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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채운몽
작가 : 채헌
작품등록일 : 2017.6.19

조선 최초의 레즈비언으로 기록된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 세자빈 월, 기루 무사 소쌍을 만나 운명인 듯 우연인 듯 사랑에 빠진다. 아니라 해도, 아니 된다 해도 돌아설 수 없었던 그녀들의, 무지개빛 로맨스

 
13장. 우리에게도 다음이 있다면
작성일 : 17-06-28 13:58     조회 : 43     추천 : 0     분량 : 8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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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진연이 열리는 근정전은 색색의 휘장을 늘어뜨리고, 사방으로 화려한 의장기를 세워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너른 마당 양옆으로 만화석이 깔렸고, 금관조복을 차려입은 문무백관들이 벼슬 지체를 따라 좌우로 벌어졌다. 각국 사신과 종친들도 한껏 멋을 낸 차림으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은 궁인들이 바삐 오가며 그들의 시중을 들었고, 마당 뒤켠의 차일 안에선 꽃 같은 기생들이 마지막 단장에 여념이 없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선 보드라운 햇살이 나리고, 햇살 사이로 기분 좋은 혜풍이 불었다. 모든 것이 일부러 짜 맞춘 것처럼 완벽했다.

 

  “상감마마 납시오!”

 

  내관의 외침에 모든 이들이 일사분란하게 일어섰다. 구장복에 면류관을 쓴 왕의 뒤로 중전이, 그 뒤로 향과 월이 따랐다.

 

  왕과 중전은 월대 가장 높은 단상에, 향과 월은 한 칸 아래 단상에 나란히 앉았다.

 

  근정전을 둘러보던 월은 자신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고 고개를 돌렸다. 권승휘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월은 고개만 까딱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오늘 세자의 장성한 모습을 보니,”

 

  왕의 위엄에 찬 목소리가 근정전을 울렸다.

 

  “국왕으로서, 아비로서 기쁘기 그지없다. 세자는 일찍이 남면지덕을 타고나 매일같이 몸과 마음 닦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니 내 뒤를 이어 선화를 펼치기에 충분한 재목이다.

 

  이미 지난 경술년부터 정사에 참예하고 있고, 조선의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궁리하기를 멈추지 않으니 이 나라의 앞날이 어찌 환하지 않겠는가!”

 

  “모든 것이 상감마마의 성택이옵니다!”

 

  왕이 근엄한 눈빛으로 부복한 신료들을 내려다보았다.

 

  “장차 신료들은 나를 받들듯 세자를 받들고, 나를 위하듯 세자를 위하여야 할 것이다! 하여 군조를 튼튼히 하고, 이 나라 조선의 대계를 잇는 데 전심전력토록 하라!”

 

  단순한 축하의 말이 아니었다. 세자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주려는 국왕의 단호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아직 후사가 없다 하여 세자의 자격을 논하는 일부 신료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신명을 다하여 어명을 받들겠나이다!”

 

  신료들이 큰소리로 외치며 고두했다. 왕이 깐깐한 눈빛으로 신료들을 훑어보았다.

 

  “내 이 기쁜 날을 맞아 팔순이 넘은 노인들에게는 쌀과 고기를 하사하고, 중죄인을 제외한 죄인들은 모두 석방시킬 것이다! 대소신료와 각국의 사신, 종친들은 진연을 마음껏 즐기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신료들이 절을 한 뒤 일어나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 * *

 

 

  하연의 시작을 알리는 축 소리가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홍주의에 연화합립을 쓴 무동들이 줄줄이 나왔다. 열 살 남짓한 귀여운 무동들의 등장에 근정전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무동들이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며 가운데 놓인 화병에서 연꽃을 뽑아들고 향에게 올렸다. 무동들이 연꽃을 바칠 때마다 향이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연꽃은 월의 앞에도 놓였다. 하지만 월의 시선은 무동들을 넘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이씨, 미쳐버리겠네.”

