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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채운몽
작가 : 채헌
작품등록일 : 2017.6.19

조선 최초의 레즈비언으로 기록된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 세자빈 월, 기루 무사 소쌍을 만나 운명인 듯 우연인 듯 사랑에 빠진다. 아니라 해도, 아니 된다 해도 돌아설 수 없었던 그녀들의, 무지개빛 로맨스

 
9장. 삼짇날엔 꽃놀이라
작성일 : 17-06-26 11:30     조회 : 24     추천 : 0     분량 : 6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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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다음 날 아침, 조반상을 물리자마자 박 상궁이 종학으로 들어섰다. 박 상궁을 본 월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듯 퍼렇게 질렸다.

 

  “바, 박 상궁이 여기까지 어찌 왔는가?”

 

  “가마 타고 왔나이다.”

  “아하하, 박 상궁도 참. 아하하…….”

  농인 줄 알고 웃었는데 정작 박 상궁의 얼굴엔 웃음기 한 점 없었다.

 

  어쩜 이리 눈빛이며 표정이며 왕을 빼닮았는지. 왕의 곁에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왕을 보고 배운 것일까. 아니면 왕이 자기와 꼭 닮은 이를 대령상궁으로 뽑아 들인 것일까.

 

  어쨌거나 오늘 노리개를 받으러 가기는 틀렸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제가 온 것이 싫으시옵니까?”

 

  “싫다니, 그럴 리가 있나! 우리 박 상궁 얼굴을 열흘이나 못 보는 줄 알고 내 굉장히 아쉬워하던 참이었네. 자, 어서 공부를 시작하세나.”

 

  월이 과장되게 밝게 웃으며 책을 펼쳤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몰래 빠져나갈 방법을 필사적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오늘은 4권 정순전의 일화부터 읽어나가겠사옵니다.”

 

  양나라 양왕이 아름다운 과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궁에 들이려 하자 과부가 스스로 코를 잘라 정절과 신의를 지켰다는 내용이었다.

 

  “자네는 어찌 생각하시는가?”

 

  심각한 얼굴로 책을 들여다보던 월이 묻자 박 상궁이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예를 지키기 위해 고행을 행한 과부의 결기가 가상하다 여기옵니다.”

 

  박 상궁이 다음 구절을 계속 읽어나가려는데, 월이 대뜸 고개를 저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

 

  “무엇을 말씀이오니까?”

 

  “정절이 그리 중한데 양왕은 대체 왜 과부를 입궁시키려 한 것인가?”

 

  “예?”

 

  “이건 과부가 훌륭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일단 양왕이 잘못한 것 아니냔 말일세. 궁에 어여쁜 후궁들이 널리고 널렸을 텐데 어찌 여염집 과부를 탐한단 말인가? 결국 애먼 과부 코만 잘리지 않았느냐.”

 

  “마노라, 그것은……,”

 

  “그 과부도 그렇다. 싫으면 싫다 할 일이지, 냅다 코부터 자를 건 무어냐? 성미 급하고 엽기적인 여인네가 아니냐.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보기엔 음란한 왕과 성질 급한 여인네의 이야기일 뿐인데 이를 굳이 열녀라 불러야 하는가?”

 

  박 상궁의 얼굴에 짜증기가 스쳤다. 월이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지난번 공부한 내용도 이상하긴 마찬가질세. 혼인 전 죽은 남편을 위해 평생 수절하며 시부모를 모시고, 나중에는 음독자살을 한 여인이 열녀비를 받았다 하였지?”

 

  박 상궁이 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말이 안 되는 듯하네. 초례청이 세워지기도 전에 지아비 될 자가 죽었는데 지킬 정절이 어디 있단 말이냐?”

 

  “혼인의 예를 맺기로 약조하였기에 정절이 생겨난 것이옵니다.”

 

  “허면 그 정절이란 것은 약조만 하면 생겨나는 것인가? 그럼 혼인을 올리자 했다 파혼을 하면 어찌 되는가? 이는 정절이 생긴 것인가, 생기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정절이 생기다 만 것인가?”

 

  작정한 듯 쏟아내는 괴이한 질문에 노회한 박 상궁조차 말문이 막혀버렸다.

 

  “내 생각으론 말이네. 이는 정절이 생긴 것도, 생기지 않은 것도, 생기다 만 것도 아니다. 그저 억지로 주어진 것일 뿐이지.”

 

  “예?”

