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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다시 사랑하기까지
작가 : 서희린
작품등록일 : 2017.6.21

25살 건후는 첫눈에 반한, 가슴 두근거리는 그녀를 만나 불타는 사랑을 했다. 3개월 후 유학을 가야했던 그는 결혼을 하겠다며 헤어지자는 그녀의 말에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 27살 유화는 난생처음 그녀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 불같은 사랑을 했다. 하지만 유학을 앞둔, 아직은 창창한 그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던 유화는 결혼이란 핑계로 그를 놓아주었다. 유화를 잊지 못하던 30살이 된 건후 앞에 다시 나타난 그녀를 향한 그의 집착이 시작되었다. 건후로 인해 흔들리는 유화에겐 이미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데...

 
8화. 첫 만남 ― 남자, 여자를 만나다.
작성일 : 17-06-22 14:46     조회 : 19     추천 : 0     분량 : 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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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 날씨를 싫어하는 건후가 한손을 바지주머니에 집어넣고 한손엔 무언가를 쥐고 차에 기대어 서있었다. 담배같이 보였다. 건후는 그녀 때문에 담배를 끊었다. 지금 담배를 가지고 필까말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피지 마. 건후야. 난 담배 피는 남자 싫어.’

 

 

 당장 내려가 담배를 뺏어 발로 짓밟아 버리고 싶었다.

 

 피식. 내가 무슨 권리로. 무슨 상관이라고. 가슴이..... 뻐근해져 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그의 단정한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고 지나갔다. 슈트상의 단추를 잠그지 않아 바람에 펄럭였다. 그 사이로 보이는 와이셔츠 안의 몸이 얼마나 탄탄하고 넓은지 유화는 알고 있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몸 안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 올라와 유화의 온몸을 휘감았다.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집을 올려다보자 유화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떤 심정으로.... 보고 있을까? 아파하고 있지는 않을까? 울고 있는 건 아닐까? 담배를 피우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걸까?

 

 나는 이제 너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데.

 

 떨리는 손을 모아 가슴에 대고 있던 유화는 정신을 차리고 민우가 나오기 전에 눈가에 묻은 눈물을 훔쳤다. 손만 올려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쳐버렸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침대로 다가간 유화는 협탁 위의 스탠드에 불을 켜고는 방안의 불을 껐다. 침대에 누워 눈물 젖은 얼굴을 민우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잠시 후 씻고 나온 민우가 유화의 옆에 누웠다.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유화를 말없이 뒤에서 안은 민우는 유화의 팔을 쓰다듬으며 토닥였다.

 

 왜 안아주지 않는지 그에게 따지거나 불평하지 않고, 안아달라고 요구하지 않은 착한 유화로 인해 무거운 죄책감이 민우의 가슴을 짓눌러왔다.

 

 집으로 올라올 때의 갑작스런 유화의 행동, 그녀가 잠들면 그가 간다는 걸 알면서도 확인하듯 물어보며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보는 유화의 얼굴에 민우의 참을성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그도 장담할 수 없었다.

 

 유화는 민우가 옆에 누워 그녀의 팔을 쓰다듬어 주는데도 머릿속은 온통 건후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직도 밖에서 여길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추울 텐데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코트라도 입고 있지는. 힘들게 끊었는데 담배는 피웠을까? 많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건후는 유화가 잘 들어갔는지 집에 불이 켜지길 기다리며 차에 앉아있었다.

 

 원룸 안으로 들어간 모습을 봤는데 갑자기 유화가 다시 뛰어내려왔고 잠깐 그와 눈이 마주쳤었다. 그의 눈을 피하며 차를 지나쳐 조금 더 내려가더니 그녀의 연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팔짱을 끼고 다시 올라왔다.

 

 애인과 함께 걸어오는 유화의 모습을 사이드미러로 보고 있던 건후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자신과 있으면서 한 번도 웃지 않았던 유화가 애인과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건후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건후가 차안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 사이드미러를 한번 쳐다보고는 차를 지나쳐갔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차에서 내려 팔짱을 풀어버리고 유화는 내 여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자신 때문에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남자에게 유화는 내 여자라고 소리칠 권리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유화의 과거남자일 뿐이었다.