 

  소쌍은 잔뜩 긴장한 채 좌우를 연신 힐끔거렸다. 연화무가 끝나면 바로 연주가 시작된다고 했다.

 

  일단 얼굴은 보기 흉한 두드러기가 났다는 핑계를 대어 반투명한 너울을 늘어뜨려 가렸다. 문제는 거문고를 연주하는 자세와 손놀림이었다. 다른 기생들에게라도 어찌 해야 하나 묻고 싶었지만 낯선 목소리를 들으면 의심할 것이기에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었다.

 

  드디어 연화무가 끝나고 악공들의 순서가 되었다. 다행히 옥금의 자리가 뒤쪽이라 눈에 잘 띌 것 같진 않았지만 소쌍은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저 중에 박연이 말한 옥금이란 기생도 있으렷다.”

 

  왕이 고개를 쭉 빼들고 기생들의 면면을 주의 깊게 살폈다. 옥금이란 말에 월이 화들짝 놀랐다.

 

  전하께서 옥금을 어찌 아신단 말인가.

 

  기억력이 비상하고 눈치가 빠른 분이셨다. 옥금을 본 적이 있다면 필시 다른 이임을 알아볼 것이고, 본 적이 없다 하여도 뭔가 수상쩍다는 것을 알아차리실 것이었다. 진연기생을 가장하고 궁에 든 것이 밝혀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월이 빠르게 기생들을 훑었다. 저기 있다!

 

  뒤쪽에 너울을 늘어뜨린 소쌍이 눈에 잡혔다. 다행히 뒷자리인데다 너울을 내려 얼굴은 감출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자세가 이상했다. 허리를 죽 펴고 앉은 기생들 사이에서 몸을 웅크린 소쌍은 누가 봐도 눈에 띄었다. 월의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지금이라도 빠져나가!

 

  월의 안타까운 외침에도 불구하고, 박연의 술대가 거문고의 머리 부분을 가볍게 쳤다.

 

  기생들이 술대를 고쳐 쥐고 연주를 시작했다. 소쌍은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를 내보려 손가락을 바삐 놀렸다. 기생들의 손 모양을 훔쳐보느라 눈동자도 빠르게 굴렸다. 그러면 그럴수록 소쌍은 더욱 더 도드라졌다.

 

  월이 슬몃 뒤를 돌아보았다. 왕이 미간에 주름을 세우고 소쌍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소쌍이 옥금인 척 앉아있는 것은 모른다 해도 가짜 금기임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월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소쌍을 보았다.

 

  “옥금이란 기생 말이요.”

 

  왕이 중전에게 하는 말을 들은 월이 벌떡 일어나 왕 앞으로 나아갔다. 왕과 중전이 놀란 눈으로 월을 보았다.

 

  “빈궁, 어찌 그러느냐?”

 

  “소, 소첩이, 한 잔 올리겠나이다.”

 

  “그러겠느냐? 그래, 간만에 빈궁이 주는 술 한 잔 마셔보자꾸나.”

 

  평소 같으면 마뜩찮은 표정을 지었을 왕도 날이 날인지라 기분 좋게 잔을 들었다.

 

  박 상궁이 잔을 받아들고 월 앞으로 다가섰다. 월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느리게 술을 따랐다. 박 상궁이 월이 친 술잔을 왕에게 올렸다. 월은 왕이 천천히 마셔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왕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빈궁이 주는 술이라 더욱 달구나. 앞으로도 종종 빈궁에게 술잔을 받아야겠느니.”

 

  왕이 흐뭇하게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 하시지요.”

 

  중전이 맞장구를 치며 왕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빈궁, 왜 그러고 섰느냐?”

 

  중전이 왕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왕이 술을 다 비운 후에도 월이 우두커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것이, 전하께 꼭 드리고픈 말씀이 있어…….”

 

  “지금은 진연 중이지 않으냐. 나중에 아뢰거라.”

 

  중전이 또 무슨 말을 하려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월을 보았다.

