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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23 화. 봄바람을 실은 도둑 입맞춤
작성일 : 17-07-14 21:50     조회 : 27     추천 : 0     분량 : 8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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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23 화. 봄바람을 실은 도둑 입맞춤

 

 

 

 지원이 세희를 자신의 옆에 둘 명분을 만들고 있는 동안, 세희는 팀원들과 수다를 떠느라 바빴다.

 

 

 

 "시간 정말 빨리 간다~ 벌써 11월이라니. 세희 씨, 우리 회사 어때요? 이제 슬슬 업무에 스트레스 받고 지칠 때도 됐는데. 괜찮아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자 같은 외모를 지닌 기획팀 팀장은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네! 처음이 힘들었지, 이제 좀 할 만해요."

 

 "팀장님, 세희 씨는 잘 해낼 거예요. 저랑 계속 여기에 다니기로 약속했거든요."

 

 미영이 세희의 팔짱을 끼며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팀장은 고개를 끄덕여주다 두 손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 내 정신 좀 봐. 얘기한다는 걸 깜빡했네. 다음 달에 우리 팀 워크숍 있는 거 다들 아시죠? 세희 씨랑 재희 씨는 처음이니까..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요? 내가 특별히 신입들 의견도 많이 반영해서 일정을 짜보려고 해요."

 

 그녀의 말에 재희와 세희는 어리둥절했다.

 

 "네?"

 

 그런 그들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팀장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 회사. 시설도 그렇고 근무 시스템도 정말 좋죠?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에요. 제주도랑 남해, 그리고 강원도에 직원용 별장이 있어요.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어디로 갈까요?"

 

 "저희는 팀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를게요."

 

 

 

 재희가 세희와 눈빛을 주고받은 후 말했다.

 

 "에이~ 말이야 그렇지. 우리 같이 일한 지 꽤 됐잖아요? 나한테는 영혼 없는 말은 안 통한다는 거, 잘 알죠?"

 

 팀장은 손 사레를 치며 솔직하게 얘기하라는 눈치를 줬고. 그들이 의견을 말할 때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재희가 세희를 쳐다보며 그녀가 얘기하라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강원도..요."

 

 세희는 조금 망설이며 대답했다. 아무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근무를 하며, 선배와 후배 사이에 심한 격식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입사 3개월 차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장벽 없는 사내 분위기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K 그룹은 직원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근무를 하며 그들의 능력을 최고로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덕분에, 직원들은 정해진 근무 시간 내에서 자유롭게 일하며 본인들이 원하는 만큼 휴식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팀 내 분위기가 가족 같이 서로를 챙기며 쿨 할 수 있는 것도 스트레스 없이 일할 수 있는 근무 환경 덕분이다.

 

 기획팀 팀원들은 새로 들어온 세희를 막내라고 귀엽게 봐주고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덕분에 그녀는 딱딱하지 않은 근무 환경과 더불어 그들이 가족처럼 느껴졌고, 이 회사에 어떤 일이 있어도 정직원이 되리라 한 번 더 마음을 다질 수 있었다.

 

 

 

 팀장은 워크숍에 관하여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재희는 간간히 팀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펼치고 있는 세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꿋꿋하게 회사 생활을 버텨내고 있는 그녀를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그들 가운데, 세희와 비슷한 또래의 직원이 아까부터 계속 세희를 훔쳐보는 재희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근데 세희 씨, 재희 씨랑은 무슨 사이에요?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라기에는 뭐랄까.. 둘이 정말 잘 어울리는 거 있죠."

 

 그녀의 말에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이 맞장구를 치며 눈을 빛냈다.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다. 원래 남의 연애 사를 엿듣는 것은 삶의 낙(樂) 중 하나인 법!

 

 세희는 그녀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 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사귀는 사이가 아닌, 친하게 알고 지내는 오빠인 그였지만. 지난번에 그녀의 집에서 들은 고백 아닌 고백으로 또 한 번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기에는 곤란한 입장이었다.

 

 "그게..."

 

 "내가 괜히 물었다면 미안해요."

 

 그러면서 그녀는 슬쩍 재희를 쳐다보았다. 그라도 뭐라고 해보라는 눈빛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재희는 아까 식당에서의 지원을 마주한 이후로 강지원이라는 남자가 마음에 걸렸다. 불안한 마음이 조금 덜어질까 싶어서 그는 팀원들에게 농담처럼 얘기했다.