 

 유화의 옆에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있다는 생각에 그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가슴이 아린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있는데.... 어쩌면 그렇게 행복하게 웃으며 그 남자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니?

 

 오늘밤 그 남자의 품에 안겨 잠이 들 그녀를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이 몰려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니? 유화야. 김유화. 너는 내 여자인데... 내 여자여만 하는데.

 

 하아......

 

 

 

 

 [5년 전.]

 

 

 어느 커피숍의 구석진 자리 5:5 미팅을 위해 남자 5명 여자 4명이 앉아있었다. 여학생들은 21살 같은 과 대학생들이었고 남학생들은 군대를 다녀왔거나 아직 안 갔거나 나이가 들쑥날쑥 이었다.

 

 여자 한명이 아직 안온관계로 서로를 보고 눈빛을 보내며 탐색전에 들어갔다. 이곳의 남자 주선자는 준현이었고 군대를 다녀오고 4학년 25살이었던 건후도 준현의 부탁으로 이 자리에 있었다.

 

 다들 올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는 혼자 보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미팅자리가 이뤄지게 되었다. 이 자리가 불편하고 못마땅하다는 듯 앉아있던 건후가 준현의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나 가면 안 되냐? 여자도 한명 안 왔잖아.”

 

 “5분 있으면 온데잖아. 조금만 참아라. 응? 이 친구 부탁이잖니.”

 

 “난 여자 없어도 살거든.”

 

 “알아 인마. 너 잘난 거. 내가 네 평생소원 하나 들어준다니까.”

 

 

 그때는 그 평생소원이 준현의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 건후는 준현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 미팅한번으로 평생 그의 수행비서로 만들어 버렸다.

 

 

 “알았다. 그 소원 뭔지 두렵지 않냐? 너 후회하지마라.”

 

 “후회 안 해.”

 

 “좋아. 그럼 내가 폭탄 처리반 해주마.”

 

 “고맙다. 친구야.”

 

 

 건후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앞에 앉아있는 여자들 다 폭탄이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무슨 21살 대학생들이 화장은 덕지덕지 해서는. 옷은 또 이 추운 날씨에 맨다리를 드러내는 미니스커트에 얇은 원피스가 웬 말이람?

 

 그를 향한 노골적인 시선과 건후가 보면 여학생들은 귀여운 척 웃으며 애교를 떨었다. 건후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부끄러운 듯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모습들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하나같이 다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건후는 여학생을 보며 속으로 혀를 쯧 찼다.

 

 잠시 후 커피숍의 문이 열리며 마지막 한명의 여자가 들어와 그들 가까이 다가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금요일이라 차가 많이 막히네요.”

 

 

 여자는 늦게 온 거에 대한 사과를 하며 미안한 마음에 웃어 보였다.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나타난 검은색 치마정장은 꼭 회사원 같았다.

 

 모두의 시선이 여자에게 쏠리더니 평범한 그녀의 외모에 남자들은 앞에 앉아있는 여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학생들은 여자를 보며 자신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는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은근슬쩍 미소를 지었다.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여자를 보며 건후는 호기심이 생겼다.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은 모습에 성숙미가 느껴지는 외모와 키는 조금 커보였고 쌍꺼풀이 져서 커다란 눈, 피부는 투명할 정도로 깨끗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그녀의 입술은....

 

 뛰어와서 숨을 고르느라 동그랗게 모아 내쉬는 붉게 물든 입술은 립글로스를 옅게 발라 반짝이는 게 맛있어 보였다. 작은 얼굴에 살짝 어깨 아래로 오는 머리를 반으로 묶은 모습은 단정했다.

 

 특출하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여자들 중에 제일 평범했고 그녀보다 예쁜 여자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자꾸 시선이 갔다.

 

 여자의 얼굴에 머물러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녀의 말간 눈동자와 마주치자 건후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갑자기 온몸에 열기가 뻗치고 심장이 떨려왔다.