 

  “아니옵니다. 지금 꼭 드리고 싶사옵니다.”

 

  “빈궁!”

 

  왕이 손을 들어 중전의 말을 막았다.

 

  “무슨 말이기에 그러느냐? 해보거라.”

 

  막상 해보라 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까매졌다. 중전이 거푸 나섰다.

 

  “빈궁, 나중에 다시……,”

 

  “종학에 나가 생각해보니,”

 

  월이 얼른 입을 열었다.

 

  “소첩이 너무 어리고 철이 없었나이다. 전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짧은 소견으로 전하의 성심을 흩뜨린 것을 가슴 깊이 사죄드리고자 하옵니다.”

 

  난데없는 사죄 인사에 왕과 중전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비는 것은 기특하다만 왜 하필 지금 이 자리에서? 저것이 날 놀리려는 겐가?

 

  왕의 얼굴에 언뜻 노기가 스쳤다 사라졌다. 종친과 신료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안 그래도 일국의 왕이 새파란 세자빈과 맨날 말싸움이나 해댄다고 뒷말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왕이 황당한 기색을 숨기며 소리 내어 웃었다.

 

  “허허, 우리 세자빈이 이제 다 컸구나, 다 컸어. 이리 어른스러운 말을 하다니. 내 심히 기쁘도다, 어허허.”

 

  “그, 그러게 말입니다. 종학에 나가더니 빈궁이 며칠 사이 어른이 되어 돌아온 듯합니다.”

 

  중전이 눈썹을 찡그리며 얼른 자리로 돌아가라고 눈짓을 보냈다. 때마침 거문고 연주도 끝이 났다. 월이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향이 이상하다는 듯 월을 보았지만 월은 모른 척 시선을 돌렸다.

 

 

  * * *

 

 

  향에게 선물을 올릴 차례였다. 대소신료들과 사신, 종친의 뒤를 이어 내명부의 순서였다. 중전은 손윗사람이라 제외하여 월이 가장 첫 번째로 단상으로 올랐다. 월이 향에게 절을 올렸다.

 

  “스물세 번째 탄일을 감축 드리옵나이다.”

 

  “고맙습니다.”

 

  이제 선물을 드리고 내려가면 되는데 선물을 가지고 오기로 한 석가이가 보이지 않았다. 월이 시간을 지체하자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월과 향을 힐끔거렸다.

 

  “두 사람 회포는 진연이 끝난 후 따로이 풀도록 하라.”

 

  왕의 농담에 사람들이 와르르 웃었다. 월의 뒤통수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따가워졌을 때서야 석가이가 땀범벅이 되어 나타났다.

 

  ‘없, 어, 요!’

 

  석가이가 입을 크게 벌려 소리 없이 외쳤다. 없다니! 세자에게 선물하기 위해 몇 달을 공들여 만든 금낭이었다. 금낭 가득 귀갑문을 수놓느라 손가락이 아리고 눈이 빠질 지경이었는데 없어졌다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없어진 금낭도 금낭이지만 우선 이 자리를 모면하는 게 더 큰일이었다. 지아비의 생일에 지어미가 선물을 올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무어라 하겠는가. 저러니 세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손가락질 할 것이 뻔했다.

 

  월이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마음이 중하지 선물이 뭐 그리 중하냐고 할까? 맞는 말이다만, 주는 사람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선물은 이따 밤에 따로 드리겠다 할까? 음란한 세자빈이란 소문이 돌기 딱 좋다. 아니면 얼굴에 손바닥으로 꽃받침을 만들고 내가 선물이라 할까? 이건 내가 생각해도 몰지각한 행동이다.

 

  월이 난감한 얼굴로 눈만 굴리고 있는데 향이 제 소맷자락에서 손수건을 꺼내 새로 받아든 시늉을 했다. 손수건은 작년 탄일 월이 수놓아 선물한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빈궁.”

 

  왕에게까지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월이 당황한 눈빛으로 멀뚱히 서 있자 향이 미간을 찌푸렸다. 향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 월이 얼떨떨한 얼굴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월이 무사히 내려오는 것을 본 권승휘의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튀었다.