 

 "제가 얘기할게요. 저희, 사귀는 사이 아닙니다. 하지만 전 세희 씨만 좋다면 결혼하고 싶어서 계속 옆에 머무는 중입니다."

 

 그러자, 팀장이며 팀원들이며 재희에게 멋있다는 둥 순정남이라는 등의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그에게 저마다 응원의 한마디를 날려주었다.

 

 세희는 저렇게 나오는 재희의 행동을 이해 못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잠자코 팀원들이 그를 향해 힘을 북돋아주며 은근슬쩍 그녀와 엮어주려 할 때도 조용히 웃어주기만 했다. 그게 재희의 눈에 어색한 웃음으로 보였지만 말이다.

 

 팀 내 여자 직원들은 그녀들이 재희에게 은근한 추파를 던져도 아랑곳 않더니. 세희를 향해 마음을 쓰느라 틈도 안 보이던 거였냐며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말로 그를 나무랐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꺄르륵 거리던 그들이었는데.

 

 그의 일편단심에 두 손 두 발을 다 든 것일까.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들은 남자 직원들까지 끌어들여 또 하나의 팀을 결성 지은 듯 했다.

 

 이른바, 팀 내 선남선녀로 꼽히는 재희와 세희 커플 결성을 위한 팀.

 

 

 

 세희는 더 이상 안 되겠는지, 서로 신나서 재희 마저 재처 두고 얘기하는 그들 몰래 기획실을 빠져나왔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세희 씨, 잠깐 사장실로 올라와요.]

 

 지원이었다.

 

 그의 문자 한 통에 심란했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뭐 때문에 부르시는 걸까?

 

 세희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폭탄은 꿈에도 모른 채.

 

 기대로 들떠 총총거리며 사장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 세희가 엘리베이터를 쓰고 있는 이유는. 세희를 사.랑.하.는. 지원이 허락해 준 것이었다. '밥 친구'로서 처음 몇 달 동안 사람 번거롭게 하며 일로 괴롭힌 것도 그렇고. 그는 매번 비상구로 가서 계단을 타는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보기 싫었다.

 

 많은 파일 뭉치들을 낑낑대며 사장실로 들고 가야 할 때만 아니면 그녀는 전혀 힘들지 않았는데. 그것을 알 리 없는 지원은 왠지 마음이 아팠다나 뭐라나.

 

 

 

 

 

 ***

 

 

 

 

 

 똑. 똑. 똑.

 

 "들어와요."

 

 사장실을 조용히 열고 들어간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매력적인 미소를 흘리고 있는 지원과.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하얀 물체들이였다.

 

 그녀가 사장실에 들어오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녀의 눈에 바닥에 뒹굴고 있는 종이 뭉치들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설마 '그건' 아니겠지. 허허. 아니야, 아닐 거야. 내가 그 작업하느라 며칠을 고생했는데.

 

 눈앞에 놓여있는. 처참한 광경에 그녀는 헛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왠지 그가 자신을 괴롭히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신 것 같은 느낌마저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비상구며 잦은 잡일이며. 드디어 작별하고 예전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호의호식(好衣好食) 하는 날이 오나 했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단지, 입사 초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를 향한 그녀의 시선이었다.

 

 이제는 그의 모든 것이 매혹적으로 그녀의 마음을 파고 들어왔다. 지금 그녀를 반겨주는 미소마저 그녀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잘생긴 남신이 짓는 미소처럼 보였으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도리도리-

 

 그녀는 잡생각을 집어치우려고 세차게 고개를 저은 뒤 지원에게 물었다.

 

 "부르셨어요?"

 

 "네. 세희 씨, 일이 생겼어요. 어쩌죠..?"

 

 말투는 걱정스러운 듯하였으나, 그의 표정은 전~혀 걱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왠지 지금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그의 얼굴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는 자신의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이다. 그녀는 눈앞에 놓인 광경을 손으로 가리키며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었다.

 

 "설마.. 지금 이 서류들을 다 정리하라는 뜻이세요?"

 

 "네! 그리고 다시 분류해주세요. 끈이 약해서 제가 나갔다 온 사이에 끊어졌나 봐요. 이번에는 더 굵고 튼튼한 걸로 부탁해요."

 

 세희는 울상을 지었다.

 

 내가 저거 정리한다고 회사에서 얼마나 낑낑거렸는데.