 

 

 ‘뭐.....뭐지?’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건후의 주위에는 예쁘고, 집안 좋고, 몸매 좋은 여자들이 많았으며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항상 건후의 관심을 바랬고 그의 주위를 맴돌며 한번이라도 사귀어 봤으면 하고 유혹하곤 했다.

 

 한때는 그런 것에 혹하여 사귄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다들 여동생 같고 두근거리는 떨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건후의 시선을 사로잡아버렸고 자꾸만 눈이 가는 신선한 여자였다.

 

 20분이나 늦어버린 상황에 유화는 여자 주선자에게 미안하다는 눈짓을 보내고 자리에 앉아 가쁜 숨을 내쉬며 숨을 골랐다.

 

 유화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나이 27살에 대학생들 틈에 껴서 무슨 미팅이란 말인가. 남자들도 대학생이면 그녀보다 다 나이가 어릴 텐데.

 

 친한 친구 해수의 막냇동생 해령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메워주기 위해 나오긴 했지만 커피숍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 순간까지도 잘못 왔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망할 해수 때문에....

 

 주선자인 해령이 해수에게 부탁한 걸 남자친구가 있던 해수가 유화에게 자리를 떠넘겼다. 청승맞게 연애도 한번 못해보고 혼자인 유화가 안됐다며 친한 친구와 더블데이트 해보는 게 소원이라는 해수의 말에 홀딱 넘어가서는.

 

 결국 그 소원을 들어주긴 했다.

 

 해수와 남자친구인 성현, 건후와 유화 이렇게 넷은 놀이동산에서 더블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나이어린 건후의 풋풋한 모습과 과한애교에 유화를 챙기는 모습, 특히 커플 머리띠에 해수는 부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커플 머리띠가 뭐라고 같이 해주지 않은 성현과 대판 싸웠단다. 해수는 그녀보다 세살 많은 수학선생님이던 성현의 어른스럽고 강직한 모습이 좋아 만났는데 건후와 비교되는 계산적인 모습에 많이 서운했다고 했다.

 

 결혼을 하네 마네 하다가 결국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유화는 그때의 일로 해수에게 잡혀 사는 성현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며 지금은 해수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여자들은 유화가 24살 인걸로 알고 있었다. 나이까지 속여가면서 이 짓을 해야 하는 건지. 아우, 친구만 아니었어도....

 

 이왕 왔으니 얼굴이라도 보자는 마음에 유화는 남자들을 쭉 훑어보았다.

 

 하, 어리다 어려. 애송이들....

 

 그런데 자꾸 누가 그녀를 보는 듯한 시선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는데.

 

 험, 남자와 시선이 마주쳐버렸다. 그녀를 강렬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남자.

 

 5명의 남자들 중에서도 유독 빛나 보이는 잘생겼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여자 친구가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외모는 수려했고 미팅 나온 여자들 모두가 탐을 낼만한 남자였다.

 

 남자는 주선자의 옆자리이고 유화는 여자들 맨 끝에 앉아있었지만 그의 시선이 뜨겁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와 시선이 닿을 때마다 이상야릇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간질간질 거리는 게 온몸에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숨도 쉴 수 없어 그의 눈을 피해버렸다.

 

 유화까지 오자 본격적으로 자기소개와 함께 미팅이 진행되려고 하는 순간, 그 남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유화의 시선도 저절로 그를 향했다. 남자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시간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도 없고. 난 마음에 드는 여자 데리고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다들 건후의 말에 할 말을 잃었고 그가 겉옷을 들고 여자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자 여자들의 시선이 그를 따르며 혹시 자신이 아닐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건후가 유화의 옆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더니 여자들의 헉하며 실망하는 소리와 함께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유화는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걸어오는 남자를 보며 두근거리던 심장이 더없이 빠르게 뛰었고 입이 바싹 마르는 듯했다.

 

 

 “나가자.”

 

 

 유화가 멀뚱히 남자를 보고만 있자 그는 유화의 손목을 잡고 일으켜 세워 밖으로 끌고 나갔다. 유화는 무릎위에 놓아둔 가방을 집고 의자에 걸쳐두었던 코트를 가까스로 들고 그의 손에 끌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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