 

 

  * * *

 

 

  “일을 대체 어찌 한 게야? 세자빈이 만든 주머니를 버린 것이 확실하냐?”

 

  인적이 드문 후원의 한 구석, 권승휘의 질책하는 목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분명 빈궁 마노라의 주머니를 훔쳐 측간에다 버렸사옵니다.”

 

  단지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은 얼굴로 바들바들 떨었다.

 

  “엉뚱한 주머니를 착각하여 잘못 버린 것 아니냐?”

 

  “소인이 몇 번이나 확인을 하였는데…….”

 

  “실수하면 어찌 된다 이야기하지 않았더냐?”

 

  단지가 납작 엎드려 코를 땅에 박았다.

 

  “주,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승휘. 목숨만, 목숨만 살려주시옵소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흙바닥을 적셨다. 권승휘가 들썩이는 단지의 등허리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멍청한 것,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러고 있느냐? 썩 물러가거라!”

 

  단지가 눈물콧물 범벅인 얼굴로 물러났다. 권승휘도 주변을 살핀 뒤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풀숲 사이에서 머리통 하나가 쑥 솟아올랐다. 풍성한 가체에 화려한 뒤꽂이를 꽂은 머리의 주인공은 소쌍이었다. 겨우 연주를 마치고서 풀숲에 누워 숨을 돌리던 참이었다.

 

  그런데 세자빈의 주머니를 어쨌다고? 소쌍은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찬찬히 곱씹었다.

 

  그때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소쌍이 얼른 드러누워 몸을 숨겼다.

 

  “소쌍이, 여기 있느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는 월의 것이었다. 소쌍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나를 보기 싫은 게야?”

 

  소쌍이 쭈뼛쭈뼛 몸을 일으키며 뒷목을 긁었다.

 

  “아, 아셨습니까?”

 

  월이 짐짓 근엄한 어투로 말했다.

 

  “내가 보기보다 눈썰미가 좋으니라. 간도 크지. 사내가 기생의 옷을 입고 진연에 나오다니, 네가 감히 왕실을 능멸하려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인지 아닌지는 내가 듣고 판단할 것이다. 말해보거라.”

 

  “그것이……, 저희 기루 금기의 아이가 급병이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제가 대신 왔습니다. 금기가 진연에 나오지 못하면 큰 벌을 받는다 하여…….”

 

  “그 금기가 너의 정인이라도 되느냐?”

 

  소쌍이 두 팔을 크게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그 금기와는 무람없는 친우 사이입니다.”

 

  “허면 함께 왔던 기녀도 너의 친우냐? 이름이 천향이라 했던가?”

 

  월은 자신이 왜 이런 걸 묻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물음을 멈추지 못했다.

 

  “친우라니요! 천향이와 저는……,”

 

  서로 못 잡아먹는 원수 사이인 걸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으며 말끝을 흐렸다. 정인이구나! 월이 샐쭉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그날 나를 희롱했던 것이냐?”

 

  소쌍이 변명하지 않고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날 일은……, 죄송합니다. 노리개는 석가이 편에 보냈는데, 무사히 받으셨습니까.”

 

  고개를 숙인 소쌍의 눈에 월의 앞섶에 매달린 노란 노리개가 들어왔다. 다행이다 싶어 살짝 고개를 들려는데 월이 말했다.

 

  “네가 정녕 죽고 싶으냐?”

 

  소쌍이 다시 고개를 구부렸다.

 

  “소인의 실례를 용서하……,”

 

  “죽고 싶지 않으면 허리를 죽 펴거라.”

 

  “예?”

 

  “금기를 도우려 온 것이지, 네가 죽으러 온 것은 아닐 것 아니냐. 전하께선 안정이 매처럼 밝으시다. 작은 실수도 용납지 않는 분이니 절대 눈에 띄어선 아니 될 것이야.”