 

  “박 상궁은 평생 홀몸으로 시부모를 모시고, 끝내는 독을 마셔 죽는 이 여인의 마음을 헤아려본 일이 있는가?”

 

  박 상궁이 월의 궤변에 휘말리지 않으려 힘겹게 정신을 수습했다.

 

  “그거야, 부부의 연을 맺은 이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하여……,”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것이네. 나라면 어떠했을까, 진정으로 떠올려보는 것이란 말일세. 머릿속에 있는 이치와 경구들을 달달 외는 것이 아니라!”

 

  “…….”

 

  “나는 어쩌면 이 여인이 그리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홀로 시부모를 모시고 독을 마셨을 거라 여기네.”

 

  박 상궁이 더는 대꾸할 의지를 잃었는지 월의 얼굴을 멀거니 보았다.

 

  “다른 이와 정혼하기로 한 여인과 혼인하겠다는 사내는 없으니까. 혼자 살지 않으면, 시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독을 마시지 않으면 음란하고 패악스럽다 손가락질을 당하니까. 자기뿐만 아니라 일가가 모욕을 당하게 될 테니까!”

 

  “마노라, 소인은 마노라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모르겠사옵니다.”

 

  박 상궁이 급기야 간청하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월의 말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그럼 이건 어떠한가? 정절이 그리 중하다면 말일세, 사내들은 왜 지키지 않는가?”

 

  사내의 정절이라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말이었다.

 

  “사내들은 버젓이 아내가 있는데도 첩을 취하고 기생들과 놀아나네.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쫓아내고, 혹시라도 먼저 죽으면 속현이라 하여 금방 새 아내를 맞아들이네. 지아비 따라 죽는 아내는 이리 많은데,”

 

  월이 열녀전을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어찌 아내 따라 죽었단 지아비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인가! 이것이 도라면 응당 사내들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그저 사내들의 난행을 정당화하려는 핑계인 것은 아닌가?”

 

  박 상궁의 눈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마노라, 나, 난행이라니요! 차마 듣기 참람하옵니다.”

 

  “참람하다? 진짜 참람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가?

 

  조강지처를 두고도 여러 여인들과 어울리면서 조강지처에겐 담 밖을 넘지 못하게 하는 사내들이야말로,

 

  저들은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여인을 안으면서 여인들은 사내와 눈만 마주쳐도 음란하다, 부덕하다 손가락질하는 것이야말로,

 

  제 손으로 목을 매고 독약을 마셔야 하는 여인들이야말로 참람한 것이네!

 

  사내가 하면 풍류이고 호기라 하면서 어찌 여인이 하면 부덕이고 음행이 되는 것인가? 말해보라!”

 

  박 상궁의 이마가 바닥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월이 쐐기를 박듯 힘주어 말했다.

 

  “나는 이 이유를 알고 싶네. 내가 궁금하고 공부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란 말일세. 허나 이 책으로는 그 답을 알 수가 없네. 그러기에 이 책은 내게 무용한 잡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세!”

 

  월이 벌떡 일어나 창밖으로 열녀전을 내동댕이쳤다.

 

  “마, 마노라!”

 

  박 상궁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구겨졌다.

 

  “그 답을 알 수 있는 책을 찾으면 오시게. 그때 내 자네와 다시 공부를 하겠네.”

 

 

 

  * * *

 

 

 

  쓰개치마를 뒤집어 쓴 월과 석가이가 대문 밖으로 빠져나오고도 한참을 더 걸은 뒤에야 겨우 숨을 내쉬었다.

 

  “몰래 잘 빠져나온 게지?”

 

  “그런 듯 합니다요. 그나저나 찰거머리 같은 박 상궁은 어찌 떼어내셨습니까? 아까 보니까 귀신이라도 본 얼굴로 나가던데요.”

 

  “말도 마라. 내, 심장이 아직도 쿵쾅거리고 손이 떨린다. 늦진 않았느냐?”

 

  “서둘러 가면 늦지 않게 당도할 거여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니 소쌍이 느티나무 아래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석가이가 오래도록 떨어진 정인이라도 본 듯 반가운 얼굴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오셨습니까?”

 

  “예 왔어요. 제가 왔어요.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니오. 좀 전에 왔습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소쌍이 뒤늦게 다가온 월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헌데 오늘은 왜 이리 사람이 많대요? 한양 사람들은 죄다 저자에 나온 듯하구만요.”

 

  석가이가 땀을 훔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어제보다 훨씬 사람도 많고 북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오늘이 삼짇날이라 그렇지요.”