 

 그렇다. 그녀의 앞에 있는 서류들은 장작 일주일 넘게 들여다보며 정성을 들여 구멍을 뚫고, 고운 끈으로 묶어둔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걸 어떻게 했길래 저 모양 저 꼴로 만든 건지는 몰라도, 지원은 참~ 재주가 좋은 남자 임이 틀림없었다.

 

 또 다시 3일을 반납해야 하나.. 아니, 뭉쳐져 있는 상태를 봐서는 조금 일찍 끝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허리를 숙여 헝클어진 종이들을 차곡차곡 탁자 위에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 지원이 다가와 세희를 도와주었다.

 

 "도와줄게요."

 

 

 

 그러나 그것은.

 

 도와주는 '척'이었을 뿐.

 

 정작 그의 마음은 음흉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도와주는 시늉을 하며 자신의 주변에 있는 종이 뭉치 쪽으로 팔을 뻗어 슥슥. 카드 패를 섞듯이 서류들을 자기 마음대로 이리저리 섞는 것이 아닌가!

 

 세희가 그 장면을 봤더라면 팔짝 뛰었을 것이 분명하기에, 몰래몰래.

 

 그렇게 그의 세희를 야근 시키려는 계획의 물밑작업은 완벽하게 끝이 났다.

 

 지원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 꼬리를 스윽 하고 한 번 올리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서류들을 안겨주었다.

 

 "여기요."

 

 "감사해요. 그럼 전 가볼게요."

 

 지원은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세희를 붙잡았다.

 

 "세희 씨, 어디서 작업하시려구요?"

 

 "네? 당연히 제 사무실에서..."

 

 "음... 그러지 마시고 여기 바로 밑에 있는 임직원 회의실에서 하도록 해요. 넓어서 편할 거예요. 오늘은 쓸 일도 없구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

 

 "그 서류들 제가 빨리 검토해 봐야 하는 거라서.. 최대한 빨리 안 될까요?"

 

 "네...?"

 

 세희의 입 꼬리는 올라가지 못한 채 파르르 떨렸다.

 

 "야근.. 하세요. 세희 씨 혼자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제가 자주 들여다볼게요. 저도 마침 일이 많이 생겼거든요."

 

 당당하게 시커먼 속내로 물든 '야근'이라는 단어를 순진한 그녀 앞에서 툭 뱉어내지 못하겠는지. 지원은 말꼬리를 조금 늘이며 그녀를 슬쩍 쳐다보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를 재촉하고 있었으니. 멘붕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현기증이 났다. 아아, 내 시간..!

 

 K 그룹의 근무 환경이 자유 분방한 만큼, 야근 또한 직원들의 의지에 맡기고 있었다. 아쉽게도, 그런 조건들은 세희와 상관이 없게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

 

 "대신, 빠른 처리를 위해 저녁은 각자 먹도록 하죠."

 

 지원은 서둘러 그녀를 타이를 만한 회유책을 제시한 뒤, 친히 그녀를 임직원 회의실까지 데려다주었다.

 

 

 

 그것은.

 

 세희를 옆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된 그가, 들뜬 마음에 처음으로 솔직하게 보인 행동이었다.

 

 

 

 

 

 ***

 

 

 

 

 

 타닥. 타닥.

 

 사장실에 앉아 브리핑 심사 예고를 위한 공고문을 작성하던 지원의 동작이 잠시 멈췄다.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아직은 연인 사이가 아니라서 '그의 품 안'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뭐 하지만, 세희가 그의 시야 안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으니 말이다.

 

 지원은 혼자 식사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녀와 오~래 회사에서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푹 빠진 나머지. 자신이 혼자 식사를 했다는 것조차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회사 근처에 있는 도시락 집에 들려서 사온 도시락을 막 먹은 참이었다.

 

 소스에 푹 빠져버린 탕수육처럼, 세희에게 푹~ 녹아버린 지원은 이제. 얼음 사장이 아닌 부드러움 그 자체였다. 어쩜 사람이 이리 변할 수가 있는지. 세희로 인해 해보지 못한,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일들을 척척 해내는 지원이었다.

 

 

 

 식사를 하고 왔지만, 왠지 출출하다.

 

 배고픈 건 아닌데. 너무 일을 열심히 했나?

 

 이것만 마저 하고 내려가서 세희 씨랑 나가야겠다.

 

 야식이라니!

 

 천하의 강지원이.

 

 삼시세끼라는 정해진 식사 시간이 아닐 때에 음식을 먹는 것은 그의 사전에 없는 내용이었다.