 

  “…… 예.”

 

  대답은 했지만 목소리엔 자신감이 하나도 없었다.

 

  “혹, 거문고를 전혀 뜯을 줄 모르는 게냐?”

 

  소쌍이 고개를 끄덕이자 월이 입을 떡 벌렸다.

 

  “너는 목숨이 서너 개쯤 되느냐? 죽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고서야 어찌……!”

 

  월이 한숨을 내쉬더니 소쌍의 등 뒤로 섰다. 그리고는 왼팔로 소쌍의 왼팔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소쌍이 흠칫 놀랐다.

 

  “무얼 그리 놀라느냐?”

 

  “가, 갑자기 만지시니…….”

 

  “이런 걸 좋아하는 자가 아니었더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 이 말은 헛나온 것이니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월이 입술을 비죽이며 쏘아붙였다.

 

  “너도 내 팔이 칼자루라 여기려무나. 그럼 되지 않느냐?”

 

  월의 오른손이 소쌍의 허리 아래쪽을 부드럽게 눌렀다. 소쌍의 허리가 어색하게 펴졌다.

 

  “시선은 왼손에.”

 

  고개를 살짝 틀어주느라 월의 손이 소쌍의 얼굴에 와 닿았다. 작고 하얀 손이었다. 너무도 부드러워 어루만져주고픈 손이었다. 따뜻하게 품어주고픈 손이었다. 소쌍이 고개를 흔들었다.

 

  “고개는 흔들지 말라니까.”

 

  월의 손이 소쌍의 뒷목을 단단히 잡았다. 소쌍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월은 나뭇가지를 주워 소쌍의 오른손에 쥐어주었다.

 

  “술대는 식지와 장지 사이에 끼우고 식지를 구부려 술대를 휘어잡듯 잡아야 한다. 나머지 세 손가락 끝은 살짝 구부려 손 모양이 스스로 자(自) 형태가 되도록 하거라.”

 

  월이 말하는 대로 손을 구부렸지만 영 모양이 나지 않았다. 월이 소쌍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잡아주었다. 월의 보드라운 손가락이 소쌍의 거칠고 투박한 손가락에 감겼다.

 

  “이렇게 하란 말이다, 이렇게.”

 

  월이 답답하다는 듯 다가섰다. 서로의 숨이 느껴질 만큼 가까워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월이 헛기침을 하며 물러섰다.

 

  “일러준 것들 명심하거라. 그러면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노랫가락이 멈추었다.

 

  “이만 가보아야겠다.”

 

  “저기……,”

 

  “왜, 더 물을 것이 있더냐?”

 

  월이 어색하게 딴 데를 보며 대답했다.

 

  “그날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월이 곁눈으로 소쌍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당연히 죄송하고 고마워야지. 내 너의 목숨을 두 번이나 살려준 셈이 아니냐?”

 

  “잊지 않겠습니다. 평생……, 기억하고 고마워하겠습니다.”

 

  당신이란 사람을 알게 된 것을, 잠깐의 마주침이었더라도 기뻤으니까. 소쌍은 뒷말을 조용히 삼켰다.

 

  “말로만 고맙다 하는 것이냐?”

 

  “……?”

 

  월이 망설이다 소쌍을 향해 돌아섰다.

 

  “우리가 만약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말이다. 그땐 내 소원 하나 들어다오. 그래주겠느냐?”

 

  우리에게도 다음이 있을까요. 당신은 궁을 나갈 수 없고, 나는 궁에 들어올 수가 없는데. 당신은 세자빈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물론입니다. 하나가 아니라 열 가지 소원이라도 들어드리겠습니다.”

 

  소쌍이 씩씩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딴소리 말거라.”

 

  “소인은 꼭 약속을 지킬 것이니 빈께선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승냥이들은 아름답고 귀한 분들을 그냥 두고 보지 않지요.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월의 눈빛에 의아함이 실렸으나 이내 생긋 웃었다. 그리고 더는 묻지 않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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