 

  소쌍의 대답에 월이 화들짝 놀랐다.

 

  “삼짇날?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느냐?”

 

  정월 초하루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달이나 지난 것인가. 월은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자신만 외따로 떨어진 듯한 느낌에 새삼스레 서글퍼졌다.

 

  “삼짇날이면 화전 먹는 날이잖아요. 나 화전 엄청 좋아하는데.”

 

  “근처에 잘 아는 주막이 있습니다. 주모 솜씨가 좋아 화전과 산떡을 아주 맛있게 합니다. 가보시겠습니까?”

 

  “산떡이요? 저 산떡도 엄청 엄청 좋아해요! 어쩜 악공은 제 입맛까지 꿰고 계실까.”

 

  감흥에 젖은 눈빛으로 소쌍을 바라보는 석가이를 월이 돌려 세웠다. 월이 소쌍이 들을 새라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속닥거렸다.

 

  “노리개만 받고 돌아가기로 하지 않았느냐?”

 

  “에이, 삼짇날 놀아보는 게 얼마만인데 그냥 가시겠다구요? 여기까지 왔는데 화전 한 접시만 먹고 가요.”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려고!”

 

  석가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코웃음을 쳤다.

 

  “사람이 이리 많은데 마노라를 어찌 알아본대요? 쓰개치마만 잘 쓰고 다니면 절대 들킬 일은 없어요. 저만 믿으셔요.”

 

  “이 자가 알면 어찌 하려고! 양녕대군과도 건너건너 아는 사이가 아니었더냐? 혹시라도 대군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월이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몸을 떨었다. 잠시 눈을 굴리던 석가이가 다시 귓속말을 했다.

 

  “마노라께서는 평범한 양갓집 규수인 척하셔요.”

 

  “내가 어찌 양갓집 규수인 척 하겠느냐? 딱 봐도 세자빈 태가 날 터인데.”

 

  석가이가 태어나서 가장 어이없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눈을 찡그렸다.

 

  “무슨 그런 걱정을 하셔요. 마노라께선 평소에도 전혀 세자빈 같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평소처럼만 하시면 돼요.”

 

  “바쁘시면 그냥 가셔도…….”

 

  뒤에서 소쌍의 목소리가 들리자 월과 석가이가 동시에 돌아서서 고개를 흔들었다.

 

  “가요, 가. 화전 먹으러 가자구요.”

 

 

 

  * * *

 

 

 

  “뭐, 누, 누구? 양녕대구운?”

 

  설매의 퉁퉁한 볼이 핏기를 잃고 늘어졌다.

 

  “그날 온 왈짜패 우두머리가 양녕대군이란 말이냐?”

 

  “그렇다네요. 어제 소쌍한테 맞은 덩치가 그러더랍니다. 자기가 모시는 형님이 양녕대군이라고.”

 

  옥금이 초조한 얼굴로 가락지를 만지작거렸다. 옆에서 육손과 놀고 있던 춘섬이 옥금과 설매를 흘깃거리며 난앵에게 물었다.

 

  “양녕대군이 누군데 다들 이리 겁에 질리신 게야?”

 

  “너는 기생이라는 애가 양녕대군도 모르니? 상감마마의 형님 되는 사람이잖어.”

 

  “상감마마의 형님? 내가 생전 본 적도 없는 상감마마의 형님까지 알아야 되냐?”

 

  “상식 아니니, 상식. 양반들이랑 놀려면 그 정도는 알아야지.”

 

  “그래, 난앵이 넌 아는 거 많아 좋겠다.”

 

  “으이그, 진짜. 이 언니가 널 아끼는 마음으로다가 딱 한 번만 설명해줄 테니까 잘 들어둬.”

 

  난앵이 가까이 오라는 듯 손을 까딱거렸다. 춘섬이 코를 벌름거리며 귀를 들이댔다.

 

  “양녕대군은 원래 세자였는데 쫓겨났어.”

 

  “왜애?”

 

  “술 좋아하지, 여자 좋아하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궁 밖으로 나가 쌈질이나 해대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치니 안 쫓겨나고 배겨? 지금 상감마마도 못 말리는 대단한 사고뭉치래.

 

  색은 또 얼마나 밝히는지, 기생 중에 양녕대군과 놀지 않은 기생은 가짜 기생 소릴 듣는대더라.”