 

 

 

 그는 세희에게 제대로 빠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스로 합리화 하며 이상한 핑계로 그녀를 보러 갈 생각을 할 리 없으니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일만 남았다.

 

 지원은 빠른 속도로 문서 작성에 열을 올렸다.

 

 

 

 

 

 ***

 

 

 

 

 

 털썩-

 

 세희는 회사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 김밥 2개를 사서 먹고 오는 길이었다.

 

 원래 그녀는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하자는 주의라, 오늘처럼 공장이 탄생 시킨 음식들은 가까이 하지 않는다.

 

 한 달 사이에 또 컵라면이라니. 이사 할 때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소화기관들에게 미안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종이 뭉치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사장실에 나뒹굴기 전까지 그녀의 정성을 듬뿍 받아 잘 정리된 서류들이였으나, 자신의 눈앞에 엉켜있는 상태로 되돌아온 종이뭉치들이 괜스레 미웠다.

 

 편의점에 갔다 오기 전에도 재희와 만나 수다를 떠는 시간마저 반납하고 열심히 분류했는데. 자신이 열심히 일한 게 과연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도가 안 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쌓여 있는 서류 뭉치들을 보니 아프로디테와 프쉬케가 생각났다.

 

 언니들의 꾐에 넘어간 프쉬케는 그날 밤. 호기심에 단도와 양초를 들고 자신의 남편을 들여다보다 그만. 양초의 촛농을 에로스의 팔에 떨어뜨리고 만다. 그렇게 사랑했던 에로스를 떠나보낸 프쉬케는 에로스를 다시 만나고자 아프로디테의 신전을 찾아가는데.

 

 아프로디테는 자신과 견줄만한 미모를 가진 여자를 싫어하는 여신이었다. 하물며, 인간들이 자신과 동일시하며 칭송하던 프쉬케가 자신의 아들까지 꾀어냈다고 생각하는데. 프쉬케가 곱게 보일 리가 있나.

 

 에로스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조건으로 아프로디테가 프쉬케에게 시킨 심부름이 몇 가지가 있다. 심부름이었지만 인간인 프쉬케의 힘으로는 쉽게 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프로디테가 그녀를 괴롭히려고 시킨 일이었으니.

 

 그 중, 세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아프로디테가 키우는 비둘기에게 줄 곡식들을 종류 별로 분류하는 일이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겹겹이 쌓여 있는 서류들이 그 이야기에 나오는 곡식들처럼 보였다. 에휴, 사장님이 아프로디테도 아니고. 내가 아직도 싫으신가? 괜스레 그를 향해 떨리는 가슴이 원망스러웠다.

 

 프쉬케는 에로스의 사랑을 받아 에로스가 보낸 개미군단의 도움으로 일을 빨리 할 수라도 있었지. 나는 이걸 다 100% 내가 해야 하니...

 

 그녀는 현실에 자신의 에로스가 없는 것을 한탄하며 의지를 다졌다.

 

 다시 해보자..!

 

 

 

 그녀는 핸드폰을 집어 들어 K 그룹 사내 업무용 앱(application)을 실행 시켰다. 어차피 당분간 야근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니, 직원용 객실을 예약해 둘 생각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녀는 슬슬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글자 수가 많아 빡빡한 서류들을 빠른 속도로 훑어 내리며, 내용을 파악한 뒤 알맞은 순서들로 이어줘야 하는 작업이니 그럴 만도 했다.

 

 세희는 잠시 책상에 엎드려 눈을 붙이기로 했다.

 

 그런 그녀의 뒤로, 회의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뚜벅뚜벅.

 

 멈칫..!

 

 

 

 

 

 ***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지원이었다.

 

 그는 세희에게 출출하니 밖에 나가서 군것질을 하자고 얘기할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세희가 책상에 엎드려 곤히 자고 있는 모습에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왠지 지금은 다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는 세희의 자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궁금했다.

 

 그는 고개를 드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회의실의 문을 닫았다.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뭔가를 훔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긴장이 된 나머지, 숨을 죽인 채로 다가갔다.

 

 쌔근쌔근.

 

 그가 다가가도 모를 만큼 잠에 취해 있는 그녀가 지원의 눈에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자신의 취향이 전혀 아니었는데. 불과 몇 달 전부터 그녀의 행동이 귀엽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눈 앞에 있는 그녀의 얼굴을 자주 보고 싶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그녀를 향한 욕심이 일기 시작했다. 뭐지...

