 닿기도 전에 황천길 가게 생겼군.’

 

 ‘함부로 싸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을걸.’

 

 ‘용감한 거야 무지 한 거야?’

 

 

 세탁방에 있는 네 명, 요주의 인물들은 한 마디로 특별 보호대상인 것이다.

 

 길가다가 언제 당할지 모를, 원한 품고 벼르고 있는 자들이 노리는 요주의 인물들.

 

 피와 오물이 가득한 군사들의 옷은 매일같이 몇 수레씩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어떤 빨래들에서는 검은 기사에게서 난 쓴 독초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나는 빨래는 대부분 혈흔이 낭자한 것 들이었다.

 

 세라는 그녀에게 할당 된 빨래를 하며 옆 자리의 왜소한 노파를 보고 더 이상 앓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앙상한 골격이 드러나는 팔로 거침없이 빨래를 내려치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곳의 네 명은 말도 없이 그저 빨래만 두들겨 댈 뿐이었다.

 

 어느 새 세라도 잡념을 버리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참으며 팔을 휘둘렀다. 그렇게 일주일을 견디다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

 

 

 

 쿵! 몸이 추락하는 충격이 느껴졌다. 한참 후, 흐릿한 의식 속에 소리가 들렸다.

 

 

 “할리, 내 방에서 멀 훔쳐가는 거야?”

 

 “아이고 영주님, 아닙니다. 훔치다니요.”

 

 “훔치려던 게 아니면 왜 그리 놀라?”

 

 “새, 새로운 하사품이 5일 동…….”

 

 “5일?”

 

 “네.”

 

 

 할리의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렸다.

 

 영주라고?

 

 세라는 정신을 차려보려 애썼으나 게슴츠레한 눈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검은 부츠와 납작 업드린 할리부인이 흐릿하게 보일뿐이었다.

 

 

 “영주님, 저 여자가 저리 빨리 죽어…….”

 

 

 검은 형체가 물끄러미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죽음의 사자인가? 이렇게 죽겠구나.

 

 죽음의 사자가 한쪽 무릎을 꿇어 앉아 얼굴 위로 드리워진 그녀의 붉은 머리를 거두었다.

 

 검은 형상이 그렇게 내려다보았다.

 

 

 “고작 이렇게 끝내려고 그 난리를 치게 해?”

 

 

 죽음의 사자가 그녀의 턱선을 따라 쓰다듬다가 지그시 눌러 입술을 벌렸다.

 

 

 “마지막 인사는 해야지.”

 

 

 그의 입술이 내려와 세라의 입술을 덮었다.

 

 긴 입맞춤이었다. 쓴 향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입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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