 

  “우와, 그럼 이제 우리도 어디 나가서 기생입네 할 수 있는 거야? 잘 됐다. 아얏! 왜 때려요, 스승님!”

 

  설매한테 꿀밤을 되게 맞은 춘섬이 머리통을 문질렀다.

 

  “퍽이나 잘 됐다, 이년아. 무섭기가 범 같은 이방원도 꼼작 못한 망나니 중의 망나니다. 우리가 지금 그런 인사랑 엮이게 생긴 거라고!”

 

  “스승님은. 왕 이름을 종놈 부르듯 불러도 돼요?”

 

  맞은 것이 억울한 춘섬이 퉁명스레 내질렀다. 설매가 또 한 차례 꿀밤을 먹였다.

 

  “왕은 무슨. 애비 형제 다 죽이고 나라 뺏어먹은 도적놈이.”

 

  설매가 천향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그 인간은 건드리지 않는 게 수다. 천하의 천향이라도 감당 못 해. 잘못 건드렸다간 우리 죄다 황천길행이라고.”

 

  천향이 비단 수건으로 생황을 닦으며 핀잔을 주었다.

 

  “언제는 기생이 성질머리 죽으면 다 죽는 거라더니. 스승님도 나이 먹고 많이 약해지셨수.”

 

  “이년아, 성질머리도 사람 봐가며 부리는 거다.”

 

  그때 문이 열리고 등짐을 멘 짐꾼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설매의 턱이 툭 떨어졌다.

 

  “양녕대군이 보냈나봐요.”

 

  옥금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옥금의 말대로 짐꾼들이 지고 오는 것은 양녕이 사주기로 한 기물이었다. 헌데 똑같은 것이 아니었다. 왈짜패들이 부순 것보다 훨씬 값나가고 상품인 것들이었다.

 

  “염병할, 탈이 자배기로 났구만.”

 

  설매가 인상을 팍 쓰며 중얼거렸다. 옥금이 천향의 팔을 붙들었다.

 

  “언니, 이거 받으면 안 돼요.”

 

  짐꾼들이 짐을 방 안으로 들이려 하자 천향이 앞을 막아섰다.

 

  “어찌 그러십니까요?”

 

  “우리는 이걸 받을 수가 없네. 그러니 도로 가져가시게.”

 

  “안 됩니다요. 오늘까지 반드시 이곳으로 기물을 모두 들이라 하셨습니다. 명을 어기면 저희 목이 달아납니다요.”

 

  짐꾼이 제 목을 감싸 쥐고 앓는 소리를 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 물건을 받을 수가 없네.”

 

  “그럼 저희더러 다 죽으란 말씀입니까요?”

 

  짐꾼들이 너나할 것 없이 투덜거렸다.

 

  “왜 받을 수 없다는 겐가?”

 

  한참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양녕이 검은 옷의 왈짜패들과 유유히 들어섰다. 기생들이 발딱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비켜섰다.

 

  “물건이 마음에 아니 들어 그러느냐? 이보다 더 좋은 물건을 바라는 것이야?”

 

  천향이 눈을 내리깔았다.

 

  “파방을 한 후엔 그와 동일한 물목을 사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더 좋은 물건을 사주면 아니 된다는 원칙도 없지 않느냐? 내 있는 건 돈뿐이라 조금 더 쓴 것뿐이니 너무 황감해할 필요는 없느니라.”

 

  “저를 모욕하시려는 것이 아니라면 모두 물려주십시오.”

 

  “저년이, 어째 더 좋은 걸 사줘도 지랄이야!”

 

  아직 눈가의 멍이 가시지 않은 덩치가 눈알을 뒤룩거렸다. 양녕이 딱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허허, 어찌 내가 너를 모욕하기 위해 비싼 물건을 샀다 여기는 게냐? 네가 나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소첩은 원칙을 지켜 주십사 청할 뿐입니다.”

 

  천향이 고집을 꺾지 않자 양녕의 음성에 노기가 스미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무례를 범한 것까지 값으로 쳤다 생각하면 되지 않느냐!”

 

  “그 값은 달리 받겠습니다.”

 

  “달리 받겠다?”

 

  잠시 침묵하던 양녕이 푸핫,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보니 욕심이 하늘을 찌르는 년이로구나. 좋다! 그럼 그 값은 어찌 받을 것인지 말해보거라.”

 

  “그 귀한 것을 어찌 쉬 말씀드리겠습니까. 적당한 때가 있을 것입니다.”

 

  천향과 양녕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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