 

 지원은 허리를 살짝 숙이며 균형을 잡기 위해 한 팔을 책상에 올린 후,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화장을 싫어하는 건지, 화장기가 거의 없는 얼굴에. 도톰하게 살이 오른 붉은 입술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식사 때 저 입술로 오물오물 거리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입이니 저 입술에서도 무슨 맛이 나는 게 아닐까.

 

 그는 그녀의 입술을 가까이서 보게 된 순간부터 자신의 눈을 사로잡은 붉은 것의 촉감이 궁금했다.

 

 저 입술에서는 무슨 맛이 날까..?

 

 

 

 그는 세희의 입술에 서서히 끌려가는 자신을 막을 수 없었다.

 

 초옥-

 

 옅게 붙었다 떨어진 그들의 입술.

 

 살랑~

 

 지원의 가슴에 봄바람이 불어왔다.

 

 입술 위로 벚꽃 잎이 스쳐지나간 듯 했다.

 

 두근두근.

 

 이제 지원의 가슴이 전해주는 보다 더 뜨거운 울림이 온몸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가슴이 간지러운 것도 모자라, 뻐근하기까지 했다.

 

 뭐야, 이 느낌..?

 

 그는 자신의 입술로 손을 가져가, 천천히 매만졌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얼떨떨했지만, 부드럽고 왠지 모르게 달콤했다.

 

 

 

 지원은 세희의 입술을 훔친 후에도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호기심에 맛보았던 입술이었건만, 가슴 한구석에서 갈증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 말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더. 할 수만 있다면 이 갈증이 가실 때까지 저 달콤함을 맛보고 싶었다. 왜 이제 와서 만져보고 싶고, 닿고 싶다는 충동이 이는 걸까.

 

 갖고 싶다. 입술도, 그녀도.

 

 그녀의 입술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걸까. 그는 그녀를 바라보는 내내 속으로 끙끙 앓았다. 한 번 입술을 맛보고 나니 자꾸 그쪽으로 시선이 갔다. 지금 이렇게 폭풍처럼 몰아치는 숨어있던 그 무언가가.. 너무 낯설다.

 

 

 

 그때.

 

 세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그녀의 감겨있던 눈이 떠졌다.

 

 !!!!!!

 

 마주보게 된 서로의 눈동자에 당황스럽기만 한 그들이었다.

 

 지원은 후다닥 자세를 바로하며 입을 열었다.

 

 몰래 한 입맞춤이 부끄러웠는지. 그의 양 볼에, 붉은 빛이 피어올랐다.

 

 "아, 저.. 저기... 우리 떡볶이 먹으러 갈래요?"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은 그였다.

 

 완벽한 문장이 나올 줄 알고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는데. 지금 이러는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으로 '젠장'을 남발했다.

 

 속마음과는 다르게, 그의 두 뺨이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갛게 익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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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제 34 화. 새하얀 차림으로 그녀를 반겨주면 … 2017 / 7 / 17 29 0 6131   
34 제 33 화. 입가에 묻은 팥앙금을 훔쳐간 남자… 2017 / 7 / 17 28 0 7756   
33 제 32 화. 달빛과 함께한 두 사람 2017 / 7 / 17 28 0 7189   
32 제 31 화. '오빠'란 단어가 귀에 거슬린… 2017 / 7 / 17 25 0 5734   
31 제 30 화. 사랑은 마음 가는대로 2017 / 7 / 17 26 0 5977   
30 제 29 화. 누군가의 결심 2017 / 7 / 17 32 0 7116   
29 제 28 화. 사랑은 간절한 마음이 필요하다 2017 / 7 / 17 25 0 6776   
28 제 27 화. 초보 늑대도 엄연히 남자다! 2017 / 7 / 15 28 0 7070   
27 제 26 화. 엉큼한 늑대와 초보 늑대 2017 / 7 / 15 31 0 7108   
26 제 25 화.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2017 / 7 / 15 25 0 6909   
25 제 24 화. 둔한 예비 커플과 뜨거운 커플 2017 / 7 / 15 29 0 9707   
24 제 23 화. 봄바람을 실은 도둑 입맞춤 2017 / 7 / 14 28 0 8617   
23 제 22 화. 이 감정은 뭐지? 2017 / 7 / 14 28 0 9937   
22 제 21 화. 노란오리와 첫사랑 2017 / 7 / 14 27 0 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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